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 영화 비평
(6) 영광의 탈출 (원제: Exodus, 1960)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그리스도인이라면 꼭 봐야 할 영화가 있다. 바로 1960년에 개봉한 “영광의 탈출”(Exodus)이다. 폴 뉴먼과 에바 마리 세인트가 주연한 이 영화는 그리스도인이 꼭 알아야 하는 역사적인 사건을 담고 있다. 이 영화는 현대 이스라엘이 건국하는 과정을 줄거리로 삼고 있다. 현대 이스라엘의 건국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대단히 감동적이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이스라엘 건국은, 하나님께서 한 번 택하신 이들을 잊지 않으시고 끝까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대부분은 현대 이스라엘이 어떻게 다시 세워졌는지 거의 모르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민족(유대인)은 주후 70년에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완전히 파괴하면서부터 고향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로마에 의해 강제로 흩어졌던 이스라엘 민족은, 1948년 5월 14일에 다시 나라를 세우기 전까지 거의 2천 년이라는 오랜 세월을 나라 잃고 떠도는 유랑 민족으로 살아왔다.
그러던 중에 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고, 이때부터 영국을 통해 이스라엘의 독립이 국제적인 문제로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으며,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국 UN에서 이 문제를 표결에 부쳤고, 그 결과 찬성 33표, 반대 13표로 이스라엘은 독립국 지위를 얻게 되었다. 이후에 미국과 소련도 이스라엘 건국을 승인했다. 건국 당시에 이스라엘 인구는 총 78만 8,700명이었으며, 전투 요원은 2만 명 정도였다.1
그러나 이러한 이스라엘의 독립을 기뻐할 수 없는 세력들이 있었다. 이스라엘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아랍 민족이 바로 그 세력이었다. 아랍 민족은 이스라엘과는 종교, 정치, 문화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었기에, 이스라엘이 중동 지역에 아예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려고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결국 독립하게 되자,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사이에서는 4차례에 걸친 중동 전쟁이 일어났다. 그만큼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 간 적대 관계는 심각하며, 현재까지도 그로 인한 분쟁이 극에 달해 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날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를 잘 알아놓아야 한다.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과도 중요한 연관이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중동에서 벌어지는 이스라엘의 문제를 그저 그냥 먼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 중에 하나 정도로 여기면 안 된다.
왜냐하면 현대 이스라엘은 엄연한 아브라함의 후손이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바로 그 언약 안에 그들이 여전히 속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스라엘을 끊어버리지 않으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장차 복음을 통해 그들과 언약을 맺으신 그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다.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관계의 역사적인 뿌리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게 하시고 40여 년의 광야 생활을 거쳐,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인 가나안을 그들에게 주셨다(출애굽기, 여호수아 참조).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민족은 사사 시대를 거쳐 왕조 국가(사울, 다윗, 솔로몬, 남유다와 북이스라엘 왕국)를 일으켰으나, 결국 바벨론과 그리스, 로마와 같은 거대 제국의 침공에 무너져서 속국이 되었다.
그때부터 독립 왕조국가를 다시 세우기 위한 유대인의 투쟁은 아주 치열하게 전개된다. 그 뒤로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를 반복하다가, 주후 70년에 벌어진 예루살렘 전쟁과 그로부터 3년 뒤까지 이어진 마사다 전투를 기점으로 유대인의 독립투쟁 열기는 크게 꺾이게 된다. 로마는 그 전투에서 이기고 나서, 유대인이 다시는 독립운동과 저항을 하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래서 유대인의 민족적 구심점 역할을 한 성전 제사를 폐지하기 위해 성전을 파괴해버렸고, 수많은 유대인을 여러 지역으로 흩어지게 했다. 그렇게 유대인은 민족적 기반이 위협당하고 조상 때부터 대대로 살던 땅을 빼앗기고 여러 곳으로 추방당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래도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자기 조상들에게 주신 이 땅을 회복해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갔다. 그래서 전 세계를 유랑하면서 온갖 멸시와 차별과 학대를 다 겪었음에도, 회당과 탈무드를 통해서 끝까지 자기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이 추방되어 쫓겨난 그 땅은 로마, 동로마, 이슬람 제국 등을 거쳐, 결국 아랍인이 살아가는 땅으로 굳어졌다.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해왔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그러한 상태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897년 8월 스위스 바젤에서 전 세계 유대인들이 모여 “제1차 시온주의자 대회”를 개최하고, 이 대회에서 자신들의 조국을 팔레스타인에 건설한다는 ‘바젤계획’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그 후 제1차 세계대전은 유대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됐다. 이 전쟁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동맹군이 영국과 프랑스 연합국에 선전포고를 함으로써 시작됐다.
이때 수에즈 운하를 장악하고 있던 오스만투르크가 독일과 동맹을 맺고 있어 영국으로선 수에즈 운하 통행이 심각한 문제가 됐다. 이때 오스만투르크 제국과 아랍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1915년 영국은 당시 이집트의 총독 ‘맥마흔’으로 하여금 아랍과 접촉하도록 하였고, ‘맥마흔’ 총독은 아라비아 ‘메카’의 부족장인 후세인에게 “만약 아랍이 영국을 도와주면 전쟁 후 영국은 팔레스타인 독립을 보장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아랍은 영국에 협조하게 된다. 유명한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이때를 배경으로 한다.
