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동성애 진단3」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책과 정치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박지훈
2014년 4월 15일에 발표된 미국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세계 동성애 인식 통계>에 따르면, 동성애에 관대한 나라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40개 나라 중 20번째 자리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응답자의 57%는 ‘허용될 수 없다’라고 했으며 18%는 ‘허용할 수 있다’라고 했다. 나머지 21%는 ‘도덕적 문제가 아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한국보다 더 관대하게 인식하는 나라는 대부분 선진국(유럽, 아메리카 대륙, 오세아니아 등)이었고, 더 엄격하게 인식하는 나라는 대부분 개발 도상국(중국, 인도, 아프리카 및 중동 등)이었다. 이 조사결과는 2012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서 발표한 <OECD 회원국들의 동성애 관용 순위> 통계에서 한국이 하위권에 있던 것과 비슷하다.
다행히도 아직 우리나라는 동성애에 그다지 관대하지 않다. 그러나 통계 수치가 낮게 나왔다고 안심할 수는 없다. 문화를 선도하는 세계 주요 국가들 대부분이 동성애를 자유롭게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역시 그 악영향을 여러 면에서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성애의 죄악상은 앞선 칼럼에서 구체적으로 다루었기 때문에 생략한다.)
극도로 다원화되어가는 현대 사회에서 ‘상호 평등’은 시대적 정의(正義)로 여겨진다. 문제는 이러한 평등 이념이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을 공격하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데에 악용된다는 것이다. 소위 ‘합리적 사고’가 발달했다고 자처하는 선진국에서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앞서 언급한 통계에서 그 사살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런 가운데, 동성애에 비교적 부정적인 나라를 향한 국제 사회의 압력은 거세지고 있다. 2013년, 반기문 UN 사무총장은 한국의 동성애 혐오에 깊은 우려를 표명하며, 평등과 관용을 촉구하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 이는 동성애라는 ‘문화’를 보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한 나라의 보편적 정서를 무시하고 탄압하는 대단히 오만한 월권행위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역(逆) 문화 탄압은 진보 성향의 정치 단체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안에서도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압박들로 인하여, 저들의 주장이 점차 국가 정책에도 반영되는 추세다. 최근 동성애와 관련된 정부·지자체의 몇 가지 굵직굵직한 정책과 법안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차별 금지법
– 2007, 2010, 2012년 총 세 차례에 걸쳐 국회에 입법 추진되었으나 반대에 부딪혀 정식 제정 실패.
(그러나 회 차를 거듭할수록 법안 제정 가능성이 높아짐)
대한민국 헌법의 평등 이념에 따라, … , 가족 형태 … 성적 지향 … 등을 이유로 한 차별을 금지.
대한민국 학생 인권 조례
-현재까지 경기도, 서울특별시,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교육청에서 제정 공포함.
서울특별시 학생 인권 조례의 동성애 관련 조항
– 차별받지 않을 권리(“개인 성향에 따라 차별받지 않는다.”라는 내용 포함.)
– 소수 학생의 권리 보장
이외에도, <국가 인권 위원회법 제2조 3항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군의 형의 집행 및 수용자 처우에 관한 법률> 총 3곳에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가 명시되어 있고, 법무부 훈령 <인권 수사 준칙>에도 ‘성적 지향에 의한 차별 금지’가 명시되어 있다. 지난 2004년에는 청소년보호법 유해 매체물 기준에서 동성애가 삭제되기도 하였다.
