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홈 스쿨
(8) 잘못된 인식, 홈 스쿨로 가는 길목에 놓여 있는 걸림돌
김선희
가끔 ‘홈 스쿨을 시작하려는 가정에 가장 큰 부담을 주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무엇이 그들을 머뭇거리게 하는지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호기심 어린 눈빛을 한 채 이런저런 질문을 쏟아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면서 우리가 받은 그 질문들 안에 답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르곤 한다.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그동안 우리 가정이 참으로 많이 받았던 질문에 답해보려고 한다. 그래서 좀 더 많은 가정이 편안한 마음으로 홈 스쿨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우리 가정이 처음 홈 스쿨을 시작할 때와는 달리, 이제는 홈 스쿨로 자녀를 교육하려는 가정을 그다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예전보다는 홈 스쿨의 좋은 점이 꽤 많이 알려지기는 했다. 하지만 홈 스쿨로 아이를 교육해도 괜찮다는 인식이 사회 전반에 폭넓게 자리 잡으려면,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듯하다. 많은 부모가 홈 스쿨을 좋게 생각하면서도 선뜻 자녀를 홈 스쿨로 교육하지 못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물론 그렇게 하는 데에는 가정마다 서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정이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을 토대로, 주로 어떤 부분이 부모를 망설이게 하는지를 추정해보면 크게 두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부모는 대개 아이의 사회성 발달과 아이와 온종일 함께 하는 부분을 염려하며 망설인다.
먼저, 아이의 사회성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 가정이 많이 받았던 질문은 다음과 같다.
「”아이의 사회성은 어떻게 하시려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지 않는 것이지요?”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들과 부대끼며 어려운 일도 겪으면서 생활해야 강하게 자랄 수 있지 않나요?”
“어머니가 자녀를 너무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하면서 키우는 것 아닌가요? 아이가 부모를 많이 의존하게 될 것 같은데요?”」
이 질문에 답하려면 우선 부모가 염려하는 아이의 ‘사회성’이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개념을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과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는 사회성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한다.
「사회성은 사회생활을 하려고 하는 인간의 근본 성질, 인격, 혹은 성격 분류에 나타나는 특성의 하나로, 사회에 적응하는 개인의 소질이나 능력, 대인 관계의 원만성 따위이다.1
사회화(socialization)란 인간이 그가 속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 즉 공동체의 언어, 사고방식, 역사, 공동체 안에서의 생존과 발전에 필요한 생활습관, 다른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규제하는 도덕적 규범들을 학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개인은 다양한 잠재적 성향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성장 과정에서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적절한 교류를 갖지 않는다면 타고난 성향도 잠재된 채로 남아 있거나 소멸하고 만다.2」
위의 설명에 의하면, 사회성이란 공동체 안에서 생존과 발전을 위한 생활습관을 익히고 다른 이들과 문제없이 잘 어울릴 수 있는 도덕규범을 배워갈 수 있는 특성을 말한다. 결국 많은 부모가 염려하고 있는 부분은, 홈 스쿨로 아이를 교육하면 장차 아이가 사회에 나가 ‘원만한 대인관계’를 이루고 사는 일에 지장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과 염려는 아이의 사회성이 주로 또래 아이와 교류하면서 형성되고 발달한다는 잘못된 선입관에서 말미암는 것이다. 사실은 오히려 이러한 선입관과 정반대이다. 대인관계는 수평적인 형태보다는 주로 수직적인 형태를 기준으로 발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인간관계가 무엇인지만 살펴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아이는 부모-자녀라는 수직적인 관계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인식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모-자녀 관계가 잘못 이루어지면, 아이는 다른 사람과 자신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파악하고 설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다시 말해, 아이에게 수평적인 관계를 잘 맺는 법을 가르치고 싶다면, 우선 수직적인 관계부터 잘 맺는 법부터 익히게 해야 한다.
