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1) 프롤로그
설형철
▲ 유럽에 도착한 뒤 처음으로 카메라에 담은 프랑스 파리 오를리 공항의 모습
누구나 한번은 꿈꾸어 보았을 유럽 여행. 방학이나 휴가를 맞이하여 대학생은 물론 장년층까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두 달 넘는 일정으로 배낭을 메고 유럽으로 떠납니다. 누구는 유명한 장소를 찾아, 누구는 맛있는 음식들을 맛보고 다양한 문화도 체험하려고, 또 누군가는 마치 유행에 휩쓸리듯 ‘다른 사람들도 가니까 나도 한 번 가볼까?’라는 식으로 여행을 계획합니다.
저에게도 그런 기회가 2011년에 찾아왔습니다. 청년이라고 하기에는 적은 나이가 아닌 서른한 살. 저는 개혁주의 신앙을 알고 난 뒤, 많은 혼란을 겪고 방황하다가 결국 한국을 떠나 뉴질랜드에서 잠시 쉼을 얻으려 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 검색을 하다 눈에 들어온 유럽행 특가 항공권이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늙으면 언제 유럽에 가보겠나?’하는 생각으로 바로 결제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좀 참았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약간의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쨌든 일은 이미 벌어졌고, 저는 힘든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해 유럽 여행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특가 항공권 일정에 맞춰 두 달 중 한 달은 유럽 중심부(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스위스, 독일, 체코, 네덜란드, 벨기에), 나머지 한 달은 영국으로 일정을 잡았습니다. – 당시에는 이 계획이 얼마나 큰 계획인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 여기까지는 별문제 없었지만, 숙박비, 교통비 같은 다른 비용들을 대강 계산하자 눈앞이 깜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뉴질랜드로 오기 전에 다녔던 회사에서 받은 퇴직금을 사용해도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아쉽지만 쉼을 멈추고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이런저런 일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예산이 부족해서 한국의 가족과 여러 지인에게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해야만 했습니다.
가까스로 예산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이번에는 무슨 목적으로 유럽을 여행할지 정해야 했습니다. 물론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명소에서 사진 찍고 현지 문화를 경험하는 것도 좋겠지만, 막 개혁 신앙을 알게 된 저에게는 종교 개혁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아서 유적지 방문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정하고 보니 주일에 예배를 드릴 장소가 문제였습니다. – 제일 먼저 고려했어야 할 사항인데, 늦게 생각났습니다. – ‘유럽에도 많은 개혁주의 교회가 있겠지.’라고 쉽게 생각했지만 알아보니 의외로 많지 않았습니다. 아니, 찾기가 너무 어려울 정도로 없었습니다! 유럽의 많은 교회들이 문을 닫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곳곳에 숨어있는 개혁주의 교회를 찾을 수 있었고, 그 교회들 위주로 모든 계획을 수정했습니다.
마지막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번에는 개인적인 문제였습니다. 종교 개혁의 역사에 관하여 아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교 때 역사 공부를 열심히 할 걸…….’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 개혁과 관련된 책들을 만만치 않은(!) 해외 배송비를 들여 한국으로부터 공수했고, 마치 수능 시험을 앞둔 수험생처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역사를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보다는 현장에 직접 찾아가서 보고 느끼며 배우는 편이 기억에 확실히 깊이 남는 것 같습니다.
많은 시행착오 끝에, 유럽으로 출발하여 종교 개혁 유적지를 돌아보고 왔습니다. 벌써 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중에서도 첫 번째는 역시 유럽 개혁주의 교회 성도들입니다. 저 멀리 있는 작은 나라 한국에서 온 저를, 마치 늘 옆에서 보았던 친구처럼 대해주시고 섬겨주셨습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너무나 반갑게 대해주셨고, 헤어질 때는 눈물로서 아쉬움을 표현해주셨습니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요, 자매라는 사실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뻤습니다.
두 번째는 유적지에서 느낀 종교 개혁자들의 사랑과 헌신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한 뜨거운 사랑과 성도들을 위한 헌신과 노력이 유적지에 고스란히 배어있었습니다. 진리를 지키기 위해 순교한 많은 성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나 또한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신실한 설교자들의 외침이 늘 울리던 교회를 돌아보며, 그 시절에 일어난 말씀의 부흥이 이 시대 가운데 다시 일어나길 간절히 원하는 기도가 나왔습니다. 이 땅에서 선한 싸움을 마치고 이제는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된 성도들의 육체가 남겨진 무덤에서는, 비록 그들은 죽었지만 믿음을 통하여 여전히 말하고 있다는 성경 말씀이 생각나면서 숙연해지곤 했습니다.
세 번째는 그곳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입니다. 유럽 여행이 활성화되면서 도시마다 한국 민박집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젊은 학생들부터 나이가 지긋한 장년 분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한국에 있었다면 아는 체하지 않았을 사람들인데, 외국에 나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습니다. 외국을 혼자 여행하는 사람들은 모국어를 사용할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만큼은 그들과 어울려 정겨운 모국어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더 반가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민박집 주인분들도 생각이 납니다. 먹을 것을 좀 더 챙겨주시곤 했던 이모님. 외국에서 신앙 생활하시면서 힘들지만 정직하게 민박집을 꾸려나가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또 우연히 – 하나님의 계획은 우연이 없죠. – 현지 교회에서 한국 성도 몇 분을 만났습니다. 스위스 로잔(Lausanne) 개혁 교회에서 만났던 어떤 남자분은, 어렸을 때 스위스로 와서 한국말이 조금 서툴렀지만, 그곳에 잘 정착하여 열심히 교회를 섬기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교회에서 만난 여자 선교사님. 저보다 몇 살 어린 여성인데도 뜨거운 열정으로 아랍 국가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함께 교제하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입니다.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안전히 잘 마치게 해주셨고, 배고픈 가운데 가끔, 아니 자주 근사한 식사를 무료로 제공해 주셨으며, 힘들어 지칠 때 깜짝 이벤트를 만들어 주셔서 다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정말 주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지 않으셨다면 이 글도 나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두 달간의 여정을 돌아보며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주로 종교 개혁 유적지에 관련된 역사와 개혁자들의 삶, 그리고 그곳에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종교 개혁의 역사는 큰 유익이 있습니다. 마치 구약 시대 성도들의 역사가 신약의 성도들에게 영적인 도움을 많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부디, 이 글을 통해 기독교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길 기대해봅니다. 저처럼 유럽으로 떠나시는 분도 몇 분 생겼으면 좋겠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남긴 삶의 흔적을 직접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그들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고 죄송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한편으로는 도전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처럼 주님을 위해 더욱 헌신해야겠다고 새롭게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적지를 돌아보고 난 뒤, 숙소에 돌아와 생각하고 느끼고 다짐한 것들을 일기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 내용을 조금 손질하고 기름칠하여 전해드릴까 합니다. 유적지의 생생한 사진들도 덧붙이고 여행 중 일어난 토막이야기도 간간이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와 도전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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