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6) ‘대각성’의 싹이 트다 -하-
김재호
1. 국제적인 신앙의 협력과 긴장
에드워즈는 이미 1731년 보스턴 설교를 통해, 칼빈주의 교리 수호와 참된 회심을 공통 분모로 하는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 상태였다.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였던 솔로몬 스토다드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건전한 화합은, 부흥의 불길이 한 지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지역에까지 활발하게 퍼져나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불꽃이 이미 타오르던 지역에서는 그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화합은 단순히 미국 지역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본국이었던 영국에서도 같은 뜻을 품고 있었던 칼빈주의자들이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그리하여 이 운동은 에드워즈, 윌리엄스 가문, 벤저민 콜먼, 윌리엄 쿠퍼, 아이작 와츠, 토머스 프린스, 조나단 벨처 등으로 대표되는 국제적인 성격을 띤 교류·협력 모임으로 발전하였다.1
이 협력 모임으로 인해, 칼빈주의 부흥을 확산하고 진작(振作)하는 데 유익하다고 여겨지는 상대방의 설교와 신앙 도서가 각자의 지역에서 빠르고 광범위하게 퍼져나갈 수 있었다. 실제로 에드워즈의 보스턴 설교는 동부 매사추세츠 목사들의 주도로 보스턴에서 출판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미국 지역의 평신도 모임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기도에 관한 교범은 영국에서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아이작 와츠의 저서였다.2
그뿐만이 아니었다. 노샘프턴에서 시작된 부흥의 불길이 코네티컷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동부 매사추세츠의 벤저민 콜먼은 에드워즈에게 그 실상을 자세하게 알려달라고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에드워즈는 종이를 깨알 같은 글씨로 촘촘하게 채워서 답변서를 보내주었는데, 그 답변서가 바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놀라운 회심 이야기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이다. 벤저민 콜먼은 그 답변서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아서, 동료 목사에게도 그 편지를 읽게 하였다.
더불어 런던의 존 가이즈 목사에게도 그 편지를 보내주었고, 존 가이즈 목사는 그 편지를 다시 아이작 와츠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와츠는 에드워즈의 편지를 반드시 출판하여서 여러 사람이 읽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발 벗고 나섰다. 그리하여 에드워즈의 부흥 이야기 완본은 미국이 아닌 오히려 영국 런던에서 가장 먼저 출판되었고, 그 책은 스코틀랜드와 영국 부흥을 크게 고무하는 역할을 감당했다.3
그러나 이러한 교류·협력 모임이었다고 해서, 모든 일이 조금의 의견 불일치도 없이 완전한 화평 가운데 덕스럽게 이루어졌을 것으로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근본 교리와 추구하는 바는 같더라도, 그 교리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세부적으로 더 우선하고 어떤 상황과 처지를 더 고려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이견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사람의 연약함은 그런 불일치를 더욱 심화하여 다툼으로까지 번지게 할 수도 있다. 심지어 바울과 바나바에게서조차 그러한 모습이 발견된다(행 15:36~41). 그러나 그러한 갈등은 결국 다시 복음으로 인해 봉합되게 마련이다. 바울과 마가 사이도 그러했고 매더 부자(父子), 솔로몬 스토다드, 벤저민 콜먼이 그러했듯이 에드워즈와 윌리엄 쿠퍼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 보스턴 복음주의의 주역이자, 영국 본토와 연결고리 역할을 한 벤저민 콜먼
대각성의 싹이 한창 올라오던 1734년 여름에, 로버트 브레크 안수 문제로 불거진 아르미니우스주의 논쟁은 이 국제적인 교류·협력 모임에 일시적인 긴장을 가져왔다. 로버트 브레크는 회중주의 교회 정치 노선을 따르는 동부 매사추세츠 출신이었다. 하지만 목회자 청빙은 장로회주의를 채택한 서부 매사추세츠 스프링필드에서 받았다. 브레크가 청빙을 받자, 그가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가르침을 가르쳤다는 이의 제기가 햄프셔 목회자 협의회에 이내 제소되었고, 목회자 협의회는 그 문제에 즉시 개입하여 그 청빙을 제지하였다.
