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8) 그리스도밖에 모르던 위대한 어린아이, 조지 휫필드 <상>
김재호
1. 맑고 깨끗한 심령과 폭넓고 군더더기 없는 사리 분별력의 조화
조나단 에드워즈가 깊고 심오한 사고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끝없는 열정(affection)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었듯이, 조지 휫필드도 일반 사람이 동시에 갖추기 어려운 두 가지 이상의 탁월한 자질을 한꺼번에 갖춘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의 삶에는 상당히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의의를 지닌 일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들의 삶을 놓고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만 살펴본 뒤,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곤 한다. 현대 에드워즈 연구에 불을 붙인 페리 밀러가 에드워즈의 철학적 비범함과 깊이에 탄복한 나머지, 에드워즈의 철학에서 신학이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간과해버린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는 에드워즈를 ‘우연히’ 칼빈주의적 범주를 ‘활용한’ 미국의 가장 위대한 현대 철학자로 묘사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1
그와 같이, 휫필드는 언뜻 보면 정말 순진무구하고 깨끗하기 그지없는 아이처럼 보인다. 휫필드의 그런 모습은, 그가 엘리자베스 델라모트에게 청혼할 때를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가 휫필드에 대해 성급한 결론을 내리기 일쑤이다. 그들은 휫필드가 건전한 사리판단 능력이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가 모든 일을 자기의 느낌에 따라 충동적으로 판단하고 추진했었다고 여기며 안타까워한다. 여기에 존 웨슬리라는 인물, 즉 총명했지만 자기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이중성과 독선적 기질의 폐해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이의 그럴듯한 평가까지 곁들여지면 한층 더 그런 결론에 이르기 쉽다.2
그러나 휫필드는 많은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양식(良識, 뛰어난 식견이나 건전한 판단)이 부족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모든 계층의 사람과 두루 소통하면서 화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건전한 사리 분별력을 갖춘 사람이었다.
이 사실은 그가 당시 사회의 최하층민이었던 광부는 물론이고, 지체 높은 귀족에 이르기까지 두루 환영을 받았다는 사실만 봐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3 더불어 그의 질서 있고 체계적인 삶의 모습이나 칼빈주의 메소디스트 협회를 조직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얼마나 양식과 품격 있는 사고방식을 지닌 인물이었는지 더욱 확실해진다.4
그러나 에드워즈의 철학적 깊이가 근본적으로 하나님 영광의 광대하심을 사모하는 열심에서 비롯한 것처럼, 휫필드의 이러한 폭넓은 품격과 양식 역시도 그의 맑고 깨끗한 아이 같은 심령에서 말미암았다. 아이는 자기 부모의 습성과 기호, 가치판단 등을 마치 마른 휴지가 물을 빨아들이는 것처럼 흡수한다.
그와 같이 휫필드는 아이 같은 순수함이라는 그 타고난 특별한 재능으로 각계각층의 생활양식과 정서를 있는 그대로 흡수한 뒤, 그들의 심령과 자기 심령을 완전히 동화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그는 사도 바울처럼 필요에 따라서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헬라인에게는 헬라인처럼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자질을 갖춘 사람이었다(고전 9:20).
게다가 휫필드는 여관을 경영한 어머니 덕택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에서 살펴보며 자라났다. 그러나 휫필드의 어머니는 휫필드가 여관에서 자라면서 여관 일을 돕는 것을 별로 좋지 않게 여겼다. 이는 그녀가 아주 일찍부터 휫필드를 목회자 감으로 점찍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그녀는 자기 아들이 여관에 드나드는 질 나쁜 이들의 모습을 닮아갈 것을 염려해서, 휫필드가 가능한 여관 일을 하지 못하게 조치를 취했다.5 만약 그녀가 휫필드를 여관에 드나드는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면서 서로 친하게 지내게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어쩌면 휫필드는 부랑아의 온갖 나쁜 모습들을 가장 탁월하게 흡수하여 당대 최고의 건달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한 섭리로써 그가 죄에 탐닉하지 않도록 막아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까지도 그보다 더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한 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대한 복음 전도자로 세워주셨다.
「존 뉴턴은 1770년에 이런 말을 했다.
