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시리즈
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 (3) 조지 뮬러 유적지 탐방,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
김재호
조지 뮬러의 유적지는 어떠했나?
– 전에 목사님께 기도와 관련된 책을 추천해달라고 부탁했을 때, 목사님께서는 조지 뮬러의 전기를 추천해주셨다. 전기에 담긴 그의 생애는 정말 감명 깊었다. 그래서 조지 뮬러가 비록 개혁주의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유적지도 함께 둘러보게 되었다.
독일에서 나고 자란 조지 뮬러는 런던 선교회에 선교사로 지원하면서 영국으로 건너왔다. 그런데 선교지 파송이 계속 지체되자, 조지 뮬러는 선교회와 관계를 정리하고 그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는 오직 기도로 사역과 생활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했는데, 이는 그가 ‘기도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기도에 의지하며 복음을 전하던 조지 뮬러는 테인머스의 작은 교회를 거쳐 브리스틀에 자리를 잡았고, 그곳에서 평생 불쌍한 고아를 돌보며 선교사를 후원하는 일을 감당했다.
▲ 1936~43년까지 고아원에서 생활했던 C. J. 롱이 2002년에 보낸 선물
조지 뮬러 하우스에는 조지 뮬러가 사용하던 여러 가지 유물이 잘 보존되어 있어서 참 좋았다. 하지만 조지 뮬러의 신앙은 유물처럼 잘 보존되지 않아서 참 아쉬웠다. 이곳 사람들은 조지 뮬러를 오래전에 고아원을 세워 훌륭하게 운영했던 기독교인 설립자 정도로 기억하고 있다. 지금도 조지 뮬러처럼 기도에 전심전력하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잘 보존된 유물을 둘러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신앙에 유익할 것 같았다.
▲ 조지 뮬러 하우스 내부 모습(동영상)
조지 뮬러가 출석했던 베데스다 채플도 상황이 좋지는 않았다. 그나마 베데스다 채플은 주변 사람들에게 꽤 알려져 있고, 교인도 몇 십 명 정도 출석하고 있어서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었다. 베데스다 채플을 둘러보려고 찾아가보니 타버나클처럼 문이 잠겨 있었다.
그냥 발길을 돌리기가 못내 아쉬워서 초인종을 눌렀는데, 마침 안에 있었던 관리인이 그 소리를 듣고 밖으로 나왔다. 이곳을 둘러보려고 저 멀리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참으로 반가워하면서 친절히 이곳저곳을 안내해주었다.
영국은 원래 신앙의 불길이 가장 활발하게 타오르던 나라였다. 그런데 이제는 그 불길이 거의 꺼진 것 같다. 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는가?
– 개인적으로는 주일 학교가 무너져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영국의 신자들은 주일 학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했다. 다시 말해,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해주는 일에 해외 선교처럼 많은 열심을 쏟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영국 교회의 전성기는 주일 학교 활성화와 함께 찾아왔고, 주일 학교 침체와 함께 막을 내렸다.
영국 교회를 대표하는 찰스 스펄전 목사님이 태어난 1830년 대에는, 전체 영국 아동의 25%에 해당하는 125만 명의 아이들이 주일 학교에서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랐다. 스펄전 목사님이 사역을 시작한 1850년 대에는 그 수가 더 늘어나서 200만 명에 이르게 된다.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 무렵에, 영국에서는 주일 학교가 거의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교회 안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으로 인해 내리막길 논쟁이 벌어졌고, 교회 밖에서는 무신론자의 세상이 도래했음을 알리는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 젊은이들이 무수히 교회를 떠나갔다.
그렇게 1950년 대가 되자, 영국 교회는 본격적으로 붕괴했다. 주일 학교에서 신앙 교육을 받지 않고 자란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되자, 교회는 더욱 외면 받았다. 젊은층을 거의 찾아볼 수 없고, 노년층만 있는 모습이 영국 교회의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다. 오늘날 영국인들은 주일 학교를 종교 세뇌 교육을 하는 곳으로 여긴다.
▲ 주일 학교의 창시자라고 불리는 로버트 레이크스의 동상(글로스터)
▲ 동상 하단부의 모습
– 주일 학교 운동이 시작된 지 210주년을 기념해 동상을 세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현재, 영국 교인들은 교회에 노인분들만 계신다는 사실을 가장 안타깝게 여긴다. 이번에 만난 어떤 성도분은 연세가 예순이 넘으셨는데도 여전히 막내뻘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교회에 너무 노인만 있으니, 어쩌다 젊은 사람이 교회에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결국에는 안 나오는 것 같다고 말씀하시면서 안타까워하셨다.
