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11)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청년,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김재호
1. 브레이너드의 회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자신을 온순하지만 다소 우울한 기질을 지닌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7~8살이 되기까지 죄를 회개해야 할 정도로 큰 잘못을 저지른 기억이 없다고 회고하기도 했다.1 그러나 무탈하고 평온했던 그의 삶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때 브레이너드는 죽음이 두려워서 신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으나, 결국 그에게 신앙이란 놀고 싶은 마음을 망가뜨리는 우울한 일처럼 받아들여지고 말았다.2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4년 뒤에 마을에 큰 전염병이 돌았고, 브레이너드는 그 일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신앙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예배드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천국을 사모하며 세상에 대해 놀랄 만큼 냉담해지는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그러자 브레이너드는 이제 자신이 틀림없이 기독교인이 되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어머니께서 갑자기 돌아가시자, 그는 걷잡을 수 없는 슬픔과 우울함에 사로잡혔고 그와 함께 그의 신앙도 끝없이 후퇴하기만 했다.3
그러나 그런 후퇴에도 불구하고 그는 교회를 완전히 떠나지는 못했으며, 세상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서도 별다른 즐거움을 얻지 못했다. 그런 어중간한 상태로 4년을 보낸 뒤에, 브레이너드는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어서 피스크 목사님을 찾아가 그 집에 머물렀다. 브레이너드는 피스크 목사님과 생활하면서 자신의 잘못된 점을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고쳐나가며 신앙을 회복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얼마 못 가 그러한 ‘개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몰두함에서 오는 외적인 변화에 불과했음을 차츰 깨닫게 된다.4
어쨌거나 그렇게 신앙에 힘을 쏟기 시작하자, 브레이너드에게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크게 진노하고 계신다는 의식이 문득문득 찾아왔다. 그는 그럴 때마다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면서 그분의 긍휼을 간절히 찾고 구했다. 그리고 자신의 그런 모습에 흡족해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모습에 감동하셔서 긍휼을 베풀어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마음에 품곤 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은 오래가지 못했다.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낮아지고 굴복하는 대신, 그분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고자 하는 타락한 인간의 본심이 자꾸만 고개를 치켜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마음은 그에게 끝없는 낙심과 괴로움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브레이너드는 자기 본심을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열납하실 만큼 자기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그의 심령은 더 부드러워지기는커녕 계속 무덤덤해져만 갔다. 그러한 뼈아픈 실패가 계속 반복되자, 브레이너드의 타락한 본심은 하나님으로부터의 탈출을 점점 적극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5
그의 타락한 내면은 불가능한 일을 요구하시는 하나님께 자기 무능력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며 분노하는 것으로 반기를 들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러한 ‘정직한 노력’에 약속을 세우시지 않고,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만 약속을 세우셨는지에 대해 분노가 터져 나왔다. 더불어 그러한 믿음을 얻기 위해 사람이 할 수 있는 바가 전혀 없으며, 오직 성령님께서만 그 일을 하실 수 있다는 사실에도 분명한 거부 의사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심령 안에서 가장 거센 반발을 몰고 온 진리는 하나님의 주권이었다. 브레이너드의 타락한 심령에 이 주제는 ‘생각만 해도 밥맛이 뚝 떨어지는’ 주제였다. 자기를 낮추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또 노력해서 이제는 목표를 거의 이룬 듯 보이다가도, ‘하나님의 주권’ 소리만 들으면 그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곤 했다.6