주님께서는 윗필드에게 그만의 독특한 설교 방식을 주셨다. 그는 누구도 모방하지 않았고, 나는 그의 설교 방식을 제대로 흉내 내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 친숙한 말솜씨, 몸짓에 담긴 힘, 아주 무관심한 사람조차도 이야기에 주목하게 만드는 경이로운 재능 등, 그의 설교를 들어 본 사람에게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고, 그의 설교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설명해도 헛일일 것이다. 다른 설교자들도 아마 복음을 명확하게 설파할 수 있고 윗필드와 똑같은 말을 할 수는 있을 테지만 …… 살아있는 어떤 사람도 윗필드와 같은 방식으로 할 수 없을 것이다. …… 하지만 다른 면에서 그는 설교자들에게 훌륭하고도 적절한 본보기이자 모델이었다. 그는 복음의 메시지가 면밀하고도 생생하게 사람의 양심으로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도입했으며, 내가 믿기로 이 시대의 가장 훌륭하고 걸출한 설교자들은 자신이 그런 면에서 윗필드에게 빚진 자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6
그러나 휫필드는 자신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오직 그리스도의 영광에만 집중했다. 그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처럼 오직 그분의 은혜를 높이는 데만 주어진 모든 것을 쏟아붓고 싶어 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때때로 휫필드의 아이 같은 순수함은 그를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치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는 휫필드의 건전한 사리 분별력을 통해 일하셨다. 그러면 휫필드는 금세 자기 지나침을 인식하고서 자기 허물에 대한 용서를 구하곤 했다. 그런 뒤에, 그는 힘차게 복음을 증거하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그래서 휫필드는 자신의 탁월함과 명망이 도리어 올무로 작용하는 일을 끝까지 잘 피해갈 수 있었다.
그는 진정 그리스도 안에서 맑고 깨끗한 어린아이처럼 끝까지 겸손하고 유순했다. 그러했기에 진정 지혜롭고 사려 깊은 사람으로 끝까지 남을 수 있었다. 참으로 휫필드는 “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과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었다(마 19:14).
2. 홀리 클럽
어릴 적부터 경건한 목회자가 되기를 꿈꾸었던 휫필드는 18살이던 1732년 11월 7일에 옥스퍼드 펨브룩 칼리지에 근로장학생 신분으로 입학했다.7 휫필드가 입학할 당시 옥스퍼드 대학은 지적인 풍성함은 여전했지만, 신앙과 도덕의 퇴보는 두드러지고 있었다. 그래서 휫필드의 형은, 휫필드가 옥스퍼드에 가면 지금의 견고한 신앙과 공부 습관을 다 잃어버리고 나태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염려하기도 했다.8
그러나 휫필드는 형의 염려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그는 술 취함과 추문으로 얼룩진 대학을 다녔지만, 그러한 방탕함에서 자기를 구별하고 오직 학업에 열중했다. 그러자 그의 친구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휫필드를 참 별나게 여기면서 그냥 홀로 지내게 내버려두었다.
결국, 외톨이가 된 휫필드는 자신처럼 세속을 멀리하면서 경건하게 학교생활을 함께해나갈 친구를 간절히 바라면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그렇게 11달이라는 시간을 외롭게 보내고 난 뒤, 결국 휫필드는 그의 바람대로 진지하고 경건하게 살아가고자 했던 소규모 모임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모임은 존 웨슬리를 주축으로 하는 ‘홀리 클럽’이라는 모임이었는데, 휫필드는 찰스 웨슬리의 소개로 그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9
이 홀리 클럽은, 경건하게 살면서 당하는 수치와 모욕을 기꺼이 감내하기로 뜻을 굳게 세운 청년들이 사력(死力)을 다해 죄를 멀리하고 철저하게 자기를 연단하려고 모이는 신앙 모임이었다. 이 모임에 나오는 이들은 아침 일찍(새벽 4~5시쯤)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갖고 매시간 단위로 계획을 짠 뒤, 그 계획대로 행하여 단 한 순간도 허비하는 시간이 없게 하려고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하루를 보낸 뒤에는 일기를 쓰면서 그날 하루를 면밀하게 되돌아봤고, 조그만 허물이라도 발견되면 그 즉시 자기를 정죄하며 책망했다. 그들은 주일마다 성찬에 참여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에는 금식했으며, 토요일은 예비 안식일로 지켰다. 또한, 옥스퍼드의 교도소와 구빈원(救貧院)을 정기적으로 심방했고, 기금을 조성하여 수감자에게 구호품을 제공하고 그 자녀들을 후원했다.10
