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해
(2) 성경, 유일한 신앙의 규칙 -상-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오늘은 소요리문답 제2문을 설교하겠습니다. 소요리문답은 “하나님께서는 무슨 규칙을 우리에게 주사 어떻게 자기를 즐거워할 것을 지시하셨습니까?”라는 이 질문에, “신∙구약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하고 영화롭게 할 것을 지시하는 유일한 규칙입니다.”라고 답합니다.
소요리문답은 우리 신앙의 근본 토대가 무엇인지를 정말 잘 정리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기독교, 교회, 기독교 신앙은 분명히 성경에 근거하지 않고 성경이 지시하거나 가르치지 않는 것들을 믿고 가르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결국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일을 거부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당신을 사랑하고 예배하고 기뻐하며 당신에게 소망을 두어야 하는가를 바로 성경에 제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신앙의 원리는 항상 성경에 근거해야 합니다. 제2문은 지금 그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경전이 있습니다. 종교마다 각각의 경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는 수많은 불경이 있습니다. 또 유교를 종교라고 여기면━종교는 아니지만━유교에도 그 나름대로 경전이 많이 있습니다. 또 힌두교에도 경전이 있고, 하다못해 이단인 모르몬교나 통일교에도, 모르몬경과 원리강론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에는 경전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경전과 성경은 크게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성경이 특별 계시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무엇을 특별하게 계시하셨습니까? 바로 구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을 계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가르치는 구원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지 않는 한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이 스스로 노력해서는 절대로 캐낼 수 없는 보화가 바로 성경에 계시된 구원입니다.
실제로, 그리스 철학은 신에 대한 관념이 처음부터 막연합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특히 플라톤━는 어떤 절대자의 존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심지어, ‘이데아(Idea)’라는 것까지도 알았습니다. “이 세상은 결국 본체를 비추는 하나의 그림자다.” 이렇게까지 얘기할 정도로 수준이 상당히 높았습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은 끝끝내 하나님을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인격적인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는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 철학은 예수님과 사도 바울이 살던 시대로부터 육백 년 전부터 이미 크게 번성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리스 문화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문화에서 “인간의 구원에 관한 답을 얻었다”라고 말하는 철학자는 단 한 사람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그러하고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 방법을 써도, 어떤 연구를 해도 인간의 생각으로는 특별 계시를 발견해낼 수 없습니다. 성경은 그래서 특별한 계시입니다.
그렇다면 불경이나 힌두교의 경전과 같은 것들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그런 경전들을 그냥 단순히 다른 종교의 경전이라고 한다면, 너무 막연하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다른 경전을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하나님이 아닌 거짓 영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에 주어진 사탄의 음성입니다. 그 속에서는 절대로 하나님을 발견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속에서는 절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구원의 계시를 찾아볼 수 있는 경전은 참으로 성경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특별 계시인 성경이 지닌 특성은 무엇입니까?
