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대한민국 진단3」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자유 대한민국을 보전해야 하는가
김재호
▲ 대한민국 제헌 헌법 전문
<출처: (CC-BY-SA) Rheo1905 (wikipedia)>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교회와 정부(政府)라는 두 기관을 세우셨다. 전자(前者)에는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할 소명을, 후자(後者)에는 세상의 기초 질서를 확립할 소명을 주셨다. 그러므로 교회는 정부의 일에, 정부는 교회의 일에 함부로 간섭하거나 대신 감당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일은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넘어서는 죄를 짓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양 기관이 소가 닭 쳐다보듯 아무런 교류도 없이 각자 일하게 하지도 않으셨다. 교회는 정부가 사회 질서를 올바르게 세우도록 도움을 주어야 하며, 정부는 올바르게 확립한 사회 질서 안에서 교회를 보호해주어야 한다. 이러한 협력 관계 안에서, 그리스도인은 교회를 보호하는 정부를 적극적으로 보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게 된다. 이를 나 몰라라 하는 일도 똑같이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는 죄를 짓는 것이다.
1. 나라는 어떻게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게 되었나
현재, 우리는 대한민국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신앙의 자유를 누리고 있다. 그래서 대한민국 어디에서든지 교회를 세우고 예배를 드리며 성경 말씀을 가르쳐도, 나라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너무도 익숙하고 당연하겠지만, 역사를 조금만 살펴보면 이런 상황이 예외적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요한계시록을 읽어봐도, 한 나라가 신앙의 자유를 전폭적으로 보장하는 일이 결코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자유와 권리’라는 개념은 태초부터 존재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유롭기를 바라고 자기 권리를 지키려는 본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권리’라는 개념은 사람의 창작품이 아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에는, 그 누구도 완전한 자유와 권리를 누릴 수 없게 되었다. 각종 속박과 압제가 인간 사회를 뒤덮었으며, 개인이 누리는 자유와 권리는 심각하게 축소되고 무시되었다.
그 결과, 고대 사회에서는 자유와 권리를 대부분 계급적 신분 질서를 통해 제한적으로 보장했다. 여자보다는 남자에게, 첩(妾)보다는 정실부인에게, 아동보다는 어른에게, 노예보다는 자유민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했다.1 고대 사회에서 드물게 보편적인 자유와 권리를 인정한 경우도 있는데, 대표적인 예로 밀라노 칙령이 있다. 로마 제국은 313년에 이르러 밀라노 칙령을 반포하면서 모두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용했다. 그전까지는 기독교를 믿는 일은 인류의 평화와 번영을 위협하는 불법 행위였다.
그러나 밀라노 칙령에는 진정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려고 반포한 문서가 아니라는 한계가 있었다. 밀라노 칙령에는 제국 전체를 기독교화하려는 포석이 깔려 있었다. 다시 말해, 밀라노 칙령은 로마 제국이 완전히 기독교화하면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게 될 종잇조각에 불과했으며,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출범한 중세 시대의 상황은 고대 사회와 비교해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교황과 세속 권력자들은 서로 자기 자유와 권리를 더 많이 확보하려고 계속 다투었으며, 왕과 지방 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힘이 약한 쪽이 더 강한 쪽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각자가 누릴 자유와 권리를 기술한 증서가 작성되곤 했다.
그런 상황은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서 근본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는, 신자가 로마 카톨릭 교회법의 속박(束縛)에서 벗어나 참 자유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그런 주장을 담대하게 펼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로마 교회의 성직 위계가 아닌 그분의 말씀을 통해 각 사람의 심령에 친히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체험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루터는 교회가 교황의 폭정으로부터, 일반 성도가 성직자의 지배로부터, 나라가 교회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고 주장했다.2
그렇게 루터가 자유를 외치자, 착취에 시달리던 농민 계층은 그의 말을 지배자의 압제와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되라는 말처럼 받아들였다. 다시 말해, 대중은 루터가 말한 ‘양심의 자유’를 곧장 정치적 자유에 적용하면서 ‘행동’에 나선 것이다. 그 결과, 독일 사회에는 무질서와 폭동이 급증했다. 그러자 루터는, 대중에게 통치자에게 복종하라고 외치면서 참 자유는 법과 질서를 지키는 일과 조화를 이룬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칼빈은 루터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더욱 정교하게 가다듬었다. 그는 신자 개개인이 양심과 종교 행위와 예배의 자유를 누려야 하며, 교회도 국가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율적으로 교회를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했다.3 그러면서 그러한 영적인 자유가 공화적 헌정주의(共和的 憲政主義)에서 말하는 자유와 어떻게 다른지를 세심하게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자유가 왜 공화적 헌정주의에 꼭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일에도 많은 시간을 사용했다.4
칼빈은 그런 방식으로 교회와 정부가 서로 어떻게 협력하고 조화를 이루는지를 설명해나갔다. 교회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게 해야 했다. 또한, 통치자는 백성들이 보편 도덕법인 십계명에 순종하며 살아갈 자유와 권리를 허용하고 보호하는 일을 감당해야 했다. 만약, 교회가 교인들을 올바르지 않은 거짓된 길로 이끈다면, 교인들은 양심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교회의 관할권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떠날 수 있었다.
