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5) 영적 전장(戰場)의 최전선에 서다
김재호
1. 노샘프턴의 방종
노샘프턴은 솔로몬 스토다드라는 위대한 목회자가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지역이었음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새롭게 정착할 만한 땅이 점점 줄어들면서 땅을 많이 소유한 대지주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신경전과 파벌 싸움이 잦아졌다. 그로 인해 서로를 향한 원한이 점점 깊어져 갔고 그러다 결국 한 번 큰 사고가 터지고야 말았다. 서로 분쟁하는 가운데 한쪽이 다른 한쪽 대표에게 일방적인 모욕과 구타를 퍼붓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1
그리고 스토다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도시의 감독이 점점 느슨해지자, 젊은이들의 방탕이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노샘프턴의 젊은이들은 주일 밤늦게 파티를 열고 유흥을 즐겼으며, 평일에도 술집을 드나들면서 세속적인 쾌락을 즐겼다. 심지어 그들의 부모조차도 청교도의 교육 방식과 질서가 너무 엄하다면서 반발하기 시작했다.
노샘프턴의 부모들은 서로를 잘 알아야 한다는 핑계로, 젊은 남녀가 편한 옷을 입고 한 이불을 덮고 함께 밤을 지내는 ‘번들링(bundling)’이라는 풍습까지 그냥 묵인해버렸다.2 그 결과, 비교적 혼전 임신이 드물었던 노샘프턴에서 결혼한 지 8개월이 되기 전에 첫 아이를 출산하는 숫자가 열에 하나꼴로 늘어났다. 심지어 혼전 성관계는 아예 보편적인 일처럼 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노샘프턴의 담임 목회자가 된 에드워즈는 마을 사람들을 향한 애정을 품고 인내하면서, 이러한 죄를 조목조목 지적하고 통렬하게 책망하면서 회개하라고 외쳤다. 처음에는 에드워즈를 향한 공개적인 도전과 반발이 많았지만, 주의 깊고 철저하며 솔직하고 성실한 에드워즈의 한결같은 경건함은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점차 바꾸어 놓았다.
스토다드가 소천한 뒤 고작 반년 정도 흐른 시점에, 노샘프턴 사람들이 에드워즈를 무척이나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 같다는 평이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 2~3년 뒤에는 청년들의 죄악이 현저하게 개선되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으며, 다시 그로부터 3년 뒤에는 기성세대의 분열도 종식되는 듯 보이는 상황이 찾아왔다.3 그렇게 에드워즈는 한 지역의 목회자로서 마을 사람의 실제적인 죄악과 부대끼고 인내하면서, 그들을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인도하기 위한 치열한 영적인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젊을 때 방탕하게 살고 정욕에 주도권을 내어 준 사람들은 그들의 자녀들에 대해서도 고삐를 강하게 당기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타락의 길로 들어서면, 더욱 악화되고 더욱 반항하게 마련입니다.” ……. (중략)…….
“스토다드의 목양 아래 살았으면서 노샘프턴을 떠나 지옥으로 가야 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곳, 즉 서인도 제도와 다른 곳들에서 벌어진 죄악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죄와 비교하면 그들의 죄는 절반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4
성도 개개인을 비롯하여 교회 전체에 이르기까지 죄에 대한 경계를 느슨하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특히, 하나님께서 크게 은혜를 내려주실 때 더욱 정신을 차리고 주의해야 한다. 선 줄로 알았을 때 넘어지기 가장 쉬운 이유는, 우리는 본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전적으로 무능한 자들이기 때문이다(고전 10:12; 요 15:5).
그러므로 성도는 올바른 목회자와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실 때 더욱 우리 자신을 쳐서 철저하게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고전 9:27).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잠든 삼손과 같은 위험한 처지에 놓이고 말 것이다.
2. 아르미니우스주의와 보스턴 설교
18세기를 살아가던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후예에게 가장 위협적인 이단 사상은 바로 아르미니우스주의였다. 이는 그 당시 계몽주의가 점점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으므로, 선천적인 인간의 능력을 계발하여 도덕적인 결함이나 오류를 극복할 수 있다는 낙관적인 정서가 사람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져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낙관적인 정서에 휘말리게 되면, 사람들은 아르미니우스주의를 거쳐 점점 이신론(理神論)이나 아리우스주의 같은 더 심각한 이단으로 나아가곤 했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에게 아르미니우스주의를 쫓아내는 일은 거짓의 싹을 일찌감치 잘라내는 일과 같았다.
