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20) 시험과 경성(警醒)
김재호
▲ 사자를 보고 겁을 먹은 크리스천을 경성(警醒)하는 경계(Watchful)의 모습
「그러나 크리스천이 멈추어 선 곳에서 다시 되돌아가려는 듯한 모습을 보게 된 문지기가 – 그의 이름은 경계(警戒, Watchful)이었다 – 크리스천을 향하여 소리를 질렀다.
“당신은 그렇게도 용기가 없으십니까? (막 4:40) 사자들은 사슬에 매여 있으니, 무서워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자들의 신앙을 시험해보고 믿지 않는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서 사자들을 거기에 매어둔 것입니다. 길의 한 가운데로 오시면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안전하게 지나칠 수 있을 것입니다.”」1
성도라고 해서 항상 신앙에 따라 담대하게 행동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안타깝지만, 때로는 현실의 거대한 파도 앞에서 시험에 들어 자기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주춤거리곤 한다. 그러다가 모든 게 끝났다는 깊은 낙심과 절망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그때, 신자의 마음속은 모든 것을 접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버리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해진다. 지금껏 힘써온 일들이 모두 의미가 없으며 인생을 완전히 낭비했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다. 성경은 성도가 거센 시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모습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시몬아, 네가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느냐?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여라. 영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하구나(막 14:37, 38).”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있으면서 성전에서 가르쳤으나 너희가 나를 붙잡지 않았으니, 이는 성경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자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쳤다(막 14:49, 50).
마침 그 날에 그들 가운데 둘이 예루살렘에서 육십 스타디온 떨어져 있는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면서 이 모든 일어난 일들에 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걸어가면서 서로 주고받은 이 말들이 무엇이냐?” 하시니, 그들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멈추어 섰다(눅 24:13, 14, 17).」
세속 문화와 정신에 사로잡힌 현대 교회는, 이렇게 시험에 빠진 이들을 좋은 말로 달래주는 데 여념(餘念)이 없다. 해야 할 말이 있어도 우선 잘 달래고 보듬어주어 기운을 차리게 한 다음에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그들의 머릿속은 ‘상처받고’ 교회를 떠날 이들을 염려하고 배려하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런 현대 교회의 모습과는 정반대로, 하나님께서는 시험에 빠진 이들을 진리로 책망하신다. 그들의 연약함을 한없이 체휼(體恤)하시지만, 시험의 날에 굳게 붙들어야 했었던 진리를 더욱 분명하게 말씀하신다. 그렇게 그들의 믿음 없음을 질책하셔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하신다. 그리하여 다시는 그런 연약함과 어리석음에 휘둘리지 않고 싸워 승리하게 하신다. 성경은 이런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으니, 이는 자신이 살아나신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막 16:14).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 어리석은 자들이여, 선지자들이 말한 이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당하고서 자신의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 하시고, 모세와 모든 선지자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있는 자신에 관한 것을 그들에게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눅 24:25~27).
모든 훈계가 그 당시에는 즐겁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것으로 단련된 자들에게는 의의 화평의 열매를 맺게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어긋나지 않게 하고 고침을 받게 하여라(히 12:11~13).」
시험에 든 성도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은 달콤한 사탕발림이 아니라 진리이다. 감성적인 위로의 말은 잠시 육신적인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는 있으나, 진리가 하는 것처럼 성도를 참으로 일으켜 세우고 다시 넘어지지 않게 하는 참된 능력을 제공해주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부드럽고 달콤한 말로 감성을 잘 보듬어주는 현대 목회자가 아니라 시험에 빠진 성도를 하나님의 큰 위엄과 진리로 책망하던 옛 목회자이다. 참 성도라면, 잔잔한 위로의 말로 마음을 어루만진 다음에 진리 위에 굳게 서게 하겠다는 궤변으로 자기를 합리화하는 현대 목회자들을 멀리해야 한다. 그들은 성도의 영혼을 경성하게 하지 않고, 도리어 깊은 잠에 빠져들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천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 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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