이러한 영국 교회의 역사는 한국 교회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한국 교회도 주일 학교가 거의 30 년째 침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몇 백만 명 정도 믿고 있어서 미약하게나마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이 상태가 2, 30년 동안 계속 된다면 한국 교회도 결국 영국 교회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안타깝게도 지금 당장 도움이 되는 장년이나 청년층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당장의 교회 운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주일 학교에 많은 재원을 투입하려는 교회는 거의 없다. 이러한 현실은 한국 교회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른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어렸을 때 신앙 교육을 잘 받으면, 잠시 방황하더라도 생각이 깊어지는 청년이나 장년 때 교회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때, 주일 학교에서 배웠던 내용이 다시 떠오르면서 이해가 되고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린다.
나도 어렸을 때 교회를 다니다가 고등학교 2학년 무렵부터 나가지 않았다. 그러다 군복무를 하게 되었는데, 밤에 초소를 지키며 많은 생각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일 학교 때 배웠던 내용들이 떠올랐다. 그 가르침이 내 마음과 생각을 움직여서 다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결국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개혁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시기가 찾아올 때, 주일 학교에서 배운 내용이 없으면 더 심하게 세상으로 나아간다. 그러면 교회를 섬길 청·장년층이 줄어들게 되고, 청·장년층이 줄어들면 눈앞의 일도 감당하기 버거워져서 주일 학교 운영은 더 어려워지게 된다. 결국 더 많은 청·장년층을 세상에 내주게 되고, 교회는 그만큼 주님의 일을 감당할 힘이 없어지는 악순환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 레이크스가 처음으로 주일 학교를 운영했던 세인트 메리 교회
▲ 로버트 레이크스 생가
– 안타깝게도 술집으로 변해 있다.
이런 악순환을 없애지 못하면 교회는 결국 무너진다. 그러니 당장의 성과나 부흥 여부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순전히 씨를 뿌리는 종의 심정으로 주일 학교를 잘 운영해야 한다. 또한, 각계각층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 이 일을 상대적으로 소홀히 했던 영국 교회가 걸어간 길을 한국 교회도 그대로 따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금 영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가 이슬람교라고 한다. 이번에 가서 살펴보니 어땠나, 정말로 그렇던가?
– 이번에 영국 탐방을 하면서 가장 가슴 아팠던 점은, 누구도 영국 기독교 신자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어보는 사람마다 모두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다들 대략적으로 알고 있지만 너무 초라한 숫자라서 그렇게 답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슬람교를 믿는 이들에게 영국의 이슬람교도가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면, 180만 명 정도 된다는 답을 들을 수 있다. 사실, 5천만 명 가량 되는 영국 인구와 비교해보면, 180만 명은 그렇게 많다고 할 수는 없다. 모르긴 해도 영국 개신교인이 아직 200~300만 명 정도는 될 테니, 크게 늘었다고 해도 이슬람교 인구는 여전히 기독교 인구에 못 미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슬람교도는 교세가 어느 정도 되는지 기꺼이 말을 하고, 기독교인은 그렇게 하지 못한다. 그만큼 이슬람교는 교세가 크게 늘고 있고, 기독교는 쇠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영국에 거주하는 이슬람교도를 만나고 싶다면, 런던 동부 지역으로 가면 된다. 이슬람교인들은 특정한 구역이나 거리에 정착해서 이슬람 지역을 만드는 특징이 있는데, 런던 동부 지역이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서는 기도 시간을 알리는 이슬람 음악이 흘러나오고, 히잡을 쓴 여성이 자연스럽게 거리를 활보할 정도로 이슬람 색채가 짙다.
그런데 이 지역은 원래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가 빈민을 구제하면서 복음을 전했던 곳이다. 그랬던 곳이 이슬람 이민자가 급격하게 늘면서부터는 런던에서 가장 큰 이슬람교 사원이 있는 이슬람교 중심지가 되고 만 것이다.
▲ 윌리엄 부스의 화이트 채플 맞은 편
– 커다란 이슬람 사원이 들어서 있다.
