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리델 전기, 『영광을 위하여(For the Glory)』
– 선한 경주를 훌륭하게 마친 하나님의 사람을 기리는 심심한 헌사 –
이지현
개봉한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불의 전차(Chariots of Fire, 1982)」라는 유명한 영화가 있다. 이 영화는 1924년 파리 올림픽에 참가한 영국 남자 육상 대표팀의 일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이 영화를 볼 때, 교회를 다니는 분들은 주일 성수를 위해 주 종목인 100m 경기를 포기하고 400m 경기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딴 에릭 리델을 눈여겨볼 것이다.
이 영화는 끝 무렵에 다음과 같은 짤막한 문구로, 리델이 올림픽 이후에 어떻게 살다 죽었는지를 알려준다.
「에릭 리델, 제2차 세계대전 말에 피점령국 중국에서 선교사로 죽다. 온 스코틀랜드가 애도하다.」
영화만 보면, 그냥 ‘리델이라는 훌륭한 그리스도인 청년 한 명이 있었구나.’라고만 생각하기 쉽다. 또는, 주변의 비난과 압박에 굴하지 않고 주일 성수를 잘해서 하나님께 복 받은 사람 정도로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리델의 신앙과 용기에 감탄하며 그를 칭찬하지만, 전반적인 삶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왜 중국 선교사로 헌신했는지, 그곳에서 어떤 사역을 하다가 순교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면, 그가 모든 성도들에게서 존경받는 참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심지어 그는 선교지였던 중국 산둥성 지역에서도 존경을 받는다. 오래전에 공산주의 국가가 되었지만, 그의 선교지에는 그를 기리는 기념물이 계속 세워져 있다.
도대체 에릭 리델은 어떤 그리스도인이었기에 이렇게 존경받는 것일까? 놀랍게도, 이 질문에 대해 미국의 저명한 스포츠 기자가 구체적으로 답을 해준다. 던컨 해밀턴은 『영광을 위하여』라는 전기(傳記)를 통해 에릭 리델의 생애를 생생하고 유려하게 그려낸다. 그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약 3년 동안 자료를 수집하고, 관련 인물을 취재했다고 한다.
이 전기는 지나친 과장이 없고, 글의 흐름이 유려하여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여느 신앙 전기와는 다소 색다른 분위기와 전개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책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은데, 책 표지를 보는 순간 잔디 육상경기장을 떠올릴 수 있다.
책 표지를 넘기면, 저자가 리델이 마지막으로 경주했던 장소에 방문해 리델 기념비에 헌화하는 과정을 마치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여주듯이 서술한 ‘들어가는 말’을 볼 수 있다. 저자의 여정에 함께한 듯한 느낌을 뒤로하고 책장을 넘기면, 총 3부로 이루어진 에릭 리델의 생애가 입체적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다.
각 부에는 ‘더 빠르게’, ‘더 높게’, ‘더 강하게’라는 제목이 붙어 있다. 이 제목만 보면 3부 모두 리델의 뛰어난 육상 실력을 말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영화로 만들어진 리델의 올림픽에 관한 일화는 1부에서 거의 다 다루어진다. 2, 3부는 리델의 선교 사역을 다루는데 2부는 선교 사역 초반부와 중반부를, 3부는 사역 후반부와 생애 마지막 부분을 자세히 다룬다.
물론, 2부와 3부에는 그의 탁월한 육상 실력이 어떤 식으로 빛을 발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도 나온다. 저자는 그런 식으로 탁월한 육상 선수이자 훌륭한 그리스도인이었던 에릭 리델의 두 모습을 한꺼번에 보여준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는 ‘맺음말’에, 리델의 세 딸과 지인들을 방문해서 리델이 죽은 후에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상세하게 듣고 알려준다. 그런 다음, 저자는 리델의 삶을 추모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처럼 용기 있는 삶은 길이가 아니라 가치로 평가되어야 한다. 그런 삶들은 우리에게도 어떻게든 더 나은 삶을 살도록 감화를 주는데, 리델의 경우는 그가 매사에 사심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그의 모든 친절한 행위는 타인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많이 받은’ 자들은 마땅히 ‘도로 많이’ 주되 불평 없이 그래야 한다고 그는 철석같이 믿었다.
