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9) 경건한 슬픔과 탄식
김재호
▲ 잠시 쉬어 가려고 하다가 깊은 잠에 빠져 두루마리를 잃어버린 크리스천
「그는 탄식하며 말했다. “대낮에 정자에 앉아 잠을 자다니 나는 얼마나 어리석은 인간인가! 더구나 위험과 곤경의 한가운데서 낮잠을 자다니! 순례자들에게 정신적인 위안을 주기 위해 하나님이 세워 놓으신 정자에서 나만의 육체적인 안락을 얻기 위해 잠을 자다니!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니(롬 7:24), 얼마나 많은 발걸음을 헛되이 다녔는가! …(중략)…
나 역시도 그 죄스런 잠만 아니었던들 기쁜 마음으로 걸었을 길을 이토록 슬픔에 잠겨 걸어가야 하다니! 이렇게 되돌아오지 않고 그냥 곧장 걸어갔더라면 지금쯤 얼마나 많이 나아갔을 것인가! 한 번만 걸어도 될 길을 세 번이나 걸어야 하게 되었으니, 벌써 날은 저물어 밤이 가까이 다가오는구나. 아! 그때 잠만 자지 않았던들!” 하고 자신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했다.」1
참 신자는 자기의 못난 점과 불순종하는 일을 절대로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그런 오점(汚點)을 쉽게 용납할 수 없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의 연약함 때문에 슬퍼하고 한탄한다. 크신 은혜를 베풀어주신 분의 영광을 가린 일을 참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려고 하지 않으며, 되려 자기 어리석음과 잘못을 스스로 꾸짖고 책망한다. 나아가, 이런 나 같은 사람도 받아주신 예수님을 더욱 사랑하고 그 은혜를 더욱 귀하게 여기며 굳게 붙든다. 그래서 그의 삶은 갈수록 거룩하고 깨끗해지며, 성경의 가르침과 더 일치하게 된다. 성경은 이런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인이 나를 치더라도 은혜로 여기며, 그가 나를 꾸짖어도 머리의 기름같이 여기고 내 머리가 거절치 않을 것입니다. 참으로 여전히 나는 그들의 재앙 중에도 기도할 것입니다(시 141:5).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기를 시작하여 “나는 그 사람을 모른다.”라고 하자, 곧 닭이 울었다. 베드로가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밖으로 나가 몹시 울었다(마 26:74, 75).
나는 사도들 가운데 가장 작은 자이다.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나는 사도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러나 내가 지금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다. 내게 주신 그분의 은혜가 헛되지 않아,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이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한 것이다(고전 15:9, 10).」
그러나 현대 교회에서는 이런 신자를 찾아보기가 참으로 쉽지 않다. 지나치게 밝고 긍정적이며, 너무 가볍고 아기자기하며 깊이가 없다. 자신의 못난 점을 보면, 그냥 가볍게 기분 전환을 하며 잊어버리는 길로 나아간다. 그렇게 그들은 계속 변명하고 합리화한다. 잘못을 책망하고 꾸짖는 일에 마음이 상하여 화를 내고 불평한다. 나아가, 그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면서 광대놀음을 해줄 사람을 목회자로 세운다.
한편, 그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치우친 사람도 많이 있다. 그들은 지나치게 침울하고 염세적이며, 자신의 못나고 형편없는 점만 집요하게 파고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된 기쁨과 감사와 은혜를 누리는 일을 큰 죄라도 짓는 것처럼 여긴다.
그렇게 못난 점을 계속 붙들고 늘어지면서 자기를 힘껏 괴롭게 하는 것을 참된 경건이며 선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들의 입에서는 경건한 슬픔과 탄식이 아니라 숨이 끊어져 가는 사람의 비통한 곡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래도 그들은 잘못된 경건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성경은 이런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처럼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마라. 기록되기를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서서 뛰놀았다.” 하였다(고전 10:7).
그들은 선견자에게 말하기를 “보지 마라.” 하고, 선지자들에게 말하기를 “바른 것을 우리에게 예언하지 말고, 우리에게 부드럽게 말하고 거짓된 것을 예언하라. 바른길을 버리고 좁은 길에서 벗어나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께서 우리 앞에서 떠나게 하여라.” 한다(사 30:10, 11).
아무도 거짓 겸손과 천사 숭배를 강요하여 너희의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그런 자는 자기가 본 것들을 의지하여 자기 육신의 생각으로 헛되이 교만해져서 머리를 붙들지 않는다. 온몸은 그 머리로부터 마디와 힘줄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아 서로 결합되어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는 대로 자라난다(골 2:18, 19).」
죄 가운데에서 태어나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자유와 기쁨은 신앙의 들숨이며, 경건한 슬픔과 탄식은 날숨과 같다. 숨을 들이켜기만 하거나 내쉬기만 하면서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듯이, 계속 기쁘기만 하거나 슬프기만 한 신앙은 죽은 신앙이다. 참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은혜와 사랑을 먹고 자라나며, 남아있는 결점을 쳐내는 징계의 회초리를 통해 결실한다.
따라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경건한 슬픔과 탄식이 너무 낯설고 멀게 느껴지는 이들은 자기가 정말 예수님을 믿고 있는지 진지하게 점검해봐야 한다. 또한, 자기 잘못과 죄에 사로잡혀서 참된 자유와 기쁨과 해방이 꿈 같은 이야기로 들리는 이들도 정말로 믿음이 있는지 빨리 돌아봐야 한다. 제대로 숨 쉬지 않는 아이에게는 죽음의 그림자가 빠르게 찾아오기 때문이다.
각주
1 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p. 68,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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