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문화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전통문화 진단3」 한국의 기독교식 결혼·장례 절차에 남아있는 전통문화 요소와 개혁 방안
박지훈
▲ 전통 혼례식의 한 장면
<출처: (CC-BY-SA) Republic of Korea (koreanet, flickr)>
개혁이 필요한 한국 교회의 결혼·장례식 풍토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겠다.”라고 하셨다(창 2:18).
그들이 들에 있을 때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대적하여 일어나 그를 쳐 죽였다(창 4:8).」
위의 성경 말씀은 각각 인류 최초의 결혼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뒤에 친히 세우신 거룩한 사회 질서이며, 죽음은 타락한 사람이 피해갈 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형벌이다. 이 두 사건은 사람에게 가장 중대하므로, 인류는 본성적으로 결혼을 축하하고 죽음을 애도하기 위한 예식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그러므로 결혼과 장례 풍습에는 한 시대의 인생관과 종교적 가르침이 그대로 녹아들면서, 하나의 문화와 전통이 형성되는 일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특별히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단일 민족 국가를 오랫동안 유지해왔으므로, 우리나라의 결혼·장례 풍습에는 각 시대를 대변하는 사상과 생활상이 혼재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전통 혼례와 장례 방식에는 가장 오래된 민속 신앙인 무속과 불교와 유교 문화가 혼재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허례허식을 줄이기 위해 국가에서 건전가정의례준칙(1969)을 제정·시행한 뒤로부터는, 예식의 현대화가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이러한 전통문화의 영향력이 다소 줄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개혁은 복잡한 전통 예법을 간소화하자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일이었므로, 이교(異敎)적인 사상에 근거한 전통 예법의 알맹이는 여전히 우리나라 결혼·장례 문화의 중심축으로 남아있다. 진정한 의미의 개혁, 즉 사람들을 영적 무지에서 건져내는 일은 국가가 아닌 교회가 담당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교회는 자신이 감당해야 하는 이러한 종류의 일을 과연 잘 감당했는가? 안타깝게도 한국 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선교 초기부터 이러한 생활 풍습에 대한 개혁을 철저하게 시도하지 않은 것이 가장 뼈아픈 실책이었다. 그 결과, 한국 교회 성도들은 이교적인 우상숭배 문화와 기독교적 방식을 ‘적절히’ 혼합한 결혼·장례 문화를 만들어내고 말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러한 혼합 문화가 한국 교회 성도들의 일반적인 결혼·장례 절차처럼 굳어져 버렸다.
성도에게 결혼·장례 문제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믿는 진리를 실제 삶 속에서 실천하는 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것이므로, 성도의 결혼 예식은 마땅히 하나님의 본래 계획을 온전하게 반영해야 한다. 성도의 장례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천국과 부활의 소망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방식으로 치러져야 마땅하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이교적 가치를 활짝 드러내는 예법으로 혼례와 장례를 치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현재의 결혼·장례 문화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 하며, 교회는 성도가 올바른 방식으로 예식을 치를 수 있게 지도해주어야 한다.
지금부터 한국의 기독교식 결혼·장례 풍토에 남아있는 전통문화 요소는 무엇이며, 또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그런 다음 그런 절차를 대신할 성경적인 방식이 무엇인지 제시해볼 것이다.
결혼: ‘이교적 번영 기원’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는 남녀의 거룩한 결합 축하’로
1.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통문화 요소와 그 문제점
1) 예단 및 함
예단은 본래 예비 신부 집안에서 시댁에 예를 표하려고 비단을 보내던 것에서 유래했으며, 함은 예비 신랑 측에서 예단에 대한 답례로 보내던 선물상자에서 비롯하였다. 오늘날에는 이 절차를 옛 방식 그대로 따르기보다는 간소화해서 행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이 절차는 전통문화에서 유래한 풍습인 만큼 그 안에는 미신적인 요소가 많이 존재한다. 그중 대표적인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사주단자와 택일단자: 예비 신랑 측이 신랑의 사주를 적어 넣어둔 사주단자를 예비 신부 측에 보내면, 예비 신부 측은 그것을 토대로 궁합을 본 뒤 좋은 날을 받아 적고 택일단자에 넣어 예비 신랑 측에 보냈던 것에서 유래했다. 오늘날 실정과는 맞지 않는 미신적인 절차이지만, 종종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절차를 아무 생각 없이 따라 하면 안 된다.
