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12) 대각성의 변질, 에드워즈 사임(辭任)의 근본 요인
김재호
1. ‘젊은이 성경(나쁜 책)’ 사건
최고의 신학자이자 대각성 주역 중 한 사람인 에드워즈는 1750년에 23년 동안 모든 것을 다해 섬긴 노샘프턴 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모든 시민이 자기 영혼을 깊이 생각하며 구원을 받으려고 교회로 몰려들었던 그곳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곤 한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사임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유심히 잘 살펴보면,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귀가 얼마나 작은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람의 심령에 진리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방해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무엘 홉킨스에 따르면, 에드워즈는 ‘존경과 사랑을 받아 그의 삶이 당연히 그렇게 마무리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았다.1그러한 화목함은 그의 외할아버지인 솔로몬 스토다드가 물려준 선한 유산 위에 대각성이라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섭리가 더해져 나타난 열매였다.
그렇게 선한 열매가 전반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을 때는, 이런저런 문제점과 좋지 않은 점은 비교적 사소한 것이 되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된다. 그래서 언뜻 보면 정말로 그 좋은 상태가 계속 유지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좋은 점들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수면 아래 숨어있었던 온갖 문제점들이 나타나 활개치게 된다.
에드워즈의 사임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에드워즈는 대각성을 변호하고 반부흥주의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성급한 감정주의로 치달은 이들에 의해 대각성이 열광주의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런 변질이 얼마나 참 신앙을 갉아먹는지 알게 된 에드워즈는 대각성 진영 안에서 일어난 열광주의라는 들불을 잡는 일을 서둘렀다.
결국 큰불은 잡혔지만 그때는 이미 많은 지역이 황폐하게 된 뒤였고, 2차 대각성의 불꽃이 일기 전까지 뉴잉글랜드 지역에서는 부흥의 불길이 계속 사그라졌다. 그러자 그동안 가라앉아 있었던 문제점이 차례차례 수면 위로 떠올라, 에드워즈와 교인 사이를 점점 갈라놓았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일이 바로 ‘젊은이 성경’ 사건, 또는 ‘나쁜 책’ 사건으로 불리는 사건이었다.
부흥의 불길이 시들해지자 많은 이가 다시 각성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는데, 특히 청년들에게서 이탈 현상이 빠르게 나타났다. 그들은 이전에 유행하던 청년 문화를 하나 둘씩 되살려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토요일 밤늦게까지 파티를 열고 춤추며 노는 일과 젊은 남녀가 뒤섞여 잠자리에 드는 관습이 다시 성행했으며, 술집을 드나들고 음담패설을 주고받으며 즐거워하는 일이 빈번해졌다. 더불어 교회의 권위를 우습게 여기며, 예배 시간에 무례히 행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시작했다.2
그러던 중에 올리버 워너와 티모시·시므온 루트 형제는 『올바른 산파 교육 (The Midwife Rightly Instructed)』와 같은 의학·출산 서적을 젊은 여성들을 희롱하는 데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책을 주변 남자 청년들에게 돈을 받고 빌려주는 짓을 벌이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음란함과 불경건함을 조장하고 있었는데, 그런 행동은 1742년에 마을 사람 모두가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기로 서약한 언약을 파괴하는 ‘공적인’ 죄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그 언약을 맺을 때 청년들은 신앙을 방해할 만한 어떤 오락과 유희도 즐기지 않으며, 특히 음란한 정욕을 자극하거나 만족하게 할 소지가 있는 모든 일을 삼가기로 하나님 앞에서 엄숙하게 선언했었다.3더구나 문제를 일으킨 청년 대부분은 교회의 정식 회원권을 가진 성찬 참여 교인이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이번 사건을 개인적인 성적 일탈로 다루지 않고, 위원회를 열어서 공적인 문제로 처리해가려고 했다.
마을 사람들도 이번 사건의 피고와 증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기 전까지는 에드워즈의 생각에 기꺼이 동의했다. 마을 사람들은 선뜻 에드워즈와 함께 위원회를 꾸려 이번 일을 처리할 유력 인사를 선정해주었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위원회의 심리를 받을 피고와 증인 명단을 발표하자, 마을이 발칵 뒤집혔다. 에드워즈가 누가 피고이며 증인인지 구분하지 못하게 두 부류를 섞어서 발표하기는 했지만, 성적 방종 사건에서 누가 원고이며 피고인지 알아내는 일은 사실 너무나도 쉬웠다.
