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홈 스쿨
(6) 기독교 세계관과 대중문화 경계하기
김선희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여라(롬 12:2).」
지금까지 홈 스쿨을 하기로 결정하고 난 뒤로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기독 홈 스쿨에는 교리 교육이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올바른 교리 교육을 위해 여러모로 애쓴 결과, 그나마 어느 정도는 기독 홈 스쿨이라고 해도 될 것 같은 여건을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교리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와 가치는 외적인 형태에 있지 않다. 환경과 조건이 아무리 훌륭해도, 그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 수 있는 여러 가지 죄악들이 얼마든지 우리 마음을 파고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가정 역시도 그러한 일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아이들의 신앙 교육 체계가 하나둘씩 잡혀 가면서, 아이들은 점차 꾸준히 성경을 읽고 교리문답을 조금씩 계속해서 알아가게 되었다. 그러자 내 마음속에서는 아이들의 신앙이 견고해졌으리라는 섣부른 판단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신앙 상태를 여러 가지 측면에서 확인하고 점검하려는 노력을 조금씩 게을리하게 되었다.
우리 가정은 기독 홈 스쿨 가정 중에서도 아주 적은 가정만이 하는 교리 교육을 잘 해내고 있다는 생각에 다소 우쭐해 하는 마음이 찾아왔던 것이었다. “가정 예배도 잘 드리고 교리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아이들이 죄를 멀리하고 거룩하며 성결하게 살아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지나치게 안심했던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조금 들어오니, 마귀는 그것을 악용하여 우리 가정을 태만과 교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교리 교육을 어느 정도 하다 보니, 우리가 아이들에게 “얘들아,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뭐야?” 하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라고 하면서 마치 합창하듯 대답한다.
또,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니?”라고 물어보면, 아이들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하나님의 존재, 지혜, 능력, 거룩, 공의, 선함, 진실은 무한하고 영원하며 불변합니다.”라고 대답한다. 부모로서 그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흐뭇하고 보람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교리를 잘 배우고 익히는 것과 그 교리를 삶에 적용하여 계속 거룩하고 성결하게 사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에 속한 일이다. 물론 전자도 쉽지 않지만, 후자는 더 어렵다. 왜냐하면 그 일은 우리의 부패함에 교묘하고 줄기차게 호소하는 마귀의 궤계를 분별하고 대적하는 일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마귀는 어떻게 해서든지 교리와 성도의 실제 삶을 분리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실생활의 수많은 측면과 영역에서 우리를 유혹하며 그럴듯한 거짓말을 우리 귀에 끊임없이 들려준다. 그러므로 우리 자녀가 실제 삶에서 배운 교리대로 살아갈 수 있게 하려면, 부모는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사고(思考)하여 모든 일을 영적으로 분별하고 대처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그리하여 마귀가 교리 교육을 하나의 형식적인 일로 전락시키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이 일에서 마귀에게 패배하면, 결국 교리 교육은 종이호랑이 신세를 면하기 어렵게 된다.
그러나 많은 이가 이러한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성은 고사하고, 그 용어조차도 낯설어한다. 기독교 세계관으로 자녀를 키우겠다는 소망을 갖고 있는 기독 홈 스쿨 가정조차도 기독교 세계관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들에게 기독교 세계관이 무엇인지 물으면, 그저 ‘기독교적으로’ 키우는 것 정도의 막연한 대답이 돌아오곤 한다. 교리 교육도 버거워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런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어쩌면 참 당연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따라 사는 삶이란 주일성수를 잘하고 교리를 잘 배우며 성경 읽기를 잘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기독교 세계관을 따라 사는 삶과 자녀 양육은 그 모든 은혜의 수단을 통해 배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실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대응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기독교 세계관이란 그러한 적용과 대응에 필요한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린 사고와 해석의 틀’을 말한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삶의 모든 영역을 다스리는 삶을 가리켜서 기독교 세계관을 따라 사는 삶이라고 하는 것이다.
