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옥역정 (The Faller’s Progress)』 해설
김재호
1. 집필 의도
– 멸망으로 향하는 세상 사람의 모습을 압축해 제시함으로써, 신자의 삶에 그러한 악이 파고들지 못하게 경계하도록 권면함(참된 회심과 성화에 초점을 둠).
「따라서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은 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죄인의 사고방식이나 삶의 행동들이 교묘하게 신자들의 삶에 파고드는 것이 있는가를 진지하게 점검하는 데 초점을 두고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내용들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서문 pp. 6~7)
2. 글의 구조
ⅰ. 전체 구조
– 위로부터 임하는 참된 마음의 변화(중생)가 없는 이가 살아가는 모습 vs. 참된 마음의 변화가 있는 이가 살아가는 모습.
ⅱ. 세부 구조
– 세속적 삶(1~5장), 윤리·도덕적 삶(6~10장), 종교적 삶(11~18장)의 형태로 나타나는 참된 마음의 변화가 없는 이의 모습.
– 그러한 이를 심판하는 최후 심판의 공의로움, 천성을 향해 나아가는 참된 신자의 모습과 상급(19~20장)
3. 주제별 해설
ⅰ. 세속적 삶
① 주제: 거듭나지 않은 이들의 마음이 자연스레 좇는 것(성향)과 그 결실(악).
② 해설: 세상 사람은 누구나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레 ‘자기 영광’을 기뻐하면서 추구한다. 하나님이 아닌 자기에게로 쏠려있는 타락한 마음의 ‘성향’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면서 내 맘대로 사는 삶’을 좋아하게 만든다. 세상 사람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에 목말라 하고, ‘우선’ (하나님께서 무어라고 말씀하시는지, 또 그 일로 인해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신경 쓰지 않고) 추구하고 본다. 그 결과,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온갖 정욕, 탐심, 횡포, 거짓말, 착취, 술수 등이 난무하게 되며, 그러한 악이 그들이 그토록 사랑한 ‘자기 영광’을 무너뜨리기까지 끊임없이 일어난다.
③ 적용: 그리스도인은 자기 마음을 항상 ‘하나님의 영광’에 두어야 하며, 그리함으로써 세속적인 사람들이 맺는 악한 결실을 피하는 데 힘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악한 결실이 결국 세속적인 삶을 무너뜨리고 마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하려는 좋은 마음을 무너뜨리고 사로잡아 결국 믿음에서 파선하게 하고 만다(마 13:18~23; 고전 10장).
「사실 저는 이 마을 밖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무엇에 의지했다가 큰 낭패를 보고, 결국 황금의 도시에 이르지 못한 사람들을 꽤나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생님은 어떤 시련이 와도 선생님을 굳게 믿으셔야 합니다. 그러면 결국에는 선생님이 원하는 바를 얻으시게 될 것입니다.」 (1장. 죄인이 멸망의 성읍에서 여정을 시작하다. p. 20)
ⅱ. 윤리·도덕적 삶
① 주제: 세속적인 삶이 결국은 파멸을 불러온다는 사실을 ‘머리’로(피상적으로) 이해한 이들이 걷게 되는 길.
② 해설: 세속적인 삶이 사실상 무법한 삶과 같다면, 윤리·도덕적 삶은 나름대로 법을 지키고 사람으로서 해야 할 도리를 연구하면서 살아가려는 사람들의 삶을 말한다. 이들은 세속적 삶을 사는 사람들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기는 한다. 그러나 마음의 근본 성향이 여전히 ‘자기 영광’에 쏠려있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
그러므로 이들의 삶에도 세속적인 삶을 사는 이들에게서 맺히는 악이 별 어려움 없이 결실한다. 겉모습은 선하게 변했지만, 속사람은 여전히 더럽고 추악한 포장의 달인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얄팍한 지혜로 자기와 이 세상을 잘 개선해서(실제로는 포장해서) 완전해지려는 망상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세속적인 삶을 살아가는 이들처럼 자기 상태의 심각함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자신이 만든 그럴싸한 가면 뒤에 숨겨진 악이 그 고고해 보이는 삶을 무너뜨리기까지 말이다.
③ 적용: 그리스도인은 항상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 경외함을 자기 지혜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잠 9:10). 그렇게 속사람을 깨끗하게 함으로써 겉사람도 깨끗하게 해야 한다(마 23:25~28). 이 순서를 거꾸로 가져가면, 그 마지막 역시도 파선하는 일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죄인은 처음으로 그동안 인문학의 마을에서 쌓아온 자신의 명예와 부가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고, 자기 자신까지 그토록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는 사람이 만들어낸 학문들을 굳게 믿고 나가자는 이 이야기들이 얼마나 황당무계한 이야기이며, 그 마지막에는 가면이 벗겨지며 로마의 본 얼굴이 드러날 때, 사람들이 겪을 절망과 배신감과 고통이 얼마나 클지를 생각하니, 비로소 어마어마한 두려움이 몰려왔다.」 (9장. 죄인이 인문학의 한계와 정체를 깨닫다. p. 142)
ⅲ. 종교적 삶
① 주제: 이 세상에서 큰 실패를 겪었거나, 자기 한계 앞에서 좌절한 이들이 주로 가게 되는 삶의 길.