그러자 브레크는 자신이 스프링필드에서 사역을 감당하기에 부적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자기 연고지인 동부 매사추세츠의 유력 인사들을 끌어들였다. 그렇게 자신의 무고함을 지지해줄 발판을 마련한 뒤에, 다시 스프링필드로 돌아와서 자신의 교리와 인격에 대해 해당 지역의 목사 여덟 명에게도 검증을 받았다. 그러자 스프링필드 교회는 문제가 충분히 해결되었다고 여겼고, 안수 위원회를 조직하여 브레크를 담임 목회자로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햄프셔 목회자 협의회는 이 문제에 다시 한 번 개입하였다. 목회자 협의회는 브레크 안수를 위해 동부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온 목회자들에게, 과연 그가 목회자로서 적합한지 검증하는 청문회를 열자고 제안하였다. 그 제의는 받아들여졌고 청문회는 하루 반 정도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청문회 둘째 날, 햄프셔 카운티의 장관과 치안판사들이 청문회장에 난입하여, 브레크를 무신론과 신성모독에 대한 죄목으로 체포해가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4
이는 스토다드가 국가도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가르치면서, 정계 고관들과 계속 적극적으로 교류하며 두터운 친분을 쌓아왔기에 가능했던 권력 남용의 대표적인 사례였다. 서부 매사추세츠 지역의 주요 인물들은 그렇게 정치권력을 사적으로 동원해서라도, 브레크가 스프링필드의 목회자가 되는 일을 기꺼이 막고자 했던 것이다. 그리고 아르미니우스의 이단 사상을 막아내기 위해서 그와 같이 행동하는 일은, 스토다드 체제 아래서라면 지극히 정당한 책임 이행이나 의무 수행과 같이 여겨질 수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견해가 동부 매사추세츠 지역에서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에 있었다. 교회의 통일성과 보편성을 유지하기 위해, 지역 교회보다 상위에 있는 기관이 지역 교회 문제에 개입하고 권한을 행사하여 교회를 관리하는 장로회주의 방식을 회중주의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스프링필드 교회 회중이 충분한 의견 수렴과 자체 검증까지 거쳐 결정한 사항을 목회자 협의회가 개입하여 제지한 것이야말로, 독재 권력의 횡포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례이자 심히 부당한 간섭이었다. 그래서 아르미니우스주의에 똑같이 반대하는 보스턴 복음주의자들은 브레크의 결점에 대해 상당히 우려하면서도, 기꺼이 그의 해명을 받아주고 가능한 그를 감싸주는 일에 참여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일어난 납치에 가까운 브레크 체포 사건은 불에 기름을 부은 꼴이 되고 말았다. 그로 인해 보스턴 신문들에는 연일 햄프셔 협의회를 향한 비난과 조소로 도배되다시피 했고, 이 사건은 한동안 미국 전역을 시끌시끌하게 하였다.
에드워즈는 익명으로 이러한 비난과 반대에 대한 답변서(Defence)를 작성하였고, 그 답변서는 에드워즈의 매형인 새뮤얼 홉킨스의 논쟁 이야기(Narrative)와 하나의 책으로 엮여서 1736년에 출간되었다. 그 답변서의 핵심은 아르미니우스주의로부터 교회를 보호하려는 햄프셔 협의회의 활동이 지극히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에드워즈는 햄프셔 협의회가 절대로 독재 권력을 휘두르지 않았고, 오히려 동부 매사추세츠 지역 목사들이야말로 자기 영역 밖의 문제에 불필요하게 끼어들어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자기모순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그러자 보스턴 복음주의자들은 윌리엄 쿠퍼를 통해 역시 익명으로 그 답변서에 대한 반박서를 출간하였고, 에드워즈가 그 반박서에 대한 재반박서를 출판함으로써 길고 치열했던 긴장과 논쟁은 결국 마침표를 찍었다.5
쿠퍼가 제시한 에드워즈의 답변서에 대한 반박의 핵심은 서부 지역의 권력 사유화 현상을 파고들면서, 신랄한 풍자를 통해 그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에드워즈는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들을 그런 방식으로 조소하고 깎아내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적절하지 못하며, 그런 조롱으로 인해 상처가 난 그리스도인 사이의 화합을 회복하게 하라는 것으로 맞섰다.6
그러나 이 모든 소동에도 불구하고 서부 매사추세츠 지역의 뜻은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에드워즈의 답변서가 출간되던 1736년 초에, 브레크는 정식으로 스프링필드의 담임 목회자로 위임을 받았다. 이는 매사추세츠 주 의회가 햄프셔 치안판사의 권력 남용을 힐책하면서 안수 위원회의 적법성을 인정해주었기에, 햄프셔 협의회로서는 더는 어찌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7 스토다드가 영혼 구원의 열심으로 교회와 국가의 경계선을 지워버린 그 일이 제대로 역기능을 발휘한 셈이었다. 그리고 이는 약 10여 년 뒤에 에드워즈에게 닥쳐올 큰 재난을 미리 보여주는 거울과도 같았다.