낸시 피어시 여사는 이런 부분을 우리에게 아주 쉽게 설명해주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몸담고 있는 시대의 정신에 맞서려면 그만큼 포괄적인 성경적 세계관-독특한 기독교 문화를 형성할 수 있는 인생관-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략)…… 우리가 그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다만 ‘가슴의’ 신앙에 불과하다면, 매력적이고도 위험한 사상의 유혹에 대처할 만큼 강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을 형성하는 첫 단계는 가슴과 머리 사이의 뚜렷한 분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예배 및 개인의 도덕과 같은 거룩한 영역과 과학, 정치, 경제 등 공적 영역을 포괄하는 세속적 영역으로 나누어 양자가 서로 대립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배격해야 한다. 우리의 생각 속에 있는 이런 이분법이야말로 복음의 능력이 오늘날의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는 것을 방해하는 최대 걸림돌이다.」1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가정도 처음에는 기독교 세계관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다. 그래서 기본적인 신앙 교육만 잘 이루어지면, 자녀들이 ‘알아서’ 세상 유혹을 말씀으로 물리치고 분별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마귀의 악한 지혜가 얼마나 교묘하고 탁월한지를 조금씩 깨닫게 되면서, 그 생각이 지나치게 순진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마귀는 우리 가정이 기본적인 신앙 교육의 영역에서 승리하자, 칼끝을 대중문화의 영역으로 돌려서 수시로 싸움을 걸어왔다. 그 싸움에서 우리 가정은 종종 맥없이 패하곤 했다.
우리 가정은 원래 대중문화를 경계할 필요성을 거의 느끼지 못하며 살아왔다. 아이들이 어릴 때는 집에 텔레비전도 없었고, 컴퓨터도 학습용으로만 사용하면서 지냈기 때문이었다. 기독 홈 스쿨로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텔레비전이 어린아이에게 끼치는 해로운 영향을 대부분 알고 있다. 그래서 아이가 텔레비전을 접하지 못하게 적극적으로 경계하고 제한한다. 그러나 학습 영상자료나 영화, 음악 같은 부분은 그냥 허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우리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마귀는 그렇게 경계가 느슨한 틈을 파고들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지난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우리 가정은 아이의 영어 교육에 열심을 냈었다. 그래서 수많은 영어 원서를 사들이고, 영어로 만들어진 영화를 최대한 수집했다. 이는 일명 ‘잠수네 영어 학습법’대로 영어 원서 1,000권 읽기와 영어 영화 3,000시간 시청을 통해 아이의 영어 말문이 트이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이에게 보여줄 만한 영어 영화는 사실상 디즈니에서 만든 만화영화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그때는 디즈니 영화의 유해성을 모르고 있던 때였으므로, 우리는 아이들이 재미있게 보곤 했던 디즈니 만화영화를 3,000시간 동안 보게 할 요량으로 영화 파일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순서대로 하루에 3편씩 보게 했다. 그러면서 대사를 다 외우게 했고 다 본 뒤에는 또다시 보게 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디즈니 영화를 보고 또 봐서 지루하다는 말이 오갈 즈음, 우리 가정은 디즈니 영화가 담고 있던 영적인 메시지와 실체를 알게 되었다. 프리메이슨 단원이었던 월트 디즈니는 아이들의 영혼에 오컬트 사상을 주입하여, 아이의 성향과 정서를 프리메이슨 사상과 친밀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영화를 만들었던 것이었다.
특히 아이들은 건전한 사리 분별력이 갖추어지기 전이므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대로 받아들이고 따라 하게 마련이다. 디즈니 영화는 바로 그 점을 노리고 만들어지는 영화로서, 그런 영화를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은 그야말로 아이의 영혼에 독을 주입하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을 겪을 뒤, 우리 가정은 디즈니 영화는 경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밖의 영화는 아이들이 시청 가능하다는 표시만 있으면 별 제한 없이 보게 해주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일본 만화영화와 미국에서 방영한 <한나 몬타나>라는 TV 드라마를 즐겨보았다.
