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북한 진단1」 북한은 왜 기독교를 핍박하는가
김재호
▲ 김 부자(父子) 동상에 꽃을 바치고 절을 하는 북한 주민들의 모습
출처: (CC-BY-SA) J.A. de Roo (wikipedia)
북한이 기독교를 핍박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북한 당국은 그 사실을 정면으로 부인한다.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 헌법과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국내외 활동을 근거로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절대다수의 사람들이 북한 당국의 해명을 믿지 않지만, 그 해명이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인지를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비록 소수이지만, 북한의 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이들은 대개 북한의 기독교 핍박을 미 제국주의자들이 꾸며낸 날조와 음모라고 생각한다.
한국 교회 성도라면 마땅히 북한이 기독교를 맹렬하게 핍박한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북한의 해명이 전형적인 공산주의 선전, 선동 활동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어야 한다. 이 문제는 단순한 정치 외교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마음껏 누리는 신앙의 자유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또한, 예수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핍박받는 우리 동포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1. 북한, 사이비 교주 숭배 국가
북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북한이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따르지 않는다는 사실부터 이해해야 한다. 진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눈에 보이는 물질 외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유물론을 따른다. 사람의 생명, 도덕, 윤리처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생의 본질과 관련이 깊은 문제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오직 경제 문제, 그중에서도 경제 사회 구조의 변혁에만 관심을 쏟는다. 다시 말해, 그들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계급’과 ‘사유 재산’이라는 기존의 경제 구조만 없애면, 모두가 잘사는 지상낙원이 도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1
그래서 경제 사회 구조를 바꿀 힘, 곧 ‘권력’을 손에 넣는 일이 그들의 할 지상 최대 과제이다. 그들은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도덕과 윤리가 아니라 경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이기 때문이다. 그 힘이 곧 그들의 정의이자 윤리이며 양심이고 선이다.
그런 이유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고 하며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인류가 생명, 양심, 도덕과 같은 보이지 않는 문제와 씨름하면, 공산 사회라는 지상낙원은 그만큼 늦게 건설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은 그런 데 신경 쓸 시간이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계급 갈등을 부추겨서 경제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는 권력을 쟁취하는 편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북한은 이러한 정통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생각에 전부 동의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마르크스의 사상을 주체사상이라는 잣대로 재해석해서 실행한다. 그렇다면 북한이 공산주의를 해석하고 실행하는 기준으로 사용하는 주체사상이란 과연 무엇일까? 대체 그것이 무엇이기에 북한에서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를 재해석하는 도구가 된 것일까?
앞서 살펴본 것처럼,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경제 문제에서 시작해서 경제 사회 구조 문제로 끝나기 때문에, ‘사람’이나 생명과 같은 형이상적인 개념과 가치를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여긴다. 그들은 이 세상을 지극히 기계적인 곳이라고 생각한다.
한편, 주체사상은 세상을 인간 중심으로 이해하고 생각하려고 한다. 주체사상에서 사람은 경제 사회 구조에 예속된 부속품이 아니라, 역사를 창조해가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다시 말해,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철저한 유물론 사상인 반면, 주체사상은 인본주의 사상이다.
이처럼, 주체사상은 마르크스의 공산주의를 인본주의 관점에서 재정의하려는 사상이다. 주체사상의 창시자인 황장엽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경제 구조의 문제가 아닌 죽음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정통 마르크스주의는 계급과 사유재산이 없는 공산사회라는 이상향을 제시하기는 했지만,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답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가장 먼저 죽음의 문제를 철학적으로 해결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2
황장엽은 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인류의 지속성에서 발견했다. 개인은 죽어도 인류는 계속 살아간다. 그러므로 비록 개인의 육체적인 생명이 끝난다고 해도 인류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그의 사상이 계속 살아서 숨 쉰다면, 그는 인류 안에서 사상적으로 계속 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를 ‘사회정치적 생명’이라고 말하면서 그것으로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려고 했다.3기독교인인 우리가 볼 때는 정말 황당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해결책이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북한은 정말로 공산주의의 태생적 한계를 넘어서서 ‘사람 사는 세상’, 또는 ‘사람이 주인 된 지상낙원’을 건설하는 사람 중심 국가를 지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정반대의 길로 나아갔다. 북한은 주체사상을 통해 ‘사람 죽는 세상’과 ‘사람이 짐승만도 못하게 사는 생지옥’을 건설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왜 그런 참혹한 길을 걷게 된 것일까?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기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황장엽이 주체사상을 확립하기 훨씬 이전인 1956년부터 김일성이 ‘주체’를 부르짖기 시작했다는 대목에서 찾을 수 있다. 김일성의 이 말은, 북한이 1950년대부터 인본주의 관점에서 공산주의를 재정의하려고 했다는 뜻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소련과 중국을 무조건 따라 하지 않고 ‘우리 식’으로 사회주의를 실현해 나가겠다는 뜻으로 했던 말이었다.
