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해
(4) 하나님의 속성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 4:24)
오늘은 소요리문답 제4문을 설교하겠습니다. 제4문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라고 묻습니다. 이 질문은 참 중요한 질문입니다. 많은 종교학 서적들은 하나님에 관한 나름의 정의를 내립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철학자들이 정의한 ‘하나님’ 개념을 살펴보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절대 아닙니다.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대개 ‘우주의 근원’으로 이야기합니다.
주로 실존주의 철학자가 이렇게 말하곤 하지만, 폴 틸리히와 같은 부류의 신학자도 이렇게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 외에도, ‘절대자’, ‘초월자’, ‘신(神)━단순히 신━’, 심지어 ‘폭군’, 또는 ‘하나의 거대한 어떤 영’, 대부분 이런 식으로 뜬구름 잡듯이 정의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계시)이 없으면, 타락한 사람의 지혜는 하나님을 겨우 이 정도밖에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 그리스 철학의 정점에는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 이 세 사람이 이룩한 철학 사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철학을 대표하는 철학자인 그들은 하나님, 즉 자신들의 철학이 어떤 절대자의 존재를 가리킨다는 사실은 깨달았습니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 철학은 참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 절대자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반면, 동시대의 유대인들은 철학자들이 알 수 없었던 하나님을 알고 믿었습니다. 어떻게 알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구약 성경(모세오경)’이라는 계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그리스인은 사고방식이 서로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보통 유대인보다 그리스인이 훨씬 더 지혜로우며 지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참 흥미롭게도, 그리스인이 아닌 유대인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유대인이 똑똑해서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말씀 때문입니다.
제가 항상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사실은 바로, 사람은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누구신지,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면 철저하게, 정말 철저하게 성경을 파고들어야 합니다. 단순히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것을 통해 하나님을 알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어떤 체험을 근거로 “하나님께서는 이러저러하시다.”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이시며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단순한 ‘힘’이 아니십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은 하나님을 어떤 거대한 ‘힘’처럼 보았습니다. 쉽게 말해, 마치 헤라클레스가 가졌던 것 같은 어떤 힘, 우주 만물을 지탱하는 어떤 힘이라고 보았습니다. 복잡하게 말하지만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그것입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만물을 조성하신 자가 있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존재가 누구냐?”라고 했을 때, 그들은 “엄청난 힘을 가진 자”라고 밖에 대답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이 세상 만물을 운행하시고 유지하시는 분이시다.”라고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 사람들은 그저 어렴풋이 하나님을 감지할 뿐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테네에서 설교할 때 그 사실을 가리켜, ‘알지 못하고 섬기는 그 신’을 알게 하겠다고 하지 않습니까(행 17:23)? 그렇습니다. 불신자라고 해도 어떤 신이 존재한다는 사실까지는 충분히 알 수 있으나, 정작 중요한 대목인 그 신이 어떤 분이신가는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알고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계시하시는 진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당신은 이러한 분이시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으셨다면, 우리도 그리스-로마 및 세상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어떤 절대자’ 정도로만 알았을 것입니다. 이 ‘절대자’ 개념을 가장 쉽게 얘기하면 바로 ‘조물주’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조물주’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물론 그 조물주에 대해서는 막연하게 알면서 말입니다. “세상 만물을 만드신 분이 있는데, 그분이 부처인지, 하나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물주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스스로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명확하게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절대자이십니다. 물론, 이 절대자는 세속 철학이 말하는 ‘막연한’ 절대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절대적인 근원이신 분이십니다. 다시 말해, 모든 면에서 완전하신 전지전능한 주권자이십니다. 소요리문답 제4문은 이 사실을 이렇게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데,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십니다.”
여기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하나하나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하나님께서는 인간과는 정말 차원이 다르신 존재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도는 “하나님”이라고 할 때, 그분에 걸맞은 경외하는 마음을 가득 담아서 해야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난 수요일에 십계명 중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라는 제3계명 강의를 하며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교회가 얼마나 하나님을 우습게 대합니까? 마치 하나님을 인간처럼 여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고작 자기 수준에서 이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 신화를 읽어보셨다면 잘 아시겠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의 모습은 전형적으로 사람을 투영해놓았습니다. 그래서 그 신들은 음탕한 짓도 벌이고, 술도 퍼마시고, 간음도 저지르고, 도둑질도 하고, 사기도 치고, 전쟁도 일으키고, 사랑싸움도 하고, 아주 별짓을 다 합니다. 그 똑똑하다는 그리스인들이 생각하던 신의 모습이 겨우 그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계시를 통해 알게 된 신은 어떤 분이십니까? 거룩하시고, 존귀하시며, 영광스러우시고, 진실하시며, 무한하시고, 무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은 우리 인간으로서는 감히 꿈도 꿀 수 없고 제대로 생각할 수조차 없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을 당신의 말씀을 통해 충분하게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더하여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일방적으로 선포합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과 하나님에 관하여 대화할 때,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밑도 끝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말장난에 놀아나게 될 뿐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대화를 이어가십시오.