그때, 큰딸 예빈이가 방 벽 한쪽에 멋진 그림 하나를 그려놓았다. 그리고 그 그림을 ‘하늘 섬’이라고 불렀다. 우리 가족은 그 그림을 보고 모두 한목소리로 “그림을 참 잘 그렸네. 참 아름답구나, 그림 그리는 데 소질이 있네…” 하면서 칭찬 일색의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나중에 개혁주의 신앙을 알고 나자, 그 그림에는 아주 신비적이고 뉴에이지적인 자아숭배 정서가 짙게 깔려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예빈이가 무엇을 제대로 알고 깨달을 수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마귀는 대중문화를 통해 아이의 마음에 그런 악한 정서를 주입하고 표현하도록 역사했던 것이다. 그런 잘못된 정서에 이끌린 예빈이는 영화뿐만 아니라 흡혈귀를 낭만적으로 묘사한 『트와일라잇』과 같은 책을 즐겨 읽었고, 음악도 뉴에이지 음악에 심취해서 해당 음악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가정은 영적인 눈이 번쩍 뜨였다. 그때 우리 가정은 사탄이 정말로 대중문화를 자기숭배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자 예빈이가 벽에 그려놓은 그 그림이 점점 보기 싫어지고 섬뜩하며 심히 부담스럽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책장으로 벽을 가려두었다가 결국에는 벽지를 뜯어낸 뒤에 새로 도배를 할 정도였다.
이처럼 아이의 마음과 영혼이 악한 영의 활동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면, 아이는 그것이 선한 것인지 악한 것인지 분간하지도 못한 채로 그것들을 그대로 흡수하게 된다. 그리고 그 내용을 자기의식과 생각과 정서와 행동을 통해 밖으로 표출하게 된다. 우리 가정은 그 일이 있은 뒤로 아이들이 보는 것, 대화하고 행동하는 것도 점검하게 되었다
얼마 전, <겨울왕국>이라는 영화가 크게 흥행한 적이 있었다. 어찌나 인기를 끌었던지 겨우 말을 뗀 어린아이까지도 그 영화의 주제곡을 따라 부를 정도였었다. 그러나 흥행 직후, 그 영화가 동성애를 좋게 인식하게 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크게 논란이 일어났다. 그 주장이 맞느냐 틀리느냐보다 더 중요한 부분은, 부모가 대중문화를 통한 마귀의 활동 전략을 충분히 알고 경계하느냐에 있다.
정말 기독 홈 스쿨을 올바르게 운영하고 싶다면, 어떤 영화가 세간의 관심을 끌 때 기독교 세계관을 따라 분별하고 대처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이웃집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더라는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경계심을 풀어서는 안 된다. <겨울왕국>과 관련하여 우리 가정은 친(親)동성애 영화로 볼 만한 여지가 충분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사실은 서울에서 열린 동성애자(퀴어, Queer) 행사에서 한 외국인 초청 공연자가 ‘커밍아웃의 의미를 담은 노래’라고 하면서 그 영화의 주제곡인 ‘렛 잇 고(Let it Go)’를 부른 일에서 잘 나타난다.2 친(親)동성애자들이 먼저 나서서 해당 영화 주제가를 그런 의미로 받아들이고 사용한다는 것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 양심적으로 잘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그런 결론을 내린 우리 가정은 이웃 홈 스쿨 가정에 <겨울왕국>이 친동성애 영화로 볼 만한 점이 많다고 말해주었더니, 대번에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이 아니냐는 답변이 돌아왔다. 어떤 부모는 음모론적인 시각에 사로잡혀서 너무 과민반응하는 게 아니냐고 했다. 우리 자녀는 그 영화를 보고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다고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성도라면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잘 넘어갔다고 해서 다음에도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마귀는 항상 우리의 경계가 느슨해진 틈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또한, 기독 홈 스쿨 가정은 영상 매체뿐만 아니라, 록 음악과 같은 대중음악에 대해서도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자녀는 자라면서 점점 자신이 듣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어 하게 된다. 그런데 부모가 자녀의 음악 사용을 제대로 관리하기란 참 쉽지 않다. 청소년기에는 잘 때도 음악을 들으면서 자고 싶어 할 정도로, 좀처럼 음악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보통 MP3 형태로 만들어진 음악 파일을 휴대용 기기에 담은 뒤에, 헤드셋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저런 일을 하곤 한다. 한자리에 모여서 다 같이 듣는 것도 아니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듣는 음악을 매번 확인하고 점검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가다 보면 아무래도 신경을 좀 덜 쓰게 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된다.