그의 말을 잘 생각해보면, 북한은 19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소련과 중국을 철저하게 따라 하고, 그들의 지시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위성국가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실제로, 김일성은 스탈린의 꼭두각시이자 충성스러운 개였다. 북한의 지도자로 김일성을 세운 것도, 한반도를 절반으로 나눈 것도, 6·25 동란을 기획하고 실행한 것도 다 스탈린의 머릿속에서 나온 작품이었다.4
이처럼, 북한의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스탈린은 6·25 동란이 진행 중이던 1953년 2월 28일에 독살되어 급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그의 뒤를 이은 흐루시초프는 스탈린의 사상과 노선을 계승하기는커녕, 그의 만행을 폭로하고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이면서 소련을 개혁하려고 했다.5
이에 더하여, 소련과 중국은 공산 세계의 맹주 자리를 놓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며 경쟁하기 시작했다. 흐루시초프가 소련을 개혁하면서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겠다고 하자, 중국은 이에 뒤질세라 15년 안에 영국을 따라잡겠다고 선언했다.
무제한에 가까운 인력을 활용한 ‘대약진 운동’을 통해 국가 경쟁력과 생산성을 단숨에 큰 폭으로 높이려고 했다. 그러나 무리하게 추진된 이 운동은 결국 2,000만에서 4,000만 명에 이르는 사람이 굶어 죽거나 다른 이유로 죽는 대재앙으로 마무리되고 말았다.6
그런 대외 상황의 격변 속에서 김일성이 선택한 구호가 바로 ‘주체’였다. 다시 말해, 김일성은 북한이 소련과 중국의 개혁과 경쟁 노선에 참여하지 않고, 스탈린의 옛 방식을 고수하겠다고 대내외에 선언한 것이었다. 소련은 스탈린주의를 폐기했고 중국은 제 코가 석 자인 만큼, 북한은 그들 나름대로 스탈린주의를 계승해나가겠다는 의미로 ‘주체’를 부르짖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김일성 식 스탈린주의는, 전체주의를 더 굳건히 하기 위한 사상으로 유교를 선택했다. 그는 유교 사상을 활용해, 단순한 인민의 대표자와 지도자를 넘어 전 인민에게 생명을 주고 그들을 돌봐주는 어버이 수령으로 다시 태어났다.
어버이 수령의 말을 거역하는 것은 생명을 준 부모를 거역하는 큰 죄이며,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이 되었다. 부모와 조상을 절대시하는 우리 민족의 유교 정서가 김일성의 ‘주체적인’ 스탈린주의를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 역할을 했다.7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황장엽의 ‘사회정치적 생명’ 개념은 전 인민을 김일성의 노예와 손발로 만드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의 사상에 힘입어, ‘주체 조선’의 어버이 수령은 무지한 인민 대중에게 ‘사회정치적 생명’이라는 영원한 생명을 주는 신적인 존재가 되었다. 또한, 그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가꿔나갈 수 있도록 끊임없이 지도하고 애쓰는 완전무결한 존재가 되었다.
다시 말해, 북한 인민은 어버이 수령의 ‘사회정치적 생명’을 힘입어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게 된 사실에 깊이 감사하고, 당의 지도를 따라 김일성의 말과 사상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실천하도록 요구받는 가련한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이처럼, 김일성은 주체사상을 통해 ‘주체 조선’의 하나님이 되었다. 실제로 김일성이 한 일을 자세히 살펴보면, 신천지 교주인 이만희가 벌인 일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만희는 자기가 보혜사 성령이 임한 재림주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자기는 죽지 않고 영원히 산다고 하면서, 자기를 믿는 이들은 영원히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육체 영생 교리를 가르쳤다. 그는 그 교리로 신도를 모아서 과천에 자기 왕국, 곧 신천지를 세웠다.
