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성령 진단1」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하시는가
박지훈
▲ 귀도 레니가 그린 <예수님의 세례 때 강림하신 성령 하나님(The Baptism of Christ)>
들어가며 : 성령님의 참 모습을 알지 못하는 시대
오늘날 한국 교회 신자가 가장 잘못 이해하는 성경의 진리는 무엇일까? 분명히 성령 하나님에 대한 진리일 것이다. 한국 교회는 성령님께서 실제로 하시는 일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만 주목하는 은사주의, 열광주의, 영성주의로 거의 기울어져 있다.
한편, 앞서 말한 이들을 지나치게 경계하다가 성령님과 그분의 사역에 대해 관심을 거의 기울이지 않는 오류에 빠져 있기도 하다. 그 결과, 성령님에 대해 올바르고 풍성하게 가르치는 일은 매우 희귀해졌으며, 성령님을 올바르게 알고 믿는 신자도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성령님께서는 성부와 성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보혜사(保惠師)로서, 성도의 마음에 항상 거하시며 성도와 가장 가까이 계신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부재(不在)는, 한국 교회가 영적인 혼란과 어둠에 빠져 있음을 잘 보여준다.
한국 교회는 무수한 오류에 빠져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끊임없이 짓고 있다. 비록 상황은 좋지 않지만, 우리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간절히 사모하며 가까이 모시는 참 신앙을 지켜가야 한다. 그러므로 본인은 오늘날의 어두운 영적 상황 속에서 절실하게 필요한 경건의 지식, 곧 성령님의 존재, 그분의 일반 사역, 그리고 구원 사역에 대해 설명하려고 한다.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 성령님의 존재에 대하여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 한국 교회 신자 중에서 이 질문에 대해 성경적으로 온전하게 대답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여기저기서 부분적으로 들은 내용만 알고 있을 뿐, 성경이 가르치는 전체 내용을 체계적으로 이해해서 삶에 적용하는 일은 하지 못한다.
이는 한국 교회가 정통 신앙고백서로 교리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등한히 했기에 일어나는 일이다. 이 고질적인 문제점 때문에 온갖 잘못된 실전 성령론이나 냉랭한 신앙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한국 교회는 이제라도 잘못된 교리 무용론(無用論)을 버려야 한다.
주님의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려면, 체계적인 교리 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엡 4:31). 그렇게 하지 않은 결과를 눈으로 직접 보면서도 상황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한국 교회는 하나님 앞에서 버림받게 될 것이다.
성령님에 대한 교리 가운데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하는 내용은, 성령님께서 인격을 소유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지 못하면, 성령님을 인격적으로 모시고 따르는 일을 할 수 없다. 오늘날 수많은 거짓 교사가 일어나 성령님을 어떤 힘이나 능력,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인 양 가르치고 있다.
이는 그만큼 많은 신자가 성령 하나님의 인격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런 거짓 교리에 맞서서, 성령님께서 우리와 교제하고 동행하는 인격적이신 분이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믿어야 한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이시다(마28:19). 성 삼위일체의 한 위격으로서 다른 두 위격과 구별되지만(마3:16), 성부, 성자 하나님과 동등한 신성과 권능을 가진 하나님이시다(사 6:8, 9; 행 28:25, 26; 고전 2:10, 11; 눅 1:35; 시 104:30; 마 12:31, 32).
성령님께서 성부, 성자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지만 동등한 신성을 가진 영원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은, 사람의 지혜로는 다 알 수 없는 영원한 신비이다(요 15:26). 따라서 우리는 기도할 때,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것처럼, 성령님께도 우리 생각과 마음을 모두 다 쏟아놓을 수 있다(엡 6:18).
이처럼, 우리는 성령님과 친밀하게 교제하면서도, 그분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경외하고 섬겨야 한다. 성령님께서는 거룩하고 인격적인 분이시므로 그분과 교제하는 사람은 거룩해지게끔 되어 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치명적인 도덕적 결함이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성령님의 인격성과 신성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믿는 데 있다.