또한, ‘원만한 대인관계’란 원래 특정 집단에 속한 사람끼리만 잘 지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나이, 성별, 환경 등의 차이점을 잘 이해하여서, 그런 점에서 비롯하는 갈등 요소에 현명하고 일관되게 대처하여 모든 계층의 사람을 아우르며 잘 지내는 것을 말한다. 그렇게 모두를 아우르려면 모든 차이점을 수직적으로 잘 배열하여서, 무엇이 우선하고 무엇이 나중인지를 헤아리는 일이 꼭 필요하다. 만약 그런 차이점을 수평적으로 배열하면, 무엇이 더 우월한지 대결하고 경쟁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만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성경이 대인관계의 기본 원리와 질서가 수평적인 특성을 띠고 있다고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에베소서를 보면 이러한 사실이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현대인의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근본적으로 수직적인 특성을 띤다. 남편은 아내의 머리이고, 아내는 남편의 지체이다.
물론, 이 말은 아내가 남편만 못하거나 열등하게 지어진 존재라는 뜻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내에게 남편을 자기 머리로 섬기라고 말씀하셨다. 즉 동등하다고 해서 서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며 싸우지 말고, 겸손과 사랑 가운데 자기를 먼저 낮추어 남편을 잘 도와주는 지혜로움과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것이 아내의 의무이자 책임이라는 것이다.
한편, 남편에게는 그런 아내를 넓은 마음으로 용납해주고 끝까지 사랑해줘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주어진다. 남편은 주님께서 교회를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끝까지 아끼고 돌봐야 한다. 백성의 처지에 아랑곳하지 않는 폭군처럼 아내를 찍어누르고 사용하라고 그런 지위가 주어진 것이 아니다. 오직 우리의 질고(疾苦)를 대신 짊어지신 주님처럼, 아내의 모든 형편과 처지, 부족함을 끝까지 돌봐주고 보호해주는 데 그 지위를 사용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과 훈계 안에서 이러한 대인관계의 기본 속성과 원리를 잘 보고 배우면서 자란 아이는 어떤 사회 환경에서도 사람들과 큰 문제 없이 원만하게 지내게 된다. 홈 스쿨을 통해 사회 구성원의 차이점과 역할을 넓고 깊게 파악하고, 그것에 맞추어 행동하는 법을 충분히 배웠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홈 스쿨로 아이를 교육하면 아이가 장차 사회생활을 할 때 어려움을 겪게 되지 않겠느냐는 부분은 그렇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수 있다.
아직 부족한 점이 많고 어쩌면 자식 자랑처럼 비칠까 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아이의 사회성 문제가 그렇게 염려할 부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기 위해 우리 가정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 가정의 아이들은 타고난 성격과 기질이 다 제각각이다. 다소 외향적인 예빈이, 내향적인 연서, 평소에는 외향적인 듯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종종 내향적인 모습을 보이는 현서, 얌전하고 조용한 듯하지만 명랑한 측면도 있어서 엉뚱한 일도 곧잘 일으키곤 하는 정우, 전반적으로 무난한 성격을 갖고 있지만 때로는 새침데기처럼 굴곤 하는 시은이가 있다.
그렇게 제각기 다른 아이와 모자라고 서투른 부모가 온종일 함께 지내다 보면, 참 많은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싸우고 다치고 혼나고 울고 화내고 고함치며 타이르는 일이 예고도 없이 찾아오곤 한다. 그러나 그러한 크고 작은 갈등이 부모의 개입과 훈계를 통해 해결되기를 반복하면서, 아이는 물론이거니와 부족한 부모도 조금씩 함께 성숙해지게 된다.
처음에는 부모나 아이나 모두 자기 고집과 처지만 앞세우게 마련이다. 그러나 부모가 먼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문제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이고 가르치면 상황이 조금씩 달라진다. 자기 생각과 입장을 상대방에게 무조건 강요하며 다투기보다는, 점점 상대방의 생각과 처지를 이해하고 공감해주면서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기다려주는 쪽으로 큰 방향이 잡혀가게 된다.