이처럼 이들은 ‘완벽’에 가까운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 기꺼이 삶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은 참으로 열정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매사에 철두철미하고 근면 성실했던 만큼 이들의 학식도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래서 홀리 클럽 모임에서는 헬라어 신약 성경으로 연구와 강의를 진행했고, 다양한 인사(人士)의 글을 읽고 토론하면서 시간을 보냈다.11
이들의 열심은 분명히 선한 것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열심은 분명히 복음적인 열심이 아닌 율법적인 열심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철저한 자기 노력과 열심이 그들의 영혼을 죄에서 계속 멀어지고 승리하게 해서, 마침내는 죄와 멸망에서 건져낼 것으로 믿었다. 따라서 이들의 신앙은, 외적 의례 자체에 신앙적 의의를 부여하고 그런 의례를 초인적(超人的)인 열심으로 수행함으로써 하나님과의 신비적인 교통(交通)과 구원에 이르려고 하는 신비주의적 예식주의로 빠져들기 아주 쉬웠다.12
웨슬리 형제는 회심한 뒤에도 이때 뿌리내린 잘못된 신앙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내지는 못했다(아르미니우스주의, 완전주의 등). 그러나 휫필드는 회심한 뒤에 이러한 오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또한, 이전의 그 모든 열심을 고스란히 은혜의 영광을 드높이려는 복음적 열심으로 바꾸는 데도 성공했다.
이러한 차이는 18세기에 크게 쓰임 받은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 웨슬리와 휫필드 사이에 훗날 큰 갈등과 분열이 일어나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다. 또한, 평생 유지된 둘 사이의 복음주의적 화합이 주로 휫필드의 관용과 양보로 이루어진 이유도 바로 그러한 차이 때문이었다.
「홀리 클럽은 복음주의적인 모임이 아니었다. 홀리 클럽 멤버들은 중생(new birth)라는 내적 기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고, 영적 만족을 추구하는 그들의 탐색은 점점 외적 의례에만 치중하게 되었다. 존 클레이턴이 이런 경향을 앞장서서 옹호했고, 그의 영향력 아래서 웨슬리 형제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국교회 내 가톨릭(Anglo-Catholic)의 방향으로까지 나가 교부들의 견해를 성경 말씀과 동일한 권위를 지닌 것으로 여기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을 비밀 고해자로 여겼으며, 성찬에 대해 화체설(transubstantiation: 성찬의 떡과 포도주가 실제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하는 견해-옮긴이)에 아주 근접한 견해를 채택했다.
옥스퍼드 메소디스트들은 한 세기 뒤 케블(Keble)과 퓨지(Pusey)가 갔던 길과 동일한 길을 가고 있었고, 어쩌면 뉴먼(Newman)과 페이버(Faber)가 몸담았던 바로 그런 모임이 되어 가고 있던 것일 수도 있다(네 사람 모두 옥스퍼드 운동[Oxford Movement: 잉글랜드 국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적 경향을 반대하고 로마 가톨릭의 사상과 의례를 새롭게 하기 위해 옥스퍼드 대학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운동]의 중심인물이었다-옮긴이).」13
신앙의 열심은 참으로 귀하고 가치 있다. 그러나 그 신앙의 열심은 바른 교리와 신학에서 말미암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 열심은 반드시 복음의 가장 큰 걸림돌 노릇을 하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이심을 잊지 말자(갈 6:7).
그러므로 참된 열심을 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항상 복음에 기초하여 자신을 점검하고 교정하면서 은혜를 간구하는 법을 확실하게 익혀놓아야 한다. 또한, 잘못된 곳으로 향하기를 좋아하는 옛 습관을 단단히 고쳐놔야만 한다. 웨슬리가 높이 든 횃불과 함께 일어난 그 그을음이 결국 현대 교회에 어떤 결과로 되돌아왔는지를 기억하도록 하자.
