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전쟁 진단3」 전쟁 범죄 처벌의 의미와 신앙적 대응 방법
김재호
▲ 역사상 처음으로 전쟁 범죄 재판이 이루어진 뉘른베르크 재판소의 모습
전쟁 범죄는 제대로 이해하고 현실에 적용하기가 무척 까다로운 개념이다. 왜냐하면 전쟁이란 본래 나라와 민족이 존망(存亡)을 놓고 승부를 가리는 것이어서, 평상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참혹하고 끔찍한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런 전쟁터에서 행해지는 수많은 끔찍한 일 가운데 특정한 일만 따로 범죄로 규정하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만약 가능하다고 한다면 누가 그 일을 해야 하는가? 또한, 규정된 죄를 범한 이들을 어떻게 처벌해야 하는가? 이런 문제가 선결(先決)되지 않는다면, 전쟁 범죄라는 개념은 결국 아무런 실체가 없는 공상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만다.
그런데 현대 사회는 분명히 전쟁 범죄를 규정하고 죄를 지은 이들을 처벌하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문제들은 누가 어떤 방식으로 풀어낸 것일까? 또한, 그리스도인은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해야 올바른 것일까? 지금부터 그 부분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1. 전쟁 범죄의 개념과 역사
전쟁 범죄는 국제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의된다. 그러므로 전쟁 범죄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우선 국제법의 본질이 무엇인지부터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한다. 흔히 일반 사람들은 국제법이 국내법과 똑같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국제법과 국내법은 그 본질과 속성이 서로 상당히 다르다.
국내법은 정부라는 권력 기관을 통해 만들어지고(입법), 집행되며(사법), 그 두 가지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일을 수행(행정)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그러나 국제법은 국가 사이에 맺은 약속, 즉 조약을 통해 토대와 체계가 갖추어지고(입법), 국가 간 협력으로 집행되며(사법),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부분을 서로 분담(행정)하는 방식으로 기능한다.
이처럼, 국내법은 이미 확립된 국가 권력을 바탕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상당히 강한 구속력을 갖는다. 그러나 국제법은 다수의 국가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생기는 세력 균형을 바탕으로 기능하기 때문에, 그 구속력이 국내법보다 현저하게 떨어진다.
예를 들면,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 국가 공권력에 의해 체포되어 감옥에 가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만, 상호 방위 조약을 맺어 놓고서 자국을 돕지 않은 동맹국을 처벌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런 일은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정말 압도적인 국력을 보유하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다시 말해, 국제법과 그 법에 따라 유지되는 오늘날의 국제 질서는 근본적으로 막강한 국력을 갖추고 있는 강대국의 필요와 사정에 따라 만들어지고 조정되는 것이다. 약소국들이 그 법체계와 질서에 순응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그렇게 함으로써 국가 안보와 경제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국제법의 본질은 국제 사회가 악을 징벌하고 온 누리에 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기보다는, 강대국이 시끄러운 해외 정세를 자국의 입장에 맞게 잘 관리하여 다른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로 인해 피해를 받는 일을 최대한 줄이려는 쪽에 더 가깝다. 약소국도 마찬가지이다.
약소국도 그런 강대국의 바람을 들어주면서 강대국으로부터 자국 안보와 경제상의 이득을 얻는 일종의 거래를 한다. 그러므로 국제법이란 결국 자국 이익이라는 국제 사회의 공통적인 관심사가 만들어낸 하나의 상호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국제 사회가 전쟁터에서 일어나는 특정한 일을 범죄로 규정하고, 그런 일을 벌인 사람을 형사 처벌하자고 합의한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근대 시대 들어 천부인권(天賦人權) 사상이 보편 사상으로 자리 잡으면서부터, 유럽에서는 아무리 전쟁이라고 해도 사람을 마구 죽이고 학대하는 일이 합당하지 않다는 문화적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더욱이 과학 혁명으로 무기 혁신이 이루어져 대규모 살상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 되자, 국제 사회는 전쟁의 방식과 양상을 통제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공유하게 되었다.