일부 정치인의 동성애 지지 문제도 심각하다. 박원순 서울 시장은 이사로 있었던 아름다운 재단을 통해 2010년까지 동성애 단체들을 지원하였고, 새정치민주연합 및 통합진보당 등 진보 정당들은 동성애 관련 조항을 포함한 차별 금지법 제정을 시도하였다. 또 군내 동성 성행위를 금지하는 법(계간금지와 추행금지법, 군형법 92조의 6)을 폐기하라고 주장했으며, 동성애 축제인 서울·대구 퀴어 문화 행사를 공식적으로 지지하는 등의 동성애 지지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위와 같은 사실을 살펴볼 때, 우리나라는 현재 법적으로 동성애를 거의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동성 결혼은 인정되지 않음). 서울을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는 학생 인권 조례 때문에, 동성애와 관련된 계도(啓導) 활동 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동성애를 정치적인 수단으로 삼고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진보 정당들 역시 엄청난 지지를 받고 있다. 동성애가 점차 인정받는 사회 분위기와 진보 정당을 향한 젊은 층의 지지율을 고려할 때, 동성애를 차별금지 대상에 포함하는 법안이 어떤 방식으로든 제정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정부와 권력자들이 동성애와 같은 사회적 타락 현상에 올바르게 대처하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결과는 매우 치명적이다. 문화적 영향으로 인해, 동성애에 관대해진 무지한 대중을 깨우쳐 설득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왜곡된 생각을 하도록 부추기게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인정된 여러 나라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갔다. 그러다 네덜란드, 벨기에, 캐나다 등 22개국에서는 동성 간 결혼이 허용되었고, 심지어 스웨덴, 덴마크, 벨기에에서는 수간(獸姦)까지도 합법화되는 끔찍한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나라들은 대부분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로서, 한때는 동성애가 당연하게 법으로 엄하게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사회 전반이 타락하고 정부의 제재가 하나둘 풀어지면서, 마침내 더 큰 죄악까지도 허용되는 사태가 오고 만 것이다.
이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동성애가 퍼져가고 인정받는 본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마다 다른 의견을 내놓겠지만, 필자는 교회와 그리스도인이 자기 역할을 못 했기 때문이라고 확신한다. 견고했던 기독교 국가에서 동성애가 만연할 때는 언제나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타락이 선행했었다. 정부와 지도자들을 올바르게 교훈하던 그리스도인이 자기 지위를 상실하게 되니, 결국 국가 전체가 고삐 풀린 말처럼 죄를 향해 치닫게 되고 만 것이다. 현재 서구 기독교 사회는 교회의 타락으로 국가를 선도할 능력을 잃은 결과가 무엇인지를 여실히 증명해준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인 기독교 국가가 아니므로, 서구 국가들과는 처해 있는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정부와 정치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교회가 대부분 심각하게 타락하고 손상되어 상황은 더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해서 남아있는 참된 그리스도인들마저 정치권의 실책을 보면서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이 타락을 막아서겠는가?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부와 지도자가 나타날 때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의 모든 생각과 행동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도록 하자.
1. 국가 권력은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온다
이 문제를 균형 있게 생각하려면, 우리는 실책을 범하는 정부와 정치인의 권력 역시도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우리 모두 잘 아는 로마서 13장의 말씀대로, 하나님에게서 오지 않은 권세는 없으며 이미 있는 권세들은 다 하나님께서 친히 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권세의 정당한 요구에 거역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을 거역하는 것이다(롬 13:1~2).
바울 사도는 자신이 기록한 말씀대로, 공회 도중 자신을 치라고 명한 사람이 대제사장인 것을 알게 되자 그 뒤로부터는 합당한 예를 갖추어 말하였다(행 23:5). 한 나라의 정부는 하나님께서 공의를 집행하기 위해 세우셨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정부와 정치인이 가진 통치권을 부인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일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성경은 심지어 악한 통치자에게도 복종할 것을 요구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복종해야 했던 일에서 이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렘 27:4~8, 17). 그 권세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이다.
덧붙여 교회가 정치의 영역에 대해서도 진리를 선포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은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성경이 허용하지 않는 방법(공익에 해를 끼치는 불법적인 집회, 폭력 시위, 거짓 선동과 비방 등)을 사용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러한 방법은 결국 교회가 세속 정치에 개입하게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복음과 관련된 교회의 영적 권위와 사회질서 유지와 관련된 정부의 세속 권위의 영역을 분명하게 구분하셨다.
