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결혼 진단1」 참된 결혼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청년에게
박지훈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 청년이라면 분명히 참으로 복된 성경적인 결혼을 꿈꿀 것이다. 필자 역시도 결혼을 앞둔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동안 기도하면서 성경과 신앙도서를 통해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성경적인 결혼에 관해 써보려고 한다. 참된 신앙을 가진 청년이라면 결혼을 생각하며 준비하는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충돌과 혼란을 경험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혼란과 충돌 대부분은 이제까지 별생각 없이 보고 듣고 배웠던 세속적 결혼관에서 비롯된다. 이는 진리가 세상을 완전히 거스르는 것이니만큼, 성경적인 결혼관 역시도 세상이 요구하는 결혼관과 정면으로 부딪치는 일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제의 원인이 되는 세상의 결혼관은 과연 어떠한가?
지난해 12월 무렵, 국내의 D 결혼정보회사의 연구소에서는 ‘2014년 결혼 리서치’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인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배우자상(像)을 공개한 바 있다.1 이 연구 결과에는 이상적인 신랑신붓감의 조건으로 나이, 직업, 연 소득, 자산, 학력, 신장 등의 매우 구체적인 항목이 제시되었는데, 남자의 경우는 연 소득이 5천만 원, 자산이 2억 7천만 원에 공무원, 사무직, 금융직 등 좋은 직장을 갖춘 사람이 이상적인 신랑감으로 나타났다.
여자의 경우도 기대 수치가 남자보다 낮을 뿐, 평균 이상의 높은 조건이 제시되었다. 외모나 성격 같은 수치화하기 어려운 항목도, 세상 사람들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었다. 이러한 높고 까다로운 배우자 선택 기준은 결혼식이나 혼수, 집 마련과 같은 결혼 준비 과정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다. 작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평균 결혼 비용이 무려 2억 3,798만 원이나 된다고 한다.2
비싸고 복잡한 결혼을 싫어하는 신랑과 신부가 간편한 결혼을 원한다고 해도, 체면과 겉치레를 중시하는 우리 정서상 양가 부모님의 의사에 못 이겨 온갖 절차와 형식이 들어가는 일이 부지기수다. 로이드 존스는 일찍이 에베소서를 강해 설교하면서 세속적인 결혼관에 대해 “순전히 육신적이며, 욕망을 합법화시킨 것일 뿐”3이라고 표현했는데, 위에서 살펴본 결혼관도 같은 결론을 내림이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결혼관 가운데 결혼한 사람들의 결혼 생활은 과연 얼마나 잘 유지되고 있을까?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2010년 기준으로 한 해 동안 32만 6천 쌍이 결혼했고, 그 해에 11만 7천 쌍이 이혼했다.4 새로운 부부 100쌍이 생겨나는 동안 다른 곳에서 35쌍은 파국을 맞고 있는 셈이다(물론, 결혼한 그해에 바로 이혼하는 부부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인구 천 명당 이혼 발생 빈도는 2.3건으로(2012년 기준), 러시아나 미국 같은 나라보다는 낮지만, 선진국 가운데 상위권에 속한다.5
그뿐만 아니라 가정폭력도 갈수록 늘고 있는 데다 그 방법마저도 갈수록 흉악해져 가고 있다.6 청소년 비행은 날로 심각해져 가정교육이 파탄에 이르렀음을 드러내고 있으며,7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간통법마저 위헌판결을 받고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심각한 가정 문제들은 모두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깨지면서 나타나는 일들이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의 근본 원인은 성경적이지 않은 육신적 결혼관 위에서 결혼 생활을 꾸려간 것에 있다. 물론, 현대 가정의 모든 문제가 잘못된 결혼관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허약한 기초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 든든히 서 있는 것이 불가능하듯, 왜곡된 결혼관이 팽배한 이 사회에서 수많은 가정이 파국을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은 오늘날의 결혼관을 이렇게 비판하는 것에 대해 불평할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결국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하는 것이 아닙니까?”라고 할 것이다. 맞다. 그들은 정말로 사랑해서 결혼한다. 현대 사회에서 전혀 사랑하지도 않는데, 순전히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를 손에 넣기 위해 결혼하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이란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남편이 돈을 많이 벌어오지 못하면 사그라지는 사랑, 육체적인 매력이 줄어들면 다른 근거를 찾아야만 유지되는 사랑이 과연 온전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비기독교적인 결혼 원리 가운데 아무리 고상한 것이 있다고 해도, 결국 세상의 헛된 철학과 사상에서 가져온 것에 불과하다. 이처럼 진리가 아닌 모래성과 같은 사람의 취향과 생각으로 이루어지고 유지되는 결혼을 그리스도인인 우리가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과연 성경이 말하는 결혼은 무엇인가?’를 생각해야만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각이 아니다. 죄로 물든 사람 대부분이 생각하는 결혼은 결국 자기 욕망을 합법화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불신자 부부 중에서도 나름대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도 성경이 말하는 궁극적인 결혼의 목적과 영광은 전혀 알지 못하는 상태이므로 진리를 따라 사는 우리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사실, 성경이 가르치는 결혼이 무엇인지 참으로 이해한다면, 수많은 부부가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진리는 사람의 지혜와 철학이 아닌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에서 나온다. 그러므로 결혼을 비롯한 이 세상의 모든 일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성경을 깨닫고 믿는 사람, 즉 그리스도인뿐이다. 따라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속적인 결혼관을 단호히 거부해야 하며, 참된 결혼관 역시도 오직 성경에서 찾아야만 한다.
