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해
(9) 하나님의 섭리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마태복음 10장 29절의 말씀을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치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오늘은 소요리문답 제11문,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에 관해 설교하겠습니다. 오늘 설명할 섭리 교리에 관해 잘 설명한 책으로는 아더 핑크의 『하나님의 주권 (the Sovereignty of God)』이 있습니다. 개혁주의신행협의회와 예루살렘 출판사(임원주 목사 번역)에서 각기 다른 판을 대본으로 삼아 번역해서 출간했는데, 둘 중에서는 예루살렘 출판사의 번역이 훨씬 더 깔끔하고 훌륭합니다. 그 책을 꼭 읽어 보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그 책이야말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섭리에 관해 가장 잘 설명한 책이자, 아더 핑크를 대표할 만한 명작이라고 확신합니다.
또한 2011년에 출간된 R. C. 스프라울의 『보이지 않는 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가? (The Invisible Hand)』도 참 좋습니다. 이 책은 개신대학교대학원 총장을 지낸 나용화 박사가 번역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이렇게 좋은 책을 번역해 출간하면서도 왜 그러한 행보를 보이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말과 행동을 보고 있자면, ‘저분이 정말 이 훌륭한 책을 번역한 게 맞나?’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다르게 표현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입니다. 즉, 섭리 교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가?”에 관한 내용을 다룹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 국가에는, 어떤 어떤 ‘프로방스(provence)’나 ‘프로빈스(province)’ 또는 ‘프로비던스(providence)’로 불리는 도시가 종종 있습니다. 이들 단어는 섭리라는 단어에서 유래했거나, 지금도 그 뜻을 계속 지니고 있습니다. 과거 서양에서는 마을이나 도시 이름을 지을 때 도시 이름에 섭리라는 단어를 넣는 일이 꽤 많았다고 합니다.
기독교 교리 중에서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와 위안을 주는 교리가 바로 이 하나님의 섭리 교리입니다. 모든 교리가 성도에게 참된 위로와 소망을 주지만, 그중에서도 섭리 교리는 가장 분명하고 확실하게 위로와 소망을 가져다줍니다. 요즘 사람들은 보통 ‘교리’의 ‘교’ 자만 들어도 “아, 딱딱하고 재미없는 것, 그냥 말만 들어도 머리가 아픈 것”이라는 식의 반응을 보입니다. 하지만 섭리 교리는 정말로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좋습니다.
특별히 섭리 교리는 성도가 이런저런 일로 힘들고 지칠 때 가장 큰 위로와 도움이 되는 교리입니다. 왜냐하면 섭리 교리는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역에 제한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도,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도 다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육적인 영역에 속한 일과 영적인 영역에 속한 일 모두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것입니다. 세상 정부도, 천사도, 마귀도 다 하나님께서 다스리고 섭리하십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는 스스로 그 자리에 앉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섭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섭리 교리는 한편으로는 참 모호하고 막연한 측면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것을 우리 눈으로 명확하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섭리하시는지를 직접적으로 깨닫고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숨겨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다스리신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증거 본문은 수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다니엘서 4장 25절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그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의 섭리는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과 계획대로 한 나라의 통치자를 세우고 폐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미국 대통령 암살 사건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케네디와 링컨은 암살당했는데, 왜 레이건은 암살 위기를 잘 넘겨서 자기 임기를 무사히 채울 수 있었을까요? 케네디와 링컨은 암살에 대한 대비를 허술하게 했고, 레이건은 물샐 틈 없는 철통 경호를 받아서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대로 케네디와 링컨은 암살자의 손에 넘기셨고, 레이건은 내어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의 통치자를 당신의 뜻에 따라 세우기도 하시고 폐하기도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한 나라의 통치자를 세우는 크고 굵직굵직한 일만 섭리하시지 않습니다. 개인이 하는 모든 일에도 세밀하게 섭리하십니다. 다 같이, 잠언 16장 1절 말씀을 찾아보겠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이 말씀은 개인이 하는 모든 일의 귀추가 하나님께 달려 있다고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이보다도 더 깊고 강력하게 하나님의 섭리를 증거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한나의 기도 가운데 나오는 한 구절로서, 저는 이 말씀이야말로 섭리 교리를 가장 쉽고 분명하게 설명하는 증거 본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사무엘상 2장 6~8절입니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오순절주의자들은 항상 이 말씀을 가지고 “그러니까 하나님께 많은 복을 구해야 한다.”라고 하는데, 이 말씀은 그런 데 사용해야 하는 말씀이 아니라 섭리 교리를 증거하는 데 사용해야 하는 말씀입니다. 가장 먼저 살펴본 마태복음 말씀에도, 참새 한 마리조차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나옵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참새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시면 누구도 잡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어떤 일은 크고 중요하고, 또 어떤 일은 작고 사소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똑같이 크고 중요합니다. 사람에게는 참새 한 마리가 지극히 미미하고 별것 아닌 존재입니다. ‘그까짓 참새 한 마리, 그게 뭐 어쨌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존재가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미미한 존재에게도 섭리하십니다.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에서 딱 참새 한 마리만 슬쩍 빼내갈 수 있는 존재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통치자에게 섭리하시는 그 손길로써, 지극히 작고 미미한 참새 한 마리도 붙드십니다. 사무엘상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며,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은 ‘팔자’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그들은 타고난 자기 팔자를 알아내려고 관상이나 손금, 사주 따위를 봅니다. 그래서 자기 팔자를 타고 오는 복을 움켜쥐고 화를 피해가려고 합니다. 물론, 이 사주팔자나 관상에는 맞아 들어가는 내용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가 없는 불신자에게나 해당하는 말입니다. 