그러나 부모는 음악이 아이의 정서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부모는 아이가 건전하고 질서 있는 음악을 듣게 지도하는 일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특히, 아이가 록이나 헤비메탈 음악을 듣게 해서는 안 된다. 록과 헤비메탈 음악은 듣는 이의 영혼을 무질서와 혼돈 그리고 어지러움에 빠지게 하고, 기성세대에게 반항하게 하며 인간성을 상실하도록 유도한다.
이는 록과 헤비메탈 음악에 깔린 정서가 무언가를 거스르는 저항적이고 파괴적인 정서이기 때문이다. 한 번 이런 정서에 사로잡히면, 아이는 그동안 잘 배워온 훌륭한 신앙 지식과 유산을 하나씩 부수고 거스르는 악한 일에서 정서적인 만족과 평안함을 느끼게 된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국가론』에서 자녀 교육에서 ‘건전한 음악교육’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설명했다. 그만큼 음악은 듣는 이의 영혼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 음악이 사람의 영혼에 끼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안다면, 요즘 교회에서 전자 기타와 드럼 등을 동원하여 CCM(현대 크리스천 음악,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을 부르는 행태에 기겁할 것이다.
옛날 청교도들은 음악과 미술을 무턱대고 받아들이고 사용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적 예배 자리에서는 아예 무반주로 찬송을 부를 정도였다. 그러나 예술 자체를 반대한 것은 아니어서, 일상생활에서는 가사가 음탕하지 않고 호색을 조장하지 않는 성악곡을 즐겨 부르고 들었다.
반면, 현대 교회는 세속 음악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여 예배 시간에 찬송으로 부르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삶 속 깊숙이 파고든 이 CCM이 사탄의 최고 걸작품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많은 기독 홈 스쿨 가정에서도 자녀가 CCM을 부르는 일을 제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장려하기까지 한다.
분명히 그 가정의 부모는 일반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보다 CCM을 부르는 것이 더 나을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CCM을 부르는 것이나 일반 대중가요를 부르는 것이나 정서적인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CCM은 퇴폐적이고 감각적인 이 시대의 대중 정서가 듬뿍 담긴 곡조에 기독교적인 색채를 띤 가사를 덧입힌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마귀는 ‘뭐 이런 것까지 그렇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태도를 가장 좋아한다. 마귀는 다른 것을 아무리 잘해도 그런 느슨한 틈이 있으면, 그곳을 통해 손쉽게 울타리를 넘나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틈으로 아이에게 삶의 주인은 자기 자신이라고 속삭이면서, 아이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진리의 말씀을 차례차례 걷어내 버린다. ‘뭐 그런 것 좀 듣는다고 해서 별일이야 일어나겠나?’ 하면서 방심했다가는, 그로 인해 아이가 영원히 마귀의 손아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비극을 맞게 될 수도 있다.
쿠르트 코흐는 『사탄의 전술전략』이라는 책에서 이와 관련된 부분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성경은 말세에 많은 사람들이 속이는 영들과 마귀의 가르침을 좇으리라고 우리에게 말해준다. 이러한 악령들은 자신들의 대변자로 이용할 수 있는 적임자를 찾아내는 재간이 있다. 많은 록 뮤지션들은 자신들을 악령들의 대변인으로 이용당하게끔 내맡겼다.