성령님께서는 어떤 일을 하시는가
– 성령님의 사역에 관하여
지금부터는 성령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성령님의 사역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대개 중생과 성화를 생각하곤 한다. 중생과 성화의 사역도 매우 중요하지만, 성령님께서 행하시는 다른 일반적인 사역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우리는 이런 부분도 놓치지 말고 잘 알아두어야 한다.
태초에 성령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다. 창세기 1장 1, 2절을 보면, 성령님께서 무(無)에서 세상을 창조하신 뒤에 수면 위를 돌고 계신 장면이 나온다. 시편 33편 6절은 여호와의 말씀(성자)과 그 입의 기운(성령)으로 만물이 만들어진 사실을 노래한다. 시편 104편 29, 30절은 성령님께서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신 일을, 창세기 2장 7절은 아담에게 생명의 호흡을 주신 일을 증거한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이 세상을 보존하는 중요한 사역을 감당하신다. 아담이 타락한 뒤로부터, 세상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며 악한 방향으로만 나아간다. 성령님께서는 은혜를 베풀어 죄인의 악한 심령과 행동을 억제하심으로써 세상이 멸망하지 않게 막으신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상대적으로나마 선을 권장하며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하는 것은 모두 성령님의 역사를 힘입어 나타난다(롬 2:14). 일반적인 지식의 영역에 속한 일, 즉 인류가 누리는 문화, 예술, 기술, 학문이 생겨나고 발전하는 것도 모두 성령님께서 사람에게 지혜를 주심으로써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계시도 성령님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다. 사람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 본성이 타락하였으므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 모든 자연인(自然人)은 피조 세계에 분명하게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보면서도, 부패한 자기 마음을 좇아 살기를 좋아한다(롬 1:19~21).
그 결과, 일반적인 방편(일반 계시)만으로는 절대로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지식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로 가려진 사람의 눈을 친히 여셔서 그분을 알게 해주시느냐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당신을 온전히 알아 구원받게 하시려고 일반 계시와 구분되는 계시를 주셨다. 그 계시를 특별 계시라고 부르는데, 이 계시를 세상에 전달하고 보존하는 일을 성령님께서 감당하신다. 구약 시대부터 사도 시대까지, 성령님께서는 신적 현현(顯現), 꿈, 환상, 음성 등으로 특별 계시를 전해주시면서 후대 사람들을 위해 그 계시를 기록하게 하셨다. 그때, 기록하는 사람이 기계적으로 받아 적게 하지 않으시고, 그의 모든 것을 온전히 활용하게 하면서도 오류는 없게 통제하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역사하셨다(벧후 1:21; 딤후 3:16).
이렇게 신적이고 유기적인 영감으로 기록된 특별 계시가 바로 성경이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모든 부분이 완전하고 무오(無誤)하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에게는 이 복된 구원의 말씀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일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성령님께서는 택한 자가 이 말씀을 읽을 때 영혼과 마음에 가득한 어둠을 걷어 밝히 보게 하심으로써 성경을 이해하게 해주신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지상 사역에서도 중요한 일을 감당하셨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은 성령님의 역사였다(마 1:20).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잉태되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죄의 전가 없이 모든 면에서 완전한 하나님이자 사람이 될 수 있으셨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특징과 한계도 모두 가지고 계셨기에, 인성으로는 성령님을 완전히 의존하는 삶을 사셨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의 세례 때 강림하셨고(눅 3:21, 22, 사 61:1), 예수님을 시험으로 인도해가기도 하셨다(마 4:1).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도 ‘하나님의 영을 힘입어’ 행하셨다고 기록되어 있다(마 12:28). 성령님께서는 구속의 영광이 절정에 이른 십자가 위에서도 역사하셨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께서 흠 없는 자신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 드리셨다고 기록했다(히 9:14).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을 통해 당신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실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성령님께서는 교회 안에서도 중요한 일을 행하신다. 성도들을 그리스도와 연합시켜 교회를 세우시고, 각 성도에게 다양한 은사를 주어 교회를 섬기게 하시며(고전 12:4, 7), 직분자를 통해 교회를 돌보고 다스리신다(엡 4:11).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는 교회를 진리로 이끌어 가신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오랜 기간의 신학 논쟁을 거치면서 진리가 밝히 드러나고 정통 교리와 신학이 견고해진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탁월한 신학적 결과물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이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알고 성령님께 감사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성령님의 사역에 대해 폭넓게 살펴보았다. 이제부터는 범위를 조금 좁혀서, 성령님께서 성도 개개인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지상 사역이 거의 마무리 되어갈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뒤에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보혜사(保惠師)’라는 말은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라는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으로서 중보자, 위로자, 변호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단어의 뜻과 같이, 성령님께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세심하게 살피고 도와주신다. 이처럼, 성령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으로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완성된 구속의 은혜를 각 사람에게 적용해주신다. 그래서 성령님의 사역은 중생, 성화, 견인처럼 성도의 삶과 가장 밀접한 주제와 연관되어 있다.