칼빈주의자는 흠 많은 인간의 노력과 의지로써 절대로 죄를 이겨낼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이 죄에서 진정한 자유를 얻고 일평생 거룩함을 추구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였다. 그러므로 칼빈주의자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전적 무능 교리를 위협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는 참된 경건은 물론이거니와 건전한 도덕과 윤리마저도 붕괴하게 하는 심히 악한 사상이었다.5
그러나 에드워즈는 단순히 아르미니우스주의를 대적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았다. 에드워즈는 성경이라는 계시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공의, 선, 악과 같은 개념을 비롯하여 심지어 하나님에 대한 개념까지도 충분히 자연적으로 정의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 시작한 계몽주의적 낙관주의 자체에 포탄을 퍼부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1730년에 『도전받는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들에 대한 이성적 변론 (A Rational Account of the Main Doctrines of the Christian Religion Attempted)』이라는 논문의 개요를 짜면서, 논문의 목표를 ‘모든 예술과 과학이 완전해질수록 그것들이 어떻게 더 신학이 되는지 보여줌으로써, 신학과 별개로 윤리학을 전개하는 일이 얼마나 비이성적인가를 보여주는 것’으로 삼았다.6
이는 에드워즈가, 그 시대 사람들이 그토록 간절히 갈망하며 찾았던 ‘완전함’이 인간의 위대함과 선천적인 능력에 있지 않고, 오직 무가치한 죄인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그리스도’에게만 존재한다는 진리(골 2:2~5)를 참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더하여 그 진리를 실제로 모든 영역에 ‘합리적으로’ 철저하게 적용했음을 의미한다.
물론, 이러한 사고방식이 에드워즈에게서만 찾아볼 수 있는 유별난 것은 아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기독교 세계 안에서 실로 오래된 것이었다. 기독교는 그런 전통을 가리켜 ‘철학적 신학’ 또는 ‘철학은 신학의 시녀’와 같은 말로써 표현하곤 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의 자연적인 한계와 남아있는 죄의 영향을 충분히 고려한 상태에서 겸손하게 전개되고 검증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성경이 가르치는 구속사적인 틀 안에서 일반적인 지혜와 통찰이 갖는 가치와 한계를 충분하게 미리 가늠한 다음, 철저하게 그 경계선을 넘지 않는 ‘전제 조건’ 안에서만 사용해야 한다. 즉, 합리성의 근거를 철저하게 말씀을 믿고 의지하는 믿음 아래 발견하고 확인해 가면서 그것에 맞추어 사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초월성’이라는 불가해한 영역과 마주할 때 되려 큰 문제를 일으키게 될 수도 있다. 그동안 전개해온 모든 유익한 논의가 도리어 성경의 명백한 가르침을 비합리적이라고 선언하는 정당한 근거로써 악용될 소지가 있다. 더불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보다도 무익한 변론과 논쟁을 좋아하는 쪽으로 사람을 이끌 수도 있으며, 그런 이들이 즐기는 악한 말장난을 상대하느라 괜한 시간 낭비를 하는 바람직하지 못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이처럼, 이러한 사고방식은 양날의 검과 같으므로, 항상 주의하면서 반드시 믿음 안에서 겸손하게 잘 사용해야 한다(벧전 3:15).
그렇게 한창 전투 준비에 열을 올리던 에드워즈는 1731년 7월 8일, 보스턴에서 한 편의 설교를 하게 되었다. 큰 호응 속에 『인간이 하나님을 의존하는 위대한 방식을 통해 구속 사역에서 영광 받으시는 하나님 (God Glorified in the Work of Redemption, by the Greatness of Man’s Dependence upon Him in the Whole of It)』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설교에서, 에드워즈는 인간의 무가치함과 의존성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솔로몬 스토다드와 그의 동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이 자리를 통해, 에드워즈는 단지 자신이 목회하고 있는 한 지역을 넘어서서 국제적인 영적 운동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게 되었다. 그렇게 ‘18세기 복음주의 대부흥’이라고 부르는 시대가 어느새 문 앞에까지 이르러 있었다.
「신앙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에 대한 인식과 깨달음을 포함한다.” 인간의 행위를 인정하지 않을 때 “사람을 낮추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사람들은 자랑할 바가 없다. 그는 저명한 청중을 향하여 결론적으로 말했다. “거룩함에 탁월한 분이 있습니까? 자신에게는 조금도 영광을 돌리지 마십시오. 선한 일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창조하신 놀라운 솜씨를 가지신 분께 그 영광을 돌리십시오.”」7
참된 신앙과 경건은 죄로 인한 인간의 비참함을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하나님 없는 인생의 위대함이 아니라 허망함을 인격적으로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만이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하면서 따를 수 있다. 그러나 타락한 세상은 항상 ‘하나님에게서 독립하는 일’을 꿈꾼다. 그리고 그 헛된 망상에 빠져, 해가 뜨면 말라버릴 것과 같은 극히 일시적인 것들을 즐기면서 영원을 사모하는 자기 마음을 속이려고 든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은 완전함이 없으면 참된 안식을 누리지 못한다. 그리고 그 완전함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 그러므로 인간, 게다가 타락한 죄인인 우리는 우리 불완전함을 직시하면서 자기를 항상 낮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신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를 믿음으로 늘 바라보아야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명한 말처럼, 하나님께서 지으신 우리 마음은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기까지는 쉼을 얻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3. 철저한 헌신과 열심
청교도는 자기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 하나님께서 결산하실 때를 바라보면서 항상 최선을 다했다. 이는 로마교의 ‘성속(聖俗) 이원론’에서 벗어난 종교 개혁의 후예들이 ‘직업 소명’의 가르침을 굳게 믿고 실천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기신 직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나, 성직자들이 자기 소명을 따라 교회를 성실하게 섬기는 일이나 똑같이 성스럽고 가치 있는 일이었다.
