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이념 진단3」 이념을 재는 잣대, 성경적 세계관
신요한
우리나라는 이념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혼란한 상태이다. 우리나라와 반대되는 이념을 좇는 북한의 도발과 전쟁의 위험에 늘 노출되어있고, 설상가상으로 우리나라 안에서 북한의 이념 노선에 동조하고 협력하는 세력도 상당수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우리나라에 대한 반감과 불신을 조장하고,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북한을 감싸고 옹호하는 의식을 심어주려는 선전·선동 활동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선전·선동 활동에 넘어간 이들 대부분이 자신이 어떤 길로 가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이런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대처하지 못하는 이가 너무나도 많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가장 고귀한 지식을 소유한 존재이다. 즉, 장차 주님과 함께 만유의 상속자로서 온 천지 만물을 다스려야 할 자들인 것이다. 심지어 천사도 다스리고 판단해야 할 날이 그리스도인을 기다리고 있다(고전 6:3). 그런데 그런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의 옳고 그른 것을 잘 분별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선전·선동에 넘어가 이념의 꼭두각시 노릇이나 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장차 주님 앞에 섰을 때 그 일이 그들을 얼마나 부끄럽고 수치스럽게 하겠는가?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속이기 어렵고 힘든, 정직하고 올바른 사람으로 인식되어야 정상인 것이다. 실제로 예전에는 세상 사람들 대부분이 그리스도인의 정직함과 성실함을 두려워하여 함부로 얕잡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해서 중요한 직책을 맡기거나, 사업 대상자로 삼는 일도 종종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는 그리스도인을 우습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또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밝히기 부끄러워하는 이들도 아주 많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유는 교회가 사람을 끌어모으려고 세상과 친해지려 한 것이 가장 크다. 세상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교회 안으로 계속 들여놓다 보니, 원래 교회 안에 있던 것들이 다 자리를 내주고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결과, 현대 교회 안에는 카페, 공부방, 문화센터, CCM, 음악회, 공연 등 사람의 기호와 취향을 만족하게 해주는 것은 넘쳐나지만, 교리, 신학, 거룩함, 절제, 자기부인, 주일성수 등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그런 교회의 목양을 받은 교인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본래 특징을 나타내며 살아가겠는가? 세상 사람과 똑같이 거짓말하고 도둑질하며 술 취하여 싸우고 바람피우며 살지 않겠는가? 교회는 교회대로 그런 이들을 감싸기에 급급하게 되지 않겠는가?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세상과 별다를 게 없는 교회에 나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좀 덜 세속적으로 보이는 종교로 계속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처럼 현대 교회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다가, 오히려 사람들의 한숨을 자아내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현대 한국 교회의 이러한 처지는 우리나라 군대가 처한 상황과 상당히 비슷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장병이 사고 없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군 복무를 할 수 있도록 병영 문화 개선이라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실, 이런 사업의 취지는 좋은 것이다. 또한, 기존 병영 문화의 폐단을 어느 정도 바로잡는 일이 실제로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군대 운영의 방점을 강병(强兵) 육성이 아닌 사고(事故) 방지에 찍는 일은, 전체적인 훈련 강도와 군기를 낮추게 되므로 어떤 일이 있어도 지양해야 한다. 훈련 강도와 군기가 낮아지면 그만큼 전투력이 낮아질뿐더러, 기강 해이 및 부주의와 미숙함에서 비롯하는 새로운 종류의 사고도 뒤따르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사고를 막기 위해 또다시 훈련 강도와 군기를 낮추게 되고, 그만큼 또 새로운 사고가 일어나는 악순환이 계속 이어지게 된다.
