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홈 스쿨
(5) 실제적인 ‘어려움’이 찾아올 때
김선희
앞서 말한 것처럼, 기독 홈 스쿨의 목적은 자녀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녀로 양육하는 것이며, 그 일에 사용되는 주요 방편은 교리교육이다. 그러나 참 역설적이게도 요즘처럼 정보가 넘쳐나는 시대에 기독 홈 스쿨을 위한 교리교육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관한 정보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그만큼 우리 시대는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도외시한 채로 사람의 지혜를 따라 무언가를 이루어보려고 어리석은 열심을 내고 있다. 그러한 어려운 현실 앞에서도 하나님의 자녀로 아이를 키우기를 바라면서, 개혁주의 교리교육에 관한 실질적인 정보를 찾고 있을 가정을 위해, 이번에는 교리교육을 하려고 할 때 찾아오는 실질적인 어려움에 관해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정말로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칠 마음과 뜻을 굳게 세웠다면, 그때부터는 요즘 새롭게 ‘뜬다는(??)’ 교육법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무엇이든지 새롭게 주목받는다고 하면, 빨리 접해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더구나 내 자녀를 위한 교육문제와 관련되면, 이러한 성향은 순식간에 몇 배는 더 강력해진다.
그런 마음에 끌려 이런저런 최신 교육법에 관한 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교리교육’에 대한 회의가 들게 마련이다. ‘정말 이래도 되나, 이게 정말 효과가 있을까, 이러다 아이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소리가 우리 마음을 온통 흔들어 놓는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것이 교리인데, 그것으로 아이를 가르치고 양육하는 일이 어떻게 아이를 망치겠는가? 내 경험상 정말 무익하고 아이의 영혼에 해를 줄 수 있는 교육법은 교리교육이 아니라, 오히려 인터넷과 홈 스쿨 세미나에서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었던 최신 교육법이었다.
우리 가정은 기본적으로 신앙교육에 많은 비중을 두었지만, 그래도 수학과 영어만큼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 못지않게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때마침(…….) ‘성경적 자녀양육’이라는 인터넷 동호회에 올라온 공지 글 하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글의 제목은 「수학의 최고봉(수학동창생) 홈스쿨러들을 위한 공개세미나」였다. 우리 가정은 그 글이 올라오자마자 바로 참가신청을 하고, 세미나를 들으러 서울까지 올라가는 수고를 마다치 않았다.
세미나의 핵심 내용은 수학에서 연산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수학은 인문학의 꽃으로서, 이 인문학의 꽃과 같은 수학을 이야기 전달 방식(스토리텔링)으로 가르치면 아이가 창의적이고 똑똑한 아이로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교육에 특화된 『수학동창생』이라는 좋은 교재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마치 고급 냉장고나 자동차를 구입하기만 하면 가정의 행복과 사회적 지위 상승이 보장된다는 듯한 내용으로 소비자를 유혹하는 TV 광고처럼, 우리 가정은 『수학동창생』 하나만 있으면 우리 아이의 창의성과 교육 성공은 떼놓은 당상이나 다름없다는 허상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갔다.
세미나가 끝나자, 교재를 구입하고 싶은 열망은 점점 더 강렬해졌다. 하지만 책값이 너무 비싸서 정가구입은 엄두도 못 내며 끙끙 앓다가, 그래도 어떻게든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못 이겨 결국 중고로 책을 구입하고야 말았다. 원가보다 무려 절반이나 저렴하게 구입했는데도 책값으로 150만 원을 사용했으니, ‘대체 무슨 책이 그렇게 비싸나?’ 하시는 분이 여럿 있으실 것이다.
그러나 교육 관련 책값은 원래 비싼 편이다. 자녀 교육이라면 선뜻 지갑을 여는 부모의 학구열을 잘 아는 출판업계가 우선 책을 최고급으로 만들고, 또 그런 책들을 한꺼번에 여러 권을 묶어 하나의 전집으로 만들어 파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배달된 교재를 상자에서 꺼내어 책장에 꽂아두면서 그렇게 흐뭇할 수 없었다. 책값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속으로 ‘아이를 수학 학원에 보내면 아이 한 명당 10만 원은 훌쩍 넘게 들 텐데, 일 년 치 수업료를 미리 냈다고 생각하고 한번 열심히 가르쳐보자.’라고 하면서 흐뭇한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했다.