따라서 교회가 자기 영역을 넘어 정치를 좌지우지하려는 일은 하나님께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며 절대로 옳지 않다. 교회가 정치권력에 개입하는 일이 얼마나 큰 죄악을 낳는지는 로마 카톨릭의 역사를 통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정부와 권력자들에게는 어떤 방식이든지 하나님의 뜻이 있으며, 그러므로 기본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들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2. 잘못된 정책을 펴는 정부와 악한 정치인은 하나님의 징계이자 심판이다
결국,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펴고 사악한 정치인들이 권력을 잘못 휘두르는 일은 그 나라에 임하는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앞서 언급한 느부갓네살 왕의 경우,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악한 왕이었고 대적들을 폭압 하는 지도자였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범죄한 유다 왕국을 심판하는 도구로 세우셨다. 호세아 13장 11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었다.” 타락한 통치자는 하나님의 진노를 따라 세워지는 것이다.
즉, 우리 정부가 동성애를 관용하는 정책을 펴고, 좌파 정치인들이 거리낌 없이 동성애를 옹호하는 현재의 현상은 한국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이다. 나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세상 사람들과 타락해가는 이 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저주인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상황을 보며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 타락한 백성들과 교회가 한순간 갑자기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랄 수는 없다.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저들의 죄를 내 죄처럼 여기면서, 권력자와 눈먼 교회가 회개하기를 간구해야 한다.
3.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보다 먼저 되면 안 된다
앞서 악한 통치자에게도 복종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그 말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범위 안에서 하는 것을 뜻한다. 정부와 정치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반대되는 일을 하도록 요구할 때 순순히 따르면 안 된다. 정부와 지도자의 권세는 분명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자기 한계를 넘어 하나님을 거역한다면, 하나님께 부여받은 정당한 권세를 넘어선 것이므로 그런 일에까지 복종할 필요는 없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보여준 행동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느부갓네살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었다.
하지만 그가 정해진 범위를 넘어 우상숭배를 요구했을 때,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 명령을 단호히 거절했고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다. 그 대가로 풀무 불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위험에서 그들을 건져주셨다. 다니엘도 마찬가지로 다리우스의 명령을 어기고 기도하다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셨다.
그들은 비록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자에게 불복종하였지만, 그 행동은 왕 위에 계신 하나님께 복종하기 위한 것이었으므로 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로, 일제 강점기 때 한국 교회는 일본의 신사참배 요구에 대부분 굴복해 버렸다(그러면서 근거로 인용한 구절이 로마서 13장 1절과 2절이라는 사실은 실로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사람의 위협을 두려워하여 하나님을 무시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이후 한국 교회는 온갖 교파로 조각조각 갈라지게 되었고, 나라도 해방의 기쁨이 채가시기도 전에 6·25 사변이라는 엄청난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그러므로 정부가 동성애를 인정할 것을 요구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은 절대 복종해서는 안 된다. 그 때문에 불이익을 당한다고 해도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감내해야만 한다.
4. 잘못된 정책을 내는 정부와 악한 정치인을 향해 바른 목소리를 내고, 정당한 범위 안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해야 한다
앞선 내용을 통해,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책과 주장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이므로,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단호하게 거부해야 한다는 답을 얻었다. 그러나 그 의사를 어떤 방법으로 표시해야 하는가는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동성애 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공의를 세우고, 복음 전파의 걸림돌을 없애기 위해서다. 우리의 반대의사 표시가 또 다른 불의를 저지르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성경의 원칙에 철저하게 따라야만 한다.
좌파 세력이 벌이는 최근의 반정부활동에서 이러한 불의를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는 불법 및 폭력 시위, SNS와 좌파 언론을 통한 허위 사실 유포와 선동, 정부와 지도자에 대한 부당한 비방 등의 덕스럽지 못한 행동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최고 권력자인 로마 황제와 유대 지역의 통치자였던 헤롯이나 빌라도는 매우 불의한 자들이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무장 폭동을 일으키거나 반대 선동을 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당신을 정치적 지도자로 세우고자 하는 군중을 꾸짖으셨고(요 6:26), 로마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일을 부정하지 않으셨다(마 22:21). 로마를 향한 복수심에 불타던 백성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 분도 또한 예수님이셨다(마 5:44).