3. 휫필드의 회심
휫필드는 홀리 클럽 모임에 참여하면서부터 정말 모든 것을 쏟아 부어 거룩과 경건을 추구하였다. 그러던 중에 그는 하나님의 은혜로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이란 본질적으로 사람의 영혼이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생명과 연합하는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경건의 의무를 아무리 열심히 행한다고 해도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지는 일이 없다면, 그 사람은 여전히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실은 자기 행위에 의지하고 있었던 휫필드에게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휫필드와 홀리 클럽 단원들이 간과하고 있었던 중생 교리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사람은 스코틀랜드의 청교도 헨리 스쿠걸이었다. 서른이 채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난 스쿠걸은 생전에 중생에 관한 명저(名著) 한 편을 남겼다. 『인간의 영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 (The Life of God in the Soul of Man)』이라는 제목의 그 책은 한창 선한 열심에 사로잡혀 있던 휫필드의 영혼에 참된 은혜의 빛을 선명하게 비추어주었다.14
우리가 언뜻 생각하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로 사람에게 임하면 그 사람은 눈에 띄게 상태가 좋아질 것만 같다. 그러나 실상은 그 반대이다. 하나님께서 정말로 어떤 이에게 은혜를 주시려고 하면, 대부분 그 사람의 추악함부터 드러내기 시작하신다. 그래서 그 사람은 무서움과 두려움에 떨면서 한동안 이리저리 방황하게 된다.
특히, 이대로 버려질 것만 같은 좌절과 공포가 그의 영혼을 사로잡으려고 해서, 살려고 막 발버둥을 치게 된다. 하물며 평소 다른 이보다 거룩과 경건에 대한 열심으로 가득했고, 또 천성적으로 아이처럼 맑고 투명한 기질의 소유자였던 휫필드에게는 그런 일이 얼마나 더 강력하게 찾아왔겠는가?
그동안 자신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자각한 휫필드는, 스쿠걸이 말하는 그 생명 얻기를 있는 힘을 다해 추구하기 시작했다. 전보다 훨씬 더 엄한 금욕 생활을 했고 그 금욕 생활이 ‘하나님의 생명’을 안겨주지 못하자, 그것보다 더 심한 방법을 찾아내어 실행에 옮겼다. 과일 같은 음식을 멀리하면서 그 돈을 가난한 이에게 나누어주고 가장 저급한 먹을거리로 연명하면서, 누더기를 걸치고 더러운 신발을 신고 다녔다.
그러나 그와 같은 극단적인 경건은 여전히 그에게 하나님의 생명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러자 휫필드는 며칠 밤낮을 목소리조차 내지 않고 조용히 앉아서 묵상만 하기도 했고, 주님의 본을 따른다면서 야외로 나가 나무 아래서 두 시간 동안 침묵을 유지하면서 기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하나님의 생명’이 없음을 발견할 뿐이었다.
그러자 휫필드는 자기 포기의 강도를 더 올렸다. 자신이 홀리 클럽 친구들을 얼마나 마음을 다해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발견하자, 그는 그들과 헤어지는 길을 택했다. 그러면서 오직 주님만을 찾고 또 찾았다. 그런 일이 자신을 하나님의 생명으로 인도해주리라고 기대하면서 말이다.15
결국, 그의 삶은 망가질 대로 망가질 수밖에 없었다. 과제를 해갈 수 없어서 벌금을 물기도 했고, 주변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수군거렸다. 극심한 내적 고통과 고행으로 그의 건강은 급속도로 망가져서, 결국에는 계단을 기어 올라갈 수조차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휫필드가 그러한 길로 들어서기 약 2년 전에, 윌리엄 모건이라는 한 홀리 클럽 단원이 휫필드와 같은 극단적 경건으로 빠져든 일이 있었다. 그러나 중생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로 점화된 극단적 자기 열심은 결국 장래가 촉망되던 한 청년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휫필드는 그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죽든지 이겨내든지 하겠다면서 새 생명을 향한 굳은 의지를 끝내 꺾지 않았다.