다음날부터 우리 가정은 예빈이, 연서, 현서에게 동영상 CD를 보여주고 난 뒤에 문제풀이를 시켰다. 다섯 명의 아이가 모두 사용해야 하는 비싼 교재이니만큼, 깨끗하게 사용하기 위해 다른 종이를 덧대어 문제를 풀게 하면서 말이다. 교재대로 하면 6개월이면 한 학년 과정이 끝나는데, 우리 가정은 3달을 채 넘기지 못했다.
한두 달 가르치다 보니 세미나에서 생겨난 장밋빛 환상은 점점 사라져 갔고, 3달이 되어갈 즈음 우리 가정은 저자 교수님의 상술에 가까운 유창한 언변에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괜히 세상 교육에 기웃거리다가 순간적으로 눈멀고 귀먹고 판단력이 흐려져서, 세상에서 환영하는 훌륭한(??) 아이로 만들겠다고 세상 교육에 맞장구치며 환호했던 부끄럽고 초라한 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엉뚱한 시간과 돈과 노력을 허비했다는 후회와 함께, 그러한 자리를 주최한 기독교홈스쿨협회 회장님이 야속하기만 했다.
그 뒤로 우리 가정은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에 올라오는 세미나 관련 내용은 한 번 걸러서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 지금도 우리 가정은 우리 집 책장을 떡 하니 차지하고 있는 30권의 이 두꺼운 교재를 버리지도 못하고 고이 잘 모셔두고(?) 있다. 이미 큰돈을 들인 만큼, 혹시라도 정우, 시은이가 나중에 수학 공부할 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다.
그뿐이 아니다. 수학 말고도 영어에도 많은 관심이 있었던 우리 가정은 홈 스쿨을 시작할 즈음 ‘영어를 잘 가르치게 하는 부모 교육’이 있다는 이야기를 주위에서 주워듣고는,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강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부랴부랴 찾아갔다. 그 강의에 의하면, 부모가 영어를 못해도 강의시간에 알려주는 대로만 하면, 자녀를 영어 잘하는 자녀로 키울 수 있다고 하였다. 안 그래도 영어에 대한 부담감이 있었던 우리 가정은 강의를 경청하였다.
12번에 걸친 강의가 끝나자, 이번에는 영어 원서를 최대한 많이 구입해야겠다는 생각이 물밀 듯이 쏟아져 들어왔다. 일명 ‘잠수네 영어교육 방법’이라는 그 교육법에 따르면, 아이에게 영어책을 1,000권 이상 읽게 하고 3,000시간 동안 영어를 듣게 하면 자연스레 영어가 들리고 입이 열려서, 아이가 원어민처럼 의사소통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급했을까? 우리 가정은 자세히 알아보지도 않고 미국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온갖 쓸데없는 책까지 500여 권을 중고로 사들였다. 중고로 구입했음에도 책값이 무려 백만 원이 훌쩍 넘어갔다. 이처럼 부모는 자녀 교육을 위해서라면 돈 아까운 줄을 모르게 마련이다. 하지만 나중에 시립도서관에 가보니 좋은 영어원서가 수두룩하게 구비되어있어서 원하는 대로 빌려 갈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땅을 치고 후회한다는 말의 참뜻을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물론, 그런 일이 일어날 때의 상황도 ‘수학동창생 사건’ 때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때 나는 다음과 같은 말로 나 자신을 합리화했다.
‘아이들을 영어학원에 보내면 한 명당 30만 원은 족히 들 텐데, 이 정도면 5명 한 달 학원비도 안 되는 돈이니까 별문제 없다. 아이들이 이 책을 안 본다고 해도 손해는 없을 것이다. 왜? 그러면 다시 팔면 되니까.”
그리고 그날부터 아이들을 향한 끊임없는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아침은 “영어책 1,000권 정도는 꼭 읽어야 한다.”라는 말로 시작해서 저녁은 “영어책 읽었니, 오늘은 몇 권 읽었어?”라는 말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영어로 된 디즈니 만화 영화를 매일 한 편 이상씩 봐야 한다.”라고 하면서, 아이들에게 계속 부담을 주었다.