성경이 말하는 남편과 아내
성경이 말하는 결혼이 무엇인지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성경이 말하는 남편과 아내에 관해 생각해보도록 하자. 성경적인 결혼을 생각하고 준비하는 일에 있어 가장 중요한 문제는 ‘나 자신이 어떤 남편이 되고 어떤 아내가 되어야 할 것인가?’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이 사실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살기 때문에 모든 불화와 갈등이 생겨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5장 21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성경이 말하는 남편과 아내의 본분과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하자.
아내의 본분과 역할
「아내들아,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분은 친히 몸의 구주이시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모든 일에 아내들도 남편에게 복종하여라. (엡 5:22~24)」
이 말씀은, 아내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여기서 “주께 하듯 하라.”라는 말씀은 성도가 주님께 하는 것처럼 절대적이고 철저하게 복종하라는 뜻이 아니다. 이 말씀은 “남편에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이 주님께 복종하는 자라는 사실을 겸손하게 표현하라는 것으로서, 주님께서는 그런 여인의 신앙을 기뻐하신다.”라는 의미이다.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근거로 삼아서, 바울 사도가 당시에 흔히 볼 수 있었던 남성 우월주의자라고 매도한다. 그러나 이 말씀 뒤에 이어지는 아내에 대한 남편의 의무를 살펴보면, 그런 비난이 얼마나 근거가 없는지 쉽게 드러난다. 따라서 그런 말과 행동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고 비난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대항해 싸우는 격이 된다.
사도 바울은 남성 우월주의적인 관점에서 복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겸손과 사랑에 근거하여 아내에게 겸손히 복종하라는 명령을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1장 3절의 “모든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여자의 머리는 남자이며,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라는 말씀에 그 뜻이 잘 나타나 있다. 이는 경륜적(經綸的) 삼위일체라고 부르는 가르침으로써,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자원하여 복종하시고, 성부 하나님과 동등이심을 취하려고 하지 않으셨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부 하나님께 자원하여 자기를 낮추어 복종하셨으니 “아내도 이와 같이 남편에게 복종하라.”라는 매우 인격적인 명령인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 명하는 이 복종은 절대로 억압 가운데 눌려 지내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긍휼과 자비가 많으신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셨고 당신의 자녀에게 명하시는 복종이 어찌 그런 의미일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아내는 진리와 양심을 근본적으로 거스르는 일이 아닌 이상, 매사 남편의 권위를 인정하고 복종해야 한다. 만약 그럴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지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은 단지 소극적으로 복종하는 것뿐인가? 그렇지 않다. 창세기 2장 20절에는 아내가 남편의 “돕는 배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말씀은 위에서 언급했던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심과 같이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라는 말씀과 일맥상통한다. 머리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몸을 상상할 수 없으며, 몸이 없는 머리 역시 제 역할을 다 할 수 없다. 아내는 남편의 생각과 뜻에 협력하고 남편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어서 온전한 가정을 이루는 역할을 적극적으로 감당하는 것이다. 즉, 궁극적인 주도권과 결정권이 남편에게 있되, 부부의 생각과 행동은 언제나 하나를 이루고 협력하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아내는 결코 남편보다 열등하지 않다. 남편과는 다른 고유한 지위와 역할을 지닌 것이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모든 일에 아내들도 남편에게 복종하여라.” 이 말씀에서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종이 그리스도를 향한 교회의 복종에 비유되고 있는 것을 생각해보라. 이 복종은 세상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처럼 굴욕적인 것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새 생명을 얻은 성도만이 그 가치를 헤아리고 누릴 수 있는 매우 영광스러운 특권이다.