여러분, 여러분에게 불신자 친구가 있지요? 주변에 아직 교회 안 다니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 사람들하고 얘기할 때, 꼭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전제 위에서 얘기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증명하는 차원에서 접근하면, 천년만년이 가도 그들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전제하고서 그 사실을 선포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렇게 출발합니다. 누가 뭐래도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계셨고, 그 사실은 너무도 자명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존재하십니다. 그런데 거기에 대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존재하실 수 있으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아무리 물어봐야 전혀 소용없습니다. 중세 신학자와 철학자들이 이 일을 하다가 오히려 문제를 더 복잡하고 머리만 아프게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속성과 성품을 깊이 생각하면서, 성경이 가르쳐주는 그대로 믿고 따라야 합니다.
그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 중 하나가 바로,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인 요한복음 4장 24절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께서는 무한한 영이십니다. 물론,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의 영과 똑같은 영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점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영이시다’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께서는 물리적/육체적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영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물리적 감각으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육안으로는 하나님을 절대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는 우리 육체도 영화롭게 변화될 것이므로,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분명하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는 아닙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신비주의자를 조심해야 합니다. 자꾸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체험하려고 하다 보면, 결국 진리에서 이탈하고 맙니다. 귀신을 하나님처럼 섬기면서 사탄이 역사하는 대로 끌려다니게 됩니다. 왜 그렇게 될까요? 감각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을 감각을 통해 찾으려는 이들을 사탄이 그냥 내버려둘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그런 이들에게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나타나 자기를 하나님 섬기듯 하게 하고야 맙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계시해주신 진리로 사람들을 만나시지, 그 외의 다른 방식으로 만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인간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바로, 이 하나님께서 인간을 죄와 심판에서 건지시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고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일을 성경에서 뭐라고 합니까? 구원의 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이 은혜를 달라고 먼저 요구하거나 스스로 찾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거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무한한 사랑과 자비하심으로써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주권적으로 이루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변하지 않으십니다. 반면 인간은 모든 것이 변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도, 생각도, 관점도 변하며, 나이도 먹습니다. 그러다 결국은 죽게 됩니다. 이렇듯, 인간은 계속 변합니다. 흘러가는 시간 안에서 살기 때문에, 계속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더 나아지는 일도 모자라게 되는 일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거룩해지시지도 덜 거룩해지시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항상 거룩하시고, 항상 지혜로우시며, 항상 존재하시고, 사랑과 인자하심으로 항상 가득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죄를 심판하십니다. 안타깝게도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진리는, 바로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시는 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지만(요 3:16), 또한 세상의 죄를 심판하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말만 귀가 마르고 닳도록 듣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것 외에, 하나님의 속성에 아는 대로 한 번 얘기해 보세요.”라고 하면 말을 잘 못 합니다. 아무리 신앙생활 오래 한 신자라도, 주저주저하면서 겨우 한두 가지 얘기하는 데 그칠 것입니다. 오늘날 쉽게 볼 수 있는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데 어떻게 예배를 드릴 수 있고, 그분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그런 신앙은 미신적인 신앙에 불과합니다.
여러분, 미신이 뭐 별것인 줄 아십니까? 알지도 못하고 숭배하는 것, 그것이 바로 미신입니다. 기독교는 예외일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그대로 적용됩니다. 여러분, 기독교 역사 속에서 왜 그토록 많은 신학자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깊이 파고들었겠습니까? 기독교는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고 믿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도 잘 모르면서, 그냥 막연히 “하나님은 살아계시며 그분은 사랑이시다.” 이런 식으로만 알고 있다면, 그 신앙이 어떻게 올바른 신앙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신앙은 절대 온전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 제발 미신적인 수준에서 신앙 생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에 대해 많이 배우고 알아야 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신가를 아는 지식이 자꾸만 자라가야 합니다. 그 일을 위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간절하게 구하십시오.
