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2) 소년 에드워즈
김재호
1. 아버지와 가정환경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말은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꼭 맞는 말이다. 아버지 티모시와 아들 조나단은 모든 면에서 일치한다. 단지 아들이 아버지보다 더 뛰어났을 뿐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설교를 모두 들어본 당시 사람들은 아버지가 아들에 비해 박식하고 생명력이 있다고 생각했고, 아들은 보다 깊이 있다고 평가하였다.1 또한, 티모시 에드워즈는 집안의 모든 대소사를 자신의 감독권 아래 두고 일일이 돌보던 사람이었다.
남편이 가장으로서 집안을 책임지고 다스리는 일은 당시 청교도 사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하지만 티모시의 경우는 유별나다 싶을 정도로 세심했다. 군목으로 복무하던 시절, 집으로 보낸 편지에는 ‘헛간의 문을 닫아놓으라’, ‘분을 바르고 아이에게 너무 오랫동안 젖을 물리지 말라’, ‘앉고 일어서는 것을 잘 알려주라’는 것까지 당부할 정도였다.2
티모시의 이런 세심한 관리와 감독이 온전하게 작동했다는 사실은, 그가 가진 안목의 정확함과 탁월함을 잘 보여준다. 이 정도의 세심함은 그만한 탁월함과 함께 작동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아랫사람을 어렵게 하는 결과로 되돌아오고 만다. 그런 티모시가 자기 아들의 비범함을 놓쳤을 리가 없다. 티모시는 훌륭한 코치가 되어 최고의 선수를 양성하듯 자기 아들을 길렀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영광만을 위해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제공해 주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아버지는 최고의 모범이자 선생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아버지 티모시의 믿음을 물려받아 더 크게 결실하도록 인도해주셨다.
「비록 여왕의 군대에 복무하던 시절은 크게 명예롭지 못했지만 티모시 에드워즈는 자신의 영역, 곧 그의 가정과 교회에서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아들 조나단은 아버지를 그대로 본받았다. 19세기의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레오폴드의 관계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다. 아버지는 자기 분야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아들은 조숙하여 결국 아버지를 능가했지만, 그의 성공은 아버지의 세심한 지도와 지속적인 영향력 덕분이었다.」3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를 언약 백성으로 양육해야 하는 부모의 소명은 참으로 중요하다.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지만, 심고 물주고 가꾸는 책임은 사람에게 있다. 따라서 모든 신앙의 부모는 자기 자녀들에게 영생에 이르는 믿음을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따라 약속하신 바를 이루어주실 것이다.
2. 회심과 분별
조나단 에드워즈는 상당한 수준의 영적인 각성을 9살 때 이미 두 번이나 체험하였다. 그는 모든 죄를 버리고 친구들과 은신처를 만들어 열심히 기도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그 일은 지속되지 못했고, 그는 다시 죄의 길로 돌아갔다.4 그렇다고 완전히 방종하며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비록 자신이 회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꾸준히 은혜와 거룩을 향해 나아갔다. 13살에 예일 대학에 입학했던 에드워즈는 방종하는 학교 후배를 교훈하다가 마찰을 빚기도 했고, 꾸준히 죄와 싸우며 하나님을 향한 결심과 헌신을 반복했다. 이러한 사실은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잘 보여준다.5
그러나 에드워즈가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지적인 측면에서 하나님의 주권 교리가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고 하나님께 저항하게 했다. ‘당신의 기쁘신 뜻대로 사람을 지옥에 가게 내버려두시는 분이 어떻게 공평할 수 있다는 말인가?’6 에드워즈의 이 영적 갈등은 자신도 설명하지 못한 어떤 일로 인해 깨끗하게 해결되었다.