물론, 그때 구입한 영어책도 『수학동창생』과 별로 다르지 않은 처지가 되었다. 별로 읽히지도 않은 채, 거실 책장의 빈 자리를 메우는 일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언젠가 볼 수도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다시 팔지도 못하고 말이다.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디즈니 만화 영화는 아이의 영혼에 해를 주는 요소가 많으므로, 대단히 주의해야 한다. 영어를 가르치려다가 홈 스쿨의 본래 목적을 무너뜨리는 어리석음을 범하면 안 된다. 차후에 기회가 되면 미디어에 관해서 다룰 때, 이 부분을 좀 더 자세히 이야기했으면 한다.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다가 이게 좋다 저게 좋다는 소리에 휩쓸려 다니는 사이, 우리 가정은 아이에게 무엇부터 중점적으로 가르쳐야 하는가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다가 막내이자 쌍둥이인 정우, 시은이가 일상의 무료함을 채울 길이 없어서 다시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싶어 했다. 나 역시도 아이들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채로 그냥 정체된 것 같은 불안감을 잠재울 길이 없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다시 학교에서 교육을 받게 해주었다.
이처럼 정말로 교리교육을 통해 아이에게 신앙의 뼈대를 마련해주고 싶다면, 한동안은 세상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는 귀를 막고 지내라고 권해주고 싶다. 지금 섣불리 둘을 병행하려고 했다가는, 기반이 약한 신앙만 무너질 뿐이다. 그러나 교리적 토대가 튼튼하게 서면, 기독교 세계관 토대 위에서 건전한 세상 지식을 아무런 해도 입지 않고 다 습득할 수 있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닫아두라. 두 마음은 바람이 이리 불면 이리로 저리 불면 저리로 휩쓸려가는 배와 같아서,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녀를 실제로 먹이시고 입히신다. 우리는 공중의 새가 떨어지는 것까지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를 돌보아주실 것을 믿고 말씀을 가르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니 가능한 마음을 느긋하게 먹고서, 시마다 때마다 인터넷과 세미나를 들락거리는 대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의지하면서 주님께 우리의 필요를 기도로 아뢰어야 한다. 그리고 성경 말씀에 따라, 상황과 형편을 고려하면서 그때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올바른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교리교육의 중요성을 모를 때에는 그냥 성경 암송, 성경 퀴즈, Q.T. 등등의 눈에 보이는 성과물에 초점을 두어서 그런지, 그래도 뭔가를 하고 있다는 안도감은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자녀가 어릴 때 성경 암송과 성경 읽기, 만화 성경 등을 통하여 성경의 이야기를 한 눈에 알아두는 일은 필요하며 유익하다. 그 점을 부정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교리교육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이러한 눈에 보이는 성과들은 뼈 없는 생물처럼 자기 생명을 계속 유지해갈 수 없다. 완전 엉터리 같은 비성경적인 내용이 그럴싸하게 포장되어 다가와도, 그저 감사함으로 ‘아멘’하게 되고 만다.
그런 사실을 현장에서 몸으로 부딪치며 알게 된 우리 가정은 제대로 된 교리교육을 빨리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지만, 문제는 체계적인 교리교육에 대한 정보가 아무리 찾아봐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 가정은 그냥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 전체(107문)를 출력하여서, 세 문항씩 읽고 답하는 것으로 교리교육을 시도해보았다.
그런데 그냥 문답만 하고 부연설명을 할 수 없었기에, 정말 순식간에 마지막 문답까지 문답이 진행되었다. 그러니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고 배웠는지 알 수가 없었고, ‘과연 교리 공부를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이 생겨났다. 어쨌거나 진도를 다 나갔으니 시험을 봐야겠다 싶어서 괄호 넣기 형식의 문제를 아이들에게 풀게 했는데 결과는 별로 좋지 못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비교적 간단한 형태로 이루어진 문답이지만, 아이들이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내용 설명이 필요했다. 이해도 하지 못하는 교리문답이 아이들 머릿속에 남아있을 리가 없었고, 아이들은 한목소리로 어렵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우리 가정의 교리교육 시도는 흐지부지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가정은 교리교육에는 꼭 설명과 이해가 따라야 함을 발견했고, 이번에는 교리설명이 잘 되어 있는 책을 구입해서 자녀 교리교육에 다시 도전했다. 심사숙고 끝에 결정했던 책은 크리스챤출판사에서 나온 G.I. 윌리엄슨의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강해: 신앙교육서』였다.