② 해설: 이들의 삶은 정말로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찾으려는 삶이 아니다. 단지, 자기 실패와 고통을 해결해 줄 ‘초월적인 그 무엇’을 간절히 찾는 것이거나, 종교심을 따라 자기 열정을 신적인 경지로 승화하려는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 마음의 중심은 여전히 자기 자신에게 쏠려있다. 이들의 타락한 종교적 열정은 직통 계시로 대표되는 신비주의, 형식을 생명처럼 붙드는 율법주의, 권위로 사람의 양심을 짓누르는 권위주의, 자기 열정에 취하는 나르시시즘 등의 거짓 종교를 만들어낸다.
더불어 이러한 ‘자력 구원 종교’는 참된 교회 안으로도 끊임없이 파고들어, 수없는 거짓 신자를 양산해낸다(마 13:24~30). 이들에게는 참된 자기 부인이 그 심령에 존재하지 않으며, 일반적인 종교심을 동원하여 그럴듯한 경건의 모양을 갖추어간다(딤후 3:5). 그래서 이들에게는 참된 은혜에 의한 자연스럽고 인격적인 자기 부인과 감사 및 ‘지속적으로’ 죄와 싸우고 돌이키려는 ‘선한 의지’가 나타나지 않는다. 야고보 사도는 그런 이에게 행위로 자기의 믿음을 보이라고 도전하며 책망하기도 했다(약 2:18).
③ 적용: 그리스도인은 항상 은혜를 힘입어 감사함 가운데 자기를 낮추고 부인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은혜에 힘입어 옛사람과 온 힘을 다해 싸워 이겨내야 한다. 그럴 ‘의지(마음의 근본 성향 변화로 말미암는)’가 없는 이는, 그가 전에 무슨 일을 했거나 어떤 기적을 일으켰다고 해도 여전히 그리스도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는 죄인일 뿐이다.
「그의 마음은 매우 잘 갈아엎어진 밭이라고 할 수 있다. 성령님의 감화 속에서 그의 마음의 악함은 잠시 힘을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튕겨내지 않고 기쁨으로 잘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밭에서 파릇파릇한 말씀의 새싹들과 함께 잠시 고개를 수그리고 있었던 가시덤불도 다시 고개를 내미는 것이 보였고, 그 가시덤불은 곧 크게 자라나 하늘을 가려 새싹들을 전부 다 말라죽게 해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18장. 청교도의 마을에 들어간 죄인이 성경이 말하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눈으로 보게 되다. p. 247)
ⅳ. 최후 심판
① 주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지 않는 모든 이에게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
② 해설: 하나님께서는 끝까지 회개할 줄 모르는 이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바가 무엇인지 온 세상에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참된 사랑과 은혜를 멸시하고 끝끝내 자기 죄를 더 사랑한 이들의 어리석음과 망령됨을 지옥의 형벌로 다스리신다. 이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준으로 이루어지는 완전한 공의의 심판이므로, 단 하나의 오점(汚點)도 용납되지 않는다.
즉, 예수 그리스도보다 조금이라도 덜 의롭게 산 사람은 모두 다 사망의 형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자기의 무익함을 알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믿고 그분께로 피한 자만이 면할 수 있다. 이 최후 심판의 날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대적한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파멸이 임박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만큼의 압도적인 권세와 능력과 지혜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계 6:14~17).
③ 적용: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심판의 날을 마음에 품음으로써, 결국 불에 타 사라질 이 세상 것들을 향한 애착에서 돌아서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생애의 모든 일에서 경건 하고 거룩하게 살아가도록 힘써야 한다(벧후 3:10~13).
「내가 보니, 그 영원한 불 못에는 모든 두려움을 내어 쫓는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지 못한 자들과, 기록된 말씀을 인격적으로 받아 믿지 않은 이들과, 이웃에게 폐를 줌으로써 자기의 유익을 삼고 그 낙을 누리는 모든 이들과, 마음에 미움을 품고 악으로 악을 갚는 모든 자들, 또 정욕을 따라 자기의 육체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과, 귀신을 따라 앞날을 예견하던 모든 사람들과, 탐심을 따라 자기를 사랑하는 삶을 살았던 이들과, 거짓말하는 모든 자들이 던져져, 마귀와 짐승과 거짓 선지자와 더불어 꺼지지 않는 불과 유황으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으며, 그렇게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어떤 일말의 개선의 여지라도 미약하게나마 보여준 이를 단 한 명도 볼 수 없었다.」 (19장. 심판대 앞에 선 죄인이 자신을 청교도이며, 걸었던 길이 정말 아주 약간 달랐을 뿐이라고 주장하다. p. 255)
ⅴ. 거듭난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
① 주제: 진리를 따라 전 인격적인 변화가 일어난 사람이 걷는 길.