김일성도 마찬가지이다. 그는 자기가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고 무지한 인민을 돌봐주는 어버이 수령이라고 자처했다. 자기의 영도를 철저하게 믿고 따르는 이들은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자가 되고, ‘사회정치적 생명’을 누리며 영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김일성은 그 사상으로 전 인민의 사상을 통제하고 감시하면서 북한 전역을 김일성 숭배 왕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만희의 과천 신천지와 김일성의 ‘주체 조선’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은 참으로 참혹했다. 과천 신천지에서 영생을 누리려고 했던 이들의 가정에는 심각한 불화와 다툼으로 파국에 이르는 일이 종종 일어났다. 신천지에서 영생을 누릴 144,000명 안에 들기 위해 믿음으로 집을 팔고 빚까지 졌던 이들은 재기가 어려울 정도로 큰 경제적 손실을 보았다. 교주의 사상을 의심한 이들은 협박과 구타를 당해 정신과 육체가 망가지는 일이 일어나곤 했다.
역사를 창조하는 ‘주체 조선’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권력 투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다. 김씨 일가와 혈연관계가 있거나 빨치산 투쟁을 했던 이들의 후손이 아니면, 역사 창조는 고사하고 자기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김일성의 사상과 교시를 거역하고 따르지 않은 이들은 수용소에 끌려가서 짐승만도 못하게 살다 죽거나 공개 처형 되었다.
이처럼, 북한은 마르크스주의를 따르는 정통 공산주의 사회가 아니라, 스스로 하나님 자리에 오른 사이비 교주 김일성을 숭배하는 신정일치(神政一致) 사회이다. 북한이 김씨 3부자의 만행을 폭로하는 소식마다 최고 존엄 모독이라면서 길길이 날뛰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북한의 정치 체계는 김일성으로 시작해서 김일성으로 끝나기 때문에, 김일성 신격화가 무너지면 북한 정권도 함께 붕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치, 교세가 한때 100만 명에 육박했던 전도관이 교주 박태선의 죽음으로 한순간에 몰락했던 것처럼 말이다.
2. 북한의 기독교 핍박과 선전, 선동 활동
사이비 종교 단체에서는 교주의 말과 생각이 곧 법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생각과 교시가 법이다. 북한에도 헌법과 법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한 형식에 불과하다. 실제로 북한을 다스리는 법은 ‘당의 유일사상 체계 확립을 위한 10대 원칙’이기 때문이다.
북한 주민은 헌법과 법률의 원리를 이해하는 교육이 아닌, ‘10대 원칙’과 그에 딸린 세부 실천 사상을 완전하게 암기하는 교육을 받는다.8또한, 한 주에 한 번씩 열리는 생활총화에서 ‘10대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자기 잘못과 다른 사람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야만 한다.9
이처럼, 북한은 헌법과 법률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그 법들을 전혀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간다.10주민들에게는 오직 ‘10대 원칙’과 주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당 간부의 결정만 의미 있을 뿐이다.
이런 북한 주민의 실생활을 잘 보여주는 실제 사례가 있다. 원래 북한에서는 소매치기하다가 잡히면, 흠씬 두드려 맞고 풀려나는 정도의 벌을 받았다. 하지만 김정일에게 신의주에 소매치기가 들끓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김정일의 입에서 “그놈들 죽여!”라는 말이 나오자, 그날부터 소매치기들은 죽어 마땅한 극악무도한 죄인이 되었다.11
이런 사이비 교주가 다스리는 나라에서 헌법과 법률이 의미가 있을 리 없다. 북한에서 실제 효력을 발휘하는 법은 ‘10대 원칙’과 김씨 3부자의 결심이다. 법은 그 특성상, 실생활에 적용하고 시행하지 않으면 의미를 잃어버린다.
우리나라의 사형 제도를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형법 상으로 사형 제도가 존재한다. 그러나 사법부가 사형을 집행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는 사형 판결을 받아도 실질적으로는 무기 징역을 선고받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그와 같이, 북한에서는 법 조항보다 그 위에 있는 사이비 교주의 속마음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그에 따라 법조문의 실질적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한이 헌법과 법률을 통해 보장한다는 신앙의 자유도 마찬가지이다. 법 조항만 놓고 보면, 북한 주민들은 충분히 신앙의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을 것만 같아 보인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김씨 일가는 ‘주체 조선’의 하나님인 김일성이 아닌 다른 신을 믿고 따를 자유를 절대로 허락하지 않는다. 그런 일은 ‘주체 조선’의 붕괴를 함축하기 때문이다.