– 함을 열어보면, 복을 기원하는 의미를 지닌 다섯 개의 곡식 주머니가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특히 전문 업체를 통해 함을 제작하면, 이 다섯 가지 곡식 주머니가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이처럼 함 풍습은 미신적인 요소와 깊이 결합되어 있으므로, 미신적인 요소를 빼고서 하려고 하기보다는 아예 하지 않는 편이 더 바람직하다.
오늘날에는 예단과 함이 예의상 거치는 형식적인 절차처럼 되어서, 전통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양가가 이 절차를 통해 서로 체면치레를 하려고 하다 보니, 예단·선물 비용을 과도하게 책정하여 갈등이 일어나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절차를 대폭 생략하고, 마음을 담은 간소한 선물 정도만 주고받는 편이 바람직하다. 만약 신랑 신부를 비롯한 양가 부모님 모두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영적인 교제를 통해 서로 존중하는 좋은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이 가장 좋은 결혼 준비 절차일 것이다.
2) 화촉점화
전통 혼례에서 자작나무의 껍질에 불을 붙이던 것에서 유래한 예식 절차로서, 예식 첫머리에 신랑과 신부의 어머니가 각각 청색 홍색 초에 동시에 불을 붙이는 것을 말한다. 이 절차에서 청색 홍색 초를 사용하는 이유는 동양철학의 가르침인 음(陰)과 양(陽)의 조화와 결합을 표현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초에 불을 붙이는 행위도 새 가정의 만사형통과 새 생명의 탄생을 기원하는 미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초에 불을 밝히는 대신, 양가 혼주나 주례자가 하객께 감사 인사를 드리는 정도로 예식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3) 한복
일부 사람들은 한복까지 문제 삼는 일을 과도하다고 여길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결혼식에 꼭 등장하는 한복에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있다. 결혼식 때 대개 신랑 측 혼주는 청색, 신부 측 혼주는 홍색 계열의 한복을 입고 손님을 맞이하고 예식에 참여한다. 혼주뿐만 아니라 폐백 때 신랑 신부도 이러한 계열의 한복을 입는다.
여기서 청색과 홍색이 사용되는 이유는 앞서 말한 화촉점화에서 청색, 홍색 초가 사용되는 이유와 같다. 그 밖에도 한복에는 뿌리 깊은 이교 문화의 미신적인 의미와 가치가 다양하게 구현되어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급적 한복을 입지 않고 예식을 치르는 편이 바람직하다
4) 폐백
폐백은 구고례(舅姑禮)라고 부르던 혼례 절차로, 신랑 신부가 신랑 가문의 사당에 참례하는 것을 전후로 치러졌다. 폐백을 대표하는 장면은 역시 며느리의 절을 받은 시부모님이 신부의 치마에 대추와 밤 한 움큼을 답례로 던져주는 장면일 것이다. 그런데 이 행동에는 부귀다남(富貴多男)을 기원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폐백 음식에는 밤, 대추, 육포, 구절판 등이 있는데, 이 음식은 맛을 기준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각기 미신적이고 기복적인 의미를 따라 선택한 것이다. 기독교식으로 결혼식을 치르는 가정에서는 이러한 미신적인 의미를 피하면서 폐백을 치르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신부에게 대추와 밤을 던져주지 않고 단순한 덕담만 해주곤 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폐백이라는 혼례 의식 자체가 사당 참례 같은 조상 숭배 의식에서 비롯했다는 데 있다. 폐백의 근본 의의는 신부가 이제 이 집안사람이 되었음을 조상과 집안 어른께 고하고 추인받는 것에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따로 폐백을 올리지 말고, 예식에 와주신 어르신을 찾아뵈면서 정중하게 감사를 표하는 것 정도만 해야 한다.