그런 시대 흐름 속에서 국제 사회는 1864년에서 1949년까지 제네바에서 회의를 열어서 어떻게 전시(戰時)의 상병자(傷病者), 민간인, 포로 등을 보호할 것인지를 의논하고, 결국 ‘적십자 조약’이라고도 불리는 「제네바 4개 협약」을 체결하였다.1또한, 1907년에 헤이그에서 열린 평화 회의에서는 각국이 전쟁을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 수행할지를 규정한 「헤이그 육전 법규」를 채택하였다.2
이 두 협약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국제 사회가 포로 살해, 독가스 사용, 무분별한 약탈, 인종 청소(제노사이드), 문화재 파괴, 민간인 살해, 고문, 노예 노동, 강제 징집, 불법 추방 등의 행위를 저지른 사람을 전쟁 범죄자로 규정하고 그들을 형사 처벌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3그리고 그때 확립된 전쟁 범죄 개념은 국제 관습법으로 굳어져서, 오늘날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은 일을 저지르면 전 세계가 그 사람을 국제법에 따라 형사 처벌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 적용되는 전쟁 범죄 개념의 토대를 제공한 이 두 협약에는 사실, 전쟁 범죄를 저지른 이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묻고 처벌하겠다는 내용이 없다. 단지, 「헤이그 육전 법규」는 국가적 차원의 손해배상 의무를 규정하고, 「제네바 협약」은 대화 해결을 예정할 따름이었다.4그러니 전쟁 범죄를 방지할 의무를 다하지 않은 지휘관에게 ‘미필적 고의’를 적용하여 함께 책임을 묻고 처벌하는 후대의 전쟁 범죄 개념도 당연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5
하지만 국제 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때 너무도 끔찍하고 처참한 일을 계획하고 벌인 독일, 일본 전범(戰犯)에게 반드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 되어 있었다. 그래서 죄형법정주의6에 어긋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국제 사회는 그들에게 형사적인 책임을 묻고 벌을 주었다. 이 사실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첫 번째는, 국제법의 본질이 강대국의 안정적인 해외정세 관리 장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국제법과 국내법이 얼마나 다른지에 관한 것이다.
확립된 국가 권력 위에서 기능하는 국내법에는 권력자가 전권(專權)을 휘두르는 것을 막는 죄형법정주의라는 견제 장치가 꼭 필요하다. 하지만 강대국의 견제와 협력으로 생겨나는 세력 균형을 바탕으로 기능하는 국제법에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을 염려할 필요가 거의 없다. 국제법이 법으로 성립되고 기능하려면, 우선 강대국의 치열한 견제와 다툼을 거친 뒤에 상호 합의가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국제법에서는 죄형법정주의가 국내법에서만큼 절대적인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그 뒤, 국제 사회는 베트남 전쟁과 같은 민족 분쟁의 교훈을 반영하여 「제네바 협약 제1, 2 추가 의정서」를 작성하여 채택하였다.7 그리고 1990년대에 일어난 구 유고 분쟁을 심리하고, 분쟁하는 동안 발생한 전쟁 범죄를 처벌하기 위해 유고 국제형사재판소(ICTY)라는 국제 법정을 설치했다.
또한, 르완다 분쟁 때 일어난 전쟁 범죄를 조사하고, 죄를 저지른 이를 처벌하기 위해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ICTR)도 설치하여 운영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2002년에는 국제적인 형사 재판을 전담하는 국제 법정인 국제형사재판소(ICC)가 출범하여 운영되고 있다.
이처럼, 국제 사회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전 세계적으로’ 근절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각종 국제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세계 질서를 자국 중심의 가치관에 맞게 세우고 유지하려는 강대국의 외교 전략이 깔려 있지만 말이다.
2. 전쟁 범죄 처벌의 의의와 문제점
전쟁 중에 심각하게 반(反)인륜적인 일을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을 법정에 세워 처벌하는 일 자체를 나쁘게 생각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추진하는 이들이 갖고 있는 궁극적인 목표와 이상(理想)에는 문제점이 많다. 그들은 그러한 초국가적인 처벌을 통해, 전 세계에서 행해지는 반인륜적인 일들을 ‘청산’하고, ‘법의 지배’를 확립하여 ‘전쟁을 근절’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활동하기 때문이다.8
이들이 갖고 있는 이상주의적인 현실 인식과 목표는 거의 재앙에 가깝다. 왜냐하면 역사는 인류가 이상주의에 치우쳐서 사람의 본성이 어떠하다는 사실을 망각했을 때, 어떤 참혹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이미 너무도 분명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근대인들은 자연주의 과학 혁명이 일어나자 곧 이상 사회가 도래하리라는 환상에 사로잡혔다. 이전에는 해결할 수 없을 것으로 여겨졌던 수많은 난제들이 과학 기술 혁신으로 너무도 쉽게 해결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연주의 과학 체계 안에는 사람 본연의 존귀함과 도덕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토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주목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렇게 모두가 꿈에 부풀어 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대량 살상 무기가 개발되어 나타나자, 세상은 큰 충격을 받고 혼란에 빠졌다. 인류를 한없이 번성하게 해주리라고 기대했던 바로 그 과학 기술이 전 인류를 한순간에 파괴해버릴 듯한 무시무시한 모습을 하고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과학 기술 발전을 위해 사람이 실험 재료처럼 소비되는 일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전 세계는 경악했다. 그렇게 인류는 악의 문제에 둔감한 과학 만능주의가 무엇이었는지를 너무도 비싼 값을 치르고 배웠다.