이 책은 소요리문답을 정말 잘 설명해놓은 책이었지만, 기초 교리 지식이 없다면 성인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우리 가정은 무턱대고 그 책을 교재로 선정하고서 교리 교육에 들어갔고, 결과는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며칠 하다가 너무 어려워서 다시 책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눈을 좀 크게 낮추어서 부흥과개혁사에서 만화로 출간한 『만화 웨스트민스터 소교리문답 Ⅰ, Ⅱ』였다. 하지만 교리를 만화로 만든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만화로 본다고 해서 없던 기초 교리 지식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결국 어렵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어렵게 교리 교육에 도전하면서 ‘교회에서 교리를 가르쳐 주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질 않았다. 교리 교육도 받고 자라지 못한 우리가 스스로 교리를 연구해서 아이를 가르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고 금세 한계에 부딪혀 정체되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리교육을 사역의 주된 축으로 삼는 지역 교회를 알아보았으나 찾지 못하였고, ‘밴드오프퓨리탄스’에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을 삶에 밀접하게 적용하여 해설한 『교리가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강의한 내용을 듣고서 조금이나마 교리를 이해한 뒤에 다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은 교리란 한 번 읽고 바로 답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생각하면서 이유와 답을 찾으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답을 찾으려고 하면, 자연스럽게 기독교적인 변증도 익히게 된다. 이처럼 교리 교육은 이유와 답, 그리고 해설이 함께 어우러진 것이므로, 부모는 가르치기 전에 가르칠 내용을 예습하고 먼저 이해한 뒤에 아이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아이들이 질문해올 때 좀 더 풍성하게 성경의 가르침을 알려줄 수 있다.
지금 우리 가정은 밴드오브퓨리탄스에서 출간한 『그리스도가 이끄는 삶』이라는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로 가정예배 때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쳐주고 있다. 여전히 미흡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조금씩 내용이 있는 교리교육으로 발전해가고 있다.
이와 같은 과정을 지나오면서 우리 가정이 조금이나마 깨우친 바를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가정예배를 잘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일을 거치면서, 우리 가정은 점점 그나마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가정예배였다. 가정예배는 우리 가족의 부족한 신앙의 버팀목이자 교리교육의 산실 노릇을 해주었다. 사실, 가정예배는 몰라서 못 드린다기보다는 세상 일에 지치고 힘들다는 핑계로 하루 이틀 거르다가 안 드리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니 가정예배는 의지적으로라도 매일 드리는 편이 좋다.
우리 가정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온 가족이 탁자에 둘러앉아서 사도신경을 암송함으로써 예배를 시작한다. 그리고 시편 찬송가를 부른 뒤, 성경읽기 순서에 따라서 성경 한 장을 함께 읽고 그 다음 잠언을 두 절씩 교독한다. 그런 뒤에 남편이 해당 본문의 매튜 헨리 주석을 읽어주면서 본문 내용을 이해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답해주기도 한다.
그다음, 교리책(그리스도가 이끄는 삶)을 각자 앞에 놓고 읽으면서, 교리 문제도 풀고 내용을 묻고 답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가족 중 한 사람이 기도하면, 모두 함께 주기도문을 암송함으로써 예배를 마친다.
때때로 찬양을 여러 곡 부를 때도 있어 시간은 유동적이지만, 위의 순서대로 하면 짧게는 40분, 길게는 1시간 걸린다. 우리 가정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예배 시간에 교리교육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늘어났다.
일상의 바쁨을 핑계로 가정예배를 소홀히 하고 멀리하면 어느새 마음이 강퍅해져서, 집안 여기저기서 짜증 섞인 소리가 일어나며 서로 감정이 상해 관용과 사랑이 사라진 살벌하고 냉랭한 집안 분위기가 연출되곤 한다. 그러니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예배드리기에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참으로 필요한 말씀을 교리와 성경 본문을 통해 가르쳐주신다. 그렇게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는 참된 은혜로 답해주신다. 그러면 어느새 불화와 다툼은 사라져버리고 가정은 은혜 안에서 돈독해진다.