팝 뮤직 분야에서는 사탄의 영향력이 대단히 강하다. 성령 충만한 기독교인 학자들은 팝 뮤직의 가사를 유심히 살펴보아야 한다. 이 가사들은 아무런 해악이 없는 사랑 타령이 아니다. 그것들은 뇌살(腦殺)시켜버리는 기묘한 뒤틀림과 어지러움을 담고 있다. 이 음악이 바로 10대 청소년 세대를 마약과 섹스로 휘감아 들였던 원흉인 것이다.」3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가 연예인을 멋있어하면서 노래와 춤을 따라 하려는 행동에 대해 주의를 시키고 규제해야 한다. 현대 대중가요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정서를 노래로 표현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대 대중가요는 사람의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본성을 한껏 자극하여, 그런 정서를 좇는 일을 은연중에 미화하고 합리화한다. 그러므로 아이가 그런 춤과 노래를 계속 부르게 놔둔다면, 그 아이는 자라서도 세속주의의 늪에서 빠져 나오기 어렵게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다음으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것은 자녀의 컴퓨터 사용이다. 아이가 자라면, 부모와 자녀 사이에는 첩보 작전을 방불할 정도로 컴퓨터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이 벌어지게 된다. 기독 홈 스쿨로 자녀를 키우는 가정이라고 해서, 그 가정의 아이가 부모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할 것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순진하기 그지없는 생각이다. 기독 홈 스쿨에서 나고 자라는 자녀라고 해서 아담에게서 물려받는 타락한 본성의 영향을 피해가는 것이 아니다.
자녀를 키우다 보면 아이가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찾으면서 공부해야 하는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인터넷을 사용하면서 중간중간 악한 마음이 일어나 해로운 사이트(‘네이버 게임’을 비롯한 기타 게임 사이트)에 들러서, 영혼에 해로운 동영상과 오락을 즐기곤 한다. 그래서 부모는 자녀의 인터넷 사용현황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아이들이 자기의 타락한 본성에 휘둘리지 않게 막아줘야 한다.
우리 가정도 그럴 목적으로 ‘엑스키퍼’라는 컴퓨터 관리 프로그램을 설치하여, 아이들의 인터넷 사용을 제한하고 관리하였다. 이는 한 번 인터넷을 사용했다 하면, 할당된 시간을 넘기기 일쑤여서 취한 조치였다. 이 ‘엑스키퍼’라는 프로그램은 컴퓨터 사용 시간, 유해 사이트 차단, 유해 동영상 차단, 원격 제어 기능이 있고, 총 컴퓨터 사용 시간과 접속 사이트를 기록해 놓는다.
우리 부부는 회사 일을 함께 감당하고 있기에 종종 집을 비울 때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가 집을 비운 틈을 타서 컴퓨터에 몰두할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항상 따라 다녔다. 그러나 ‘엑스키퍼’를 설치한 뒤로는 그런 염려는 머릿속에서 깔끔하게 사라졌다. 우리는 정말 ‘엑스키퍼’만 믿고 열심히 일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은 컴퓨터 사용을 향한 욕망을 절제하지 못했다. 그래서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즉,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면서) 컴퓨터 사용 시간과 게임 횟수를 계속 늘려나갔다. 그렇게 컴퓨터 사용 시간이 늘어났음에도, 그 사실은 좀처럼 쉽게 들통 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섯 아이가 서로 의리(?)를 지키면서 비밀을 굳게 고수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아이들은 컴퓨터 앞에만 서면 부모님께 ‘순종’하고 거짓말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 실천하기를 어려워한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우리 가정은 오늘도 아이들의 컴퓨터 사용 실태를 꼼꼼하게 점검하고 확인하며 혼내기를 게을리하지 않고 있다.
또한, 우리 아이들도 다른 가정의 자녀들처럼 일명 ‘인터넷 카페’라고 불리는 동호회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동호회 활동이 우상 노릇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사춘기 때 아이들은 눈만 뜨면 인터넷 동호회에 글 올리고 출석 도장 찍기에 바쁘다. 그리고 동호회에서 새로운 임무(주로 그림 그리기와 글쓰기)를 주면 그것을 달성하느라 정신이 없다. 그런데 그러한 인터넷 동호회 활동 가운데는 사탄숭배와 신비주의가 틈타는 일이 종종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초등학생 사이에서는 일명 ‘역할놀이’라는 놀이가 유행이다. 그래서 인터넷 동호회 가운데에서도 ‘역할놀이’를 하며 노는 모임이 상당히 많이 있다. 아이들은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려서 다양한 역할놀이를 하며 논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사탄 역할을 맡기도 하고, 사탄을 돕는 악한 사람 역할을 맡기도 한다.