그만큼 그에게는 스쿠걸이 말한 ‘하나님의 생명’이 간절했다. 그의 심령에는 그것을 위해서라면 생명을 잃어버려도 상관없다고 여길 만큼, 중생을 향한 참된 간절함이 아주 깊이 새겨져 있었다. 그래서 휫필드는 거의 9개월에 걸쳐 흑암과 사투를 벌이는 중에도 기진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에게는 불의한 재판관을 끈질기게 찾아갔던 힘없는 과부처럼, 끝내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소망의 항구로 인도해주시리라는 작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그 믿음은 그가 어둠에 굴복하는 일을 끝까지 막아주었다. 만약 그 믿음과 소망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휫필드도 윌리엄 모건처럼 자력 구원이라는 어둠 속에서 끝내 생명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16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던 휫필드는, 점점 자기 힘과 노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지 않는다는 사실과 분명하게 마주하게 되었다. 많은 이가 그 사실 앞에 설 때 크게 낙심하고 절망하곤 한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하면서 영원히 그늘진 땅으로 돌아가 버리곤 한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라고 하는 하나님, 그런 일을 마땅히 해야만 한다고 하는 하나님을 향한 울분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면서 말이다. 그들에게는 그러한 자기 마음의 거센 항의를 거부할 능력이 전혀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무능하고 보잘것없는 죄인 휫필드의 심령을 은혜로 굳게 붙들어주셨다. 그의 근심과 고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과 고뇌였다(고후 7:10). 휫필드는 자신의 절대 무능력이 드러나는 지점에 이르자, 극도의 절망감 속에서 자연스럽게 자기에 대한 모든 기대와 신뢰를 접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에 자기 영혼을 온전히 의탁하는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러자 휫필드의 영혼을 사정없이 짓누르던 죄와 사망의 먹구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참된 은혜와 용서의 밝은 빛이 그의 영혼을 환하게 비추기 시작했다.17
「하나님께서는 쾌히 그 무거운 짐을 치워 주셨고, 살아 있는 믿음으로 그 귀하신 아드님을 붙잡을 수 있게 하셨으며, 양자의 영을 허락하심으로써 영원한 구속의 날이 이를 때까지 나를 인치셨다.
아, 죄의 무게가 벗겨지고, 죄를 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영원한 안식과 완전한 믿음의 확신이 비탄에 잠긴 영혼에 침투했을 때, 내 영혼은 얼마나 기쁨으로 충만했던가! 그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 영광으로 충만한 기쁨이었다. 그 날은 나의 결혼식, 영원히 기억할 날이었음이 분명하다! 처음에 내 기쁨은 마치 홍수처럼, 둑을 넘어 범람했다!」18
참으로 오묘한 것이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은혜이다. 그 은혜는 사람이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않을 정도로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게 하면서도, 동시에 그런 자신이 구원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부적격자임을 드러낸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죄로 죽을 옛사람을 십자가에 실제로 못 박으시는 분이시다. 그런 뒤에 한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따라 새 사람으로 빚어내신다. 먼저 믿는 이와 천사들은 그런 영광스러운 일을 보면서 끝없는 경탄과 찬송으로 하나님을 높여드린다.
여러분에게는 이 위대한 생명이 있는가? 그 생명이 여러분의 절대 무능력함을 털끝만큼의 에누리도 없이 파헤쳤는가? 그런 일이 여러분의 심령 속에서 참으로 진실하게 일어났는가? 혹시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 같을 때 강하게 저항하고 대항하면서 하나님을 원망한 일은 없는가? 그 절대 무능력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자기를 겸손하고도 온전하게 내어 맡긴 일이 참으로 있었는가?
만약 그런 일이 없었다면 당신은 참으로 불쌍한 자이다. 그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매주 예배당에 나가 예배를 드려도 아무런 유익이 없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주인이라고 고백하고 그분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선지자 노릇을 했던 사람들에게 도무지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다(마 7:22, 23). 그런 상태에 있는 이는 더 늦기 전에 휫필드처럼 돌이켜라. 그와 같이 하나님의 생명을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당신에게도 약속하신 성령을 선물로 주실 것이다(눅 11:9~13).
각주
1 조지 M. 마즈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6, p. 722.
2 아놀드 델리모어, 『조지 윗필드 (George Whitefield)』, 오현미 옮김, 복 있는 사람, pp. 645, 646.
3 위의 책, pp. 282, 922.
4 위의 책, pp. 931, 787~790, 796~798, 1190.
5 위의 책, pp. 68~71.
6 위의 책, pp. 1195, 1196.
7 위의 책, p. 72.
8 위의 책, pp. 73, 74.
9 위의 책, pp. 75~78.
10 위의 책, pp. 80, 81 84.
11 위의 책, p. 83.
12 위의 책, pp. 81, 84, 85.
13 위의 책, pp. 84, 85.
14 위의 책, pp. 86, 87.
15 위의 책, pp. 87~89.
16 위의 책, pp. 87~91.
17 위의 책, p. 91.
18 위의 책, pp. 91, 92에서 재인용.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8) 그리스도밖에 모르던 위대한 어린아이, 조지 휫필드 <상>
(※ 한 주간 1 명, 총 573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