그래서 한 언론인은 강연에서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으려고 하지 말고, 한 마리를 확실하게 잡는 편이 훨씬 더 낫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등 연달아 일어난 군사고로 인해 국민의 마음이 뒤숭숭할 무렵, 그는 군사고(軍事故)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모든 장병의 실탄 장전 총기 휴대’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휴가 갈 때도 실탄을 장전한 총을 들고 가다가 긴급 상황이 일어났을 때 발사 여부는 자기가 결정합니다. 그러면 총기 사고가 많이 날 것 같죠? 그 총으로 남 쏴 죽이고, 자살. 안 나요. 오히려 안 나요. 총을 딱 손에 들면 정신이 바짝 차려지는 것 아닙니까. 이번 사고도 그랬으면 그렇게 인격적 모독을 못 하죠. 인격적 모독에서 주로 총기 사고가 나는 것 아닙니까. 군인은 군인다워야 사고가 적게 나는 거예요. 안 날 수는 없어요.」1
즉, 군인이면 군인답게 행동하게 하는 것이 부조리를 가장 많이 억제하는 방법이라는 뜻이다. 괜히 부조리에 더 큰 초점을 맞추어 군인답게 행동하기를 타협하고 포기하기 시작하면, 결국 훨씬 더 큰 부조리를 조장하게 된다. 그와 같이 교회가 본래의 자기 역할과 본분에 충실하면, 지금처럼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선전·선동을 구별하지 못하고 동조하는 현상은 분명히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교회와 세상이 서로 손을 맞잡고 있다 보니, 현실은 거의 정반대로 돌아가고 있다. 교회와 세상의 차이가 흐릿해지면서, 이념을 헤아리고 분별할 수 있는 토대도 함께 약해져 버린 것이다. 그 결과, 한국 교회의 교인 상당수가 초자연적 세계를 배제하는 유물론에 기초한 사회주의 이론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정의 사회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믿고 따르는 실로 어이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그런 이념 체계를 따를 수 있느냐고 질문하면, 똑같은 말이 되돌아온다. 그들은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이런 정의롭고 올바른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있느냐?”라고 답하며 어리둥절해 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이룩하고자 하는 그 정의 사회가 실제로는 하나님을 배격하는 가장 불의한 사회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도, 과연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일 수 있을까? 절대로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사회 건설을 지향하고 미화하는 뉴스, 신문, 드라마, 영화, 소설, 만화 등을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보고 즐거워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 마음과 생각 속에는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투쟁’이라는 의식구조가 서서히 자리를 잡는다. 경찰, 검찰, 정부, 국회 모두가 대기업과 기득권 세력에 빌붙어 없는 자들을 착취하면서,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조작을 일삼고 있다는 생각이 점점 기정사실처럼 된다. 그와 함께, 그 모든 일 뒤에는 미국이라는 거대 세력이 자기 배를 불리기 위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식의 음모론이 진짜 역사를 이해하는 진실의 잣대로 급부상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이 자유 대한민국을 물려주려고 많은 눈물과 피땀을 흘렸다는 사실과 정부 기관을 싸잡아 매도하고 대항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의 의식 세계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만다(롬 13:1~7). 그 결과, 그들은 어떤 어려움이 찾아오면 그들의 할아버지·아버지처럼 어떻게 그것을 헤쳐 나갈지를 생각하며 인내하지 못하고, 그 모든 것을 나라와 미국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게 되었다. 분노하고 자조하며 온갖 시위에 앞장서고, 지금의 정치·사회 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라며 목소리를 높이는 일류 선동꾼이 되는 것이다. 부모를 공경하며 권위와 질서를 존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이 말이다.
앞서 말했다시피 이런 일은 근본적으로 교회가 자기 본분과 역할을 저버렸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교회 안으로 들여놓은 온갖 프로그램부터 폐기하고, 교리를 가르치고 기도에 힘쓰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기에 힘써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을 잘 가르치고 실천하면서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영혼을 거룩하고 순결하게 길러내는 일에 전심전력해야 한다. 그런 목양을 받으며 자란 교인들은 참으로 자연스럽게 세상의 이러한 선전·선동 활동을 참으로 보잘것없고 무가치하게 여기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 교회는 성경적 세계관도 잘 가르쳐서, 신자가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도록 지도해주어야 한다. 여기서 성경적 세계관이란 교리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즉, 교리를 삶의 각 영역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가리킨다. 그러한 성경적 세계관이 확립되면 세상의 각종 이념이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을 거스르는지, 또 성경의 가르침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게 된다. 즉, 각종 이념 공세를 지극히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러한 이념 공세에 대해 성경적으로 잘 대응하고 반격할 수 있는 지적인 토대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다음은 이러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영혼을 잠식하는 7가지 사상』이라는 책에서 가져온 한 구절이다.
