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홈 스쿨
(3) 홈 스쿨의 목적
김선희
알고 보면 홈 스쿨이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님에도, 많은 사람들은 홈 스쿨로 아이를 교육하는 가정을 보고 “어떻게 아이를 학교에 안 보낼 생각을 하셨나요?”하면서 감탄(?) 비슷한 말을 하곤 한다. 그리고 한두 번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홈 스쿨을 하고 있는 우리 가정이 꽤 대단한 것도 같다는 착각이 들면서 마음이 교만해지는 죄를 짓게 되곤 한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먼저 걸어갈 때, 항상 경계해야 할 부분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왜 홈 스쿨을 하는지, 과연 잘하고 있는지, 어디로 가는 것이 맞는지 등등의 고민과 항상 상대하고 있고, 여전히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있지만, 홈 스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사라져 갔다. 아마도 자녀가 다 성장하여 독립할 때까지 계속 질문하고 답을 찾는 일이 반복될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일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가정도 똑같이 마주하는 일이기도 하다. 홈 스쿨은 독특하지도 어렵지도 않은, 실로 평범한 삶의 일부일 뿐이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다른 점이 조금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기독 홈 스쿨이 가장 중점을 두어야 하는 부분은 과연 무엇일까? 만약 아이의 행복한 미래나 높은 학업 성취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방향을 많이 잘못 잡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진정 기독 홈 스쿨을 통해 아이를 양육하고자 한다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부분은 아이의 영혼 구원이다. 그리고 부모로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무엇인지 모범을 폭넓게 보여주는 일이다. 부끄럽지만 나도 역시 처음에는 자녀의 영혼 구원보다는 눈에 더 잘 띄는 학교 교육의 폐해가 눈에 들어왔었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늘 “자녀를 성경적으로 양육하려고 홈 스쿨을 했어요.”라고 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다른 바람도 많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첫째, 아이의 생각과 감정을 메마르게 하고, 그저 성공 지향적인 공부하는 기계로 전락시킨다고 여겼던 학교 교육으로부터 우리 아이의 행복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
둘째, 남편과의 관계 회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감.
셋째, 아침에 늦잠도 자면서 등교 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되고, 치매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
내 마음속에는 그런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학교에서 접하는 세상 문화와 진화론과 같은 반(反)기독교적인 이론이 결국 아이가 교회를 떠나게 하는 일을 많이 보았기에, 그런 일들을 피하고 아이를 성경적으로 기르기 위한 목적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를 학교에 그만 다니게 하고 집에서 놀게 한 뒤, 우리 가정은 다른 기독 홈 스쿨 가정은 어떻게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첫째, 인터넷에서 정보를 수집해보았다. 검색 사이트에서 기독교 홈 스쿨 협회, 홈 스쿨 지원 센터, 성경적 자녀양육, 홈 스쿨 엑스포 등의 검색어를 입력하여, 홈 스쿨 가정의 상황이 전반적으로 어떠한지 파악해보았다. 그리고 ‘성경적 자녀양육’이라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하여, 좀 더 많은 소식을 접해보았다.
그때, 지역마다 홈 스쿨 가정 모임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홈 스쿨 역사는 이제 겨우 20년 안팎이다. 역사가 아직 짧기에, 기독교 홈 스쿨 협회를 비롯한 단체가 먼저 바른길을 제시할만한 역량을 갖추기에는 부족함이 많았다. 누군가 홈 스쿨을 하기로 생각하고 있다면, 개척하는 심정으로 이런저런 어려움을 잘 감당할 마음을 먹어야 한다.
둘째, 홈 스쿨 관련 서적을 통하여, 인터넷보다 좀 더 깊이 있는 정보를 찾아보았다. 워낙, 책 읽기를 잘 못 하여 읽고 나도 내용 파악이 잘 안 되곤 했다. 그러다 보니 결국 사 놓고도 읽지 못한 책이 꽤 되었다. 그나마 어찌어찌 읽은 책들도 번역서라서 아무래도 우리와는 동떨어진 외국의 환경과 경험을 다룬 부분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정서적인 면이나 신앙적인 면에서 오는 괴리감이 꽤 크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책으로부터는 별로 실질적인 도움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감사할 일이 하나 있었다. 이 일을 계기로 청교도 교육 방식을 접하게 되었고, 그 결과 청교도-개혁주의 신앙을 알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해야 할 하나님의 은혜가 또 어디 있을까?
셋째, 우리보다 먼저 홈 스쿨을 시작한 가정과 교제를 나누며 궁금했던 부분을 묻고 답하는 사이, 어느 정도 큰 그림이 그려지면서 자신감이 생겨났다. 특히, 엄마 홀로 아이의 학습에 대한 부분을 감당해내야 한다는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를 얻었다.
