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동성애 진단2」 기독교와 세속 정치 사이의 올바른 관계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오늘날 세계는 점차 다원화되어 간다. 한편 세상이 이전 어느 시대보다도 빠르게 파편화가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이 세상은 점점 일관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기 대단히 어려워졌다. 하지만 세상을 일관되고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게 바로 정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가 없었던 시대는 한 번도 없었다. 기독교는 무정부주의를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속 정권을 비롯한 모든 권세가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이 땅에서 행해지는 정치가 좋은 정치인지 나쁜 정치인지는 따로 생각해볼 문제다.
기독교가 유일한 목적으로 삼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도 이 세상에서 이루어진다. 그 때문에 세속 정치가 주는 영향과 상관없을 수가 없다. 교회 역사를 보면, 정치적인 탄압으로 인해 수많은 성도가 순교하고 예배당이 파괴되며 복음 전도와 선교가 금지되었던 일을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초대 교회가 로마 황제에게 받은 핍박과 고통, 중세 시대 교황 권력에 의한 개신교도의 학살, 20세기 공산권 나라들의 무신론적 이념과 정책에 따라 시행된 교회 탄압과 압제, 일제 강점기 기독교 탄압과 천황 숭배 강요, 북한 공산당의 예배당 파괴와 기독교인 학살 및 투옥 등이 있다. 오늘날까지도 북한의 지하 교회 성도들은 잔인한 공산 정권의 핍박 아래 있다.
특정한 정치 세력이 기독교를 향해 반감을 품게 되면, 다양한 방면에서 여러 가지 형태로 교회를 공공의 적으로 몰아간다. 그러다 예배당 파괴, 신학교 폐쇄, 학살, 구금, 벌금 등으로 적대감을 표출한다. 이슬람 정권은 지금도 자국 안에서 기독교 선교와 복음 전도를 금하고 강력하게 탄압하고 있다. 이처럼 정치는 기독교에 어떤 면으로든지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그런데 정치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원래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으며 완전하게 살았다. 그러나 범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로부터는 삶을 영위해가기 위해 공동체를 조직하고, 그 아래에서 생활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게다가 인구가 많아지면서, 마음의 부패를 따라 서로 이기적인 목적을 따라 저지르는 악행도 함께 늘어났다. 무법천지가 되어 살기 어려워진 세상을 경험하면서, 사람들은 어떠한 절대적인 지배자가 사회 질서를 바로잡고 모든 일을 일관되게 조정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
정치의 본질이 바로 거기에 있다. 정치란 근본적으로 타락한 인간들 사이에 서로 약속하는 것이다. 개인의 권력을 한 사람에게 양도하고, 모두에게 권력을 위임받은 그 사람이 공공의 선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물론 인류는 하나가 아닌 다양한 정치 체계를 만들어왔다. 역사를 살펴보면 부족 제도, 왕정, 공화정, 민주정 등 다양한 통치 체계가 나타난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없었다면, 인간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통치를 받으며 완전하게 살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전쟁, 테러, 경제적 불평등, 빈부격차, 사회 불안정, 범죄, 사회 구조적인 문제 따위의 불완전하고 타락한 정치가 가져온 결실로 인해 조금도 고통받지 않았을 것이다. 세속 정치는 본질상 인간의 타락으로 나타난 차선책일 뿐,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던 본래의 방식이 아니다.
성경에도 타락한 정치인이 많이 등장한다. 바로(파라오), 헤롯이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수없이 나온다. 이들의 통치로 인해, 선민 이스라엘이 율법을 어기고 우상숭배의 죄악을 저지른 일이 역대기, 열왕기, 다니엘, 예레미야 등에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정치·종교 권력을 한 손에 쥔 사두개인, 서기관, 대제사장이 예수님의 사역을 가장 많이 훼방했다. 그들은 결국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해를 끼칠 위험인물로 낙인 찍고, 로마의 권력을 빌어 십자가에서 죽였다. 사도 바울 역시 타락한 정치인들에 의해 로마로 압송되어 결국 그곳에서 죽었다. 그래서 옥스퍼드 대학교 신학자인 올리버 오도노반은 구속 역사 전체를 정치적인 주제와 연결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물론 기독교는 어떤 정치적 이념 위에 세워져 있지 않다. 또한, 어떠한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동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적어도 성경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정책과 법률, 여론 선동과 사회적인 활동, 반기독교적인 사회구조를 세우려는 정치인과 정치구조, 정당 등을 절대로 받아들이거나 지지해서는 안 된다.
예컨대 동성애를 지지하는 정치인과 법률, 정당은 지지하지 말아야 한다. 동성애는 분명히 성경적으로 대단히 큰 죄악이기 때문이다. 또한, 성경에 따라 우상숭배의 죄 역시 거부해야 한다. 인간을 숭배하는 정치적 이념(마오쩌둥, 레닌, 김일성, 김정일, 히틀러 숭배 등)을 따르거나, 이에 호의적인 정치인과 정당은 거부해야 한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 완전함을 바라지 않는다. 그런 세상을 기대하는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빨리 망상에서 깨어나라. 그러한 망상은 독일 자유주의 신학자와 해방 및 민중 신학자의 거짓된 환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나라, 완전한 천국에 모든 소망을 두는 종교다. 이 세상에서의 완전함이 아닌 천국의 완전함을 바라본다.
게다가 정치를 하는 사람의 본성이 타락했음을 알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는 완전한 정치라는 어리석은 환상에 순진하게 속아 넘어가지 않는 것이다. 구(舊)소련과 중국 등지에서 지상 낙원, 또는 노동자 천국을 약속하며 혁명이 일어났지만 그 약속을 믿지 않았다. 다만 기독교는 기독교 신앙을 가지는 일을 보장하고, 교회의 모든 사역을 훼방하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을 다양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모욕·왜곡하거나 거짓 선전·선동으로 적대하지 않는 정치는 바랄 수 있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잘못된 정치 때문에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다. 교회와 목회자, 그리스도인을 표적으로 삼아, 마치 공공의 적인 양 오도하는 무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그러한 집단을 기독교가 지지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는 이 세속 정치에 궁극적인 기대를 걸지 않는다.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통치를 바라보며 오직 말씀을 따라 주어진 사명에 힘써야 한다. 하지만 교회의 이 거룩한 사명을 훼방하는 정치인과 정치체계를 단호하게 반대하고 거부해야 한다. 이것 역시도 하나님의 일이다. 경건하고 거룩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자유롭게 믿고 섬길 수 있는 정치가 이루어지도록, 성도들은 기도하고 협력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생각과 판단으로, 특정 정치 노선을 지지하는 등의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일도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와 일치한다는 전제 조건 안에서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기독교에 적대적인 노선을 따르는 정당에서 활동하거나 돕는 일은 분명히 하나님을 대적하고 기독교를 파괴하는 죄악이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세속 정치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거나 기독교에 해를 끼치지 않게 하도록 정치적인 면에서 주의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그 일은 칼과 무기를 손에 쥐고 해서는 안 된다. 오직 경건과 거룩, 기도와 말씀, 합법적인 투쟁의 테두리 안에서 해야 한다.
갈수록 기독교에 적대적인 정치 세력이 한국 사회에서 커져만 간다. 이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에게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서 어리석고 사악한 반기독교적인 정치인과 정치 집단에 대해 지혜롭고도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동성애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동성애 진단2」 기독교와 세속 정치 사이의 올바른 관계
(※ 한 주간 1 명, 총 316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