5) 이바지 음식
이바지 음식은 신부 측에서 시댁 사당에 올릴 제사 음식을 마련해 오던 것에서 유래한 풍습이다. 오늘날에는 단순히 시댁에 예를 표하는 의미로 변하기는 했으나, 본래 취지가 귀신 숭배에 있으므로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예식을 하지 말아야 한다(살전 5:22).1
2.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결혼 예식
이제껏 우리는 결혼 문화에 남아있는 전통문화 요소와 의의 및 문제점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성도는 어떻게 결혼을 준비하고 치러야 하는가? 우선 앞에서 다룬 전통문화 요소를 모두 걸러내려고 해야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므로 결혼을 앞둔 그리스도인 신랑 신부는 양가 부모님과 이러한 일을 놓고 폭넓게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충분히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전통문화의 잔재를 없애는 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잘못된 것을 제거한 자리를 진리로 잘 메워야 한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식 혼례에도 잘못된 점이 매우 많으므로,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중 가장 큰 오류와 병폐는 바로 성혼(成婚) 예식을 예배로 드린다는 부분이다.
이런 잘못은 예배를 하나님 중심이 아닌 사람 중심에서 생각하기에 나타나는 일로서, 출판 기념 예배, 은퇴 감사 예배, 개업 예배 등과 같은 예배 형식의 행사도 다 마찬가지이다. 정통 청교도 개혁주의권에서는 결혼을 예배 형태로 치르는 일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마치 예배식 결혼이 당연한 듯 행해지고 있다. 그나마 과거에는 엄숙한 분위기로 드려지기라도 했으나, 최근에는 온갖 경박하고 세속적인 요소가 물밀듯 쏟아져 들어오면서 차마 눈뜨고 봐주기 어려운 실정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최근 제네바 개혁교회에서는 개혁주의 신학에 근거하여 예식 절차를 만들어 시행하는 참 좋은 선례를 남겼다. 지면 관계상 예식 순서 전문을 싣지는 못하지만, 각주에 인터넷 주소를 실어놓았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기를 바란다.2
물론, 제네바 개혁교회의 예식 절차가 절대적인 예식 순서는 아니다. 그러나 한국의 기독교식 혼례 절차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는 이도 거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제네바 개혁교회의 예식 절차는 모든 일을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고 여겨진다. 제네바 개혁교회에서 사용하는 혼례 절차의 핵심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결혼식을 예배가 아닌 성경적 의미를 담은 의식으로 치름(찬송, 축도 등의 예배 요소를 삭제)
– 결혼의 의미를 담은 시편 말씀을 낭독하여, 모두에게 성경적인 결혼의 의미를 제시함
– 결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담은 주례사
– 신랑 신부 및 하객에게 결혼의 참된 의미를 구체적으로 알게 하는 성혼문답
– 축가 등의 세속적 요소를 모두 뺀 엄숙한 예식 집행
무엇보다도 제네바 개혁교회의 결혼 예식은 ‘결혼 예배’라는 오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예배 형식을 취하지 않았다. 또한, 거룩함과 엄숙함을 잃지 않는 가운데 결혼 생활의 참된 의미와 의무, 천국의 소망을 일깨워줌으로써 건전한 결혼 예식이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이므로, 우리는 결혼 예식의 모든 부분을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시행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하면 성경이 가르치는 결혼의 본래 의미를 잘 나타낼 수 있을지를 고심하면서 조심스럽게 결혼을 준비하고 치러야 하는 것이다.
장례: ‘절망과 귀신숭배’가 아닌 ‘천국과 부활의 소망’으로
1. 현재까지 남아있는 전통문화 요소와 그 문제점
1) 영면(永眠) 또는 영서(永逝)
이 표현은 사람의 죽음을 일컫는 말로, 영면은 ‘영원히 잔다.’라는 뜻이고 영서는 ‘영원히 가셨다.’라는 뜻이다. 물론 기독교식 장례에서는 보통 하나님께서 부르셨다는 의미로 ‘소천(召天)’이라는 단어를 쓰고 있지만, 혹시라도 영면이나 영서와 같은 단어를 부주의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2) 명복(冥福)
우리나라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빈다.’라는 표현을 흔하게 사용한다. 그러나 ‘명복’이란 죽은 뒤에 저승에서 받는 복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다. 기독교 신앙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를 엄격하게 구분한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복을 빌어준다는 개념은 철저하게 이교적인 사상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명복을 빈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오직 슬픔을 당한 사람을 위로해주는 의미의 말만 사용해서 조의를 표해야 한다.