남편의 본분과 역할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 같이 하여라. 이는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고, 교회를 자기 앞에 영광스럽게 나타내서 티나 주름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몸을 사랑하는 것같이 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다. (엡 5:25~28)」
이 말씀이 강조하는 남편의 본분은 “사랑”이다(물론 아내라고 해서 사랑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아니며, 아내에게 강조된 복종의 개념에 이미 사랑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남편에게 요구되는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같은” 높은 수준의 사랑이다. 그러나 남편이 아무리 아내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과 완전히 똑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앞서, 남편을 향한 아내의 복종이 그리스도를 향한 복종과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는 것처럼 말이다.
사랑은 크게 필리아(Philia), 에로스(Eros), 아가페(Agape)8로 나누어 말할 수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결혼관에는 필리아와 에로스만이 있을 뿐이다. 그에 비해, 예수님의 사랑인 아가페가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결혼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필리아나 에로스를 무시하거나 열등하게 여기지 않는다. 우리도 세상 사람과 마찬가지로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그들과 다른 육체를 입고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 종류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해야 한다. 주님의 사랑이 없는 자연적인 사랑은 결국 죄로 인해 욕망과 정욕으로 변질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든 남편은 주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으로부터 참 사랑을 배워야만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첫째, 티나 주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하셨다. 둘째, 자신을 내어주시면서 사랑하셨다. 셋째, 완벽한 거룩함 가운데 장차 그분 앞에 영광스럽게 나타내시려고 사랑하셨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를 이처럼 사랑하되 첫째, 아내의 모든 부족함에도 사랑해야 한다. 둘째, 자신의 생명을 다해 전적으로 사랑해야 한다. 셋째, 정결하고 거룩한 아내가 되게 하려는 선한 뜻을 품고 사랑해야 한다.
자매들이여, 이 세상에서 이 정도로 온전하고 아름다운 사랑을 본 일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랑으로 아내를 품어주는 남편의 사랑을 존중하며, 그 뜻에 순복하기를 즐겨 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런 사랑을 거스르는 일은 결국 아내 자신을 힘들게 하기 때문이다. 형제들도 이런 사랑으로 아내를 끝까지 품어줄 생각과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 결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다. 아내의 복종이 그리스도의 명령이듯, 남편의 사랑 역시 그리스도의 엄숙한 명령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러한 사랑으로 교회를 항상 품어주신다. 교회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십자가를 바라보라. 그 십자가가 그 사랑을 매일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완전한 사랑으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시고” 계신다. 그리고 교회는 장차 그분의 능력으로 영광스럽게 되어, 모든 흠과 티가 완전히 사라진 거룩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교회 외에 다른 어떤 것에도 구속의 사랑을 쏟지 않으신다. 외도나 간통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오직 한 교회, 오직 그분의 백성들만이 그분의 마음 안에 있을 뿐이다. 물론, 사람인 남편이 자기 아내를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만큼 사랑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아내가 예수님의 복종을 생각하며 기꺼이 남편에게 복종하듯, 남편 역시 예수님의 심히 아름다운 구속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자기 아내를 깊이 사랑해야 한다.