어느 날, 우리 아이들이 삐죽삐죽한 뿔 달린 사탄 그림을 그리면서 사탄처럼 활동하고 있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탄에게 충성을 표하는 말이 오가면서 말이다. 아이들은 그러는 가운데 사탄이 얼마나 끔찍하며 대적해야 하는 대상인지를 자연스럽게 잊어버리게 된다. 이처럼, 부모는 이러한 활동을 통해서도 아이의 영혼이 병들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자녀의 인터넷 동호회 활동을 꼭 점검하고 확인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은 교리를 잘 배우고 매주 예배를 드리며, 또 신앙고백도 척척 하는 아이들이지만, 실제 삶에서 그 내용을 적용하고 실천하는 일에는 아직 어리다 보니 많이 미숙하고 미흡한 편이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가 그런 마귀의 궤계를 잘 분별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항상 기독교 세계관에 따라 생각하고 행동하며 교육해야 하는 것이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마귀의 공격 전술은 강력하고 치밀하며 지극히 실제적인 데 비해 이러한 마귀의 활동을 경계하고 대적할 것은 가르치고 권하는 기독 홈 스쿨 관련 책은 거의 볼 수 없다는 것이다. 막연하게 죄와 악을 경계하고 이겨내야 한다는 말은 제법 있다. 그러나 마귀가 우리를 죄와 악으로 치우치게 하려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동하며, 또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그 일을 분별하고 대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들 입을 다물고 있다. 어쩌면 그런 현상조차도 자기 존재와 활동을 교묘하게 감추려는 마귀의 전술, 전략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질풍노도의 시기이자 꽃과 같은 시기인 청소년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보내면서 자라게 하는 일은 기독 홈 스쿨을 운영하는 부모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이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매사 배운 말씀대로 실천하려고 애쓰면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우리 시대 문화를 세심하게 분별하는 일이 꼭 필요하다.
그 일에 소홀히 한다면, 어느새 세상 정서에 동화된 아이가 그동안 잘 배운 교리와 신앙 유산들을 내팽개쳐버리는 잘못된 길로 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청교도 개혁주의의 좋은 유산을 잘 물려주려고 애쓰면서, 동시에 그것을 전복하고자 하는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고 그 모든 것을 잘 지키는 일에도 똑같이 힘써야 한다.
따라서 부모는 모든 영역에서 교리적 신앙과 삶이 일치되는 일에 힘쓰고, 자녀가 참으로 부모를 존경하면서 따를 만한 모범을 보여주는 일에 힘써야 한다. 부모도 타락한 사람이기에 방심하면 어느새 아이의 육신적인 필요를 채워주는 데만 급급하게 된다. 그래서 말씀과 실제 삶 사이에 점점 괴리가 생기고, 마귀가 그 빈틈으로 악한 손길을 뻗쳐오는 일을 허용하기도 한다.
어떤 청교도의 말처럼 아이의 신발에 온통 신경을 쓰다가 아이의 발에는 신경을 쓰지 못하는 일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럴 때 즉시 돌이켜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 손에 아이들을 맡겨주신 일을 기억하고 되새기면서, 교리 교육, 가정 예배, 기독교 세계관으로써 아이의 영혼을 마귀의 손길에서 철통같이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이런 일은 우리의 능력과 지혜, 의지로는 절대로 불가능하다. 오직 살아계시고 참되시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나아갈 때 가능한 일이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참으로 하나님 나라에 이르기까지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도우심을 경험하게 된다.
「이는 우리의 싸움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고, 통치자들과 권세자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엡 6:12).」
우리 자녀의 입에서 시편 찬송과 같은 거룩한 찬송이 흘러나오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익히고 깨달아 알게 하여 주시며,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며 살 수 있게 역사하여 주시기를 성령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아멘-
각주
1 낸시 피어시, 『완전한 진리 (Total truth: liberating Christianity from its cultural captivity)』, 홍병룡 옮김, 복 있는 사람, 2006, pp. 42, 43.
2 이대웅, 「성소수자들, 서울 신촌 일대에서 퀴어문화축제 강행」, 크리스천투데이. 2014. 06. 07.
3 쿠르트 코흐, 『사탄의 전술전략 (Occult ABC: Exposing Occult Practices and Ideologies)』, 이중환 옮김, 예루살렘, 2007, p.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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