비록 날카로운 언쟁을 주고받은 데다 서부 지역은 반드시 이루려고 했던 본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음에도, 놀랍게도 양 매사추세츠 사이의 화합은 깨지지 않았다. 가시 돋친 언쟁이 오가는 중에서도 동부의 벤저민 콜먼은 다양한 형태의 『놀라운 회심 이야기』 출판을 그대로 진행했다. 그리고 1738년에 벤저민 콜먼의 후원으로 『놀라운 회심 이야기』가 미국에서 출간되었을 때, 윌리엄 쿠퍼는 기꺼이 서문에 서명하고 그 책을 적극적으로 추천하였다.
▲ 와츠의 적극적인 행동으로 영국 런던에서 가장 먼저 출간된
『놀라운 회심 이야기 (A Faithful Narrative of the Surprising Work of God)』
서서히 이즈리얼 윌리엄스가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윌리엄스 가문도 마찬가지였다. 출간에 발 벗고 앞장섰던 아이작 와츠가 혹시라도 『놀라운 회심 이야기』에 지나친 흥분이나 과장이 섞여 있지는 않은지 염려했을 때, 그 모든 것이 진실함을 보증하는 인증서에 가장 먼저 서명한 사람은 바로 이즈리얼 윌리엄스의 아버지 윌리엄 윌리엄스였다.8 이처럼 이들은 칼빈주의 부흥 운동에는 전적으로 한마음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영혼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그들의 마음은 서로의 부족함과 의견 차이를 넘어서서 계속 협력하고 화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만일 우리 복음주의자들이 믿음을 옹호하며 구원의 방법을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주려 한다면, 우리가 함께 모이게 될 것이라고 오웬은 말합니다. 만일 이것이 우리의 진정한 목적이라면 말입니다.
“반면에 많은 사소한 차이들, 곧 생각과 판단과 실제적으로 나타나는 사소한 차이들이 실제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연합의 본질과 목적과 순전한 열매에서 서로 일치함을 그리스도인들이 적절하게 교육을 받는다면, 분명 그들은 서로 용납하고 서로 사랑 가운데 자신을 낮춤으로써 그 차이들을 극복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혼란을 야기하거나 연합을 깨뜨리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 중 일부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원리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해도, 자신이 고백한 신앙에 충실한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연합을 깨뜨리기보다는 지키는 방향으로 문제가 해결되기를 희망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상 숭배와 핍박이 없는 세상의 모든 교회들 사이에서 오늘날 복음적 연합을 이루지 못하는 진정한 이유는 의견 차이, 계시된 진리에 대한 판단 차이, 또는 성례전의 실행 방법 차이가 아니라 교만과 자기 이익과 명예와 인기, 그리고 정치적, 사회적 세력에 대한 고려를 수반한 지배력 문제이기 때문입니다.”」9
이처럼 참된 복음과 회심을 토대로 하는 건전한 교류·협력 모임이라고 해도, 세부적인 문제들로 인해 얼마든지 불화와 긴장이 일어나고 심화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갈등과 긴장은 거룩한 복음과 영혼의 회심이라는 공동의 고귀한 소망 앞에만 서면 어느새 무대 뒤로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러므로 이러한 모임에서 진정 문제가 될 만한 일은 이러한 표면적인 갈등과 긴장이 아니라, 수면 아래서 보이지 않게 곪아 들어가고 있는 교리적 탈선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리적 탈선의 배후에는 언제나 인간 능력을 낙관하는 인본주의와 실용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참된 부흥의 진작을 위해서 계속 힘을 모으되, 그 안에서 항상 기회와 틈을 노리고 있는 인본주의적 탈선에 대한 경계의 끈을 더욱 바싹 조여야 한다. 이 두 가지를 동시에 잘 감당하려고 해야지, 어느 한쪽만 편향되게 힘을 실어서는 안 된다.