이처럼 어느 영역에서나 근면 성실이 높이 평가되는 전통에서 태어나고 자란 에드워즈 역시도, 주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감당하는 데 무척이나 철저했다. 그는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기의 모든 것을 정말 아낌없이 다 쏟아부었다. 잘 알려진 대로, 에드워즈는 하루 24시간 중에 무려 13시간을 성경 연구와 묵상에 사용하였다.
그리고 그는 기도에도 많은 열심을 내어서, 개인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이어서 가족 기도로 나아갔다. 매일의 일과를 마치고는 아내와 함께 기도에 관하여 공부하기도 했다. 에드워즈의 기도 생활은 은밀하게 기도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남들 눈에 띄지 않게 이루어졌다. 그리고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음에도 금식 역시 게을리하지 않았다.8
몇 번 크게 앓다가 죽을 고비를 넘겼던 경험 때문인지는 모르나, 에드워즈는 필요한 휴식 시간도 점점 꼬박꼬박 챙기기 시작했다. 보통 하루 30분 이상 나무를 패면서 체력을 단련했고, 저녁 식사를 한 뒤에는 말을 타거나 산책을 하기도 했다.
에드워즈는 분명히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처럼 자연을 바라보면서 우수에 젖는 감상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에드워즈는 자연 만물을 바라보면서 늘 그곳에 담겨있는 영적인 유비와 교훈을 묵상했고, 그 내용을 작은 종이에 기록하여 옷 주름 사이에 끼워두었다. 덕분에 여러 날이 걸리는 여행에서 돌아올 때면, 그의 옷은 작은 종잇조각으로 뒤덮여 있곤 했다.9 그는 산책이나 여행을 하며 쉬는 시간까지도 최대한 영적인 방향으로 사용했던 것이다.
「에드워즈는 보통 13시간의 연구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새벽 4시 또는 5시에 기상했다. 노샘프턴의 사역 초기인 1728년 1월에 쓴 유일한 일기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나는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매우 일찍 일어나심으로써 우리에게 아침 일찍 일어날 것을 권고하셨다고 생각한다.” 훈련은 그의 삶을 그리스도와 닮도록 하기 위한 지속적이고 초인적인 노력이었다.」10
이처럼 목회자가 감당해야 하는 영적인 전쟁은 꼭 외부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내부에서 가장 먼저 일어난다. 부지런히 자신을 쳐서 그리스도께 복종하게 하는 과정 중에 일어나는 치열한 영적 전투를 가장 먼저 이겨내야 한다. 만약 그런 내적인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마귀는 당당히 교회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귀한 양들을 멸망의 늪으로 유괴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항상 자기를 잘 돌아보면서 영적으로 잠들지 않도록 자기를 쳐서 그리스도께 항상 복종시켜야 한다. 전쟁이란 본래 고달프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 것을 꿋꿋이 참고 버티면서 생명을 걸고 치열하게 싸워야만 한다. 영적인 전쟁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어렵고 힘든 중에도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그 모든 어려움을 꿋꿋이 이겨나가야 한다.
목회자의 마음은 어떤 상황에서나 진리를 향한 철저한 헌신과 열심으로 가득해야 하며, 그런 마음이 흔들리거나 변하면 안 된다. 항상 꾸준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꾸준함 속에서 부지런히 연구하며 기도해야만 한다. 그러니 참된 목회자가 남모르게 감당해야 하는 괴로움과 고충이 오죽하겠는가? 그러므로 성도들은 목회자의 그런 큰 고충을 이해하고, 그가 그 어려운 직무를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모든 면에서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진리 위에 든든하게 세워져 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조지 M. 마즈던, 『조나단 에드워즈 평전 (Jonathan Edwards: A Life)』, 한동수 옮김, 부흥과개혁사, 2006, pp. 192, 193, 230.
2 위의 책, pp. 194, 200.
3 위의 책, pp. 202, 203, 231, 232.
4 위의 책, p. 195.
5 위의 책, p. 212.
6 위의 책, p. 207.
7 위의 책, p. 217.
8 위의 책, p. 205.
9 위의 책, pp. 209, 210.
10 위의 책, p. 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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