이러한 반란 초기에는 ‘앞으로 잘될 것’이라거나, ‘더 노력하면 된다’는 식의 자기 위로가 제법 효과를 발휘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브레이너드의 타락한 심령을 제대로 다루기 시작하시자 그런 자기 위로도 더는 통하지 않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성령님께서 그의 신앙을 지탱한 근본 요인이 ‘자신감’과 ‘자기 희망’에 있었다는 사실을 밝히 비추어주셨을 때, 브레이너드의 심령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브레이너드는 그러한 잘못된 토대 위에서 행한 온갖 신앙 행위가 얼마나 허망하고 쓸모없는지 충분히 인식하게 되었다. 헛된 신앙이 주는 비탄함을 깊이 맛본 브레이너드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분의 긍휼을 바라고 찾는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7
그러던 어느 날, 브레이너드는 그동안 그토록 입에 자주 올리곤 했던 ‘하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되었다. 그 영광은 자신이 그동안 실상 자기 행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찾았음을 밝히 깨우쳐 주었다. 그 거룩한 영광에 깊이 압도당한 브레이너드는 한동안 감탄을 금치 못하면서 그 자리에 계속 ‘잠잠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브레이너드는 그날 이후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얼마나 탁월하고 위대하며 아름답고 완전무결하신지를 생생하게 지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분명한 인식’은 브레이너드의 지난 근심과 고민을 한순간에 모두 해결해주었다. 그동안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일 수 없었던 구원의 길이 지극히 지혜롭고 합당하며 탁월하다는 사실이 아무런 저항 없이 순조롭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그동안 왜 이렇게 탁월한 길을 따르지 않았는지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그런 내면의 변화를 겪은 브레이너드는 얼마 뒤, 주님 안에서 모든 죄의 짐을 벗어버리고서 구원을 기뻐하며 찬미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8
「나는 성부·성자·성령의 3위1체 어느 한 위(One Person)에 대해서도 특별한 깨달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본 체험은 하나님께 대하여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신령한 영광처럼 느껴졌다. 이 빛나고 성스러우신 분, 하나님을 뵌 듯한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영혼 속에서 넘쳤다. 나는 영원히 우리 가운데 왕 노릇 하신 분을 뵌 듯한 만족감으로 차 있었다. 하나님의 탁월하시고 위대하시고 아름다우시고, 또 완전무결하신 품에 내 영혼은 황홀히 안겨 있는 듯했다. 나는 자신의 구원에 관한 생각까지 처음으로 잊어버릴 정도였다. 내가 피조물이란 사실까지도 망각하고 있었다.
온 우주의 왕으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신 궁극적 목적은 모든 영광과 존귀와 찬송을 한몸에 받으시기 위함이구나! 이 내밀한 기쁨과 평화는 밤이 깊어 가도 감동 깊게 가슴 속에서 부풀고 있었다. 나는 저녁 시간에 시간을 내어 체험한 이 일을 검토해 보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는 다음 날 저녁까지도 온통 내 마음을 차지하고 감미로움을 주었다. 내 자신이 새로운 세계에 있는 것 같았고, 모든 일들이 나에게는 전에 해온 것들과는 전혀 판이한 양상으로 나타났다.」9
회개란 단순히 지은 죄로 인해 괴로워하고 탄식하면서 돌이키려고 애쓰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참된 회개는 자기 죄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우심에 대항하여 저질러진 참혹한 행동이라는 점 때문에 깊이 근심하고 괴로워하다가,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의 긍휼에 맡기고 의뢰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지금껏 회개와 선행을 비롯한 어떤 신앙적인 행위를 지극히 열심히 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로 했다면 별 의미가 없다. 그런 것들은 브레이너드의 고백처럼 결국 자기 자신의 행복을 위해 행한 ‘자기 의’로 귀결될 누더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의 섭리와 시련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사람이 좀처럼 생각하기 어려운 일을 종종 허용하시곤 한다. 회심한 뒤 예일 대학에 입학하여 학업에 열중하던 브레이너드는 1742년 겨울에 퇴학이라는 전혀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을 만나게 된다.10
휫필드의 사역은 아메리카 식민지 전역에서 부흥의 불길을 일으켰으나, 아쉽게도 열광주의라는 들불이 일어나는 계기도 만들어주었다. 특히, 휫필드가 테넌트의 뒤를 이어 ‘회심하지 않은 목사의 위험성’을 강력하게 경고하면서부터 상황이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회심의 증거를 보이지 못하는 이에게도 목사 안수를 주던 잘못된 관행에 대항한 휫필드의 행동은 지극히 올바른 것이었다. 그러나 문제는 회심의 기준과 증거를 다소 강력한 영적 경험 그 자체, 즉 소위 ‘위로부터의 감동’에 두려는 경향이었다.