이를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만약, 북한 주민이 ‘사회정치적 생명’을 주는 어버이 수령 대신, 부활의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 죽음이 죄의 대가이며 전 인류가 죄의 노예로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어버이 수령의 ‘사회정치적 생명’이 소리만 요란한 빈 깡통 같다는 사실도 깨닫게 될 것이다. 나아가, 어버이 수령이 약속한 ‘지상낙원’은 새빨간 거짓말이며, 예수님께서 계시는 천국만이 인류의 유일한 소망이라는 사실도 인식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는가? 어버이 수령을 호위하는 총, 폭탄이 되어 ‘주체 조선’ 건설에 온몸을 바치는 일은 지극히 어리석고 미친 짓이 될 것이다. 또한, 수령 독재를 확립하기 위한 우상화, 의식화 사업도 역사의 창조자가 되기 위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를 부르는 큰 죄라는 사실도 명백하게 드러날 것이다.
다시 말해, 기독교가 북한 지역에 퍼지는 순간, ‘주체 조선’을 이룩하고 지키기 위한 원동력과 투쟁력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하셨다(마 6:24). 어떤 사람이 천국을 영원한 소망으로 삼는다면, 인민 모두가 잘산다는 ‘주체 조선’을 미워해야만 한다. 반대로 ‘주체 조선’을 영원한 소망으로 삼는다면, 주님께서 계시는 천국을 꾸며낸 신화라고 매도해야만 한다.
실제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는 ‘주체 조선’의 헌법 조문을 살펴보면, 끝부분에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닌 단서 조항이 하나 붙어 있다.
「제68조 공민(공화국 인민)은 신앙의 자유를 가진다. 이 권리는 종교 건물을 짓거나 종교의식 같은 것을 허용하는 것으로 보장된다. 종교를 외세를 끌어들이거나 국가 사회 질서를 해치는 데 리용할 수 없다.」12
이 단서 조항의 진의(眞意)가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교주인 김일성이 평소에 했던 말과 생각을 참고해야 한다. 김일성은 1991년에 종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종교를 믿는 사람들과의 사업을 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사람들이 종교를 믿게 되는 것은 대체로 현실 생활에서의 고통과 불행을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고 내세에 가서라도 행복한 생활을 누려보자는 염원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를 믿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13
또한, 그는 1988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 축전을 준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를 믿는 사람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나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현실생활에 대하여 환멸을 느끼도록 만드는 반민주적인 정치이며, 주민들의 자주의식을 마비시키고 저들의 지배에 순종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종교를 악용하는 반동통치배이다. 진보적인 종교인들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서 화목하게 살 것을 바라고 있다.
오늘 남조선 종교인들은 외래침략자들이 우리 민족을 인공적으로 분열시켜놓고 통일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총칼로 탄압하는 데 대하여 반대하고 있다. 우리는 남조선 종교인들이 조국 통일을 위하여 헌신적으로 투쟁하고 있는 것을 높이 평가하여야 하며 그들과 단결해야 한다.」14
마지막으로, 김일성은 1975년 남북 회담을 추진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종교를 반대하면서도 왜 우리가 중앙에 종교 단체를 조직해놓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다. 우리는 조국을 통일시키지 못하고 있으며 국제적으로 많은 종교인들이 있으므로, 우리가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의 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북한)를 방문하는 많은 외국인들과 해외 동포들은 “왜 종교를 믿지 못하게 하는가?” 하고 묻곤 한다
그래서 우리는 종교는 허용하지만 인민들이 각성되어 믿지를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 조국 남반부(남한)에 수많은 종교인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남한 사람들)이 우리가 종교인들을 다 죽인다고 생각을 하면 그들도 우리를 반대하는 데 합세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는 불필요한 종교 조직을 만들어 놓고 있는 것이다.」15
김일성이 한 말들을 헌법 조문의 단서 조항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북한이 어떤 종교를 믿을 수 있게 해주고 어떤 종교는 믿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인지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북한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란 주체사상의 하수인 노릇을 충실하게 감당할 인본주의 종교를 믿을 자유를 뜻한다.
북한에서 그렇지 않은 종교를 믿을 자유란 존재하지 않는다. 북한은 그런 종교를 미 제국주의자들의 식민통치와 민족 분열에 앞장서는 ‘가짜 종교’로 취급한다. 즉, 외부 세계에서 말하는 북한의 종교 탄압은 실재하지 않으며, 단지 종교인으로 위장한 반동분자와 그 비밀 조직을 와해시키는 일을 하는 것뿐이라고 둘러대려는 속셈인 것이다.