어느 날, 디모데전서 1장 17절을 읽고 있는데,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며 죄인을 심판하여 멸망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이 참으로 공의로우시다는 사실을 지적으로도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다. 그날 이후,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에 푹 빠져 즐거워하는 날을 보냈다. 심지어 그를 무섭게 했던 천둥과 번개 속에서도 하나님의 위엄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을 정도였다.7
훗날, 에드워즈는 이때를 자신이 회심한 시기로 확신하였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못했다. 그의 기질이 본래 신중하고 세심하기도 했지만, 여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의 회심은 너무 급작스러웠다. 그래서 유명한 청교도들이 제시한 회심의 단계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이후, 에드워즈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진정 무엇인지를 성경으로 철저하게 시험하고 확증하는 일에 들어가게 된다. 19살 때 일어난 이 일은, 훗날 참된 신앙감정과 거짓 신앙감정을 시험해 볼 수 있는 성경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글을 쓸 수 있는 토대를 제공해주었다.8
또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결심문도 이즈음 작성되었다. 이 결심문을 살펴보면, 에드워즈가 어떻게 경건 훈련을 했고 얻은 교훈들을 어떻게 실제 삶의 지침으로 정리하고 체계화했으며, 그 일에 얼마나 꾸준하고 철저했는가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참된 신앙과 거짓된 신앙을 성경적으로 분별하는 일을 자연스럽게 연습하며 체계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성경을 철저하게 아는 것이 내게 매우 큰 유익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교리서나 논쟁서를 읽고 있을 때, 나는 더욱 확신을 갖고 행할 수 있으며 내가 서 있는 발판과 기초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9
참된 신앙에는 주관적인 면과 객관적인 면이 늘 함께 한다. 둘은 원수가 아니라 친한 친구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이 우리 마음에 아무런 감흥도 주지 않거나, 어떤 감정적 체험을 말씀의 가르침에 비추어 분별하지 않는 일은 다 잘못된 일이다. 참된 성도는 하나님을 삶 속에서 친밀하게 인식하며, 그 경험을 말씀에 비추어 검증하고 확인한다. 참된 체험은 말씀의 교훈을 벗어나지 않으며, 참된 교훈은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한다. 영들을 다 믿는 일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우리는 영들을 늘 진리로 시험해야 한다.
3. 통합적 지식과 영적 전쟁
우리는 18세기에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이 장차 신앙의 원수로 등장할 계몽주의와 격렬한 전투를 벌였으리라고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그 일은 19세기 말엽에 가서야 신호탄이 터졌고, 20세기 중반에 정점에 이르렀다. 그 모든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우리의 시각에 맞추어 18세기 사람들을 헤아려서는 안 된다.
우리 믿음의 선진들은 오히려 자연 철학자들이 내놓는 최신 지식을 보급하며 연구하도록 장려하였다. 우리 선배들이 너무 어리석고 순진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렇게 한 이유는, 사람이 자연 만물을 정확하게 알면 알수록 더욱 성경을 확신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10
물론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에드워즈는 청교도 교리 체계 안에서 새로운 지식을 통합하려고 많은 열심을 기울였다. 그는 자연적 차원과 영적 차원의 의미를 모두 인정하였다. 그러나 토마스 아퀴나스처럼 그 둘을 분리하여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취급하지 않고, 신학적 토대 위에서 자연적 의미를 조명하여 통합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그가 쓴 거미에 관한 연구에서 이러한 사고방식이 아주 잘 나타난다.11
그렇다면 훗날에 벌어진 대전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계몽주의가 자기 민낯을 거리낌 없이 드러낼 만한 위치에는 아직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룩이 부풀어 오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그때가 이르기까지 비교적 소규모 전투만 벌어졌고, 기독교인 대부분은 새롭게 발견한 과학적인 지식과 계시가 참으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를 확증해준다고 여기며 살아갔다. 이는 초기 계몽주의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서로의 사고방식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본질적인 상반점이 존재했다. 특히, 자연적인 요인을 이해하는 토대가 그러했다. 계몽주의는 대체로 초자연적인 요인을 배제하고, 오감(五感)을 통해 감지할 수 있는 ‘자연적인 요소’들로만 세상을 충분하게 이해할 수 있다고 전제했다. 반대로 청교도는 우리가 ‘자연적인 요인’이라고 부르는 것들 역시도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섭리’ 안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었다.