「크리스천은 사탄이라는 강력한 적과의 끊임없고 웅장한 정신적인 전쟁의 와중에 있다. 이와 같이 굉장한 전쟁의 와중에서 크리스천은 전쟁에 참여하기 위해 무장하도록 부름 받았다. 이는 세계관의 전쟁에 가담하라는 명령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시대를 이해함으로 적을 파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함으로 적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의 사상들이 우상이 되어가는 풍조에 저항할 것을 명령하신다.」2
기독교 세계관과 세속적 세계관은 항상 물러설 수 없는 공방(攻防)을 서로 주고받는다. 예를 들면, 일반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진화론을 가르친다. 또한, 전교조 교사는 ‘참 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생들에게 사회주의를 주입하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이러한 유물론적 사고방식은 기독교 세계관에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반(反)기독교적인 사상이다. 그래서 기독교 세계관으로 사고하는 이들은 과학 영역에서 창조 과학을 전개하거나, 정치 영역에서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 체계를 옹호하는 등의 활동을 하면서 이런 반기독교적인 이념 공세에 적극적으로 맞서곤 한다.
이처럼 기독교 세계관은 참으로 필요하고 좋은 것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도 매우 적을뿐더러, 교리를 가르친다고 해도 대부분 그냥 지식적인 교리만 가르치는 데 그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개혁주의 교리에 탁월한 사람이 꽤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 중에 그 교리를 전적으로 따르고 적용하는 개혁 교회를 개척하고 목양하려는 생각과 의지를 가진 사람은 극히 적다. 대부분 세상과 손잡은 현대 교회 형태를 그냥 그대로 두고, 교리적인 색채를 조금 더한 설교만 하려고 한다. 그러니 그런 교회의 목양을 받은 이들의 세계관이 지극히 세속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세계관의 영향을 받아 정통 교리를 뒤집으려고 하는 주객전도(主客顚倒) 현상이 그들 가운데서 나타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프란시스 쉐퍼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올바른 세계관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개인적인 능력과 집단적인 능력의 범위까지 미칠 수 있을 만큼 삶의 전체적인 영역을 뛰어 넘어서서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세밀한 부분과 단면에서도 사회에 영향을 끼치기 위하여 의식적으로 그 세계관에 입각하여 행동해야 한다.”3라고 했다. 우리가 가르치고 배우는 개혁주의 교리는 삶의 실제 영역에서 분리될 수 없으며, 그리스도인에게는 이 세상 어디에서든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은 교리를 잘 배워야 할 뿐만 아니라, 그 교리를 토대로 깊이 생각하여 온갖 세상 이념의 공세를 잘 막아낼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그래야 온갖 다양한 이념의 공세를 물리치고, 모든 영역에서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아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고, 무엇이든지 경건하고, 무엇이든지 의롭고, 무엇이든지 거룩하고, 무엇이든지 사랑할 만하고,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고, 무슨 덕이나 무슨 칭찬이 있거든 이것들을 생각하여라. 너희는 내 안에서 배우고 받고 듣고 본 이것들을 행하여라. 그러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다(빌 4:8, 9).」
각주
1 조갑제, 국민행동본부 특별강연, 2014.08.06.
2 안토니 T. 셀바지오, 『영혼을 잠식하는 7가지 사상 (7 toxic ideas polluting your mind)』, 최요섭 옮김, 개혁주의신학사(P&R), 2015, p. 27.
3 제임스 몽고메리 보이스, 『로마서 Ⅳ. 새로운 인간성 (Romans Volume IV: the new humanity Romans 12~16)』, 김덕천 옮김, 솔라피데, 2011, p.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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