에드워즈가 발표한 사실상의 피고인 명단에 유력 집안의 자제와 그들과 가까운 이들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 문제를 크게 만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름이 명단에 나타나자, 마을에서는 이러한 반(半)공개적인 사건 처리 절차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하면서 이번 사건을 ‘사적인 수준’에서 조용하게 다뤄야 했었다는 불만과 이의가 강력하게 제기되기 시작했다.4
이런 상황이 전개된 데는 좋지 않은 영국의 문화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했던 스토다드주의도 한몫 했다. 당시 영국에서는 이성주의가 계속 힘을 더해가면서, 성적인 자유의 폭과 경계가 점점 더 넓어지며 무너지고 있었다. 그런데 국가 언약을 통해 교회와 세상 사이의 경계선을 사실상 지워버린 스토다드주의에는, 그러한 불경건한 문화가 교회와 성도들의 삶 속에 밀려 들어오지 못하도록 교회와 세상을 분리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대각성이 한창일 때는 그러한 점이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대각성이 점점 시들해지자, 그러한 점은 당시 시대·문화 흐름에 익숙했던 노샘프턴 교인이 에드워즈의 대응을 지나치다고 생각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들은 이러한 비행(非行)이 젊은이의 일상적인 비행보다 조금 더한 정도에 불과한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여겼다.5 다시 말해,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즈가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공연한 분란을 조장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에드워즈를 향한 큰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에드워즈가 이번 사건을 공적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하고 겨우 위원회를 열어 문제를 처리하려고 하자, 이번에는 사건 주동자들이 대놓고 반항하기 시작했다. 루트 형제는 마을에서 일기 시작한 반(反)에드워즈 분위기에 편승하여, 위원회를 모욕하고 멸시하는 말을 늘어놓으며 심리를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 다른 청년들에게도 자신처럼 하라고 한 뒤 그 자리를 멋대로 떠나버렸다. 물론, 곧장 붙들려 와서 다시 위원회의 심리를 받는 처지가 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젊은이들의 불경건함과 반항심, 기존 세대의 불만과 반감이 이미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확인해준 이 사건은, 앞서 언급한 주동자 세 사람의 자백문만 공개적으로 받아내는 선에서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이 세 사람 가운데서도 오직 올리버 워너만 성적인 비행에 관해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백문을 써서 제출했다.
루트 형제는 심리를 받는 과정에서 위원회에 불경하고 모욕적인 언행을 했던 점만 자백하고 용서를 구했을 뿐이었다. 이 일에 연루된 나머지 사람들은 아예 자백문조차도 제출하지 않은 채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이런 결과는 마을 사람들이 이번 사건을 공개적으로 다루려는 에드워즈의 처사를 얼마나 강력하게 반대하고 거부하려고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6
「에드워즈가 싸우던 있던 불경스런 반(反) 영적 문화는 그로 인해 교회가 혼란스러워졌기 때문에 명백히 교회와 관련된 문제였다. 스토다드의 관습에 익숙해 있던 마을 사람들은 교회와 마을을 거의 구분하지 않았으며, 젊은 남자들의 행동이 일상적인 비행을 조금 넘어서는 것이라고 보고, 이를 진압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스토다드의 관습은 틀림없이 불경스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성찬식 참여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에드워즈에게 있어서, 만일 마을이 그 규칙의 의미를 검토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회와 마을 사이의 경계선을 혼란스럽게 만든 전체 체제를 재고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했다.」7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더욱 겸손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전 10:12). 그런 때는 크고 작은 결점이 묻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방심하여 숨어있는 결점의 위력을 얕보았다가는 마귀의 훼방과 궤계에 넘어져 큰코다치게 된다. 위풍당당했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자기 목숨을 부지하려고 예수님께 험한 말을 마구 퍼붓는 지경까지 이르게 되었던 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막 14:71).
마귀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더욱 격렬하게 날뛰며 기회를 엿본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아 주실 때, 더욱 몸과 마음을 낮추고 자기를 부인하며 점검할 줄 아는 지혜를 배워가도록 하자.
2. 사례비 논쟁
대각성이 시들해지자, 에드워즈의 사례비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이 문제의 심각성은 다른 부분보다도 아주 뿌리 깊었던 노샘프턴 사람들의 ‘파벌 의식’을 자극했다는 점에 있었다. 에드워즈에 의하면, 노샘프턴 사람들의 선천적인 기질은 ‘괄괄하고 인색하며 거칠기로 유명’했다.
그런 기질을 지닌 마을 사람들은 줄곧 넓은 토지와 정치권력을 소유한 소위 ‘귀족’ 계층과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며 대중 친화적이고 자율적으로 행동하는 ‘서민’ 계층으로 나뉘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 비난하며 격렬하게 다투곤 했다. 그러나 그러한 다툼과 분열은 대각성이 일어남에 따라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결과, 지정된 사유지에서는 주민들이 필요한 나무를 베어갈 수 있도록 서로 합의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8
그러나 뿌리 깊은 파벌 의식과 상대 계층을 향한 미움과 시기와 질투는 대각성이 주춤하자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사실, 에드워즈의 성향은 누가 봐도 ‘귀족적’이지 ‘서민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에드워즈와 가족들이 호화로운 상류층 소비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 가발 착용이나 일부 옷차림 등과 같은 몇 가지 부분에서만 타고난 귀족 지향적 성향이 이따금 나타날 뿐이었다.