우리 가정은 홈 스쿨 콘퍼런스나 홈 스쿨 엑스포 등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았다. 홈 스쿨에 관심 있거나 계획을 세우고 있는 가정, 또는 이제 막 홈 스쿨을 시작하려는 가정은 이러한 행사에 많이 참석하곤 한다. 우리 가정은 이런 행사에 직접 참가해보지 않았으니 후기를 말할 수는 없겠지만, 광고지에 적힌 문구나 전해지는 홍보 글에서 느낀 바로는, 홈 스쿨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의 가치관을 가르치는 또 다른 교육 시장이 만들어지고 판매되고 있다고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 행사에는 일절 참여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나타난, 우리 가정의 최초 교육 방침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매일 가정 예배 드리기
둘째, 매일 Q.T. 하기
셋째, 매일 성경암송 하기
넷째, 맥체인 성경 읽기표로 성경 일독 하기
다섯째: 강원도 홈 스쿨 가정모임에 열심히 참석하기
여섯째: 교재를 정하여 국어, 영어, 수학을 공부하게 하기
일곱째: 아이를 도서관에 열심히 데리고 다니기
여덟째: 매일 영어로 된 만화 영화 보여주기 등이었다.
이로부터 2년 정도 지났을 즈음 작성된, 우리 아이들의 실제 학습 계획표는 다음과 같다.
공통
오전 7시 기상/ 7시 30분 식사/ 8시 30분 아침 예배
9시 30분 개인학습 시작/12시 30분 점심 식사/6시 30분 저녁 식사
가급적 외식 자제
모든 약속은 오후 시간대로(개인적인 일, 도서관, 악기 배우는 일 모두)
각자 역할 분담
도서관 정리 정돈, 매일 청소기 돌리기, 방 닦기, 빨래 널고 개기, 마당 정리 정돈, 닭 밥 주기, 오전 중에 개 밥 주기
설거지 아침: 연서, 현서 / 점심: 정우, 시은 / 저녁: 예빈
예빈, 연서 공통
검정고시 인터넷 강의 듣기, 수학 동창생, 영어책 읽기(하루 3권),
국어책 읽기(하루 1권) == 학습일지 작성, 영어 집중 듣기(교재 선택), 매일 요절암송(유니게 성경암송),
성경 일독 위해 3장 읽기 / 가정예배 드릴 때 순서대로 성경 1장, 잠언 1장, 매일 아침 Q.T.하기
현서
2학년 수학부터 차근차근 하기.
수학 동창생 복습, 영어책 읽기, 국어책 읽기, 영어 집중 듣기,
매일 요절암송, 성경 일독 위해 3장 읽기, 매일 아침 Q.T. 하기
정우, 시은
1학년 수학, 받아쓰기.
인터넷 교재 참조, 영어책 읽기(반복), 국어책 읽기(하루 1권 이상),
영어 집중 듣기, 매일 요절암송, 성경 일독 위해 3장 읽기. 매일 아침 Q. T. 하기
2012년 1월 1일에 새로운 마음으로 아이의 교육을 위해 심사숙고하면서 짰던 계획표인데, 지금 보면 우습기도 하고 지금도 여전히 헤매고 있는 우리를 보고 있노라면, 역시 의지할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기억하게 된다. 지켜지기 힘든 계획표였고, 실제로 몇 번 지키지 못한 계획표였지만, 그래도 이 중에서 계속 유지되는 부분은 성경 읽기와 가정예배 드리기다.
초창기 우리 가정의 생활과 교육방식을 되돌아보면, 마음만 너무 앞섰었다. 무조건 학교에 안 보내고, 성경을 조금 더 많이 읽게 하고, 성경 구절을 열심히 암송하게 하고, 잠언을 공책에 옮겨 적게 하고, 성경 묵상집을 가져다가 매일 Q.T. 하게 하고, 영어 성경으로 영어 공부하고,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기에 힘쓰고, 홈 스쿨 가정 모임에 매월 빠짐없이 참여하는 일 등의 눈에 보이는 일에 열심을 내었다. 그리고 그것이 성경적인 자녀양육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학교 교육과정은 너무 강압적인 측면이 있으니, 조금 느슨하게 2~3년 정도 아이를 놀게 하면서 공부하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에 우리 가정은 정말 열성을 다했기에, 자녀를 꽤 성경적으로 양육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암송 구절이 늘어날수록, 읽은 Q.T. 책자가 매달 쌓여갈수록, 읽은 성경의 분량이 많아질수록 말이다. 그런 눈에 보이는 성과물이 곧 열매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갈수록 열매라고 볼 수 없는 부족함이 점점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성과물들이 변화된 삶으로 연결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제야 나는 교육방침이 잘못되었고, 욕심이 과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암송한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삶을 변화하게 하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야만 삶이 변할 수 있는 것임에도, 이런저런 방식을 열심히 실천하기만 하면 삶이 어느 정도 변하리라 여겼던 것이다.