또한, 근대인들은 공산 혁명에 큰 희망을 품었다. 변증법적 유물론, 즉 진화론적 무신론 체계인 공산주의는 ‘만민 평등’이라는 고귀한 가치를 앞세워 빠르게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 이상에 매료된 이들이 곳곳에서 공산 혁명을 일으켜서 공산 독재 정권을 수립하고, 모두가 똑같이 잘 사는 이상 사회가 도래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러나 공산주의 사상 체계 안에는 인격적인 자유를 갈망하는 인간 본성이 제대로 평가되고 인정받을 만한 토대가 없었다. 그 결과, 공산 정권이 들어선 나라마다 전 인민의 생각과 행동을 당국이 통제하여 전 인민을 노예화하는 비극이 일어나고 말았다.
즉, 원래 기대와는 전혀 다르게 억압, 감시, 가난, 착취가 일상화한 나라, ‘평등한’ 인민은 자기보다 ‘더 평등한’ 당국자를 떠받들어 모셔야 할 ‘의무’를 억지로 짊어진 지상 지옥을 건설하고 말았던 것이다. 인민들이 뼈저린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수천만 명이 목숨을 잃고, 당국에 대항할 만한 모든 수단과 권리를 박탈당한 뒤였다.9
그런데 전쟁 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하여 온 누리에 ‘법치’를 확립하고 전쟁을 뿌리 뽑자고 하는 이들의 신념에서도 이와 똑같은 문제점이 나타난다. 이들은 ‘팔이 안으로 굽게 마련’인 사람의 기본적인 본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국가 이기주의의 발로(發露)’로 몰아세우는 길로 나아간다.
이런 주장은 국가 간 세력 균형에 뿌리를 두는 국제법의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에, 일면 그럴듯하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 실제로 연합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일 정부에 전범 처벌을 맡겼지만, 독일 정부는 그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않았다.10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을 재판한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동경 재판도 ‘승자의 재판’이라는 비판이 항상 따라다닌다.
이는 연합국의 드레스덴 공습이나 히로시마, 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로 인해서도 엄청난 민간인 사상자가 나왔지만, 연합국은 기소와 처벌의 대상에서 제외되었기 때문이다. 그것뿐만 아니라, 생체 실험을 한 일본군 장교는 실험 결과를 미국에 넘겨주고 기소와 처벌을 면하기도 했다.11그 밖에도 나치스에 협력한 이들은 아직도 기소되어 처벌을 받고 있지만, 수천만 명을 학살한 스탈린이나 마오쩌둥에게 협력한 이들을 전쟁 범죄로 기소해 처벌하는 일은 없다.
이처럼 민족 국가가 자국 이익을 위해 세계 무대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이상, 이상주의자들이 목표로 하는 완전한 ‘법치 확립’이나 ‘전쟁 근절’은 이룰 수 없는 공허한 꿈과 같다. 그래서 그들은 현재의 민족 국가 형태에서 하루빨리 벗어나, 모두 하나 된 세계 시민과 세계 정부를 건설하는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하고 있다.12
다시 말해, 그들에게 전통적인 민족 국가와 애국애족 개념은 하루빨리 개혁되어야 할 구습(舊習)과 같다. 그들에게는 그 개념을 혁파하고 세계 정부를 세우는 일이 전쟁과 온갖 끔찍한 일이 반복되는 것을 막는 참으로 선한 행위이다. 반면, 세계 질서를 계속 지금처럼 유지하는 일은 국가 이기주의와 타협하여 세상에서 온갖 끔찍한 일이 계속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행위와 같다.