▲ 런던 동부, 화이트 채플 맞은 편 거리의 모습
– 히잡 등의 이슬람 용품을 파는 가게가 영업 중이다.
거리에서 포교하는 이슬람교도와 직접 대화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들과 대화해보니 어땠나?
–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였다. 런던 중심가를 걷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유인물을 열심히 나누어주는 이슬람교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런던 외곽 지역이라면 모를까, 중심가에서는 흔하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마도 성탄절을 앞두고 작심하고 나온 듯했다.
나는 영국의 이슬람교도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서 이맘에게 다가가 물어보았다. 그런데 옆에 있던 건설 노동자로 보이는 이슬람교도가 내 질문을 아주 기분 나쁘게 받아들였다. 그는 대체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느냐고 하면서 대뜸 어떤 종교를 믿는지 물었다.
기독교인이라고 답하자, 예수가 왜 신의 아들이 아닌 일반 선지자인지를 쉼 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나도 지지 않고 그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때, 나와 함께 있었던 네덜란드 교우분께서 “그러면 근처 카페로 가서 이 문제를 놓고 한번 이야기해보자.”라고 제안했다. 그래서 그들과 토론 아닌 토론을 하게 되었다.
▲ 이슬람 교도가 배포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내용의 유인물
토론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났다. 이슬람교 쪽에서는 자기 종교의 정당성을 확립할 목적으로 삼위일체 교리의 신비를 집요하게 파고 들었다. 이들은 양쪽 다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라는 사실에 기꺼이 동의하자, 어떻게 한 분 하나님께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세 위격으로 존재하실 수 있는지를 설명해보라고 했다.
즉, 삼위일체 교리는 삼신론이며, 진정으로 하나님 한 분만을 믿는다면 이슬람교를 믿어야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전략적으로 펼쳤다. 또한,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성경에 나온다고 하면서 신은 오직 경배를 받는 대상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기독교의 핵심인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두 본성 교리를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였다.
토론이 진행되면서 그들의 목표와 의도를 파악했지만, 짧은 영어로는 극히 미묘한 기독교의 핵심 교리를 충분하게 설명할 수가 없었다. 어찌어찌 설명해준다고 해도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도 못하고, 받아들이지도 않을 게 뻔했다. 그래서 토론은 갈수록 양쪽이 자기 입장을 되풀이 하는 평행선 긋기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이번 토론에서 유익한 부분도 있었다. 이슬람교의 포교 전략을 직접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치밀하게 전략을 세워서 거리로 나왔지만, 나는 그들을 상대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한참 뒤에야 비로소 그들이 어떤 말을 하는지 파악하고 조금씩 대응해나갈 수 있었다.
이처럼, 한국 교회는 말로는 이슬람교를 주의해야 한다고 하지만, 이슬람교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며 행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는다. 그래서 신자 대부분이 이슬람교를 그냥 막연하게 거부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나만 해도, 이슬람교도를 직접 상대해보기 전까지는 그들이 무엇을 믿는지,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받아들이지 않는지를 잘 알지 못했다.
이단들을 상대하는 방식도 마찬가지이다. 교리가 실종된 한국 교회는, 이단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헛된 지를 신자들에게 가르쳐서 신자 스스로 이단을 멀리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저 이단이라니까 귀를 닫고 멀리하는 것 외에 신자들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단들이 무엇을 믿는지, 어떤 전략으로 움직이는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아는 신자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한국 교회는 속히 정통 교리와 함께 이단들의 활동 전략을 가르쳐서 신자가 스스로 이단을 분별하고 멀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을 다녀와보니 어떤가? 무엇이 마음에 가장 크게 남았는가?
–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 전체적으로 참 좋았다. 적은 수였지만 개혁신앙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들과 함께 따뜻한 교제도 했고, 우리 신앙 선배들의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그들의 신앙과 삶이 어땠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은 참으로 유익했다. 하지만 너무도 아쉬웠던 것은, 그 영국 기독교가 빈사 일보 직전의 상황에 처해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참된 신앙의 열심과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영국 기독교 역사를 보면, 다소 차갑고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극단적 칼빈주의의 악영향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다. 입만 살아있고 무책임한 그들의 모습에 질린 이들이 살아있는 경건을 추구하자며 감리교를 출범시켰지만, 그 결실은 정통 교리와 신앙의 포기로 나타났다. 나아가, 현대 기독교에 큰 해악을 끼친 오순절주의도 웨슬리의 감리교 영향을 많이 받았다.