3) 헌화(獻花)
한국의 기독교식 장례에서 가장 잘못된 일은 고인의 영정에 분향하는 대신 헌화하는 것이다. 영정에 분향하는 것이 우상숭배라는 사실을 알고 헌화로 대신한 것인데, 문제는 헌화 역시 죽은 사람에게 무언가를 바치는 행위이므로 똑같이 우상숭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조문은 고인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유가족을 위로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울러 상주로서 장례를 주관하는 상황에 있다면, 불신자 조문객이 절을 하게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짧게 묵념 정도만 할 수 있게 미리 안내해야 한다.
4) 발인(發靷)
‘발인’은 죽은 사람의 혼백을 태워 나르는 상여가 집에서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유교식 장례 용어이다. 그러므로 이교적인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지 말고, 관이 나간다는 의미로 ‘출관(出棺)’ 정도의 단어로 바꾸어 부르는 것이 좋다.
5) 매장과 화장(火葬)
화장은 불교와 힌두교 같은 이방 종교에서 유래한 장례법으로서, 성경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례 방식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가급적 매장을 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토가 협소한 우리나라의 여건상 매장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으므로, 유가족의 사정과 형편에 맞게 해도 큰 문제는 없다.
6) 추도예배
일반 기독교 가정에서 고인을 추모하고 신앙을 계승한다는 의미로 드리는 추도예배는 조상들의 귀신 숭배 문화가 기독교적으로 표현된 심각한 악습(惡習)이다. 한 사람의 죽음이(그것도 그가 세상을 떠난 날짜에 맞추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정말로 고인을 추모하고 그가 남긴 신앙 유산을 계승하고자 한다면, 그의 업적을 열심히 연구하고 배우면 된다. 예배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의미가 들어가서는 절대로 안 된다. 기독교적으로 포장된 이러한 우상숭배 악습은 하루빨리 철폐되어야 한다.3
2.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장례식
위의 사례는 전통문화의 영향을 받은 풍습만 선별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기독교식 장례 절차에는 잘못된 부분이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러한 오류가 수십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한국 교회의 전통처럼 굳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뒤늦게마나 일부에서 시도하고 있는 개혁도 근본적인 개혁이라고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으며, 그것마저도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개혁주의 교회에 다니는 성도가 먼저 적극적으로 개혁주의 원칙에 따라 장례식을 치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개혁교회 교인은 어떻게 장례식을 치러야 할까? 개혁주의 인터넷 커뮤니티인 밴드 오브 퓨리탄스에는 개혁주의 신학에 기초한 장례 원칙도 게재되어 있다.4 그중에서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 장례식은 철저히 가족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예배로 드려져서는 안 된다. 장례 예배는 사자(死者)숭배이며 로마 카톨릭의 잔재이다.
– 고인이 교회를 잘 다닌 신자였는지, 아니면 신자의 가족이었으나 믿지 않은 불신자였는지를 잘 구분해서 장례를 치러야 한다.
– 헌화나 분향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이 절차는 죽은 자를 숭배하는 풍습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 조문과 하관 때 목회자는 유가족을 위로하는 간단한 말씀과 기도를 한다. 이때 찬송과 축도는 하지 않고, 특히 고인을 위한 기도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 개혁주의 장례 절차는 한국 교회 환경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으니, 먼저 유가족을 충분히 이해시켜주는 일이 필요하다.