남편과 아내는 각각 예수님께로부터 이런 역할을 부여받았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속하여 세상에 대해 죽었듯이, 남편과 아내 역시도 서로에게만 속하여 다른 사람에게 한눈을 팔면 안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충실하면서 모든 일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한다. 일방적인 관계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남편과 아내는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가운데 피차 복종”하기에 힘써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의 의미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 이 비밀이 크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한다. (엡 5:31~32)」
성경은 남녀의 결혼을 “연합”, “둘이 한 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일을 “큰 비밀”이라고 한다. 불신자는 이 비밀을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리스도인은 완벽하게 알 수는 없어도 충분히 이해가 가능하다. 이 비밀을 알 수 있는 특권은 오직 그리스도인에게만 주어진다.
이 신비로운 비밀의 핵심은 부부가 “한 몸이 된다.”라는 것이다. 에베소서의 이 말씀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결혼인 아담과 하와의 연합이 이루어질 때를 기록한 창세기 2장 24절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구절이다. 그때, 아담은 자기 아내 하와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이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불릴 것이다(창 2:23).”
이처럼, 여자는 남자에게서 취한 것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남자는 그 부모를 떠나 자기 일부인 그 여자, 즉 아내와 연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남편과 아내의 신비한 연합이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러한 남편과 아내의 연합이라는 비밀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에 관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아담이 말한 뼈와 살, 그것으로 지어진 여자, 그리고 그 둘의 연합이 바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아는바 신약의 교회는 어떻게 지어졌는가? 바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둘째 아담, 곧 예수님의 피 흘리심과 창에 상한 그분의 허리를 통해 지어졌다. 달리 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의 뼈 중의 뼈이고 살 중의 살”인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남녀의 결혼을 “한 몸”이 된다고 하신 말씀은 결코 가벼운 의미가 아니다. 그분의 교회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한 몸 됨과 같은 신비라고 말씀하실 정도로 지극히 엄숙하고도 고귀한 것이다. 남편과 아내, 이 둘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실제로 한 몸이 되는 것이며 더는 둘이 아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않도록 하여라(막 10:9).”라는 말씀을 어기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결혼의 제정 목적 –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는 에베소서 5장의 말씀을 통해, 남편과 아내의 의무 및 성경적인 결혼의 의미에 관해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성경이 말하는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모형으로써 매우 엄숙하고 신비스럽고 고귀하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고귀한 결혼을 통해 과연 무엇을 이루고자 하신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결혼의 목적을 세 가지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준다. 첫째, 결혼은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도록 제정되었다(창 2:18). 둘째, 합법적인 자손들을 통하여 인류가 번성하고, 경건한 씨를 통하여 교회가 번성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말 2:15). 셋째, 부정(不貞)을 막기 위하여 제정되었다(고전 7:2, 9).9 결혼의 목표를 제시해주는 이 세 가지 항목이 무슨 의미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남편과 아내가 서로 돕도록 제정되었다(창 2:18)
「또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겠다.”라고 하셨다. (창 2:18)」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아담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 단연 으뜸이었다. 그에게는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는 역할이 주어졌고, 그에게 금지된 것은 선악과 단 하나뿐일 정도로 거의 무제한적인 자유가 주어졌다. 심지어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다른 모든 피조물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특권까지 얻은, 그야말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자였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돕는 배필”이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좋지 않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결혼 제도를 제정하신 제1의 목적은 바로 “서로 돕는 것”이다. 이에 관해, 청교도 윌리엄 퍼킨스는 “(이러한 동반자로서의 교제를 통하여) 결혼한 당사자들이 그들의 부르심의 의무들을 더욱 안락하고도 편안하게 수행하게 된다.”라고 말했다.10 이러한 원리는 잠언 31장 11절과 12절에서 아주 잘 드러나고 있다.