2. 사탄의 맹렬한 반격
사탄이 바보가 아닌 이상, 수많은 영혼이 하나님 나라로 물밀듯 쏟아져 들어가는 일을 그저 손 놓고 바라보고 있을 리가 없다. 부흥의 조짐이 보이자, 사탄은 사람들이 대각성에 대한 편견과 반감을 갖게 하려고 했다. 사탄은 노샘프턴 사람들이 천박한 감각론에 물들어 헛된 공상과 열광에 치우쳐서 광신적인 소요를 일으키고 있다고 사람들을 선동하였다.10 사탄이 대각성을 천박한 감각론의 아류로 몰고 갔던 이유는, 그만큼 에드워즈가 신앙의 경험적이고 정서적인 측면을 강조했기 때문이었다.
이 기간에 행해진 에드워즈의 설교가 어떠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신적이며 영적인 빛 (A Divine Supernatural Light)』라는 설교에서, 그는 회심의 본질을 하나님의 영광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는 영적인 분별력을 갖게 되는 일로 말한다.
에드워즈에 따르면, 하나님께서는 자연적인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방식을 사용하셔서 당신께서 어떤 분이신지 깨닫게 하신다. 다시 말해, 성령님께서 기록된 말씀을 통해 죄로 죽은 영혼을 살려내시면, 사람은 자연적인 이성을 통해 알 수 있는 관념적인 하나님과는 차원이 전혀 다른, 참으로 살아계시며 지극히 거룩하고 영광스러우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깨닫고 알고 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 설교에서 꿀을 연구하여 ‘달다’라는 개념을 가진 사람과 꿀을 직접 맛보고 그 달콤함을 즐거워하는 사람의 예를 들면서 그 차이를 말한다. 결국 에드워즈는 성령님께서 영혼에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빛을 비추어주시면 죄로 어두워져 있던 죄인의 눈이 열려서, 그동안 들어온 말씀이 참으로 진실했음을 깨닫고 이해하여서 ‘즐거워하게’ 된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11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단순한 이론적인 지식과 대비를 이루는 생생하고 전 인격적인 지식을 가능한 대로 강조하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사탄은 그런 에드워즈의 가르침을 육신적인 감각에 몰두하게 하여 사람을 비이성적으로 만드는 뭔가 문제 있는 가르침으로 최대한 오도하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전부터 그러한 광신자들이 실제로 있어 문제를 일으켜왔으므로, 사탄의 선동 전략은 초반에 꽤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그러나 에드워즈의 이 설교에는 지난날 간절히 회심을 추구하면서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기도 하고, 회심의 단계라는 거대한 장벽 앞에서 자기기만을 떠올리면서 낙심하고 절망했던 그의 경험이 고스란히 배어있었다. 에드워즈는 그때마다 자기 경험이 과연 성경과 부합하는지 아닌지를 알기 위해 부단히 성경을 연구하며 분투했었다.
