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운동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시민운동 진단1」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시민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가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 2007년 로마에서 열린 동성애 행사의 한 장면
– 소돔과 고모라에서 온 대표단이라고 하는 사람이 행사 참여자와 함께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출처: wikipedia, Picture by Giovanni Dall’Orto)
우리나라가 선진국 대열에 진입하던 때 다양한 사회 현상이 일어났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졌던 것은 시민운동의 활성화였다. 이전까지는 시민이 각종 정치, 사회 문제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면서 여론 형성에 앞장서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경제적인 부유함이 찾아오고 난 뒤로부터는 시민이 여러 가지 운동을 통해 자기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명하며 여론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오늘날 시민운동은 한국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으며, 급진주의자들은 이를 ‘시민 혁명’이라고 칭송하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시대 흐름 속에서 기독교 진영에서도 각종 시민 단체를 만들어 기독교적인 시민운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대표적인 단체로는 YMCA, YWCA,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등이 있다.
그렇다면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시민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가?
우선, 성경에는 시민운동에 대한 개념과 토대가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기독교는 개인의 실존, 즉 사람의 마음과 인격과 영혼을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이 땅의 문제나 부조리 해결을 위해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시 말해, 교회가 힘써야 할 일은 영혼 구원이지, 사회 복지 확충이 아니다.
그러나 자유주의 계열의 교회나 개방적인 태도를 보이는 복음주의 교회는 이 사실을 전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교회가 세상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사회 개선을 이룩하는 일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맡기신 복음의 과업 가운데 하나라고 역설할 것이다.
물론, 성도 개인이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성경적 가치관에 따라 주의하면서 기독교적인 시민 운동을 벌이거나 참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시민운동은 근본적으로 사회 문제를 다루고 해결하려는 운동이므로, 주님의 교회가 시민운동에 앞장서거나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교회의 근본 존재 목적과 정부와 교회의 관계,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 완전히 뒤엉키고 무너지게 된다.
하지만 실제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교회가 시민운동에 참여하고 앞장선 사례가 꽤 나온다. 한국과 미국 교회가 금주 및 음주 절제 운동과 인권 운동을 벌인 일, 유럽 교회가 산업혁명의 사회적 폐단을 해결하기 위한 법 제정을 촉구하며 인권 보호 운동과 구제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선 일 등이 여기 해당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교회가 자기 사명을 잘 감당한 사례라고 볼 수 없다. 교회가 알코올 중독, 인권, 산업혁명의 폐단 해결, 빈부 격차 해결 등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복음을 전하는 교회가 이런 일에 앞장서지 않는다고 해서, 주님의 사명을 등한히 하는 죄를 지었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이런 사회 운동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교회는 주로 자유주의 계열의 교회와 개방적인 성향을 보이는 복음주의 교회였다. 그러므로 이런 사례들은 신자들이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라는 복음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면서 생겨난 자연스러운 현상 정도로 이해해야 한다.
또한, 오늘날 교회가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참여하는 일도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사상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사회 참여가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왔는지는 교회가 힘써야 하는 본래의 사명, 곧 복음 전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다시 말해, 교회가 이런저런 사회 활동을 벌이면서 세상 문제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일은 절대로 성경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다만, 어떤 나라와 사회에 교회의 존재 자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세력이 나타나 활동한다면, 교회는 그들을 반대하고 대항하는 여러 활동을 벌일 수 있다. 그런 일은 단순히 시민운동이라는 범주 안에서 생각할 문제가 아니고, 교회의 생존 여부가 달린 중대한 영적인, 진리의 싸움이기 때문이다. 그런 세력이 나타날 때, 교회는 그들의 교만함과 월권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하는 활동을 활발하게 펼쳐야 한다.
특별히, 나라와 사회가 신앙의 자유를 위협하거나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악한 방향(공산주의, 동성애 등)으로 치닫는다면, 교회는 단호하게 그런 흐름을 가로막는 일에 나서야 한다. 그런 일을 주도하는 악한 이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사람들을 일깨워야 한다. 그런 일은 결국 교회의 정체성을 위협하고 진리의 토대를 허물려는 마귀의 악한 궤계이자 중대한 도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 일에 무턱대고 참여해서도, 완전히 눈을 감고 있어서도 안 된다. 어떤 일이 교회의 존립을 얼마나 심하게 뒤흔드는지를 유심히 살펴봐야 한다. 신자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신자들은 분명히 교회보다 넓은 활동 영역을 갖고 있지만, 제한이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일이 신앙과 교리에 어긋나지는 않는지, 주의하고 분별하면서 활동해야 한다.
마귀는 교회가 자꾸만 세속을 추구하게 부추기다가 잘 안 되면, 교회를 세상과 완전히 분리하여 게토(getto)1에 가둬놓으려고 한다. 교회는 이러한 마귀의 술책을 경계하면서 세상의 도전을 지혜롭게 잘 분별하고 대처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좌로도 우로도 치우침 없이 언제 어디에서나 진리를 따라 행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중세 때부터 근현대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대인을 사회에서 격리할 목적으로 만들어놓은 유대인 전용 거주 지역.
「시민운동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시민운동 진단1」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시민운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이해해야 하는가
(※ 한 주간 1 명, 총 373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