「그 여자의 남편은 마음으로 아내를 신뢰하고 아무런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그 여자는 평생 동안 남편을 잘되게 하고 결코 해롭게 하지 않는다.」
(2) 합법적인 자손들을 통하여 인류가 번성하고, 경건한 씨를 통하여 교회가 번성하기 위하여 제정되었다(말 2:15)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손을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진심으로 자기 심령을 지켜서 너희가 젊어서 얻은 아내를 배신하지 마라. (말 2:15)」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 “경건한 자손”을 원하신다는 사실을 말씀하셨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이어지는 거룩한 계보는 결혼과 출산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다. 역사상 모든 그리스도인의 계보 역시도 결혼과 “경건한 자손”의 출산이 아니었다면 이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교회를 유지하고 번성하게 하시기 위해 결혼을 제정하셨다.
(3) 부정(不貞)을 막기 위하여 제정되었다(고전 7:2, 9)
「음행에 빠질 유혹 때문에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도록 하여라. …… 절제할 수 없으면 결혼하여라. 정욕이 불타는 것보다는 결혼하는 것이 더 낫다. (고전 7:2, 9)」
로마 천주교는 지나친 금욕주의에 경도되어서, 사람의 성욕 자체를 저급하고 더러운 것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들은 결혼하지 않는 것을 결혼하는 것보다 더 고상하고 거룩하게 여긴다. 그러나 성경은 “결혼을 금하는 자들”이 나타날 것을 말하면서, 그들을 “속이는 영들과 악령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들, 양심에 화인이 찍힌 거짓말쟁이”라고 정죄한다(딤전 4:1~3). 이처럼, 결혼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부여하신 성(性)과 그 욕구에 대한 합법적인 해결책이며, 이는 부끄럽고 저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아름답고 신비한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제까지 우리는 남편과 아내의 의무, 결혼의 의미와 제정 목적에 관해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결혼 전의 청년 남녀가 어떻게 이런 원리를 따라 결혼을 준비해야 하는지에 관한 일반적인 사항 몇 가지를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내가 사랑하는 상대방이 성경적인 원리에 따라 참으로 평생 함께할 만한 사람인지 깊이 숙고하며 기도하라.
이 말은 결코 상대방에게 의심과 불신을 품으라는 뜻이 아니다. 단지, 많은 청년 남녀가 거룩한 목적이 아닌 육적인 끌림과 세상적인 기준을 따라 배우자를 고름으로 인해, 평생 어려움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던 일이 종종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하려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생각과 마음으로 교제하고 있는가? 이러한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 교제하고 있지 않았다면, 지금부터라도 깊이 숙고하고 교제하면서 꼭 그렇게 하길 바란다.
“평생 함께할 만한 사람”이라 함에는 그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도 포함된다. 이에 대해 리차드 백스터는 “배우자를 택할 때 진실로 사랑스러운 사람, 특히 마음의 덕스러움 때문에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는 사람을 택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으며, 심지어 “전심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음을 각자가 분명히 하기 전까지는 결혼하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하고 있다.11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일은 의무감이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자발적이고 깊은 사랑으로 인한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혹시 여러분에게 사랑하는 상대방의 마음이 식게 할 만큼 중대한 문제는 없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을 제외한 모든 상황에서 상대방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줄 수 있을지 깊게 숙고할 필요가 있다.
결혼 전의 교제 기간은 그러한 사랑으로 평생 서로를 용납하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는 시간으로 삼아야 한다. 만일 이러한 성경적인 결혼 원리를 무시한다면, 그러한 죄를 회개하고 함께 올바른 길을 찾아 나서기 전까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함은 물론이고, 온갖 고생의 쓴 열매를 먹게 될 것이란 사실을 명심하라.
둘째, 서로의 영혼을 도우며 영적으로 무장하라.
이 말 역시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육적인 준비에만 골몰하면서, 영적인 준비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에 이런 권면을 하는 것이다. 독자 여러분과 함께하는 미래의 배우자는 평생을 함께 신앙생활을 해야 할 사람이지 않은가? 혹, 불신자와 교제 중인 그리스도인 청년이 있다면, 자신이 지금 얼마나 엄청난 일을 벌이고 있는지 깨달아야 한다. 불신자 남편 혹은 아내와 더불어 무슨 수로 성경이 말하는 참된 가정을 이루어나갈 수 있겠으며, 또 어떻게 영원한 세계를 함께 바라보며 서로를 도울 수 있겠는가?