그래서 에드워즈는 단순한 이론적인 지식과 구별되는 체험적이고 전 인격적인 지식을 대비하여 강조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경험이 단순한 열광이나 자기기만은 아닌지 점검하고 분별할 것도 함께 강조하였다. 이를 종합해보면 에드워즈는, 성령의 참된 역사는 성경의 가르침과 일치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인격’에 제공해주므로, 진정 은혜를 받은 사람은 바로 그 지식을 따라 ‘꾸준하고도 일관되게 거룩한 열매’를 맺어가게 되지만, 거짓 영의 역사나 단순한 정서적인 느낌에 도취하는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래서 ‘내적인 빛’이 있으면 심지어 성경도 하찮게 여기는 퀘이커 선교사들이 노샘프턴에서 들려오는 일을 듣고 사람을 얻으려고 왔다가, 며칠 안 되어 그냥 빈손으로 돌아가는 일이 있기도 했다.12 그렇게 에드워즈의 심령 안에서 타오르던 회심의 불꽃이 노샘프턴 전역으로 옮겨붙어 활활 타오르기 시작하자, 결국 사탄의 초기 전략은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샘프턴을 방문한 방문자들이 변화된 노샘프턴 상황에 큰 감명을 받고서, 자발적으로 그 불꽃을 자신이 사는 지역으로 퍼뜨리기 시작한 것이었다.13
그러자 사탄은 전략을 바꾸었다. 사람들의 반감을 부채질하여 우회적으로 부흥의 불길을 차단하려고 했던 것에서, 직접 찬물을 끼얹는 쪽으로 급히 방향을 틀었다. 그리고 사탄의 전략 변경은 제대로 위력을 발휘했다. 그 회심의 일격에 대각성의 불길은 크게 휘청거리면서 차츰 수그러들었다. 그만큼 사탄의 지혜와 권세와 능력은 사람보다 월등하다. 사탄은 놀랍게도 도무지 틈이 없을 것만 같아 보였던 에드워즈가 보인 아주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 빈틈은 바로 에드워즈가 사람들로 하여금 이론적인 지식을 넘어서게 하려고 적극적으로 사용했던 강렬한 대비와 심상(心象, image)에 있었다.
에드워즈는 청중들이 진리에 대해 단순한 관념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을 넘어서서, 정서적이고 의지적인 반응을 보이는 데까지 이르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진리를 사변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전하지 않고, 마치 건축가가 웅장한 집을 짓듯이 생생하고 견고하게 전하였다.
에드워즈는 먼저 성경 구절에서 가장 기초 토대가 되는 교리를 도출하여 청중에게 제시한다. 그렇게 바닥을 단단하게 한 다음, 그 교리 위에 몇 가지 소주제(小主題)라는 굵은 기둥을 올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그 소주제를 다시 세분화하여 지붕과 창문과 문을 만들어 올린다. 그리고 그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오늘의 현실에 적용하면서, 성도들이 장차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권면함으로써 설교를 마무리 짓는다. 그리고 이러한 건축 과정에서 사용되는 주요 건축 자재가 바로 대비와 심상이었다.
에드워즈는 청중들이 선포되는 진리에 관념적인 반응을 넘어 정서적인 반응에까지 이르게 하려고, 청중들에게 이미 친숙한 심상과 은유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본래 의미를 더 강화하곤 했다. 더불어 그러한 반응을 극대화하고 의미를 더욱 명료하게 하려고, 진리와 비진리를 극명하게 대비하는 방법도 종종 사용했다. 이러한 에드워즈의 특징은 부흥의 출발점이 된 젊은 청년의 장례식 설교를 보면 아주 잘 나타난다.14
그러나 이러한 방식을 사용할 때 꼭 주의해야 하는 사실이 하나 있다. 사람의 정서는 고양의 대상임과 동시에, 절제의 대상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우리가 기쁘다고 해서 그 기쁨을 ‘느껴지는 대로’ 마구 표출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기쁨이 과연 우리와 다른 이에게 덕이 될 수 있겠는가? 분명히 얼마 못 가 ‘내가 왜 기뻐하는지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 사람들은 우리를 분명히 ‘미쳤다’고 할 것이다(고전 14:23).
이처럼 사람의 정서는 우선 그 정서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대상이 과연 그러한지 ‘헤아리는’ 건전한 지성의 범주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정말 그러할 경우, 정서를 그에 걸맞은 방식과 정도로 적절하게 표현하여서, 자신과 다른 이의 덕을 세우는 일에 유익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그러자면 고양되는 감정이 적정한 범위 이상으로 넘어가지 않도록, 혹시라도 넘어갔다면 재빨리 원위치로 다시 돌아오게끔 ‘절제’해야 한다. 한없이 무한정 고양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마땅히 단순한 관념적인 수준을 넘어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아는 데까지 이르러야 한다. 또한, 그 정서적 경험을 다시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라는 적절한 ‘지성적인’ 범주를 따라 적절하게 표현할 줄 아는 데에도 이르러야 한다. 이처럼 참된 신앙 감정의 고양과 작용은 이성과 조화를 이루지, 절대로 이성을 넘어서서 홀로 작용하지 않는다.