그러므로 그들이 말하는 ‘법치’가 확립된 세계 정부 국가에서는 민족적 자주성과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만한 토대가 존재할 수 없다. 오히려 그것을 강조하며 애국심을 고취하는 행위는 심각한 반체제 내란 선동에 해당하게 된다. 나아가, 세계 정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너와 나’를 구분하고, 자기와 가까운 사람 위주로 생각하며 팔이 안으로 굽는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게 하는 ‘예방’ 교육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행할 것이다.
그런 일은 자기만을 위하는 지극히 악하고 추한 것이라는 사상을 마음속 깊이 새겨놓으려고 할 것이다. 또한, 그런데도 ‘엇나간’ 이들을 색출하고 처벌하기 위해 상당한 수준의 물리력을 동원할 것이며, 인류 평화와 공존을 위협한 죄를 아주 강력하게 물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사람의 본성이 바뀌지는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은 점차 자기 민족과 나라가 세계정부주의자들의 볼모와 노예로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깨달아갈 것이다. 억지로 팔이 뒤로 꺾이는 것 같은 고통스러운 상황을 겪으면서 심령이 깨어날 것이다. 그들 중 일부는 결국 자기 나라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전면적인 투쟁에 돌입할 것이며, 그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는 세계 정부군과 독립군 사이에 치열한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세계 정부는 감시, 처벌, 세뇌 교육의 수위를 한층 더 끌어올릴 것이며, 그로 인해 더 많은 이들이 독립 투쟁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이다. 그러다 결국 세계 정부는 공산 세력 붕괴와 같은 대붕괴를 일으키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로 인해 세상은 엄청난 혼란과 고통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갈 것이며, 망가진 사회 기반을 정비하고 복구하는 데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게 될 것이다.
‘법치 확립’과 ‘전쟁 근절’을 위한 ‘세계 정부 수립’이라는 말은 얼핏 들었을 때는 참으로 달콤하게 들린다. 하지만 끝을 잘 헤아려보면, 그곳에는 차마 눈 뜨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하고 끔찍한 광경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세계 정부가 인류에게 줄 수 있는 유익은 그로 인해 일어나게 될 참사에 비하면 너무도 작고 초라하다. 인류는 과학 혁명과 공산 혁명으로부터 얻은 값비싼 교훈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세계 정부 출범은 지옥의 문이 열리는 것과 같으며, 빈대를 잡으려고 초가삼간에 불을 놓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3. 그리스도인과 전쟁 범죄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전쟁 범죄 문제를 다룰 때, 죄로 타락한 이 세상에 절대로 완전함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민족 국가를 해체하고 세계 정부를 세우면 참혹한 전쟁이 사라지고 평화가 정착하는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새빨간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성경은 세계정부주의자들이 문제 삼는 다양한 민족과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가 크게 두 가지라고 가르친다. 첫 번째는, 인류가 하나님을 잊고 자기 이름을 하나님의 자리에까지 높이려고 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다(창 11:4). 두 번째는 온 인류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급격히 자멸의 길로 치닫는 일을 막으시는 하나님의 선한 섭리이다(창 11:6~8).
그래서 이 세상에는 여러 민족과 나라가 서로 다투고 싸우는 일이 항상 있게 되었지만, 전 인류가 일시에 멸망해 사라지는 대참사도 일어나지 않게 되었다. 어떤 민족과 나라는 힘겨루기에서 밀려 지구 위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리지만, 다른 민족과 나라는 연전연승(連戰連勝)을 거두며 승승장구(乘勝長驅)한다.
그런 가운데 거대한 세력을 이룬 나라도 나타나며, 그런 나라끼리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는 가운데 국제 질서는 적절한 균형을 이루게 된다. 그리고 그 세력 균형의 틈 사이로 약소민족과 국가도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며 존립할 수 있는 토대가 생기게 된다.
이처럼 죄로 타락한 이 세상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방식은 악의 근절이 아닌, 악의 지배력을 약화하고 분산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근절하는 일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셨지, 세속 정부의 손에 맡기지 않으셨다.