또한, 정부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게 억압한다면, 백성들은 통치자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벌하시려고 악한 통치자를 주시지는 않았는지를 돌아보며 조용히 인내하며 기다려야 했다. 민중 봉기와 혁명 같은 적극적인 저항은 허용되지 않았다. 대신, 하위 위정자에게 그러한 폭군의 압제와 맞서 싸워야 하는 책무가 부여되었다. 그러나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핍박이 더 거세진다면, 백성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다른 지역으로 떠날 수 있었다.
이러한 칼빈의 사상은 훗날, 칼빈주의자들이 하나님과 통치자, 그리고 백성과 맺은 언약에 기초해 정부가 형성된다고 보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약속에 기초해 십계명을 잘 따르는 나라를 보호하고 복을 주신다고 가르쳤다. 또한, 그러한 정치적 언약 사상은 칼빈은 절대로 허용하지 않았던 백성이 정당한 혁명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결론에까지 이르게 했다.5
칼빈의 후계자인 베자는 그런 주장을 다음과 같이 펼쳤다. 백성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서 맺은 고귀한 언약을 어겼기 때문에 통치자는 그에게 벌을 주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통치자가 언약을 근본적으로 파기하고 어기면, 백성은 그를 공직에서 쫓아내고 파면할 수 있었다. 물론, 칼빈주의자들은 그러한 역할을 백성에게 직접 맡기지는 않고, 백성을 대표하는 하위 공직자에게 두었다. 그렇게 그들은 칼빈이 말한 ‘제한적인 저항’이라는 가르침을 완전히 폐기하지 않고 최대한 계승하려고 노력했다.6
칼빈주의자들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굳게 믿었으므로,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어 권한을 남용하는 일을 막는 장치들을 계속 발전시켜 나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믿었으므로, 각 사람의 양심을 판단하는 역할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는 사상도 발전시켜 나갔다. 다시 말해, 칼빈주의는 현대의 삼권 분립과 종교적 관용 사상의 기초를 놓았다.
그 결과, 권력 구조는 분립과 상호 견제를 기본 축으로 삼게 되었고, 나라가 어떤 사람의 종교와 사상을 근거로 처벌하는 일은 점차 사라져갔다. 통치자는 오직 어떤 사람이 공적 영역에서 벌인 일을 놓고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서만 벌을 줄 수 있었다. 다시 말해, 칼빈주의는 종교의 자유를 비롯한 개인의 각종 자유와 권리를 헌법으로 보장하는 입헌주의(立憲主義)가 태동하는 모판 역할을 했다.7
물론, 그 과정에서 미흡하거나 역기능적인 부분도 많이 나타났다. 중세 사회의 관습에 익숙했던 이들은, 새로운 사상을 발전시키고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실수와 오류를 저질렀다. 또한, 이성주의자들은 칼빈주의자들의 정치적 언약 사상을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합의와 계약이라는 개념(사회계약론)으로 바꾸어 발전시키면서, 더 급진적인 민중 혁명이 가능하게 했다. 이는 훗날에 파시즘이라는 최악의 사상이 출현하는 단초가 되었다.
이처럼, 긴 시간 온갖 과정을 거쳐 태동한 입헌주의 사상은, 일제 시대에 처음으로 한반도에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 하지만 신사참배 강요가 잘 보여주듯, 일제는 헌법에 보장된 신앙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948년 7월 17일에 헌법이 제정되고 8월 15일에 정부를 수립해 건국(建國)을 완료함으로써, 우리는 비로소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가 너무도 당연하게 여기는 신앙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다. 수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불의한 통치자의 부당한 간섭과 압제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분을 자유롭게 섬기려고 목숨 걸고 싸운 대가로 얻은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하며 끝까지 보전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통치자의 부당한 간섭과 압제가 다시 우리의 양심을 속박하는 상황을 피해가지 못할 것이다.