물론, 에드워즈도 그러한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후자의 중요성을 덜 강조한 부분은 분명히 있었다. 다시 말해, 사탄은 에드워즈가 전자의 중요성을 잘 강조하고 나서, 마무리를 보다 견고하게 가져가지 못한 작은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리고 사탄이 격렬한 영적 전쟁터 한가운데 투입한 이 특수부대는 대각성 기간 내내 부흥의 거센 불길을 차단하는 전진기지 역할을 톡톡하게 감당했다. 그리하여 에드워즈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정서적인 불안, 열광주의, 불필요한 다툼과 분열이 찾아왔을 때, 에드워즈는 부흥을 변호하기 위해 실로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야만 했다.
우리는 보통 정서적으로 친숙했던 어떤 대상이 지니고 있는 전혀 상반된 측면과 너무 급작스럽고도 강렬하게 맞닥뜨리면, 정서적인 충격으로 인한 큰 혼란과 더불어 약간의 정신 이상 증세를 겪곤 한다. 마치 인생의 일상적인 측면만을 보고 살던 한 사람이 전쟁의 참혹함과 급작스럽게 직접 마주하게 되면, 심한 정서적인 충격으로 인해 공황 상태에 빠져 어쩔 줄 몰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정서적인 충격의 후유증은 그 사람이 다시 일상생활로 복귀했을 때도 계속 파장을 만들어내서, 한 사람이 정상적인 생활을 이어가지 못하게 계속 발목을 붙잡곤 한다. 마치 우리가 너무도 감동적인 영화나 꿈에 나타날까 무서운 끔찍한 장면을 보았을 때, 그 여운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며칠간 계속 전달되어 오는 것처럼 말이다.
선천적으로 심성이 굳건하고 낙관적이며 대범한 사람은 그러한 상황을 비교적 쉽게 잘 헤쳐나올 수 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심약한 이들은 그런 상황에 사로잡혀 스스로 헤어나올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 그 생각이 머릿속을 계속 떠나지 않기에 생각하려고 하지 않아도 할 수밖에 없고, 충격을 주었던 특정한 장면이 주는 의미에 깊이 함몰되어 정상적인 사고가 완전히 마비되는 심각한 강박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에드워즈가 사용했던 거의 무제한적인 심상 사용과 극명한 대비는, 아직 은혜 안에 있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에서 이러한 종류의 부작용을 크게 가져올 만큼 꽤 강렬한 것이었다.
조금 더 뒤에 있을 일이기는 하지만, 부흥을 반대하는 세력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에드워즈는 설교 횟수가 지나치게 많고 지성보다는 감정에 호소한다는 반대를 받았다. 이에 대해 에드워즈는 설교에서 지성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말하고 상당히 강조하기는 하나 방점은 마음의 감동에 찍혀있어서, 지금 시대 교인에게는 머리에 지식을 채우는 것보다 마음에 감동을 받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답을 한다.15
더불어 설교의 주된 유익은 설교를 들을 때 마음에 새겨지는 ‘인상’에 있다고 하면서, 설교의 내용을 기억하는 일은 그 자체로 유익하다기보다는 그 일이 마음에 새겨진 인상을 다시 새롭고 강하게 할 때 유익하다고 한다.16 여기서 에드워즈가 말하는 인상이란 사람 본성의 성향에 영향을 주는 성령의 초자연적인 감화를 일컫는 말이다. 에드워즈는 그 중요성을 참으로 잘 인식하면서 강조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감화가 진정 무엇이고 어디를 어떻게 가리키고 있는가를 잘 헤아려서 선한 열매 맺는 일에 사용하려면, 설교의 내용을 잘 파악하고 기억하는 일을 절대로 부수적인 일로 여기면 안 되었다. 오히려 아주 중요한 일로 여겨야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에드워즈가 신앙에서 감정을 아예 배제하려는 당시의 거센 반대에 맞서야 했다는 점은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 하지만 에드워즈의 사역이 전반적으로 마음의 감화 뒤에 꼭 함께 가야 하는 건전한 지성적 작용, 즉 지성으로의 회귀보다는 영적이고 정서적인 영향의 극대화를 조금 더 강조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사실은 에드워즈가 한 사람이 급작스러운 정서 변화로 인해 혼란스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할 때, 사람이 그 고통을 인위적으로 덜어주어서는 안 된다고 한 점과 훗날 노샘프턴 주민들에게 실망하면서 그들의 피상적인 흥분에 속았다고 회고한 점에서도 확인된다.17