그러나 ‘젊은이 성경’ 사건을 계기로 타오르기 시작한 에드워즈를 향한 불만과 반감은 에드워즈 가정의 소비 행태로 옮겨붙었다. 사례비가 비교적 후한 편이었음에도 에드워즈가 매년 사례비 인상을 요구했기에, 마을 사람들은 에드워즈가 아주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귀족 생활을 하고 있다고 확신했다.9
그러나 마을 사람들의 확신과는 달리, 에드워즈는 기본적인 생활을 이어가는 일조차도 버거워하고 있었다. 에드워즈의 사례비는 계속된 자녀 출산에 따른 대폭적인 식구 증가와 물가 상승을 반영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더구나 에드워즈는 당시 북미 지역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래서 그에게 배우려는 이들과 신앙적인 도움을 받으려는 이들이 그의 집을 찾아와 유숙하는 일이 잦았다. 그리고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남을 돕는 데도 상당량 돈을 지출해야 하는 형편이었다.10
사라 에드워즈가 농장을 운영하고 부채 같은 물품을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파는 등의 일로 부족한 재정을 어느 정도 메웠음에도, 에드워즈 가정은 결국 큰 빚을 지게 되었다. 사례비 논쟁이 불거졌을 때, 에드워즈가 밝힌 기초적인 생활에 필요한 돈의 액수와 마을에서 책정한 사례비 사이에는 무려 700파운드나 되는 차이가 존재했다. 에드워즈의 일 년 사례비가 약 580파운드였으므로, 에드워즈는 최소 생활비의 절반 이상을 스스로 마련하여 사역을 감당한 반(半) 자비량 목회를 한 셈이었다.11
에드워즈는 그러한 현실을 개선하려고 마을 사람들과 가을마다 얼굴을 붉히며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마을 사람들의 마음에 쌓인 앙금은, 훗날 에드워즈가 성찬 개혁을 시도했을 때 아예 그 주장을 ‘들어보려고도’ 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반감이 폭발하게 하는 요소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
「에드워즈의 자선은 대부분 은밀하게 행해졌다. 홉킨스는 한 경우를 직접 알고 있었다. 친구도 아니고 친척도 아닌 한 남자가 질병으로 인해 매우 궁핍한 지경에 있다는 소식을 들은 에드워즈는 홉킨스를 시켜 “상당한 액수의 돈”을 그 남자에게 갖다 주고 그 사실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홉킨스는 “부활의 때까지 밝혀지지 않을” 그런 사례가 많이 있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1740년대에 에드워즈를 자기의 사례비 요구나 관철시키려는 사람으로 보려고 했다. 반대로, 에드워즈는 많은 마을 사람에 대해 탐욕스럽게 생각하고, 권력자들이 당연히 그들의 사례비를 받아야만 하는 모범 사회의 기초 원리마저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보았다.」12
성도가 타고난 자기 기질과 문화·사회적인 배경이 어떠한지 곰곰이 헤아려보지 않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행동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뢰하는 가운데 마귀가 그러한 요소들을 통해 역사하지 못하도록 힘써야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들을 선하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미리 갈고 닦아놓아야 하기 때문이다.
평소에 그런 준비를 잘해놓지 않으면, 시험의 날에 겪어야 하는 어려움은 훨씬 더 크고 강력해지게 된다. 또한,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며 겪게 되는 시행착오도 훨씬 더 많아지며, 그로 인해 발생하는 폐해와 어려움은 사역을 함께 감당하는 지체에게까지 돌아가게 된다.
그러니 평소에 자신에게나 다른 이들에게나 걸림돌이 될 만한 것을 놓지 않게 주의하면서 매사에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도록 하자. 물론 그렇게 해도 좁고 험한 길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훨씬 더 평안하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이다.
각주
1 조지, M. 마즈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6, p. 427.
2 같은 책, pp. 434, 435, 437.
3 같은 책, pp. 429, 431, 432, 433.
4 같은 책, pp. 430, 431, 미주 p. 794.
5 같은 책, pp. 436, 440, 441.
6 같은 책, pp. 437~439.
7 같은 책, p. 436.
8 같은 책, pp. 193, 230, 438, 541.
9 같은 책, pp. 247, 442, 443.
10 같은 책, p. 444.
11 같은 책, pp. 442, 471, 498.
12 같은 책, p.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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