한 사람은 중생(重生), 즉 영적으로 다시 태어남으로써 성도가 된다. 이는 사람이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는 성령님의 주권적인 사역이다. 아이가 자신의 탄생에 대해 전혀 기여하거나 협력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일에 대해 사람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자연인은 모두 죄로 부패하여 영적으로 죽어있다(엡 2:1).
중생하기 전 신자의 상태는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마른 뼈들과 같다. 성령님께서는 첫 창조 때와 같이 역사하셔서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나게 하신다.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듯이, 성령님께서는 주권적으로 역사하셔서 창세 전에 택하신 사람의 영혼을 다시 살리신다.
그리고 그 안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거룩한 마음을 불어넣으셔서 사람을 완전히 변화시키신다. 성령님께서 홀로 이루시는 이 중생은, 성도가 믿음을 갖고 거룩하게 되어 죄와 완전히 결별하게 되는 모든 구원 사역의 출발점이다. 이러한 성령님의 사역이 없이는 아무도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성령님께서 중생하게 한 사람은 그 즉시 성화(聖化) 되기 시작한다. 성화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사역이지만, 주로 성령님의 사역으로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주하시는 성령님을 통해 사람을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롬 8:9). 중생은 한순간에 이뤄지지만, 성화는 평생에 걸쳐 계속 이루어진다.
중생은 성도를 그리스도에게 단번에 연합시키므로 죄와 사망에 대한 승리를 곧바로 가져온다(요일 5:4). 그러나 성도 안에는 죄악 된 옛 본성이 남아 있으므로, 죄의 잔재를 제거하는 영적 싸움이 평생 치열하게 벌어진다. 처음 싸울 때는 죄의 세력이 더 우세한 듯 보이며, 성도는 자주 넘어지고 침체를 겪으며 싸움에서 질 것만 같아 보인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영원 전에 택하신 성도를 절대로 내버려 두지 않고 반드시 거룩한 길로 이끌어주신다. 결국, 성도는 그 싸움에서 승리해 거룩한 성품과 인격이라는 열매를 맺게 된다. 성화는 사람의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치므로, 영혼과 육체의 어느 한 부분도 빠짐없이 거룩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성화가 완전하게 이뤄질 수 없으며,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비로소 완성된다.
성화는 성령님의 은혜 없이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 전적으로 성령님의 주권에 따라 이루어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신자 개개인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딤전 6:12), 마귀의 술책에 대항하고(엡 6:11), 인내하며 소망을 품으라고 말씀하신다(롬 12:12). 그러므로 성화에는 성도가 영적 수단을 부지런히 사용하며 경건을 증진하는 데 힘써야 하는 측면도 있다.