그러므로 아직 회심하지 못한 천성적으로 심약한 이들에게서 심각한 강박증과 우울증, 그리고 충동 조절 불가 현상이 발생할 소지가 꽤 있었다. 그리고 크게 위협을 느낀 사탄은 그 작은 빈틈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사탄의 그 강력한 반격이 있었던 뒤로, 대각성 운동은 한동안 예전과 같은 생기를 잃어버리고 말았다.18
「그러나 그의 집안은 심한 우울증 성향이 있었고 그의 어머니도 우울증으로 죽었습니다. 그는 이 비상한 시기가 시작될 때부터 자기 영혼의 상태에 대해 극단적인 관심을 가졌고, 그의 체험에는 아주 희망적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좋은 상태에 대해 아무런 소망도 갖지 못했습니다. 그는 점점 더 낙심했고, 다시 우울증에 완전히 사로잡히게 되어 어떤 조언이나 설득도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정도가 되었습니다. 마귀가 기회를 잡고 절망적인 생각을 하도록 그를 몰아갔습니다.
그는 밤에도 지옥의 공포를 생각하면서 깨어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전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일상적인 업무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후에 검시관은 그의 사인을 정신착란이라고 판정했습니다. 이 소식은 마을 사람들에게 비상한 영향을 미쳤고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후, 우리 마을의 많은 사람이 이 사람처럼 자살하고 싶은 강한 충동에 시달렸습니다.
또한, 우울증이 전혀 없고, 자기 영혼의 좋은 상태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나 어두움이 없고, 또한 영적이나 세상적인 어떤 것에 대해서도 특별한 고민이나 염려가 없던 경건한 사람들도 마치 누군가 그들에게 “네 목을 졸라라. 지금이 좋은 기회다. 지금! 지금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힘을 다해 그런 충동과 싸울 수밖에 없었지만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아무런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19
이처럼 마귀는 아주 조그만 틈만 보여도 그리로 맹렬하게 파고들어서, 사람이 구원받는 일이 일어나지 못하게 사력을 다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방심하지 말고 깨어 있기에 힘쓰면서, 혹시라도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편향적으로 적용하고 있는 부분이 없는지 잘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타락한 사람인 이상, 아무리 힘을 쓴다고 해도 자기 결점을 스스로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니 믿을 만한 신앙의 친구와 목회자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에 조금도 인색해서는 안 된다. 마귀는 이 영적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해, 언제나 우리들의 가장 약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격해오기 때문이다.
각주
1 조지 M. 마즈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6, pp. 218, 222, 227.
2 위의 책, pp. 217, 237.
3 위의 책, pp. 258~261.
4 위의 책, pp. 268~270.
5 위의 책, pp. 270, 271.
6 위의 책, pp. 271~273.
7 위의 책, p. 270.
8 위의 책, pp. 276, 261.
9 마틴 로이드 존스, 『청교도 신앙 그 기원과 계승자들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서문강 옮김, 생명의말씀사, 2006, p. 144.
10 앞의 책, p. 245.
11 위의 책, pp. 238, 239.
12 위의 책, pp. 240, 245.
13 위의 책, p. 246.
14 위의 책, pp. 245, 234~235.
15 조나단 에드워즈, 『균형잡힌 부흥론 (Some thoughts concerning the Revival)』, 양낙흥 옮김, 부흥과개혁사, pp. 216~226.
16 위의 책, pp. 240, 241.
17 앞의 책, pp. 249, 384.
18 조나단 에드워즈, 『놀라운 부흥과 회심 이야기 (A Faithful Narrative)』, 백금산 옮김, 부흥과개혁사, pp. 155, 156.
19 위의 책, pp. 152, 153.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6) ‘대각성’의 싹이 트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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