그렇게 별로 특별할 것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이었다. 작년(2015년) 초, 큰딸 예빈이가 편집 디자인을 배우려고 서울에 있는 폴리텍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예빈이와 함께 공부할 학생의 연령대는 예빈이보다 보통 6~7살 정도 많은 20대 중반이었고, 30대 초중반 학생도 여럿 있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되자 ‘예빈이가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는 학생들과 잘 어우러져 1년 과정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다. 하지만 그런 염려가 불필요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신입생 예비 교육 시간부터 모든 과정을 이수하고 취업하는 순간까지, 예빈이는 교수님을 비롯한 같은 반 학생과 원만하게 잘 지냈다. 그중에는 예빈이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과 과정에서 오는 이런저런 심적 어려움을 내려놓던(?) 언니들도 있었다. 부모로서 그런 모습을 보면 참으로 대견함과 뿌듯함을 느끼게 된다. 그와 함께 ‘과연 외향적인 예빈이가 홈 스쿨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교육을 받으며 자랐어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홈 스쿨이 외향적인 예빈이에게는 다른 이를 생각하고 배려할 줄 아는 힘을 길러주었다면, 내향적인 연서에게는 반대 방향으로 좋은 영향을 주었다. 연서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거나 사람 앞에서 어떤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을 맞으면, 머뭇거리다가 이내 눈물을 보이고 마는 아이였다. 부모 입장에서 그런 연서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참 마음이 아프고 안타까웠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연서에게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지 생각해보곤 했다.
연서는 초등학교에 다닌 3년 동안 사귄 친구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 선생님이 연서에게 친구가 없다는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가슴이 철렁철렁 내려앉곤 했다. 또래 아이에게 따돌림을 당하는 것은 아닌가, 연서가 학교 다니기를 힘들어하고 있지는 않은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연서는 배려하고 기다려주는 홈 스쿨 교육 환경 속에서 점점 자신의 의사를 별 어려움 없이 표현할 줄 아는 아이로 바뀌어갔다.
그런 연서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일이 역시 작년 초에 있었다. 우리 가정은 중고생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에 한 번씩 두 학기로 나누어서 ‘경제적 자립을 위한 기초 교육’을 진행한다는 내용의 홍보 자료를 누리 소통망(SNS)을 통해 접하고서, 그 과정에 연서를 보내기로 했다. 우리 가정은 원래 연서와 현서를 함께 그 과정에 참여하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현서가 자신은 절대로 가지 않겠다고 최종 선언을 하는 바람에, 결국 연서 혼자서 교육을 받으러 다니게 되었다.
우리 가정은 연서가 과연 끝까지 교육 과정을 잘 이수할 수 있을지를 염려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서로 친해진 아이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루어서 교육을 받으러 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역시 별 쓸모없는 염려였다. 연서는 우리 염려와는 다르게 8개월에 걸친 과정을 빠짐없이 잘 이수해냈다.
주최 측에서는 모든 교육 과정을 마친 아이들이 벼룩시장을 열고, 부모와 친구를 초대하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 자리에 가서 보니, 연서는 당당하게 자기 의사를 표현하면서 친구들과 어울려 벼룩시장을 잘 운영하는 일에 자기 몫을 충분히 감당하고 있었다. 우리 가정은 그 모습을 보면서, 확실히 아이의 사회성이 또래 아이들과의 교류보다는 성경적인 부모-자녀 관계를 바탕으로 자라난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정우와 시은이는 처음부터 홈 스쿨로 아이를 키우는 쪽이 훨씬 빠르고 건강하게 사회성을 키워준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정우와 시은이는 앞선 글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초등학교를 딱 한 학기밖에 다니지 않았다. 하지만 홈 스쿨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였기에,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가서 친구를 많이 사귀고 싶어 했다. 그러다 결국 초등학교 3학년으로 다시 학교에 편입하게 되었다. 그 기간에 우리 가정이 주기적으로 참여한 대외 활동은 홈 스쿨 지역 가정 모임 정도밖에는 없었다.