둘째, 수준에 맞는 교리책을 선정하여 다 함께 읽고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교리책은 개혁주의 관점에서 교리를 잘 정리한 책을 골라야 한다. 교리 관련 책은 비교적 다양하게 나와 있다. 만화로 되어있는 책부터 신학생을 위한 어려운 책까지 다양하게 출간되어 있다. 그러니 가족 모두가 읽고 함께 공부하기 적합한 수준의 책을 잘 골라야 한다. 그리고 틈나는 대로 자녀에게 그 책을 읽게 하고, 부모도 부지런히 읽고 공부하면서 아이를 가르쳐야 한다.
셋째, 안정적이고 체계적으로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에 다녀야 한다.
아이에게 교리를 가르치려면 그래도 부모가 웬만큼은 교리를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아무 배경도 없는 부모가 홀로 교리를 공부하여서 그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많은 무리가 있다. 그러므로 부모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 강론의 도움을 꼭 받아야 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가 정작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부모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러니 아이에게 진정으로 교리 교육을 하고자 한다면, 교리를 가르치는 일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개혁교회에 출석해야 한다. 간단한 속성 과정(교리반)을 이수하게 한 뒤에는, 일반 교회에서 하는 사역 행태를 그대로 하고 심지어 권장하기까지 하는 도루묵 개혁교회에 나가면 안 된다. 계속 반복해서 교리를 가르치고 가르친 교리를 실천하려고 하는 참된 개혁교회를 출석해야 한다.
교리 공부란 원래 평생 해야 하는 것이다. 한 번 했다고 해서 교리를 다 뗐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녀 양육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실제 삶 가운데서 교리교육이라는 방편을 통해 하루하루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가듯이, 교리교육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키와 지혜가 자라가면서 매일매일 깊이가 더해져 가는 것이다. 또, 연륜이 쌓여가면서 더욱 강건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정한 책 한 권을 다 마쳤다면 다시 처음부터 반복해서 공부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서,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제네바 교리문답 등등 공부해야 할 훌륭한 신앙교육서는 많이 있다. 그러니 단숨에 교리를 완전히 정복하겠다는 생각일랑 일찌감치 내려놓고 차근차근 문제점을 개선해가면서, 꾸준히 반복해서 공부하고 가르쳐야 한다. 실제로 우리 가정은 자녀들에게 성경을 깊이 있고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평생 교육이 교리교육이라고 알려주었다.
우리 가정은 지금 교회가 운영하는 주일 교리학교에서 교리를 잘 배운 선생님께 교리문답에 관한 설명을 듣고 나서 주관식으로 된 복습 문제를 풀고 있다. 매주 열리는 교회 학교에서는 단원별 설명이 끝나면, 해당 단원의 문답을 암기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인간의 목적이 무엇인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지, 성경은 무엇인지, 성경은 정말로 믿을만한 진리인지, 죄가 무엇인지, 인간의 타락과 비참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이고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다. 또한, 죄로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은혜의 언약을 허락하신 것과 더불어, 그 언약을 이루어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시는 중보자 예수님께서 누구이신지를 계속 배워가고 있다.
물론, 아이들은 아직 배운 내용을 100%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배우고 암기한 내용을 성령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선하게 사용하셔서, 그 아이들의 심령을 변화하게 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이처럼 교회가 분명한 방향을 잡고 교리를 가르쳐주니, 우리 가정은 교리교육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점점 사라지고, 멀리 내다보면서 차근차근 배우고 가르치면서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부족한 점은 많다. 그러나 더는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 및 혼란과 싸울 일은 없어졌다.
그리고 조금씩이나마 배운 교리를 따라 하나님 말씀을 거스르는 세상 지혜를 하나씩 볼 수 있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렇게 우리 가정은 오늘도 배운 교리를 따라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사는 법을 익혀나가고 있다.
글을 쓸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고 좌충우돌하던 옛 모습이 떠올라 참 부끄럽다. 그러나 그런 우리 가정에 은혜를 주셔서 교리를 배울 수 있게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리고 부족하나마 앞으로 기독 홈 스쿨을 계획하고 있을 가정을 위한 글을 쓰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이렇게 혼탁한 세상에서 구별된 하나님의 자녀로 택하여 주시고, 또한 바른 개혁주의 교리를 통해 부족한 중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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