여러분, 무지 속에서 헛되이 하나님을 섬기지 마십시오. 찬송을 부르고, 성경책을 가지고 있으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고, 세례도 받았고, 기도도 드리고 있으니, 하나님을 잘 믿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오. 참된 성도, 즉 거듭난 사람의 특징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사람은 “우리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실까? 우리 성령님은 어떤 분이실까?”하면서 더욱 진리를 알고자 합니다. 거듭나는 그 순간부터, 마음속에서 생기는 욕구는 바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알려는 소원’이 끝없이 솟아납니다.
그러나 현대 교회의 신자들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알려고 합니다. 참으로 어리석지 않습니까? 어떻게 성도라는 이들이 자아숭배를 추구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이들이 모인 교회는 심각하게 타락한 교회이며 참으로 잘못된 교회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일에 대해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야 합니다. ‘신앙의 진보’란 그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1년, 2년, 3년, 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더 알아가며 체험해야 합니다. 참된 신앙은 절대로 건전한 체험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와,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시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정말로 삶을 이처럼 온전하게 해 주시는구나. 내 염려와 근심도 아시고 내 생각도 아시는구나.”하면서 하나님을 지적으로도 알고 체험적으로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신앙이 참으로 좋은 신앙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자꾸 체험적으로만 하나님을 알려고 하니까, 계시된 진리와는 동떨어진 아주 이상한 하나님, 잘못된 하나님을 말하게 되는 겁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이름은 똑같은데, 그 속성과 성품이 성경의 하나님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헛되이 섬기지 않도록 항상 주의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것을 하나님이라고 하는 말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물 중, 유일하게 우리 사람에게만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성경에서는 개나 돼지 같은 짐승에게 하나님을 예배하라고 요구하신 대목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나무나 풀이 하나님을 예배합니까? 오직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에게만 당신을 예배하도록 하셨습니다.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말의 뜻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주신 거룩하고 고귀하신 뜻, 바로 당신의 형상대로 지어진 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예배하고 섬기는 일을 기뻐하신다는 진리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 진리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을 올바르게 섬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알고 믿기를 힘써야 합니다. 신앙생활을 환상적으로 하려고 하지 마시고, 신나게 하려고 하지도 마십시오. 신앙을 자아실현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하지 마십시오. 오직 진리를 따라, 거룩하시고 영광스러우시며 존귀하시고 만물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더 알려고 하십시오. A. W. 토저가 쓴 『하나님을 바로 알자』라는 소책자에는,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심령을 아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자꾸만 알고자 하고,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자꾸 배우고자 하는 그런 마음과 소망이야말로, 그가 거룩한 심령을 가지고 있다는 표지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세상 영광에 사로잡혀, 눈만 뜨면 ‘돈 돈 돈 돈’하고, 사업과 일과 자기 인생의 꿈에 사로잡혀 있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 즉 그리스도인은 매일매일 하나님을 더 알려고 하며, 진리를 사모하는 마음에 늘 사무칩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일부러 구별되려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을 더욱더 가까이 섬기려고 하다 보니까, 기도도 드리며 예배도 드리면서 점점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사람은 온전히 그분을 알려는 열심을 갖게 되고, 그 열심은 힘써 주의 진리를 따라 살게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위대하고, 대단하며, 요란하게 할까?” 이런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더욱더 온전히 알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 은혜와 사랑을 온전히 믿고 사모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진정한 신앙생활이며, 바로 그 과정 가운데 하나님을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이 질문의 정답이 무엇인지 아는 일도 중요하지만, 여러분이 그 답을 온전하게 고백할 줄 아는 일도 무척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내 구주이십니다. 그분께서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분께서는 내 인생의 목자가 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진리의 영이시며, 그분은 마땅히 예배를 받으셔야 할 분이시고, 내가 마땅히 예배를 드려야 할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에 대한 진정한 정답은 이런 것입니다. 부디, 소요리문답을 인격적으로 가르치고 배우십시오. 자꾸 기계적으로 가르치고 배우려고 하니까 교리 교육이 실패하는 것입니다. 오늘 집으로 돌아가실 때, 모두 마음을 다하여 “주여,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말씀을 통해서, 진리를 통해서 알게 해 주옵소서.”하고 하나님 앞에 간절히 구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 한 주간 1 명, 총 1,190이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