육적인 기쁨과 안락함은 극히 일시적일 뿐이며 영원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청년 남녀는 오락과 유흥이 주가 되는 세속적이고 가벼운 교제보다, 함께 독서하고 예배드리는 일을 통하여 여러분의 사랑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 아래 종속시키는 훈련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결혼에 있어 근본 토대는 육적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가 영적으로 단단히 결합하는 것임을 명심하라.
셋째, 음행을 피하라.
앞서 인용한 고린도전서 7장 2절의 말씀은 남녀의 정상적인 결혼 관계를 벗어나 이루어지는 모든 성관계를 음행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이 말씀은 ‘혼전 순결’에 대한 케케묵은 논란을 잠재우는 명백한 말씀임이 분명하다. 그리스도인은 혼전 순결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이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대방이 내 성적 쾌락을 위한 도구나 수단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물론, 사랑하는 청년 남녀 사이에 일정 정도의 신체적 접촉이나 사랑을 담은 대화 등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행여 자기 성적 욕구를 위해 상대방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마귀가 여러분의 관계에 틈타 시험에 빠지게 할 만한 빌미나 습관은 없는지 늘 주의하고 절제하면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게 교제를 하기에 힘써야 한다.
그리고 이미 금지된 선을 넘은 청년 남녀들은 철저히 회개하고, 결혼 전까지 다시는 그런 죄악에 빠지지 않기 위해 실제적이고 분명한 약속을 정하고 굳게 지켜가기를 바란다.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형이 됨을 항상 기억하라. 그리스도께서는 결코 교회를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지도 않으셨고, 정결치 못하게 대하지도 않으셨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연합하게 하기 위해 친히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이다. 그리스도인 남녀의 결혼은 단순한 결합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세 전부터 예정하신 구속 계획이 실제로 적용되는 일의 하나로서,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비유될 정도로 심히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이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여러분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께 지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모든 기도와 간구를 아끼지 않길 바란다. 우리 결혼의 최종 목적지는 천국이다. 여러분의 배우자는 그 영원한 나라로 가는 여정에서 가장 힘이 되는 좋은 동반자가 될 사람이다. 또한, 이 땅의 삶이 끝나면, 지극한 영광 안에서 유업을 함께 물려받을 공동 상속자가 될 사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놀라운 소망이,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결혼을 준비하는 일에 거룩한 열심을 내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오직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각주
1 듀오 휴먼라이프 연구소 – “2014년 결혼 리서치” (ebuzz 기사 발췌)
2 듀오웨드 – “신혼 부부의 결혼비용 리서치” (파이낸셜 뉴스 기사 발췌)
3 마틴 로이드 존스, 『에베소서 강해 6권 – 영적 생활 (Life in the Spirit)』, 서문강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CLC), 2008, p. 114.
4 통계청 – “인구동태건수 및 동태율 추이”, http://kostat.go.kr
5 United Nations World Demographic Report – “World divorce rates, 2011”
6 한국가정법률상담소 (가정폭력행위자들이 사용한 흉기 분석 결과, http://www.lawhome.or.kr)
7 가출청소년 신고현황 (국무총리실 공식 블로그 발췌)
8 필리아(Philia) – 친구 간의 사랑, 인간애(친밀함), 에로스(Eros) – 육신적·정욕적 사랑, 아가페(Agape) – 그리스도의 사랑
9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4장 결혼과 이혼 2항
10 조엘 비키, 『칼빈주의 (Living for God’s glory: An Introduction to Calvinism)』, 신호섭 옮김, 지평서원, 2010, p. 525에서 재인용
11 리차드 백스터, 『하나님의 가정 (The Godly home)』, 장호준 옮김, 복 있는 사람, 2012, p. 213.
「결혼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결혼 진단1」 참된 결혼을 바라는 그리스도인 청년에게
(※ 한 주간 1 명, 총 3,397이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도움이 정말 많이 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