위의 원칙은 삶과 죽음을 온전하게 구별하는 성경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래서 허례허식이 없는 옛 청교도의 장례 방식에 매우 가깝다. 실제로 청교도의 장례 방식은 아주 단순하고 소박했다. 그들은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성도가 죽으면 천국으로 올라가 하나님 품에 안긴다는 사실을 실제로 믿었다. 그래서 산 자가 죽은 자를 위해 무언가를 하는 일이 얼마나 부질없고 허망한지를 잘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고인의 가족과 친지가 모인 가운데 시신을 매장하는 정도의 절차만으로 간소하게 장례를 치렀다. 그런 다음 교회에 모여 목회자가 선포하는 천국의 소망과 부활의 영광에 관한 말씀을 함께 들으면서, 사랑하는 자를 떠나 보낸 슬픔마저도 떠나 보냈다. 그들은 장례식을 치르면서 지나치게 슬퍼하거나 죽은 자를 위해 어떤 일을 하거나 예를 표하지 않았다. 단지 그 자리를 장차 그들이 거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을 되새기는 영광스러운 자리로 삼았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행해지는 일반적인 ‘기독교식 장례’의 모습은 어떠한가? 이교적 개념으로 가득한 온갖 전통 방식을 계속 행할 뿐만 아니라, 예배의 형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일이 근본적으로 사자 숭배에 해당한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오류와 잘못이 모두 신학적 무지와 불신앙에서 비롯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죽음이 절망과 비탄으로 향하는 관문이 아니라, 천국으로 향하는 현관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붙들어야 한다. 또한,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선이 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해야 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고인을 위한다는 각종 절차들이 허례허식에 불과하며, 오히려 그런 것들에는 온갖 종류의 우상숭배가 결실할 뿐이라는 사실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성도들만이라도 어떻게 장례를 치러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으며, 우리를 위해 저 영원한 나라를 예비해두신 예수님을 높일 수 있을지 깊이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한국적인 교회’가 아닌 ‘보편적인 교회’로
관혼상제를 중시하는 전통문화의 영향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결혼·장례 문화에서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종교 혼합 현상을 볼 수 있다. 비단 결혼·장례 문제뿐만 아니라, 실생활 대부분에서 전통문화는 기독교적인 색채를 덧입은 채로 대부분 살아남았다. 그 결과, 우리나라 교회는 아주 ‘한국적인 교회’가 되고 말았다.
혹자는 한국 교회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폭발적인 부흥을 경험하고, 뜨거운 열정을 지닌 신자로 가득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국 교회의 실상은 덩치만 급격하게 자란 기형아에 가깝다. 전통문화를 말씀으로 거르고 개혁하는 대신 기독교적 색채를 덧입히는 방향으로 나간 것만 봐도, 한국 교회가 얼마나 실속 없고 허약한지 금방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민족과 문화에 종속되는 분이 아니라 초월하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민족적 특색이 강한 교회보다는 역사적 보편 신조에 부합하는 교회가 더 올바르고 건강한 교회인 것이다. 민족·지역적 특색은 교회가 성숙해지는 과정에서 점차 옅어져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긴 세월을 우상숭배 문화에 깊이 뿌리내리고 살아온 경우에는, 더욱더 치열하게 전통문화를 개혁하면서 끊을 것은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이러한 개혁은 성도 개인의 삶 속에서도 꾸준히 진행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이며, 그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한다.’라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욕먹는다.’라는 생각과 부단히 싸워야 할 의무가 있다.
결혼·장례 예식은 어떻게 치르느냐에 따라서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세상에 증거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고, 자기 신앙과 반대되게 행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할 수도 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그리스도인은 시류(時流)를 좇아 우상을 숭배하는 악을 범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용기 있는 신앙인이 되기를 바란다.
각주
1 폐백과 이바지 음식 관련 내용은 www.wedfood.co.kr 에서 참고함
2 http://cafe.naver.com/thebandofpuritans/50366
3 매장과 화장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기독교 장례예식의 길라잡이』, 안옥현, 기독교문서선교회, 2015, pp. 111~113에서 참고함.
4 http://cafe.naver.com/thebandofpuritans/48794
「전통문화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전통문화 진단3」 한국의 기독교식 결혼·장례 절차에 남아있는 전통문화 요소와 개혁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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