영국은 또한 미국을 참전시키기 위해 유대인을 이용했다. 유대인의 자금지원을 얻기 위해 1917년 11월 영국 외상 “발포어(Balfour)”가 런던의 명망 있는 유대인 로스차일드(RothsChild)에게 서한을 보내 영국을 도와주어 승리하게 되면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는 비밀약속을 했다. 이것이 1917년의 발포어선언이다.
그러나 영국은 전쟁이 끝난 후 이런 약속을 저버리고 1920년 4월 ‘산레모’ 회의에서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라크와 요르단과 함께 영국의 신탁통치 아래 편입시켰다. 이처럼 팔레스타인 한 지역을 두고 영국과 프랑스는 ‘사이크스-피코’ 비밀협정을 맺는 등 3중의 거짓비밀 조약을 맺은 것이 오늘날 중동분쟁의 단초가 되었다. 이스라엘과 아랍은 이들의 약속만 믿고 서로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투쟁하게 됐다.」2
이후의 중동 상황은 이스라엘과 아랍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원래 역사는 그런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전쟁과 테러를 통해 자신들의 주권을 행사하고 확립하려고 했고, 그로 인해 중동 지역에서는 항상 전쟁과 테러와 분쟁이 일어나곤 했다.
「PLO(팔레스타인민족해방기구)는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건국과 함께 나타난 자기 조상의 땅을 찾으려는 정치운동 단체로, 그들의 목표는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국가건설이다. 1969년 2월 창설되었으며, 의장에는 얏세르 아라파트가 나섰다. 1972년 9월 5일 뮌헨 올림픽 때 이스라엘 선수촌을 습격하여 이스라엘 선수들을 피살한 ‘검은 9월단’도 이 단체 소속이다.
이스라엘의 정치제도는 1948년 건국 정신에 기초하여 ‘자유⋅정의⋅평화’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은 종교, 성별에 의한 차별을 받지 않는다. 의회 민주주의 제도에 기초한 입법, 사법, 행정부가 있다. 3권 분립을 기초로 상호견제와 균형을 지향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정당으로부터 분리 독립된 상징적 존재다. 행정부의 수반은 수상으로 집권당에 의해 선출된다.」3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독립을 대외에 선언하면서, 이 나라가 다윗과 솔로몬, 이스라엘과 유다 왕국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임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독립선언서의 핵심을 이룬다.
「선언문은 성경의 역사로부터 현재까지 직선을 이으면서 시작한다.
에레츠 이스라엘은 유대인의 탄생지였다. 이곳에서 그들의 영적인, 종교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처음으로 국가적 지위를 이루었으며, 국가적 또 세계적인 중요성을 지니는 값진 문화를 만들었고 세상에게 성경을 주었다.
선언문에는 수천 년간의 유대인의 추방을 언급하면서, 고대의 “믿음”과 현대의 “정치”를 둘 다 끌어오고 있다.
강제적으로 자신들의 땅에서 추방된 이후, 사람들은 흩어짐에도 믿음을 지켜 절대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오직 자신들의 정치적인 자유로의 귀환과 그것의 회복을 바랐다.
또한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고대의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마음도 담겨있다.
이 역사적이고 전통적인 애착에 이끌려, 유대인들은 세대를 거듭하여 다시 고대의 고향에 자신들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근 수십 년에야 그들은 다시 하나로 뭉쳤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의 유대인 이민자들을 설명하고 있다.
개척자들… 그리고 방어자들, 그들이 사막에 꽃을 피우고, 히브리어를 부활시켰고, 마을과 촌락을 짓고, 경제와 문화 면에서 자립하여 번성하는 공동체를 구성하였으며, 평화를 사랑하나 스스로를 지키는 법을 알았고, 나라에 사는 이들은 가릴 것 없이 발전의 축복을 가져다주었고, 항상 독립적인 한 국가의 위치를 동경하였다.
1897년, 유태 국가의 영적인 아버지, 테오도르 헤르츨의 부름 아래, 첫 세계유대인연합이 결성되어 유대인 국가의 부활의 권리를 외쳤다. 이 권리는 영국 정부가 1917년 11월 2일 제창한 밸푸어 선언이 지지한 것이며, 국제연맹의 위임 통치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역사적인 연결고리, 그리고 유대인들의 집을 재건할 권리에 관한 국제적인 시인을 이끌어낸 바 있다.
1939-1945년에 벌어진 유럽 홀로코스트 역시 고향의 재성립을 위한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최근에 들어 유대인들에게 드리워진 재앙—유럽에서 벌어진 유대인 수백만 명의 학살—은 이스라엘을 유태 국가로 재정립하는 일이 얼마나 긴급한지를 보여준 또 다른 사건으로써, 이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고향을 제공하고, 그들을 국가라는 공동체의 특권을 지닌 구성원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이다.