사실상 다른 아이들보다 3년 늦게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것이나 다름없어서, 우리 가정은 혹시라도 아이들이 또래 친구와 어울리는 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염려했다. 하지만 정우와 시은이는 학교생활에 아주 잘 적응해서, 평소 원하던 대로 친구들을 많이 사귀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둘 다 친구들 사이에서 분쟁이 있을 때 서로 화해하게 하고, 도움이 필요한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아이로 인정받고 있었다.
일반적인 세상 가정의 부모는 자녀를 학교에 보내면서도 학교 교육에 좀처럼 만족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하라는 대로 하면 경쟁에서 뒤처진다고 하면서, 비싼 돈을 들이면서까지 아이에게 수많은 종류의 교육 과정을 이수하게 한다. 그런 교육 과정 중에는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목표로 하는 과정도 있다. 그런 교육 과정은 보통 심리학에 기초한 MBTI 검사로 아이의 성향과 유형을 알아본 뒤, 그 결과에 따라 알맞은 과정을 단계적으로 밟아가게 한다.
그러나 홈 스쿨, 특히 기독 홈 스쿨로 자녀를 키우는 가정은 그런 종류의 교육 과정과 재정 지출이 참으로 불필요하다고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다. 왜냐하면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등대로 삼아 매사 순종하면서 아이를 진실하게 사랑해주면, 아이의 사회성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형성되고 발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부모가 아이의 사회성 발달을 위해 가장 힘쓸 일은 아이에게 하나님 경외하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성령님께서 그런 우리의 훈육 속에서 친히 역사해주시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성령님의 역사 하심으로 아이가 거듭나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그분을 사랑하게 되면, 아이의 사회성은 발달하지 말라고 해도 알아서 잘 발달한다. 참 신앙은 깨끗하고 올바른 성품을 열매 맺게 하며, 성품이 올바르고 깨끗한 사람을 무턱대고 싫어하고 배척하는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롬 14:18). 아이의 사회성에 대한 염려 때문에 홈 스쿨 운영을 망설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다음으로 우리 가정이 많이 받은 질문은 아이와 어떻게 온종일 함께 있느냐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엄마도 조금 시간적인 여유를 갖게 될 수 있지 않나요?”
“아이들이 온종일 집에 있으면, 엄마의 스트레스가 보통이 아닐 것 같은데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요?”」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사실 나 자신부터도 홈 스쿨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도 ‘아이와 함께 온종일’이라는 말만 생각하면 급격히 자신감을 잃어버리곤 했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큰딸, 아무것도 모르는 천방지축인 7살 쌍둥이를 비롯하여 모두 다섯 명이나 되는 아이들과 어떻게 온종일 함께 있을 수 있을까, 그런 일이 정말 가능할까? 오히려 내가 먼저 지쳐 포기하고서 아이를 다시 학교로 되돌려 보내게 되지는 않을까? 그러면 아이에게 악영향이 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나 홈 스쿨을 시작하려는 부모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조금만 인내하고 기다리면 아이들과 매일매일 온종일 함께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복되고 행복한지를 금방 깨달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가정의 부모, 특히 아이 엄마는 이 말을 받아들이기 참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사실이 그렇다.