(물론 예수님께서는 때로 공중(公衆) 앞에서 유대 지도자들을 매섭게 비판하셨고, 성전을 정화하는 일에 채찍을 들기도 하셨다. 하지만 이는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복음을 가르치는 일로 인해 신적 권위를 사용하신 것이다. 이런 일은 권세에 대한 복종보다도 더 상위에 속한 문제이므로 논외로 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원칙에 따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법이 인정하는 범위 안에서 정당한 집회를 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 분연히 일어나,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한목소리로 알릴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진리를 기초로 한 글을 통해 주변 사람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악한 자들이 허위 선동을 일삼는 것과는 정반대로, 바른 지식과 복음으로 사람들을 깨우쳐주어야 한다. 물론 말로도 주변 사람들에게 옳은 것을 알려주어야 한다.
특별히 권세를 가진 그리스도인은 그 권세를 의를 위해 사용해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그분께서 택하신 권세자를 통해 악한 권세의 횡포를 저지하신다. 모르드개가 왕후 에스더에게 “당신이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알겠습니까?”라고 물었던 것(에 4:14)이 무슨 뜻이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싸우시며 자기 백성을 끝까지 보호하신다.
그러니 겁을 내며 믿음으로 담대하게 행동하지 못한 권력자가 받을 수치가 과연 어떠하겠는가? 불의한 권세자가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할 때,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의 권세자들은 용감하게 충언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정당한 조치를 하여 그 불의를 막아서야 한다.
5. 이 모든 일을 기도와 말씀으로 하되 사랑과 긍휼을 잃지 말자
만일 그리스도인이 기도와 말씀에 충실하지 않은 채, ‘나는 내 할 일을 다 하였다’라고 한다면 하나님 앞에 그만한 불충도 없을 것이다.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하신 빌립보서 4장 6절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참으로 불완전하기에 기도 없이 불의에 맞서 싸울 수 없으며, 동성애자와 그들을 옹호하는 죄인들도 긍휼히 여길 수 없다. 또한, 우리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하신 디모데후서 3장 16절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분명히 동성애는 책망해야 할 죄이며 바르게 이끌어야 하는 잘못된 상태다. 동성애자나 동성애 옹호자는 지위와 상관없이 모두 성경의 진리로써 온전하게 되어야 할 자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닫지 못한다면, 죄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증거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이 모든 일에 사랑과 긍휼을 잃지 않게 하자. 이 말은 결코 악한 죄를 감상적으로 대하자는 말이 아니다. 동성애가 만연하고 정부와 정치인들이 이를 지지하는 죄를 극도로 미워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되, 그 죄에 빠진 이들을 향한 연민과 긍휼을 끝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생각하며, 바로 그 십자가의 복음이 죄 가운데 멸망해 가는 저 많은 사람을 구해주시기를 간구하자.
나와 같은 죄인 괴수를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는 어떠한 죄인도 충분히 구하실 수 있다. 진리에 굳게 서서 엄격하게 죄를 분별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풍성하게 나타내도록 하자. 그리하면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은 결코 공중에 흩어지지 않을 것이다.
로마서 1장 26절과 27절은 동성애가 얼마나 큰 죄인가를 언급하고 있다. 32절은 그러한 죄인을 옳다고 하는 자가 나온다. 성경은 죄인을 옳다고 하는 죄 역시 사형에 해당한다고 엄중하게 경고한다(롬 1:32). 하나님께서 택하신 성도들이여! 하나님께서 엄중하게 다루시는 죄를 절대로 작게 여기지 말자.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존중하여 정중히 행하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걸림돌을 두는 일을 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지 말자. 오직 성경대로 믿고 행동하되 절대로 그 길에서 벗어나지 말자. 그것이 정부와 권세자를 향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영광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동성애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동성애 진단3」 동성애를 옹호하는 정책과 정치인,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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