② 해설: 하나님께서 그저 멋대로 살아가던 죄인의 마음을 성령으로 감화하시면, 타락한 사람 마음의 성향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하심에 쏠리게 된다. 이를 가리켜 ‘좁은 의미의 중생(거듭남)’이라고 부른다. 이는 단회적이고 결정적이며 사람의 인격을 초월하여 발생하므로, 사람이 이 일에 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설명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참으로 사랑하게 되면 언제, 어떻게, 왜 내 마음이 그 사람에게로 쏠려가게 되었는지 정확히 설명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성령님께서는 그렇게 사람과 상의하지 않으시고, 홀로 주권적인 권능으로 사람의 심령을 하나님께로 돌려놓으신다. 그리고 그런 일이 정말로 사람의 심령 안에서 일어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과 자기의 한없는 볼품 없음으로 인해 괴로워하고 애통해 하면서 끝없이 하나님을 찾는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 끝에, 사람은 비로소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참 평안과 자유를 맛보고 자기 인격으로 그분을 붙들고 의뢰하는 일이 생애 처음으로 일어나게 된다. 이를 가리켜 ‘넓은 의미의 중생(회심)’이라고 부른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홀로 행하신 그 일이 우리 인격 안에서 결실하는 것이기에, 앞서 말한 것과는 다르게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무엇 때문에 그리하게 되었는지 회고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나아가, 그러한 인격적 경험의 신실성을 객관적으로 검증하고 시험하여 확증하는 일까지도 가능하다. 그러나 이 일은 개인의 인격 안에서 일어나는 일이므로, 개인의 기질, 나이, 교육 수준, 성별, 육체적 건강 등의 자연적인 요소에 따라 우리가 미처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형태와 강도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심의 문제를 다룰 때 각별히 주의하고 조심해야 하며, 특히 자기를 기준으로 삼아 모든 것을 포괄할 수 있는 특정한 기준을 세우려고 해서는 안 된다. 또한, 그러한 일이 아직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는 이를 무턱대고 정죄하며 멀리하는 일에 무척 주의해야 한다. 그러한 일이 아직 없거나 미약한 경우, 건전한 경고 또는 책망과 함께 더욱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아가라고 권면하며 기도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은 다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의지하는 일 안에서만 유익하고 의미가 있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회심은 반복될 수 없으나, 회심할 때 그 사람의 인격 안에 분명히 자리매김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더욱 새롭게 하고 그리스도의 은혜로 더 깊이 나아가 그분의 약속을 더욱 굳게 붙드는 일은 반복해서 일어난다. 이러한 일은 특히 성도가 자기 연약함을 뉘우치고 회개할 때 일어난다. 그래서 회개는 성도의 성화를 이루는 주요 재료가 된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회심한 이는(조금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모두 다) 참된 경건이 무엇인지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사모하며, 의지적으로 그 도(道)를 행하는 3요소가 인격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서로 돕는다. 이는 회심이 그의 인격 안에서 결실하는 것이기에 나타나는 불가피한 현상이다.
진정으로 회심한 성도는 여전한 부족함 속에서도 회개를 반복하기에(좀 더 정확히 말하면 ‘할 수밖에 없기에’), 그의 인격에서는 점점 성령의 9가지 열매가 결실하게 된다. 그러나 그와 같은 일을 가능하게 한 마음의 근본 성향 변화는 여전히 설명할 수 없어서, 생각하면 할수록 계속 신비한 일로 남는다. 그래서 성도는 그 일에 관하여는 모든 영광과 감사로써 하나님을 높이고 찬송하는 것 이상을 하지 못한다.
③ 적용: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인격적인 회심과 반복되는 회개의 경험, 그리고 그러한 일을 따라 우리 인격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실제적인 결실이 있는가를 잘 돌아봐야 한다. 이러한 일은 신앙의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라, 기독 신앙의 핵심이자 근본이기 때문이다.
「’죄인의 괴수 된 이들에게 이토록 변함없이 넘치는 은혜와 사랑이 그들의 악행으로 인해 비참함에 버려졌던 그들을 그토록 변화시켜, 자기의 생명을 빼앗는 원수를 거짓없이 사랑하고 용서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어찌 사람의 힘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란 말인가? 마땅히 행해야 하는 도리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죄인들로 하여금, 그 도리를 한참 능가하여 남음이 있는 일까지도 참 마음으로 자원하여 행하게 만드는 이 소식이 어찌 하늘로부터 전해진 것이 아닐 수가 있겠는가?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만드는 능력을 주는 이 기쁜 소식이야말로 그들의 말대로 참으로 하나님께서 세상에 주시는 가장 귀한 선물이다.’ 저는 그렇게 결론을 내고 집으로 돌아와, 우리 죄로 인해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과 원수 된 우리를 위해, 당신의 귀중한 생명을 기꺼이 내어주신 예수를 나의 주와 구주로 믿고 남은 생을 그분께 내어드렸습니다.」 (20장. 새 예루살렘에서 성결이 지난날을 회고하다. pp. 276, 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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