부모로서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간은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다. 마치 활시위에서 떠난 화살처럼 아이들은 금세 자라 부모 품을 떠나게 된다. 그렇게 빠르게 흘러가는 소중한 시간을 아이들과 온전히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은 부모에게 주어진 최고의 행복이며 축복이다. 물론 그런 최고의 축복과 행복을 얻으려면, 눈앞에 보이는 잠깐의 어려움과 고통을 잘 이겨내고 슬기롭게 극복하는 인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아이와 온종일 함께 지내는 일에는 어렵고 힘든 점보다는 좋은 점이 더 많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부모가 가정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 오히려 줄어든다는 점이다. 일반적인 가정의 아이 엄마는 이 말을 좀처럼 믿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도 이론의 여지가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아이와 계속 함께하다 보면, 서로 집안일을 분담하는 현상이 매우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의식적으로 하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자체를 계속 함께하다 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부모가 청소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청소기를 잡고 각자 청소할 구역을 배정하기 시작한다. 빨래하려고 세탁기를 돌리면, 자연스럽게 옷을 널고 걷고 개는 일을 담당한다. 그렇게 생활 전반을 계속 함께하다 보면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씩 늘어나서, 나중에는 별걱정 없이 며칠 집을 비워도 되는 수준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러나 학교 교육을 받으며 자란 아이들은 부모가 며칠 집을 비우기라도 하면 생활이 금세 엉망이 되기 일쑤이다. 이런 현상은 어렸을 때부터 부모와 함께 생활 전반을 함께 해보지 못한 공백이 초래하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더불어, 실제로 홈 스쿨을 운영해보면 아이와 온종일 함께한다는 것이, 부모가 아이와 무언가를 계속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부모는 부모에게 걸맞은 일과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루를 보내고, 아이는 아이에게 걸맞은 일(?)과 역할을 감당하면서 하루를 보내게 되기 때문이다.
가정의 세부 교육 방침에 따라 다소 다르기는 하겠지만, 홈 스쿨로 아이를 가르치면 아이는 대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하루를 여유롭게 보낸다. 아이들은 그런 여유로움 가운데 생활하면서, 생각하고 대화하며 자신과 다른 사람을 돌아보고 이런저런 갈등을 해결할 능력을 조금씩 키워가게 된다. 그 과정에서 부모가 하는 일과 역할은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고, 아이들의 활동 범위가 일정 수준을 넘어가지 않도록 점검하고 통제하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가정의 예를 들어보면 이렇다. 우리 아이들은 보통 그림 그리기, 야외 활동, 책 읽기, 노래 부르기, 장난감 조립, 영화 보기 등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물론 부모가 하지 말라고 한 게임을 몰래 하거나, 한 가지 일에만 지나치게 몰두하려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래서 부모는 중간중간 아이가 무엇을 하고 있나 살펴보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기도 하고 꾸중하기도 하며, 특정한 일에 더는 몰두하지 못하게 떼어놓기도 한다. 그러면 그때 아이들은 자신을 돌아보고서 고쳐야겠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스스로 고친다. 그런 다음에는 또다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낸다.
물론, 이러한 구도가 정착되기까지는 얼마간 과도기를 거쳐야 한다. 부모 또는 또래 친구만 의존하고 살던 아이에게 하루 24시간은 너무 길고 막연할 것이다. 그러니 홈 스쿨 초기에는 부모가 조금은 주도적이 될 필요가 있다. 가족 여행, 박물관 구경, 음악회, 전시회 등의 체험 학습을 중심으로 홈 스쿨을 운영하면서, 조금씩 아이가 자율적으로 시간을 보내게끔 유도해주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러한 기본 구도가 정착되면, 아이를 가르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하나씩 실행해나가면 된다.
실제로 홈 스쿨을 운영해보면, 아이를 가르치고 관리하는 일이 학교에 보내는 쪽보다 훨씬 더 수월하고 사람에게 적합하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대 사회의 인식은 정반대이다. 사람들 대부분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쪽이 부모의 짐을 덜어준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사회 문화 때문에 홈 스쿨로 아이를 키우는 일을 막연히 두려워하게 된 가정에 부족한 이 글과 우리 가정의 사례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각주
1 국립국어원 표준대국어사전 누리집
2 강동효, 『Basic 고교생을 위한 윤리 용어사전』, 신원문화사, 2001, 네이버 지식 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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