마귀의 종노릇하는 불신자는 그러한 것에 얽매여 있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는 그러한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 사람들처럼 점을 치거나 사주나 관상을 볼 필요도 없고, 해서도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에게는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마귀조차도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욥기에는 이런 내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회의가 열렸을 때, 사탄도 하나님께서 내리신 지시사항을 듣고 복종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는 한, 마귀는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는 영역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선과 악, 인류 역사와 사회, 육적이고 영적인 영역 모두에서 섭리하십니다. 우주 비행사가 달에 가서 “하나님께서 이곳까지 섭리하지는 못하실 것이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모든 곳에 미칩니다. 심지어 천국과 지옥조차도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참 힘들고 어려운 시기가 찾아올 때마다 이 섭리 교리를 통해 큰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알고 계획하셨으며 통치하고 계신다.”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확신이 있었기에 그들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큰일을 만나면 “아,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하지?” 하면서 허둥지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섭리하신다는 믿음 위에 서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모든 일의 배후에 놓인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면서 평안을 유지합니다.
미국의 무디 신학교 강단에는 “안심하라.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글귀가 크게 쓰여 있다고 합니다. 이 문구는 하나님의 섭리가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귀한 경구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을 믿고 의뢰하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어떤 일에 막 분노하면서 이를 갈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정말로 믿고서, 모든 일을 그분께 맡기기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자연재해가 일어났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두산 분화나 대지진 발생 가능성을 놓고 여기저기서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런 소식을 들을 때, 마음속에서 큰 두려움을 느낍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일도 모두 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화산이 터지는 일도, 지진이 일어날 일도, 해일이 도시를 덮치는 일도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지 않으시면 화산도, 지진도, 해일도 잠잠해야만 합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섭리하시면 사람이 아무리 애써 어떤 일을 막으려고 해도 막아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지금 누구의 손에 달려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의 손, 그분의 섭리 하심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그 섭리를 우리 마음과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없습니다. 만세 전부터 계획해 놓으신 대로 시간 속에서 하나씩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는 항상 좋은 것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이유를 알 수 없고 어려우며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그 섭리에는 우리의 죄악까지도 포함됩니다.
불완전한 우리는 잘못 판단하고 결정해서 엉뚱하고 잘못된 길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그분의 말씀을 따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죄악까지도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비록 우리가 잘못된 길로 치우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바른길로 돌아오도록 섭리하시며, 그러한 계획과 섭리 가운데 우리의 실수와 어리석음을 오랫동안 참고 인내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면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돌이켜 회개하도록 채찍을 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죄로 망하는 일을 수수방관하시지 않고, 그들이 돌이켜 살 수 있게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자녀를 올바른 길로 돌이키게 하시는 사랑과 징계의 섭리와 불신자의 완악함을 그냥 내버려두시다가 죗값을 치르게 하시는 심판의 섭리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 세상에는 하나님을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끝까지 잘 살다 가는 불신자가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복 받은 사람이라고 하면서 부러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실상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지극히 비참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무슨 일을 해도 그냥 내버려두시는 일은 하나님께서 그를 확실하게 지옥에 던져 넣으시려고 벼르고 계심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채찍을 드십니다. 그 고통으로 인해 멸망으로 향하는 길에서 떠나게 하십니다. 그런 징계의 섭리야말로 참으로 복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정말 끝까지 사랑하고 아끼신다는 사실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어떤 사람이 계속 잘못된 길로 가는데도 징계하시는 섭리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것은 그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하시는 섭리 가운데 있음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의 완악함을 따라 그를 버리고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과 인내, 그리고 하나님 거스르기를 밥 먹듯 하는 이를 심판하시는 공의 모두를 높이고 찬송해야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깊고 오묘합니까? 같은 죄라도 성도에게는 그것이 은혜 안에서 선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되며, 불신자에게는 공의를 따라 그들을 심판하고 멸하는 근거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섭리 앞에서 우리가 감히 무슨 말을 늘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정말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뢰하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복잡하게 살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을 정말로 믿고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아주 복잡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세상의 복잡성에 대해 탄식하며 세상살이를 감당하기가 버겁다고 토로합니다. 그러면서도 살아남기 위해 기를 쓰면서 더욱 복잡하게 살아갑니다. 그들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살아남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지막에는 멸망이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와는 달리,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과 땅, 우주와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합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세상이 흘러가고 있으며, 내일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움직일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 안에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온갖 일에 요동하지 않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항상 하나님의 섭리 하심을 바라보면서 평안함과 침착함을 유지합니다.
