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4)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신앙
김재호
「크리스천: “그러한 광경을 바라보면서 당신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무서움에 떨었습니까?
그 사람: “무엇 때문이냐고요?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고 생각했을 때 나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고, 더군다나 가장 무섭고 놀라웠던 것은 천사들이 몇몇 믿음이 훌륭한 자들을 구름 위로 끌어올렸을 때, 나는 그냥 뒤에 남아 있었던 광경이었습니다. 또한 불길을 내뿜는 무시무시한 지옥의 입구가 바로 내 옆에 놓여 있었습니다. 나의 양심도 역시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고 구름 위에 앉아 있던 재판장은 몹시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계속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두려움에 질려 몸을 숨기지도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해석자가 “당신도 일찌기 이런 모든 것들을 신중하게 생각해보셨습니까?”하고 크리스천에게 물었다.
크리스천: “예, 그러나 반성하고 생각할 때마다 나는 희망과 두려움을 번갈아 느끼곤 하였지요.”
해석자: “자, 이제껏 보았던 모든 광경들을 마음에 깊이 명심하여 당신이 이제 떠나야 할 여정 중에 많은 격려와 자극이 될 수 있도록 하시오.”」1
우리 시대만큼 예수님의 재림을 올바르게 생각하고 사모하지 못하는 시대가 또 있을까?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는 현대 교인의 생각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양 극단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의 재림을 까마득한 미래에 있을 ‘어떤’ 사건처럼 받아들이거나, 실제 일어날 사건이 아닌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부류는 신앙의 본질을 망각한 채, 온갖 사건들 속에서 뭔가 놀랍고 극적인 일이 임박했다는 징후를 발굴해내는 데 골몰한다.
참된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오늘의 삶과 동떨어진 어떤 일이나 상징으로 여겨서도, 세상의 온갖 일을 무조건 재림과 연결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재림은 오직, 우리가 믿음과 소망 가운데 행한 모든 것을 실제 상급으로 갚아주리라고 약속하신 주님을 바라보는 맥락에서 접근하고 이해해야 한다. 그리하여 오늘의 삶에서 믿음과 경건을 더욱 굳건히 하는 근거와 계기로 삼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천국을 믿음으로 바라고 소망함으로써 유랑하는 삶에서 오는 고단함에 흔들리지 않았다(히 11:9, 10). 사도 바울도 마지막 날 주님께서 주실 영원한 상급을 바라보면서 온갖 고초를 넉넉히 이겨냈다(빌 3:10~14).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처럼 주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밀려오는 온갖 어려움과 싸워 이겨낼 힘을 얻어야 한다. 성경은 이러한 사실에 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믿음으로 모세는 어른이 되었을 때,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불리는 것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는 것을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였으며,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이집트의 보화보다 더 값진 것으로 여겼으니, 이는 그가 상 주심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히 11:24~26).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니, 주님 곧 의로우신 재판장께서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실 것이다(딤후 4:7, 8).
시험을 참는 사람은 복이 있으니, 이는 연단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신을 사랑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약 1:12).」
또한,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면서 세상의 모든 죄와 악이 멸망하는 최후 심판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재림하시는 날에, 당신이 왕 되는 일을 거부하고 반대한 모든 사람들의 죄를 물을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셨다(눅 19:27). 즉, 그날에는 마음에 하나님을 경외함과 그분의 말씀이 없는 모든 무법자(無法者)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 던져지는 일이 있을 것이다(요 5:42; 8:37; 계 20:12~15).
성도는 그 심판을 생각하면서 자기가 진정 그리스도 안에 있는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에 안주하고 있는지를 경건한 두려움 가운데 진지하게 검증하고 확인해야 한다. 그분을 진노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위험천만한지, 세상 염려와 죄로 인해 영적인 잠에 빠져드는 일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깊이 살펴보면서 자기 상태를 진지하게 평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눅 21:34). 성경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그러나 주님의 날이 도둑같이 올 것이다. 그때에 하늘이 큰 소리를 내며 사라지고 원소들은 불에 타서 풀어지고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일들이 드러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질 것이니, 너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하겠느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고 간절히 사모하여라. 그날에 하늘들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원소들은 불에 녹아 버릴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거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본다(벧후 3:10~13).
너희는 말씀하시는 분을 거역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만일 땅에서 경고한 자를 거역한 그들이 피하지 못하였다면, 하물며 하늘로부터 경고하시는 분을 배척하면 우리가 어찌 피할 수 있겠느냐? 그때에는 그 음성이 땅을 진동시켰지만, 이제는 그분께서 약속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또 한 번 땅뿐만 아니라 하늘까지도 진동시킬 것이다.”라고 하셨다. 이 ‘또 한 번’이라는 말씀은 진동하지 않는 것들을 남아 있게 하시려고 진동하는 것들, 곧 창조된 것들을 옮기실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동하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감사를 드리자. 그리하여 경건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다(히 12:25~29).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으니, 이는 주님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올 것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때에 임신한 여인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르듯이 파멸이 갑자기 그들에게 닥칠 것이니, 그들이 결코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않으므로 그 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이르지 않을 것이니, 너희는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이나 어두움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처럼 잠자지 말고, 오직 깨어서 정신을 차리자(살전 5:1~6).」
예수님의 재림은 성도가 경건한 소망과 두려움 가운데 오늘을 더욱 거룩하게 살게 한다. 그 누구도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모든 것을 ‘실제로’ 결산하신다는 믿음이 없이는, 그 좁고 험한 순례의 길을 끝까지 온전하게 걸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주님의 재림을 뜬구름 잡는 먼 나라 이야기나 실제 사건과는 상관없는 상징적인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결국 영적인 잠에 깊이 빠져 파선하는 날을 맞게 될 것이다. 또한, 그날 자체에만 집중하며 수수께끼 풀듯 하는 이들도 올바른 길에서 이탈하는 일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 재앙이 인생을 삼키기 전,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 때, 주님의 재림을 깊이 생각하고 사망의 잠에서 깨어나도록 하자(벧후 3:9). 주님께서는 그런 잠에서 깨어나 돌이키는 자의 영혼을 끝까지 붙들고 보호해주실 것이다.
각주
1 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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