2. 그리스도인이 자유 대한민국을 보전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대한민국은 신앙의 자유를 헌법으로 보장하므로,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대한민국을 보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라가 부여하는 기본 의무를 이행하는 소극적인 수준을 넘어서서,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방법으로 나라를 지켜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 대한민국을 보전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쉬운 일은 투표권을 올바르게 행사하는 것이다. 정당과 후보의 공약과 철학 등을 꼼꼼히 따져보고,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노선을 갖고 있다면 절대로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좌익 이념을 추구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좌익 이념은 인본주의에 근거해 낙태, 동성애, 상대적 윤리관 등을 지지하기 때문이다.8
투표권을 올바르게 사용했다면, 그다음에는 그 올바름의 기준을 제공하는 기독교 세계관을 체계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신본주의와 인본주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기독교 신학과 이슬람 신학 등을 깊이 연구하면서 우리 사회의 각종 현상을 성경이라는 잣대로 진단하는 힘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부지불식(不知 不識) 간에 자기 무덤을 파는 일을 면할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자녀를 올바르게 교육해야 한다. 기독교인은 절대로 자기 자녀를 공립 학교에 맡기는 실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오늘날 학교 교육 체계는 기본적으로 존 듀이의 교육 철학에 기초해 있다. 그런데 듀이의 교육 철학 핵심은 절대 진리를 추구하지 말고, 경험으로 자기만의 진리를 확립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공립 학교는 아동 중심의 흥미 위주 교육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기독교인 부모는 하나님께서 자녀 양육의 책임을 그들의 손에 맡기셨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 가정에 가장 적합한 교육 방식은 역시 홈 스쿨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럴 만한 상황이 되지 않는다면, 정통 개혁주의 신앙에 기초해 고전 교육 방식으로 교육하는 기독교 학교에 자녀를 맡겨야 한다.9 전교조 교사에게 아이를 내어주고, 그 아이의 속사람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것은 타는 숯을 끌어 안고서도 데지 않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또한, 그리스도인은 신앙 단체와 재단을 만들어 권력을 감시하고 인재를 양성하는 일을 활발하게 벌여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나라가 보장하는 언론, 출판, 결사의 자유를 마땅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 정교분리의 원칙은, 공적 영역에서 자기 신앙을 드러내지 못하게 막으려고 존재하는 원리가 아니다. 오히려 나라가 정한 절차와 체계 안에서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자기 신앙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원칙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기꺼이 세상이라는 전쟁터에 나아가야 한다. 거기서 온갖 불경건한 사상과 세력을 합법적인 방식으로 겨루어 이겨야 한다. 물론, 성도는 이러한 일을 벌이기에 앞서 꼭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최전선에서 이러한 전투를 벌이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기도와 후원으로 그들을 계속 도와야 한다. 로마 군대는 무기가 아닌 병참으로 승리한다는 속담처럼, 전쟁에서는 안정적인 보급이 가장 중요하다. 전쟁터에서 싸우는 사람에게 다양한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면, 그들은 금방 고립되고 탈진하여 쓰러질 것이다. 그러면 불경건한 세력이 금세 우리의 진영으로 쏟아져 들어와서, 사랑하는 우리 가족들을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끌고 가버릴 것이다.
3. 마무리하며
우리가 누리는 신앙의 자유는 거저 주어지지 않았고, 또 알아서 지켜지지 않는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마음껏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수많은 피를 흘렸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쳤으며, 불경건한 이들의 끝없는 도전과 상대해야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는 자유 대한민국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 이 나라가 악하고 불경건한 이들의 손에 넘어가, 우리의 양심이 속박 받는 일이 찾아오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는 이들의 손길을 통해 불경건한 세력의 흥왕을 막고, 우리가 하나님을 계속 자유롭게 섬기도록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각주
1 존 위티 주니어, 『권리와 자유의 역사(The Reformation of Rights)』, 정두메 옮김, IVP, 2015, p. 55.
2 같은 책, p. 60.
3 같은 책, pp. 20, 21
4 같은 책, p. 23.
5 같은 책, p. 144.
6 같은 책, p. 144.
7 같은 책, pp. 23, 508, 509.
8 마크 크리치, 「기독교인은 좌파 정당 지지자가 될 수 있는가?… “美 6선 민주당 의원, 공화당으로 당적 옮기다“」, 기독일보, 2017. 11. 3.
9 대한민국에서 그런 교육을 시행하는 학교로는 튤립 기독교 학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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