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2) 친지의 몰이해
김재호
「그가 다시 한 번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시작하자 가족들의 표정은 더욱 굳어지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그에게 거칠고 까다롭게 굴면 광증이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때로 그를 비웃기도하고 크게 야단을 치기도 했으며 그를 아주 무시해 버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방 속에 혼자 숨어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슬퍼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혼자 들로 나가 거닐기도 하고, 책을 읽기도 하고, 기도도 드리며 며칠을 보냈다.」1
크리스천이 ‘진지하게’ 죄와 심판을 생각하며 살길을 찾게 되자, 예전에 없었던 어려움이 찾아왔다. 가족들은 크리스천이 죄 때문에 근심하는 모습을 보고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여겼다.
십자가의 도는 본래 세상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은 ‘어리석으며 거리끼는’ 것이다. 영적인 근심과 고통을 왜 겪는지, 구원을 갈망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지 이해할 능력이 그들에게는 없다. 그들이 보기에는 크리스천이야말로 ‘정상’에서 벗어나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서로가 상대방을 ‘임박한 멸망’으로부터 건져내려고 무던히 애쓰게 된다. 불신자들은 신앙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굳어지며 ‘정신 좀 차리라’고 면박을 준다. ‘다 같이 굶어 죽자는 거냐, 무책임한 현실도피다’ 와 같은 반응을 보인다. 그러면서 이전에 즐기던 육신적인 삶을 무척이나 아름답게 회고하도록 유도한다.
그러나 구원을 갈망하는 이에게 그 모든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는 자신의 상황이 끝없이 펼쳐진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배에 큰 구멍이 난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배 안 곳곳이 이미 물에 다 잠겨버린 것이 그의 눈에는 선하다. 곧 ‘가라앉을 배’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와 같이, 영원한 생명을 찾기 전까지는 그 무엇도 참된 위로와 삶의 의의(意義)를 그에게 가져다줄 수 없다.
우리 주님께서는 이러한 일에 관하여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내가 땅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이제부터 한 집에서 다섯 식구가 갈라져서, 셋이 둘에 대항하고 둘이 셋에 대항할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에 대항하고 아들이 아버지에 대항하여 갈라서고, 어머니가 딸에 대항하고 딸이 어머니에 대항하며,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대항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 대항하여 갈라설 것이다.” (눅 12:51~53, 바른 성경)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가정에서 누군가 영적으로 각성하게 되면 평화가 깃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전쟁 상태에 들어간다. 왜냐하면, 서로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을 가장 무가치하게 여기게 되기 때문이다.
한쪽은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이 없다면 세상 모든 것, 심지어 내 생명까지도 무익하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이렇게 맞받는다.
“그것도 우선 먹고 살아남아야 추구할 수 있는 게 아니냐? 왜 그렇게 만사에 비관적이냐? 지금 여기에도 좋은 것들이 많다.”
이 간극은 사람이 메울 수 없다. 오직 죽은 자를 살리시는 주님께서만 하실 수 있다. 그러니 신자는 인내하며 가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긍휼의 마음을 가지고, 그들 자신의 상태가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게 해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는 상태라는 사실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그들을 건져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친지의 몰이해와 비난 앞에 선 자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을 바라보시며 말씀하시기를 ‘사람들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으니,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하셨다.” (막 10:27, 바른 성경)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내가 그분을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서 발견되려는 것이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이다.” (빌 3:8~9, 바른 성경)
낙심하지 말자! 오히려 더욱 은혜를 간구하며 보다 진지하게 말씀을 살펴보도록 하자. 이러한 어려움을 당연하게 여기며, 온갖 사탕발림으로 “평안하다, 평안하다.”라고 하는 이들이 영적으로 얼마만큼 무능하고 사악한지를 깊이 깨닫는 계기로 삼도록 하자.
주님께서는 그렇게 뒤로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영생을 찾는 이들을 이렇게 위로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어질 것이고, 찾아라, 그러면 너희가 발견할 것이며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구하는 이마다 받고, 찾는 이는 발견하고,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다. 너희 중에 누가 아버지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고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고, 또 달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들에게 좋은 선물들을 줄 줄 알거든,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그분을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눅 11:9~13, 바른 성경)
멈추지 마라. 잠시 있다 없어질 것을 영원히 썩지 않는 영광과 바꾸지 마라. 그렇게 한다면 거짓된 자로 판명될 것이다. 영원한 불 못에서, 에서처럼 자신의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곱씹으며 살고 싶지 않다면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영생을 추구하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의 은혜를 누리게 될 것이다.
각주
1 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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