▲ 휫필드가 수만 명의 사람들에게 힘껏 복음을 전했던 해넘 언덕
그러니 개혁주의 신앙을 추구하는 우리는, 더욱 소명 의식을 가지고 아는 바를 실천하는 데 열심을 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영혼을 건지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에 더 뜨겁게 불타 올라야 할 것 같다. 이번 탐방을 하면서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았던 생각은, 올바른 교리적 토대 위에서 아는 바를 힘껏 실천해야겠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가짐이 가장 유익한 부분이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을 생각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는가?
– 가장 중요한 부분은 기도이다. 꼭 기도로 준비하고 가야 한다. 또한, 배경 지식을 충분하게 쌓아두어야 한다. 성경을 많이 읽고 『천로역정』도 읽으면서 로이드 존스, 스펄전, 휫필드 같은 인물의 전기와 저서를 최대한 많이 읽고 가야 한다. 개혁주의 유적지 탐방은 일반 관광처럼 안내자가 있지 않기 때문에, 본인이 최대한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탐방하는 의미가 없어진다.
그다음으로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은 일정이다. 최소한 2주에서 3주 정도는 잡고, 짧은 시간 안에 너무 많은 곳을 돌아보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영국에 처음 가는 사람이 하루에 너무 많은 곳을 돌아보려고 하면, 거의 길 찾다 돌아오게 될 수도 있다. 개혁주의 유적지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곳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 시간에 한 대 오는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시골 지역으로 가는 일이 종종 있으니, 가능하면 하루에 한 두 곳 정도를 탐방하는 게 좋다.
겨울에는 가능하면 가지 않기를 바란다. 영국은 겨울에 해가 빨리 져서 오후 4시 30분 정도만 되면 완전히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시차도 적응해야 하니, 한 2~3일 정도는 비교적 찾아가기 쉬운 런던의 명소로 가기를 바란다. 아무리 개혁주의 유적지 탐방이라고 해도 현실적으로 두 번 가기는 어려운 게 사실인데, 런던 아이(London Eye) 정도는 타보고 한국에 돌아가는 편이 좋지 않겠나?
런던의 물가는 살인적이라고 할 만큼 높은 편이니, 예산도 최대한 넉넉하게 잡아야 한다. 나는 비수기인 겨울에 출발했고 지인 집에 열흘 정도 머무르면서 비용을 많이 아꼈는데도, 3주 동안 머무는 데 들어간 돈이 상당했다. 그러니 영국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적게 잡아도 250~300만원 정도는 사용할 생각을 하고 오시는 게 좋다. 주일에 참석할 교회도 미리 정해놓고, 이동 시간에 읽을 책도 몇 권 마련해가는 편이 좋다.
▲ 런던 아이(London Eye)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템스 강 관람차의 모습
▲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에 찍은 성만 청년의 모습(템스 강, 타워 브릿지)
마지막으로, 이런 탐방이 신앙의 성숙에 반드시 필요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꼭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누구는 이런 탐방을 통해 신앙이 더 성숙할 수도 있고, 누구는 다녀오지 않았는데도 신앙이 더 많이 성숙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녀오도록 허락해주시면 감사하면서 돌아보며 신앙의 유익을 얻으면 되고, 상황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방식으로 성화에 힘쓰면 된다. 이런 일을 놓고 자기와 다른 사람의 처지를 비교하면서 시험에 빠지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내가 영국 유적지 탐방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하나님께서 내게 베푸신 개인적인 은혜와 섭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영국에서 1년 동안 어학 연수를 한 적이 있어서 기본적인 의사 소통에 문제가 없었고, 현지 사정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영국 이곳저곳을 혼자 잘 돌아다닐 수 있었다. 다행히 경제적인 여유도 어느 정도 허락해주셨고, 직장도 연말에 한가해지는 특성이 있어서 그것을 선하게 활용한 것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유적지는 유적지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밝히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그리스도인이 모두 그 일에 더욱 힘 썼으면 좋겠다.
※ 지금까지 「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를 읽어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신앙에 유익이 되는 글이었기를 바라며, 다음에는 더 좋은 글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시리즈
영국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 (3) 조지 뮬러 유적지 탐방, 탐방을 마무리하면서 하고 싶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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