세계 정부가 심각하게 위험한 또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세계 정부는 본질상 악의 약화가 아닌 근절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세계 정부가 수립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의 근절을 위해 하실 일을 대신 수행하려고 하는 적그리스도적인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다. 그는 분명히 세계 평화와 정의, 인류 번영의 이름으로 그리스도인을 이 땅에서 박멸하려고 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전쟁 범죄 문제를 너무 단순하게 이해하면 안 된다. “아, 반인륜적인 죄를 저지른 그 악질적인 자들은 전 세계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해야 해.”라고 하면서 세계 정부 출범에 힘을 보태면, 결국 그 힘은 그리스도인의 씨를 말리는 쓰나미로 변해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런 악한 일에 조금도 힘을 보태면 안 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전쟁 범죄 처벌에 조금도 협력하고 지지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그렇지는 않다. 그리스도인은 전쟁 범죄 처벌에 충분히 협력해야 한다. 단, 국제 질서가 강대국의 견제와 협력으로 적절한 균형을 유지해가는 가운데 민족 국가의 주권 행사가 충분히 보장되는 범위 안에서 해야 한다(벧전 2:13, 14). 그리스도인이 단호하게 거부하고 저항해야 하는 것은 그 일을 위해 세계 정부를 수립하자는 주장이다.
만약, 국제 사회가 그 길로 나아간다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선포하며 세상의 교만함을 맹렬하게 꾸짖어야 한다. 그리고 그 시도가 좌절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려야 한다. 그렇게 하면서 기본 사회 질서를 해치지 않고, 사람의 기본적인 본성을 거스르지 않는 수단을 사용하면서 세계 정부 수립 반대 활동을 벌여야 한다.
개인적으로 이 일에 가장 적합한 방식은 ‘진실 폭로’라고 생각한다. 많은 이들에게 세계 정부의 실상과 그 일이 가져올 결과가 무엇인지를 밝히 알게 함으로써, 세상이 스스로 그 일을 포기하고 물러서게끔 하는 것이다. 이 방식은 그리스도인이 세상일에 지나치게 깊숙이 관여하지 않으면서도, 세상이 정상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고 본래 자리로 돌아오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무력투쟁과 같은 방식은 자칫 잘못했다가는 정당한 권세를 거슬러 화를 자초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으며, 참여하려면 깊이 관여해야만 하는 특징이 있으므로 가능한 한 지양하는 쪽이 좋다. 개인적으로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꼭 피를 흘려야 한다면,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는 일로 피를 흘리게 되기를 바란다.
어쨌거나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세계정부주의자들의 교활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그들은 평화라는 양의 탈을 쓰고 그리스도인과 교회를 물어뜯으려는 간교한 늑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과 교회는 진리의 칼과 방패를 들고 이러한 악한 세력과 맞붙어 싸워 그들을 물리쳐야 한다.
공산주의와 국가신도주의(國家神道主義) 일본 제국을 패망시킨 힘은 근본적으로 기독교 진리에서 나왔다. 그리스도인은 그 힘으로 세계정부주의자들의 궤계도 쳐서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에는 그런 의미도 담겨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4. 마무리하며
끔찍한 전쟁 범죄를 처벌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을 할 때 이 세상이 완전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망각한다면, 그 일은 가장 끔찍한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차라리 아니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런 일을 하기 전에 이 세상이 어떤 곳이며,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고 계신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 다음, 그 일이 하나님께서 위정자(爲政者)에게 허락하신 정당한 권세를 사용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그 일에 협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선을 넘어서서 스스로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그 일에 조금도 협력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 위정자는 그런 일을 통해 교회를 철저하게 파괴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다야치 카코, 『전쟁 범죄와 법(戰爭犯罪と法)』, 이민효, 김유성 옮김, 연경문화사, 2010, pp. 82, 83.
2 같은 책, pp. 82, 84.
3 같은 책, pp. 85~89.
4 같은 책, p. 88.
5 같은 책, pp. 147~150.
6 권력을 가진 사람이 마음대로 죄를 정하고 처벌하는 일을 막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법정 불문율(不聞律). 죄형법정주의에 따르면, 어떤 사람에게 죄를 묻고 처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죄가 무엇이며 벌이 무엇인지를 법으로 정해놓아야만 한다.
7 같은 책, p. 84.
8 같은 책, p. 13.
9 김용삼,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북앤피플, 2014, p. 14.
10 다야치 카코, 앞의 책, pp. 16~17.
11 다야치 카코, 앞의 책, p. 23.
12 다야치 카코, 앞의 책,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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