이처럼, 성화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이루어지지만, 성도가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 성실하게 행해야 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성령님께서 친히 성화를 이루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일을 게을리하면, 성화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그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이러한 성화의 두 측면(성령님의 주권적 사역과 우리의 책임)을 잘 이해하여, 성령님의 은혜에 전적으로 의지하여 거룩하게 살 힘을 얻고, 그 힘으로 경건하게 살아가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성화에 힘쓰며 경건의 훈련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성화를 이루기 위해 기도와 말씀, 그리고 공적 예배라는 확실한 훈련 도구를 마련해 주셨다. 바울 사도는 성도가 거룩하게 되는 도구가 기도라고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딤전 4:5). 기도는 성도가 영원한 소망을 품고 환난을 참게 한다(롬 12:12).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서 사시는 동안 많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셨으며, 지금도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롬 8:34). 우리는 죄로 인해 넘어지고 영적으로 어두워져서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할 때가 있다. 성령님께서는 그런 때조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롬 8:26).
기도는 성도의 영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는 기쁘고도 영광스러운 일이다. 또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을 수 있는 특권을 사용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믿음의 선조들은 기도를 영혼의 호흡으로 여길 만큼 중요하게 여겼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엄청난 영적 재난이며, 성령님을 근심하시게 하는 큰 죄다.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하되, 혈과 육의 힘으로 기도하지 말고 성령님 안에서 기도해야 한다(엡 6:18).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면 성령님께서는 기꺼이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며, 더 좋은 기도의 일꾼이 되게 하실 것이다.
우리의 성화를 이루는 또 하나의 수단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령님께서는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모든 일에 말씀을 도구로 사용하신다. 이를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말씀을 벗어난 수단과 방법은 그 어떤 것도 성령님의 역사가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의 교회는 자의적인 성경 해석, 비성경적인 설교, 말씀을 벗어난 영적 현상 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모든 비(非)진리로부터 지켜주시며, 거짓과 싸워 이기게 하신다. 주님의 말씀대로, 말세에는 거짓 선지자들이 선택받은 자까지 속이려고 기를 쓸 것이다(마 24:24).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며, 성령님께 그 뜻을 이해하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넘어지지 않게 주의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드리는 공적 예배도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중요한 성화의 수단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그분을 높이게 하려고 만드신 거룩한 제도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모하는 성도들이 모여 예배드릴 때, 그 자리에 임하셔서 그들이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이끄신다.
죄인인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거룩하신 하나님께 열납될 수 있는 까닭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중보해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참된 예배는 그 자체가 복음이며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낸다. 나아가, 예배에는 기도와 말씀 읽기, 말씀 선포, 찬양과 같은 다양한 성화의 수단이 모두 포함된다.
마지막으로, 성도는 하나님의 날인 주일에 함께 예배하는 것을 중요한 의무로 알고 엄중하게 지켜야 한다. 그리고 특별히 지정된 날에 드리는 공적 예배에도 힘써 참여해야 한다. 가정에서도 온 가족이 매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해야 한다.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더욱 거룩하게 하시려는 목적도 있으므로,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 자주 나아가는 자들은 분명히 아주 빠르고 튼튼하게 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성화에 대한 교리와 함께 반드시 알고 믿어야 하는 교리가 바로 견인(堅忍)교리이다. 이 교리는, 성령님께서 한 번 거듭나게 하신 성도를 결코 버리지 않고 끝까지 붙들어주셔서 완전한 거룩함에 이르게 하신다는 가르침이다. 이 영광스러운 교리는 성도가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중요한 기초이자,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성령님을 믿고 의뢰하는 원동력이 된다.
만약, 구원에 우리 인간의 힘과 지혜로 이루어야 하는 부분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성화는 얼마든지 중단되고 구원도 취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구원은 온전히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정하신 뜻을 절대로 바꾸지 않으시므로, 영원 전에 예정하신 이를 단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신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러한 성도의 견인 교리를 압축적인 문장으로 지극히 아름답게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시는 분 안에서, 영접하시고 효과적으로 부르시고 거룩하게 하신 사람들은 그 은혜 안에서 전적으로나 최종적으로 떨어질 수 없고, 확실히 끝까지 견인(堅忍)하며 영원히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성도의 이 견인은 그들의 자유 의지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값없이 주시며 변할 수 없는 사랑으로 결정하신 그 선택이 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와 중보기도의 효험이 있으며, 그들 안에 성령과 하나님의 씨가 거하며, 은혜의 언약의 성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일이 원인이 되어 견인이 확실하고 틀림없이 나타나는 것입니다.」1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의 성화를 위해 협력하신다는 사실이 우리 심령에 얼마나 큰 경외와 감사를 불러일으키는가? 특별히, 성령님께서는 성도의 견인을 실질적이고도 적극적으로 담당하신다. 우리는 성화의 과정에서 시험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우리 안에 있는 악함을 따라 죄를 지어 성령님을 근심하시게 만들기도 한다.