이러한 능력이 어디에서 나옵니까? 바로 전지전능하며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속한 분이 아니라 모든 것을 초월해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이 세상 안에 계시면서 모든 일을 당신 뜻대로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이를 가리켜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영향을 받는 일이 전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동일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편재(遍在)해 계시면서 모든 일을 다스리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와 간구에 친히 응답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동떨어져 계신 분이 아니십니다.
여러분, 여러분 주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일은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하지 않으면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고 좋은 말로 설득하고 가르쳐도,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시면 사람의 마음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하신 섭리로 구원의 영역으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완전하신 지혜로 그들을 영생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이미 은혜 안에 있는 신자분도 항상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에 맡기도록 하십시오. 여러분, 우리는 오늘 일과 내일 일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장래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염려하면서 불안해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매일 이렇게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제 삶의 주인이시고 제 모든 계획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저를 그 하나님의 선한 섭리 가운데 인도해 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면서 모든 일을 그분의 손에 맡기면 그다음 일은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염려하면서 미리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느라 머리 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우리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한 사람 한 사람의 길을 세밀하게 인도해주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렇게 되었다.”라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만사(萬事)가 정말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살아가다 보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일을 겪게 됩니다. 특히 청년 여러분, 그러한 일이 장차 많이 찾아올 것입니다. “왜 이래야 하나?” 하는 일이 정말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일이 여러분을 어렵고 힘들며 고통스럽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때 믿음으로 확고하게 붙잡아야 하는 교리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섭리하고 계시며, 계속 선하게 섭리해 주실 것이다.’라는 섭리 교리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하나님의 섭리 하심을 굳게 붙들고 있으면, 굳이 누구를 원망하거나 불평할 필요를 찾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나 염려가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막막함이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소요리문답 제11문의 대답에서 볼 수 있듯이, 하나님의 섭리는 거룩하고 전능하며 지혜롭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완벽하고 흠이 없으며 조금의 빈틈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섭리로 우리를 선한 길로 이끌어주십니다. 그러니 우리 삶은 얼마나 빈틈없고 완벽하며 안전한 가운데 있는 것입니까? 성경이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라고 자꾸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것이 가장 지혜롭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하거나 의뢰하지 마십시오. 그런 것에 소망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 외의 다른 것을 기대하고 의뢰하면 실망하게 될 뿐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완전히 기대면 온갖 두려움이 물러갑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불안해할 것, 염려할 것, 복잡하게 생각해야 할 것도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완전한 지혜를 가지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한 사람의 생애를 완전히 책임 못 지시겠습니까? 우리 하나님께서는 참새 한 마리조차도 그렇게 세심하게 돌보시고, 심지어 우리의 머리카락 숫자까지 세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에게 그러한 관심을 기울일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 이 진리가 얼마나 귀합니까? 우리의 인생길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중간에 뚝 하고 끊어지는 법은 정말로 전혀 없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혼자 남겨진 것만 같은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시며 섭리하십니다.
성경 전체를 가만히 살펴보십시오. 예수님의 생애부터 아브라함과 다윗, 야곱의 생애를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섭리가 참으로 정확하고 오묘하며 말로 다할 수 없이 경이롭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는 우리 하나님께서 자녀 된 자기 백성을 얼마나 귀하게 다루고 인도하시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한 말씀을 통해 우리는 참된 평안과 안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선하심을 발견한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기 백성을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구나. 그러면 우리 역시도 그렇게 섭리와 인도를 받는 가운데 있겠구나.」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고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고독(孤獨)하게 살며 몸부림치다가 결국 멸망에 이르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섭리와 다스리심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참된 평안과 안심 속에서 각자의 사명과 소명을 온전히 감당하게 섭리해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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