전자에게 자연법칙을 계속 섭리하시는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손길이란 군더더기에 불과했고, 후자에게 하나님의 계속적인 섭리가 없는 자연법칙이란 영혼 없는 몸과 같았다. 계몽주의는 이 세상 만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격리하는 것을 시작으로 하여, 하나님 자체를 사람이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로 바꾸어놓았고, 결국은 존재하지 않는 인간 소망의 산물로 격하시켜버렸다.
그 결과, 하나님의 말씀은 계시가 아닌 신화 모음집이 되었고, 학자들이 그 가공된 신화에서 진실을 찾아내겠다고 달려들어 성경을 난도질했을 때에야, 비로소 계몽주의가 진정으로 추구하던 바가 무엇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나 일대 격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계몽주의가 이 일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전에 미리 대응할 기회가 많았다는 것이다. 에드워즈처럼 신학적 토대 위에서 과학적 지식을 통합하여, 이 세상에 기록된 하나님의 일반 계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밝히 조명해주었어야 했다. 또한, 계몽주의의 연구방법론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를 모토로 삼기 때문에 반드시 인간의 교만을 부르고, 그 결과 허망한 낙관주의를 품게 하여 사람을 결국 낭떠러지로 이끌고 만다는 사실을 먼저 집요하게 파고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실제 역사는 반대로 흘러갔다. 물론 조나단 에드워즈처럼 그 사실을 알고 대응했던 사람도 있었으나 그 수는 턱없이 적었다. 청교도주의가 유럽 대륙에 다시 상륙한 것이 아니라, 유럽 대륙의 자유주의가 미국에 상륙하고 말았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근대주의자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들의 철학적 방법론에 함축된 불신앙과 교만을 간과하지 않고 맞서 싸웠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에드워즈는 자연 철학부터 순수문학에 이르기까지 모든 책을 섭렵했다. 당대의 많은 사람이 그랬듯이, 에드워즈도 모든 것을 이해하고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세계 속에 통합되는지 깨달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중략)…… 기독교 사상의 오랜 주제였던 예표론은 우주에 대한 에드워즈 사상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은 더 높은 영적인 실재들을 지시해주시기 위한 예표로서 하등한 물질들을 창조하셨다. 그러므로 우주는 하나님의 복잡한 언어였다. 그 속에 있는 어떤 것도 우연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더 높은 의미를 지시했다. 모형들로 가득한 성경은 세상의 모든 것의 진정한 의미를 해석할 수 있는 열쇠였다.
……(중략)…… 모든 지식은 그곳에서 시작해야 했다. 성경은 단순히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 도전적인 삶의 전망을 갖도록 해주는 필수적인 안내서였다. 모든 뉴잉글랜드 어린이가 배웠던 바와 같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었다(잠 1:7).” 우주의 신비를 밝히기 위한 출발점은 개인의 전적인 무능함에 근거한 생각들을 깨뜨려버리고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것이어야만 했다.」12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연적인 영역과 영적인 영역 모두를 인정하며, 건전한 교리적 토대 위에서 양쪽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 불신앙과 교만에 치우친 세상 사람들과 영적인 전투를 치르는 일을 피할 수 없다. 그러니 모두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신앙으로 이 힘든 싸움을 잘 감당해가자.
각주
1 조지 M. 마즈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6, p. 65.
2 위의 책, p. 48.
3 위의 책, p. 43.
4 위의 책, p. 54.
5 위의 책, pp. 69, 70.
6 위의 책, pp. 74, 75.
7 위의 책, pp. 74~77.
8 위의 책, pp. 96~98.
9 위의 책, p. 95.
10 위의 책, p. 101.
11 위의 책, pp. 106~108.
12 위의 책, pp. 103, 124,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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