성령님께서는 그런 우리 죄와 연약함을 엄격하고 단호하게 책망하고 징계하시지만, 절대로 우리를 영원한 멸망에 버리지 않으신다. 이러한 견인 교리는 우리에게 굳건한 구원의 확신과 변하지 않는 위로와 기쁨을 준다. 우리는 비록 가는 길을 다 알지 못하지만,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위로와 상급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음을 확실하게 알고 걸어간다.
성령님께서는 참으로 죄 많고 연약한 우리 성도들을 끝까지 참아주시며, 우리의 마지막 순간까지 함께 하신다. 성도가 삶을 마치는 순간, 곧 천국의 영원한 삶이 시작될 때 그들을 완전히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히12:23). 그리고 그들의 영혼을 온전히 주님의 품으로 이끌어 주신다. 이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의 날이 이르면, 성령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부활하게 하실 것이다.
또한, 그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의 몸도 완전하게 변화시키실 것이다. 그렇게 완전히 거룩하게 된 성도들을 다시는 죄와 죽음이 없는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셔서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원한 교제를 누리게 하실 것이다. 그들 안에 거하시면서 영원한 안식과 복락을 온전하게 누리게 하실 것이다. 이렇듯, 성령님께서는 완전한 구원의 인도자와 보증인이 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믿어야만 진정한 신앙생활을 해나갈 수 있다.
마치면서
– 성령님을 바르게 알고 믿자
지금까지 우리는 성령님의 존재와 사역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우리는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성령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매우 희귀해진 시대를 살아가게 되었다. 글 초반부에서 말했던 것처럼, 너무도 많은 사람이 비성경적 신앙에 빠져 성령님이 아닌 다른 영을 따르거나 심령이 냉랭하고 메말라서 성령님과 친밀하게 지내지 못한다.
그러나 참된 성도라면 성령님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내주하심과 동행하심을 경험하며, 성령님을 깊이 사모하고 극진히 모시게 될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성령님을 통해 성도답게 변화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거듭난 사람이라도 성령 하나님을 아는 바른 지식이 없다면, 자주 시험과 죄에 걸려 넘어지고 온갖 어려움 앞에 주저앉게 될 것이다. 성령님을 아는 지식은 살아있는 신앙의 기초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장 가깝고 친밀한 분으로 알고 믿게 한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그 아들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신 형제들이여! 다 함께 성령님을 힘써 알도록 하자. 모든 교리적 지식과 믿음을 더하면서 성령님을 아는 지식과 믿음도 함께 더해가자.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늘 거하며 바로 옆에서 동행하시는 분으로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살피신다.
비록, 지면 관계로 성령님의 실천적 사역까지 다루지는 못했지만, 우리는 성령님에 대한 풍성한 교리적 지식을 바탕으로 삶 속에서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실천적인 지식도 풍성하게 쌓아야 한다.2 만일, 한국 교회 안에서 성령 하나님을 교리적으로, 실천적으로 올바르게 아는 지식이 회복된다면, 성령님께서는 무너져가는 한국 교회를 기꺼이 일으켜 세우시고,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시며, 뜨거운 부흥의 불길을 다시 일으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런 날을 보게 해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부족한 글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만 영광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각주
1 A. A. 하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해설』(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김종흡 역), p. 303. – A. A. 하지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사역(私譯)을 인용함.
2 성령님에 대한 실천적 교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제네바 개혁교회 오인용 목사의 성령의 실천적 사역 설교 시리즈 1~7, 성령의 열매 설교 시리즈 1~8을 참고하길 바란다.
「성령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성령 진단1」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고 무슨 일을 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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