이에 충실하여 그는 자신의 거창한 행복이나 큰 안락을 구한 적이 없다. 가치 있는 직무와 가족의 부양 등 꼭 중요한 일만 추구했을 뿐이다. 물론 한때 – 그 무덥던 7월의 오후에 파리에서 – 올림픽 우승을 추구한 적도 있지만, 우승하면서도 그는 금메달의 영광이 자신의 세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았다.
(중략)… 그의 대답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겸손이다. 그는 단호히 선교사의 직분을 달리기보다 훨씬 우위에 두면서 질문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저것보다 사람의 일생에 훨씬 더 중요합니다.” 지당한 말이다. 그러나 이 말을 그토록 진정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가장 잠잠한 영혼인 에릭 헨리 리델뿐이다.」
저자는 「불의 전차」를 통해 에릭 리델을 알게 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책을 쓴 듯하다. 곳곳에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문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그리스도인 독자는 이 책에 세속적인 면이 있다며 언짢아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전기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유익을 준다.
먼저, 에릭 리델의 두 모습-그리스도인이자 육상선수-을 전체적으로 조화롭게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리스도인은 극단적 경건주의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 영적인 일이 육체적인 일보다 우선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육체의 은사를 무시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영적 은사와 육체의 은사를 다 주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일’을 하느냐 보다는 ‘어떤 일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는 게 중요하다. 리델은 그 사실을 잘 알았기에 올림픽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땄지만, 동시에 기꺼이 세상의 영광을 버리고 중국 선교사로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는 리델의 모습은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도전을 준다. 리델은 훗날 저명한 스포츠 기자가 많은 수고를 하여 그의 전기를 써서 그를 추모할 정도로 훌륭한 신앙 인격과 풍성한 신앙의 열매를 갖고 있었다.
그는 자기 아버지가 그러했던 것처럼, 중국인을 자기 민족처럼 사랑해서 가장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중국인을 섬겼다. 끔찍한 수용소에 갇혀서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부지런히 사랑하며 섬겼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삶을 통해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그는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하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 12:24).”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그의 삶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 하나님을 위해 살다가 순교한 성도들의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이 전기에는 리델 뿐만 아니라 다른 중국 선교사들이 순교한 이야기도 함께 나온다.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선교지로 왔건만, 그들이 맞닥뜨려야 했던 상황은 몹시 위험하고 힘겨웠다.
그것뿐만 아니라, 선교회 본부의 행정 처리는 믿음이 약한 사람이라면 시험에 들 만큼 지혜롭지 못했다. 그러나 리델과 순교한 동료 선교사들은 그 사망의 골짜기 안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기고 인내했다. 비록 비참하게 죽더라도, 선하신 하나님을 굳게 믿고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유족도 그런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잘 이겨냈다. 결국, 그들 모두는 선한 경주를 잘 마치고 하나님 품에 안겼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다 읽었을 때, 다음의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경기장에서 달리기하는 자들이 모두 달리지만, 상을 받는 자는 오직 하나뿐이라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상을 받을 수 있도록 달려라. 경기에 참가하는 자는 누구나 모든 일에 절제한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으려 절제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을 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고전 9:24~25)」
생각해 볼수록, 에릭 리델의 생애는 이 성경 구절을 자세하게 설명해주는 주석과 같았다. 리델은 좋은 코치를 만나 훈련을 잘 받고 올림픽에 출전할 만한 실력을 쌓았다. 또한, 올림픽 기간에도 방심하지 않고 관리를 잘해서 금메달을 따냈다.
선교 사역을 할 때도, 오랫동안 기도하고 준비하여 선교사로 나갔다. 기도와 말씀으로 항상 무장하여 사역을 잘 감당했으며, 최악의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했다. 결국, 그는 보이지 않는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되었다.
책을 덮으면서, 그림자 끝도 따라가지 못하겠지만, 에릭 리델처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헌신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경에서 말하는 ‘선한 경주’가 무엇인지 궁금한 분들께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또한, 에릭 리델에게 관심 있는 불신자 이웃이 있다면, 이 책을 전도용 선물로 주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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