이런저런 실수와 어려운 일이 많았던 지난 5년 동안의 일들을 되돌아보니, 홈 스쿨을 하게 하시고 인도하신 분은 참으로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은혜로우신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도하심이 없었다면, 우리 가정도 불신앙 가정과 별 차이 없는 홈 스쿨을 운영하고 있지 않았을까?
감사하게도 우리 가정은, 자녀에게 가장 먼저 가르쳐야 할 부분이 죄로 타락한 인간 본성에 관하여 알게 해주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죄로 가득하여 참으로 아무 소망도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참으로 알아야,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대속의 사랑을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경험하면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형성하게 도와주는 일이 바로 기독 홈 스쿨의 참 목표인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막연하거나 수학 공식 가르치듯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참으로 사랑하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의 죄를 대신 갚아주심으로 용서해주셨다는 사실을 인격적으로 깨우쳐주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자녀가 남은 인생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영생의 복을 누릴 부활의 날을 소망하며 살 수 있도록 맡겨진 책임을 실생활에서 성실하게 감당해가는 것이다. 그것이 없다면 기독 홈 스쿨은 참으로 아무 의미 없다고 할 수 있다.
아이의 학습과 관련한 문제는 그다음이다. 사실, 많은 부모가 아이의 학습에 관심과 열의를 갖는 이유는, 그 일이 ‘먹고사는 일’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부모는 보통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 잘하고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어서, 장차 사회에 나갈 때 그것을 기반으로 삼아 보다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많은 사람이 걸어가는 그 길을 가장 안전하고 빠른 길로 여기면서 말이다. 그래서 부모가 공교육을 포기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를 믿는 그리스도인이 먹고사는 문제에서 공부의 비중을 세상 사람과 똑같게 놓아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의 승리가 사람의 많음이나 무기의 우수성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에 있었듯이,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아이에게 성경적인 가치관을 확고하게 심어주기만 한다면, 아이는 그 믿음으로 이 세상을 충분히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부보다는 성경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목표를 정하고 홈 스쿨을 시작한 지 만 4년 정도 지났다. 하지만 아직도 아이를 놀게 하고 있다. 아이들의 입에서도 이제 열심히 공부해보겠다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큰아이는 벌써 사춘기를 다 지나고 성인이 되는 초입 무렵에 들어가고 있다. 큰아이도 조금씩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인다. 그러면서 ‘얘들이 언제쯤이면 공부한다고 이야기를 할까?’하면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 아이들은 공부하고는 거리가 좀 먼 것 같다.
홈 스쿨 이야기를 쓰면서, 그동안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쳤는지 돌아보니, 세상 교육의 측면에서는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다. 그래서 남편은 “가르친 게 뭐가 있어? 아무것도 없잖아. 책만 사다 놓고 한 것도 없는데 홈 스쿨에 관해 쓸 이야기가 있을까?”라면서 웃곤 한다. 큰아이인 예빈이는 “엄마가 한 일이 뭐가 있어요? 우리가 다 알아서 하지 않았어요?”라고 이야기한다. 맞다. 그것이 솔직한 우리 가정의 실제 모습이다.
하지만 자녀를 성경적으로 양육하는 일은 서두에 이야기한 것과 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자체다. 양육 도서나 어떤 프로그램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온 가족이 삶의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의뢰하고 높이면서 꾸준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야 한다. 예배드릴 때만 잠깐, 성경 읽을 때만 잠시 기독교적인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우리 삶의 주인이시라는 진리를 몸소 실천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고 내 지혜와 명철을 의지하지 말고 하루하루를 하나님께 말씀과 기도로 여쭙고 의뢰하는 삶을 통해, 내 아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 자라가도록 옆에서 주어진 책무를 꾸준하게 감당해가는 것이다. 청교도가 하루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합당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아이의 생각과 꿈은 순간순간 바뀌고 걷잡을 수 없이 다양해진다. 부모가 그 모든 것에 일일이 대응하고 지원해줄 수는 없다. 부모는 평소 삶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일과 가리는 일이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보여주면서, 아이 스스로 판단하게 해야 한다.
아이가 꿈을 갖고 하고 싶은 일을 말해올 때마다 ‘그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가, 가리는가? 장차 신앙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는 않겠는가?’를 생각해보라고 조언해주면서 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이 소중한 유산은, 어떤 교재나 프로그램을 통해 물려줄 수 없는 것이다.
무지한 열심으로만 가득했던 종교 생활에서 믿음의 대상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하는 교리를 배울 수 있게 해주시고, 청교도-개혁주의 신앙을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참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의 모든 삶도 하나님의 선하신 인도 하심을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린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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