또한, 김일성의 말은 북한이 왜 종교 기구를 만들고 운영하는지도 잘 보여준다. 북한은 주체사상의 하수인 노릇을 할 종교 기구를 통해 대내외 선전, 선동 활동과 외화벌이를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실제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의 봉수 교회, 칠골 교회의 신자들은 통일선전부에 소속된 정예 요원이다.
다시 말해, 이들은 기독교인인 척 행세하면서 전 세계 교회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북한 정권을 이롭게 하려는 공작원들인 것이다. 특별히, 이들은 대한민국의 영향력 있는 교회 인사들과 교류하면서 그 대가로 거액의 헌금 상납을 요구하고, 교인들에게 대남 공작을 벌이는 일에 초점을 두고 활동한다.16
그러므로 북한에서는 대남 공작 요원이 아닌,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게 된 이들이 악질적인 반동분자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 모퉁이돌 선교회에서는 2006년까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북한 지역에서 순교한 이들이 16,984명이라고 집계하기도 했다.
이 자료는 지금껏 북한 당국이 기독교인을 대략 15,000 명 정도만 죽였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료를 통해 객관적으로 입증이 가능한 확실한 순교자, 즉 아무리 작게 잡아도 그 정도의 신자들이 순교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17
이처럼, 북한은 기독교를 핍박할 수밖에 없고, 또 실제로도 맹렬하게 핍박하는 나라이다. 역설적이게도 북한이 종교를 허용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는 이유는, 종교를 통해 대한민국을 적화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일에 ‘이용’하려는 것이다.
북한에서 허용되는 유일한 종교는 김일성을 숭배하는 주체사상뿐이다. 다른 종교는 이용 가치가 있으면 잠시 살려두고, 이용 가치가 사라지면 가차 없이 폐기될 숙주일 뿐이다. 그러니 북한의 법이나 공인된 종교 기구의 보여주기식 활동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 북한은 주체사상을 폐기하지 않는 한 종교, 특히 참 기독교를 대적하고 파괴하는 데 앞장서는 일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3. 마무리하며
북한은 자세히 살펴보면 볼수록, 장차 적그리스도가 다스릴 세상이 어떠할지를 보여주는 모형처럼 보인다. 성경은 장차 하나님께서 진리로 적그리스도를 무너뜨리시고, 그를 사로잡아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던져 넣으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복음을 대적하고 교회를 파괴하는 북한과 교류하고 협력하는 일에 조금도 참여하면 안 된다. 그런 일은 스스로 화를 부르는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이다.
각주
1 이호, 『북한을 자유케 하라』, 거대넷, 2015, p. 27.
※ 이 책은 신복음주의 기독교 시각에서 쓴 책이라서 개혁주의 기독교인이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종종 나온다. 그런 부분은 주의하고 걸러내면서 참고하기를 바란다.
2 이호, 같은 책, p. 27.
3 이호, 같은 책, p. 27.
4 박용삼,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북앤피플, 2013, pp. 282~284, 314, 315.
5 이호, 같은 책, pp. 17~19.
6 황희경 기자, 「4천500만 명 죽음으로 몰고 간 마오쩌둥의 ‘대약진 운동’」, 연합뉴스, 2017. 04. 12.
7 이호, 같은 책, pp. 14, 15.
8 이호, 같은 책, p. 31.
9 이호, 같은 책, p. 50.
10 이호, 같은 책, pp. 156, 157.
11 이호, 같은 책, p. 158.
12 https://ko.wikisource.org/wiki/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_사회주의헌법
13 이반석, 같은 책, p. 218에서 재인용.
※ 이 책은 북한과 관련된 좋은 연구 자료가 있었다면 참고하지 않았을 정도로 에큐메니즘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친북 성향의 개신교 인사와 그들의 활동을 상당히 긍정하고 포용하며, 초기 순교자의 순교 원인이 민족주의 활동 때문이라고 보는 등 치명적인 자기모순과 오류가 많이 뒤섞여 있다. 이런 인사들의 오류를 분석할 목적이 아니라면 읽지 않기를 권한다.
14 이호, 같은 책, p. 237.
15 이반석, 같은 책, p. 190에서 재인용.
16 이호, 같은 책, pp. 237~241.
17 이반석, 같은 책, pp. 48~50.
※ 이 책은 북한 정권이 죽인 기독교인의 숫자를 정확하게 제시하지는 않지만, 여러 가지 자료를 따라 대략 100,000명 정도가 순교했다고 추정한다.
「북한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북한 진단1」 북한은 왜 기독교를 핍박하는가
(※ 한 주간 1 명, 총 1,135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