부흥이 일어나자 강렬한 영적 경험과 감정의 고양을 경험하는 이는 수두룩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이 진정 성경과 합치하는지 아닌지를 사려 깊게 파악하고 확증해낼 수 있는 지적 토대를 갖춘 이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심지어 조나단 에드워즈조차도 그런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내적 충동이나 감정 동요를 기준으로 삼고 아주 과감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자신과 같은 특징을 보이지 않는 목회자를 거듭나지 않았다고 판단하면서, 정당한 목회 질서와 권위를 무시하고 비방하며 모임에서 분리해 나가는 일이 잦아졌다.11 또한, 대학교에서도 교수나 직원의 권위를 무시하고 비방하는 좋지 않은 바람을 몰고 왔다.
이러한 상황은 진심으로 대학의 영적 각성을 바라 마지않던 브레이너드의 입에서 다소 신중하지 못한 말이 튀어나오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한 사적인 모임에서 휘틀시 조교가 이 의자만큼도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이라고 친구에게 말했다. 그 말은 마침 그곳을 지나던 한 학생의 귀에 흘러들어 갔으며, 그 학생은 평소 알고 지내던 어떤 여성에게 자신이 들은 말을 옮겼다. 그리고 그 여성은 클랩 학장에게 찾아가서 그 말을 전했다.
그러자 클랩 학장은 브레이너드에게 모든 사람 앞에서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반성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열광주의로 인해 대학 안에서 무질서가 계속 증가하자, 대학 평의회가 누구든지 직·간접적으로 교수진을 위선자나 회심하지 않은 자라고 할 경우, 처음에는 잘못을 공개적으로 시인하고 사과하게 하고 두 번째는 제적할 것을 결의했기 때문이었다.12
그러나 브레이너드는 사사롭게 하고 지나간 말을 마치 공공연하게 교수를 비방하고 다닌 양, 모든 이가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백하고 사과하는 일이 불합리하다고 여겨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로서는 그러한 행동을 학교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결국 브레이너드는 다소 무리한 행정 절차를 걸쳐 최종 퇴학 처리되고 말았다.13
1차적으로 이 일은 브레이너드와 학교 양쪽 모두가 지니고 있었던 성급함과 과격함을 마귀가 제대로 악용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넓은 측면에서 보면, 이 일은 브레이너드의 신앙을 더 깊게 하고 그를 인디언에게 보내시려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빚어낸 일이었다.
▲ 말을 타고 인디언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브레이너드의 모습
어쨌거나 촉망받던 신학생에서 하루아침에 퇴학생 신분으로 전락한 브레이너드는 립턴의 밀스 목사님 댁에 머물면서 개인적으로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면서 자신의 복권(復權)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지만, 클랩 학장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 결국 정상적인 목회자의 길이 막혀버린 브레이너드는 조나단 디킨슨 등의 추천을 받아, 1743년에 선교사 안수를 받고 카우나우믹으로 인디언 선교를 떠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사역에 힘쓰고 돌아온 브레이너드는 인디언을 하나님 나라로 불러들여서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하는 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를 원하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그래서 모든 논란을 뒤로하고 그를 목회자로 초빙하려는 제안이 오기도 했으나, 그는 청빙을 물리쳤다. 그리고 1744년 4월에 그가 마음에 품었던 소망을 꽃피울 델라웨어 지역으로 떠나게 되었다.14
「브레이너드가 최근에 받은 초대장 사건은 그가 선교사 직임 자체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나를 알 수 있다. 그가 지금껏 누려온 모든 세상적인 즐거움을 포기하고, 인디언 복음화를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그는 인디언 선교에 말할 수 없는 난관을 감수하면서도 그 결심을 일관했다.