유럽의 나찌 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이들과, 다른 국가의 유대인들은, 장애물들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이스라엘로 모여들었으며, 항상 존엄한 생명, 자유, 그리고 조국의 경작의 권리를 주장하기를 멈추지 않았다.」4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건국을 인정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을 불법적으로 자기 터전을 빼앗은 침략자와 강도 떼로 여겼다. 반면, 이스라엘은 원래 자신들의 소유였던 땅을 합법적으로 되찾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오늘날 팔레스타인 분쟁의 근본 원인이자 내용이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을 보는 시각 역시도 이들 사이의 분쟁처럼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다. 서구 유럽, 특히 미국은 대체로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준다. 이스라엘 독립의 정당성과 그들의 역사적 정통성을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이다. 반면,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세력은 중동 국가들과 아프리카, 러시아, 서유럽 좌파 세력 등이다. 한국은 이 문제에 대해 사실 중립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한국 내 좌파 세력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팔레스타인을 위한 여론전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한국 내 좌파 세력은 서유럽 및 그 외 좌파 세력이 팔레스타인을 동정하고 지지하는 견해와 정치적인 입장을 마치 전 세계인들의 공통된 생각과 입장인 양 들여와서, 우리 국민이 올바르고 균형 잡힌 사고를 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마치 피도 눈물도 없는 침략자와 학살자로, 반대로 팔레스타인은 그러한 무자비한 학살과 공격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피해자로 보이게끔 편파적이고 일방적인 보도를 한다. 그리하여 우리 국민이 이스라엘과 그들을 지지하는 미국에 대한 반감을 갖게 유도한다.
이처럼 한국의 좌파 세력이 그토록 팔레스타인을 지지하고 저들의 주장을 적극적으로 보도해주는 근본적인 이유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인권 문제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는 반미(反美)를 마치 정의의 대명사처럼 여기는 그들만의 이념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뿐 아니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전 세계의 세력들은 다 하나같이 반미 세력이다. 다시 말해, 저들은 순전히 미국이 이스라엘의 편에 서 있어서 열렬히 팔레스타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실제로 한국의 좌파 세력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고의로 저지르고 있는 온갖 만행과 테러는 다 눈감아주고, 이스라엘이 자국 안보를 위해 행하는 방위 활동은 싸잡아 잔인무도한 학살이자 인권 침해로 규정해 보도하고 있다.
그렇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당한 피해만 계속 크게 부각해 내보내서, 우리 국민이 이스라엘과 미국을 부도덕하고 불의한 나라로 여겨 싫어하고 미워하게끔 하려는 속셈인 것이다. 다시 말해, 자신들의 정치적 이념을 달성하고자 하는 선전, 선동술의 일환인 것이다. 편파보도로 엄청나게 부풀려진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사태가 순식간에 한반도를 반미 열기로 가득 채웠던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이 문제에 대해 과연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하는가?
창세기 1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시는 장면이 나온다.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겠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다.” (바른 성경)
역사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을 비웃고 모욕하며, 유대인에게 강포했던 수많은 세력들을 실제로 다 무너뜨리셨다. 반대로 유대인에게 호의적이며 유대인을 지지해준 세력들을 참으로 축복해주셨다. 이것은 꾸며낸 말이 아니라 분명한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인 이스라엘을 지지해야 한다. 하나님의 언약은 취소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진 아브라함의 언약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여전히 지키고 보호해주신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유대인이 결국 자기들의 메시아를 받아들이게 섭리해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유대인을 미워하거나 핍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한 선하게 대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은 여러 차례 이스라엘을 먼저 공격하고, 아무 죄도 없는 민간인에게 여러 가지 악한 일을 저질렀다. 참으로 인권 문제와 세계 평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팔레스타인이 행한 끔찍한 만행에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렇게 평화와 인권을 부르짖는 국내의 좌파 언론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오로지 약자와 피해자로 보이게 하는 데 여념이 없다. 이처럼 그들은 사건의 양면을 공정하게 다루어 보도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 이념 노선과 반미 투쟁에 함몰되어 여론을 호도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신들이 세계 평화와 인권 향상을 위해 헌신을 하는 줄로 착각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선전 선동에 넘어가서는 안 된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영적인 혈통으로써 아브라함의 육적인 혈통을 따라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을 선하게 대하면서,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로 돌아올 수 있게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브라함의 씨앗이셨다. 즉, 그분께서는 오늘날 이스라엘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바로 그 유대인의 신분을 지니고 이 세상에 오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절대로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아브라함의 육적 후손들을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언약을 말씀하신 그대로 지키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여전히 하나님의 선민이며 언약 안에서 보호를 받는다.
오늘날 중동의 정세를 보면, 이 세상의 종말과 연결된 사건이 머지않아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말씀하신 이 세상 종말과 관련된 모든 사건의 연결고리는 이스라엘과 중동에 걸려있으며, 또, 그러한 사건이 일어날 만한 형국이 점점 갖추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각주
1 심재길, 「심재길 성서연구: 이스라엘 건국과 중동전쟁-‘분리독립’ UN결의 무시한 건국과 아랍국과의 충돌」, 매일종교신문.
2 위의 기사.
3 위의 기사.
4 https://ko.wikipedia.org/wiki/이스라엘_독립_선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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