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진화론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과학과 진화론 진단3」 그리스도인이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6가지 이유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진화론은 갈수록 모든 영역에서 사나운 폭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기독교는 그에 맞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까지 그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진화론은 자신을 대적하는 기독교를 사나운 맹수처럼 물어뜯으려 벼르고 있지만, 그 일을 위해서 꼭 자기 힘과 권세를 과시하여 상대를 두렵게 하는 방법만 사용하지는 않는다.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처럼 자기 이빨과 발톱을 숨긴 채 조용히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내부를 혼란하게 하는 전략도 사용한다.
그런 전략에 맞춰 기독교 진영 안으로 몰래 침투한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바로 유신(有神) 진화론이다. 유신 진화론에서 유신론은 양의 탈에 해당하고, 진화론은 기독교를 물어뜯고 찢는 늑대의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에 해당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위장 침투한 늑대 같은 유신 진화론에 속아 넘어간 순진한 목사와 신학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부분이다.
현재, 정통 기독교 진영 안에서는 진화론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는다는 사실이 공인된 상태이다. 하지만 진화론의 또 다른 형태인 유신 진화론은 사뭇 다른 대우를 받는다. 많은 이가 유신 진화론을 포악한 진화론의 공격에 맞설 뛰어나고 새로운 대안(對案)이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신론과 진화론이 정말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 양쪽이 서로 맞물리며 공존할 수 있는 접점이 정말로 존재하는가? 이 부분을 그냥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대충 넘길 수는 없으며, 반드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만 한다.
19세기 후반부터 기독교 진영 안에서는 주로 자유주의자들이 진화론을 과학 발전의 결과물로 받아들이고, 배격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또한, 구(舊) 프린스턴의 위대한 신학자 B. B. 워필드도 어느 정도 유신 진화론에 호의적인 태도로 접근하기도 했다. 워필드뿐만 아니라 A. A. 하지도 진화론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취했다. 이러한 사실을 접하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자유주의자들이야 그렇다고 쳐도, 왜 이 위대한 보수 신학자들이 진화론에 어느 정도 호의적으로 접근하고 부분적으로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을까? 또, 그토록 보수적이고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도 유신 진화론이나 진화론에 어느 정도 호의적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면, 우리도 그런 자세를 가져야 올바르지 않을까?’
하지만 그런 생각은 그들이 살던 시대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구 프린스턴 신학자가 활동하던 시대에는 진화론이 완전하게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즉, 그 당시 진화론은 이제 막 태어난 신생아 같은 상태로서, 수많은 관찰과 검증을 통해 다듬고 뒷받침해야 할 부분이 아주 많았다.
성경과 무엇이 어떻게 충돌하는지가 분명해야 그에 대한 대응도 명확하게 해나갈 수 있는데, 당시 진화론은 그런 부분이 아직 불분명했던 상태였던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진화론에 대항하여 유신론을 펼치는 이들도 진화론을 과학적인 방식으로 반박할 수 있을 만한 학문적인 토대를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시대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면, 하지나 워필드가 진화론을 분명한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이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보기는 어려워진다. 다소 과도기적인 시대 상황 속에서 진화론의 의미를 신학적, 철학적 관점에서 헤아려보려고 했다고 보는 편이 가장 적절할 것이다.
실제로 워필드는 진화론을 제1원인을 뒷받침하는 제2원인의 차원에서 접근하고 이해하려고 했다. 그러면서도 자연 자체에 완전한 충분성을 부여하는 전적인 자연주의는 거부했다. 하지는 진화론 체계가 과학적인 방법론 측면에서 어느 정도 인정될 수 있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도 역시 진화론의 핵심을 이루는 자연 선택에는 이의를 제기했다.
만약, 하지나 워필드가 고전적인 진화론의 토대가 무너져서, 다양한 방식과 체계로 변형을 시도하며 진화론을 수렁에서 건져내려고 애쓰고 갈팡질팡하는 지금의 과학계 상황을 알게 된다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였을까? 고전적 진화론이나 그 아류나 다 실험을 통해 입증된 과학적인 사실이 아닌 학문적인 가설(假說)에 불과하며, 성경과 명백하게 충돌한다는 사실을 접한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그들에게 오늘날의 창조과학이 일구어낸 결과물을 보여준다면 어떤 상황이 펼쳐질까? 분명히 진화론을 전적으로 거부했을 것이다.
물론, 역사에 만약이란 있을 수 없다. 그러니 하지나 워필드의 행보는 이러한 말로 다 덮을 수 없는 분명한 역사적 과오(過誤)에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과오를 다룰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중요한 사실은 그 시대의 정통 신학자나 진화론자나 똑같이 자기주장을 분명하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또한, 그런 상황에서도 정통 기독교 신앙을 가진 신자 대부분이 사이비 과학에 불과한 진화론에 속지 않고,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굳게 붙들고 진화론을 배격하고 대항하는 데 힘썼다는 사실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양의 탈을 쓴 유신 진화론에 호의적으로 접근하거나 개방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유신 진화론의 포용은 다음의 6가지 오류를 포용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 성경의 가르침을 전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오류
- 정확한 실험으로 증명하지 못한 가설과 비과학적인 추측을 과학적인 사실로 격상하는 오류
- 창세기 1~3장의 역사성에 대해 명확하고 분명한 시각을 갖지 못하게 되는 오류
- 예수님께서 친히 구약 성경에 나타난 창조 내용을 그대로 인정하셨는데도, 그 말씀을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오류
- 진화론의 주장 일부를 자기 토대로 삼음으로써, 성경이 가르치는 창조 교리를 무너뜨리는 오류
-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역사적으로 믿고 고백해온 정통 기독교가 잘못되었다고 인정하고 폐기해야만 하는 오류
이 모든 오류를 포용하면서도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의 상태를 진지하게 점검해봐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보다도 사람이 만들어낸 진화 신화(神話)를 더 신뢰하는 이방 종교인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진화론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과학과 진화론 진단3」 그리스도인이 ‘유신 진화론’을 받아들이면 안 되는 6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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