그가 카우나우믹을 떠나려던 그 당시였다. 롱 아일랜드에서도 가장 살기 좋은 아늑한 이스트 햄프톤으로부터도 초대장이 왔다. 그곳 주민들은 브레이너드를 자기네 교회 목사로 초빙하자는 의견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리고 그를 설득시키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힘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를 자기네 교회 목사로 모시려는 그들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15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여 사람이 측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함이나 다른 이의 잘못으로 큰 어려움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안달복달하는 길로 나아가면 안 된다. 오히려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인내하면서, 하나님께 ‘잠잠히’ 모든 일을 맡기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면 모든 일이 은혜 안에서 참으로 평안하고 순조롭게 합력하는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3. 브레이너드와 에드워즈
브레이너드의 사역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선교사 안수를 받고 카우나우믹으로 떠날 때부터, 사역을 마무리하고 엘리자베스 타운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총 기간은 고작 3년 9개월에 불과하다. 그가 그렇게 빨리 사역을 마감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그리스도의 왕국 확장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브레이너드는 영적 암흑 속에서 죽어가는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외에 다른 곳에 시간을 사용하는 일을 좀처럼 못 견뎌 했다.16 어떤 어려움과 수고와 고생이 앞을 가로막는다고 해도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는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사람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의뢰하며 성실하게 복음을 증거했다. 그 결과 그 짧은 시간 동안, 총 100여 명에 이르는 인디언 교회를 카우나우믹, 폭스, 크로스윅숭, 크랜버리에 개척할 수 있었다.17
그러나 브레이너드는 그 과정에서 몸을 너무 혹사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성경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역자에게 건전하고 상식적인 범위 안에서 자기 건강을 돌보라고 가르친다(딤전 5:23). 이는 자기 소명의 긴급함과 중대함을 잘 아는 사역자일수록, 자신의 환경과 처지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과 생각에 하나님 나라만 가득했던 청년 브레이너드는 이런 부분을 다소 지혜롭게 다루지 못했다. 훗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상한 뒤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그러한 결함이 있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자신의 사역을 이어받은 동생에게는 자신과 같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18
어쨌든 건강상의 이유로 사역을 내려놓게 된 브레이너드는 고향인 뉴잉글랜드 지방으로 가서 휴식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너무도 병약해진 브레이너드는 뉴잉글랜드에 도착하기도 전에 사경(死境)을 헤매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무려 5개월 동안 엘리자베스 타운에 누워 사경을 헤매다가 겨우 고비를 넘긴 브레이너드는 병세가 조금 호전되자 노샘프턴으로 올라가 에드워즈 가정에 머물며 몸을 추스르게 되었다.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가 집에 도착하자 의사를 불러서 그를 진찰하게 하였으며, 둘째 딸 제루샤에게 병간호를 맡겼다. 제루샤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부인하는 일에 특히 모범적인 사람이었으므로 기꺼이 그 일을 맡았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은 브레이너드가 생애 마지막 순간에 누린 가장 큰 기쁨과 즐거움은, 동생을 통해 인디언 선교가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듣는 일과 제루샤와 함께 있는 것이었다. 브레이너드는 제루샤의 돌봄 속에 보스턴 지역을 돌아보면서 소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었으며, 모든 일을 아름답고 덕스럽게 마무리한 다음 다시 노샘프턴으로 돌아와 평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었다.19
에드워즈와 브레이너드는 이때 말고도 교류할 기회가 꽤 많았다. 특히 예일 대학에서 브레이너드가 제적당했을 때, 에드워즈는 그에게 자신의 경솔함을 사과하는 편지를 대학에 보내라고 조언해주었다. 이 대목을 기록한 그의 일기에는 에드워즈가 ‘믿음의 친구’로 적혀있다. 그런 표현은 그때부터 이미 두 사람의 신앙적인 유대 관계가 아주 돈독했음을 잘 보여준다.20
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자연적인 기질과 성품이 비슷했다. 두 사람 모두 지나치게 조용하고 내향적인 기질에서 말미암은 정서적인 우울함과 어두움을 마주해야만 했다. 그러나 많은 연단과 성화의 과정을 거친 에드워즈는 그러한 자기 약점이 참된 겸손과 경건한 슬픔을 함양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고 있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같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브레이너드에게 그러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길을 잘 깨우쳐주었다.21
이처럼 참된 신자에게서 나타나곤 하는 미숙함과 성급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던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가 그런 어려움을 잘 이겨내도록 여러 측면에서 도와주었다. 또한, 브레이너드도 그러한 충고와 도움을 잘 받아들여서 자신의 신앙을 더 성숙하게 하는 밑거름으로 잘 사용했다.
「이런 결함은 그의 신앙적 활동이나 감정에 섞여 있었다. 어떤 것은 본성적인 것과 섞여 있었고 영적인 요소에도 섞여 있었다. 이는 이 세상을 살았던 훌륭한 믿음의 선진들도 항상 그랬던 것이다. 본성적인 기질이 브레이너드의 신앙생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러한 일은 믿음이 깊은 다윗, 사도 베드로, 요한과 바울의 경우에서도 너무나 뚜렷이 드러나는 것이다. 진정한 기독교인으로서의 겸손과 참된 신자로서의 슬픔 속에 우울함이 한데 섞여 있을 것이란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열정과 함께 젊은이의 본성적인 정열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 것처럼 말이다…(중략)…
브레이너드는 누구보다 자신의 결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본성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누구보다 철저히 분별할 수 있었다. 생각이 깊은 독자라면 그의 은혜로운 삶이 원숙해 있었으며, 그 마음의 신앙생활이 더욱 순전해지고, 그의 판단력은 더욱 사리 분별이 분명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는 자신을 수없이 타이르면서 순결하게 지켰다. 그렇게 하여 그는 자신을 유익하게 하는 일에 실패하지 않았다.」22
하나님께서는 시온의 영광이 빛나는 아침만을 마음에 품고 달려간 청년을 참으로 귀하게 들어 쓰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많은 시련과 어려움을 통과하게 하셨으며, 그 과정을 통해 그에게 남아있던 불순물들을 하나씩 제거해가셨다. 그렇게 조금씩 성화 되면서 거칠고 험한 길을 다 달려간 뒤에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그에게 주어진 약 1년 정도의 기간을 유심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그를 기뻐하며 너그럽게 대하시는지가 잘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긍휼과 인애를 베풀어주셔서, 브레이너드가 모든 일을 잘 정리하고 편안하게 하나님 나라로 갈 수 있게 섭리해주셨다. 그의 삶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삶’이 무엇인지 참으로 잘 보여준다. 브레이너드의 삶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까지, 많은 이들에게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잘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각주
1 조나단 에드워즈 엮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The Life of David Brainerd)』, 윤기향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4, p. 19.
2 같은 책, p. 19.
3 같은 책, p. 20.
4 같은 책, p. 21.
5 같은 책, pp. 21~25.
6 같은 책, pp. 25~27.
7 같은 책, p. 27.
8 같은 책, pp. 29~31.
9 같은 책, p. 30.
10 같은 책, pp. 31, 35.
11 조지, M. 마즈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6, pp. 314~316, 343~347.
12 같은 책, pp. 345, 346, 472.
13 같은 책, pp. 472, 473.
14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p. 473,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pp. 36, 81, 82.
15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p. 82.
16 같은 책, pp. 221, 222, 244, 255.
17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p. 486,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p. 219.
18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pp. 14, 15.
19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pp. 471, 472, 474~476..
20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pp. 69~71.
21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p. 484.
22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 p.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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