첫째, 성경은 무오(無誤)합니다. 아무런 흠도 없습니다. 성경의 무오성은 아주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 특성입니다. 왜냐하면, 17세기부터 독일을 기점으로 유럽의 많은 신학교가 바로 이 성경의 무오성부터 문제 삼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무오하지 않다. 성경에는 오류가 많다.”라는 기조가 2, 3백 년 동안 이어지니까, 현재 유럽에는 학식이 많은 사람부터 배우지 못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특히 지성인 사이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않습니다. 2~3% 만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원래 유럽 지역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80~90% 정도를 차지했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율이 거꾸로 뒤집혀버린 줄 아십니까? 바로 독일에서 꽃피운 합리주의 및 경험주의 철학 때문입니다. 이 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이 바로 자유주의 신학으로, 이 신학이 사람들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인간의 경험과 체험 및 종교적인 역사가 융합된, 이스라엘 민족의 경전이다.’ 이렇게 생각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그 거짓말에 속아 넘어간 사람들은 성경을 더는 신성하게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근대 신학은 결국 성경을 연구한다는 핑계로 보다 철저하게, 아주 철저하게 성경을 파괴해 나갔습니다. 그 체계적인 파괴작업이 바로 고등 비평입니다. 고등 비평에 눈이 먼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기를 포기하고 ‘한낱 모세라고 하는 사람, 혹 여호수아라고 하는 사람, 또는 알지 못하는 누군가가 적어 놓은 종교적인 기록’으로 여기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미국에서 언론의 조명을 받은 예수 세미나를 보면 이러한 일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 세미나에 모인 학자들이 한 일은, 결국 이 성경 말씀━그중에서도 복음서 말씀━을 누가 어떻게 기록했고 전해져 왔는가를 투표하면서 성경의 신실성을 파헤친 것입니다. 결과는 뻔합니다. “복음서를 비롯한 성경 대부분은 오류가 많고 짜깁기 한 것이다. 기존에 알려진 기록자가 아닌 다른 기록자가 기록했다. 예수님이 직접 한 말씀이라고 볼 근거가 없다.” 이런 식으로 성경을 파괴합니다.
이렇듯, 기독교를 대적하는 자들이 가장 먼저 손을 대는 일이 바로 성경의 무오성입니다. 성경의 영감성과 무오성을 파괴해 들어갑니다. 여러분이 무엇을 하든, 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느냐 안 믿느냐에 따라, 여러분의 신앙이 온전한가 아닌가가 판가름나게 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대부분이 말씀 중심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살펴보면 말씀 중심인 교회는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지도 않고, 성경의 가르침에 따르지도 않습니다. 말씀 중심. 그냥 표어로 쓰기에는 참 좋습니다. 말씀 중심. 강단에서 말씀이 전혀 안 나올뿐더러, 교인들조차도 성경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는데도 교회 표어는 말씀 중심입니다.
여러분, 사탄이 교회 바깥에서 성경을 파괴하는 일도 큰 문제지만,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성경에 무지한 일은 그보다 더 큰 문제이고 재앙입니다. 많은 사람이 잘못된 길로 가도, 우리는 성경이 무오하다는 사실을 더욱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학자들이 성경에 관하여 아무리 이렇다저렇다 떠들어대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계시이자 말씀으로 확고하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러면 아무 문제 없습니다. 사탄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 다룰 성경의 특징은 명제성(命題性)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처음부터 끝까지 계시되어 이미 완결되었습니다. 더는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성경은 명제적인 진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조금이라도 현재의 성경에 무엇을 더하거나 빼면 안 됩니다. 지금 미국에서 일부 학자들은 “제4복음서에 제5복음서를 추가해야 된다. 도마복음을 정경복음서로 해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아마 몇 년 지나면, 틀림없이 공공연하게 제5복음서가 끼워진 성경이 출판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성경의 명제성과 함께 다룰 수 있는 특성이 바로 성경의 명료성입니다. 명료(明瞭), 아주 분명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호하지 않습니다. 절대로 모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말로 중얼중얼하면서 “이것이 내 말이니 너희는 이 말을 들으라.”라고 하신 적이 없습니다. 창세기 1장 1절부터 요한계시록 끝까지,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는지는 아주 명확합니다. 다만, 인간이 그 말씀을 해석하고 적용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대체 뭐라고 하는지조차 모르겠다는 것 때문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우리 목회자, 신학생은 성경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야 합니다.
신학생 여러분, 부디 성경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공부하지 마십시오. ‘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고 유명한 목사가 되어 이름을 날려 보겠다.’ 이런 목적으로 신학을 공부하면, 그 사람은 정말 사탄의 종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거룩한 말씀을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고도 분명하게 이해하고 해석하며, 그 내용을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적용하기 위해서 신학을 공부해야 합니다. 그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 다른 목적이 있다면, 신학을 공부하게 해서는 됩니다. 그는 절대로 신학을 공부하면 안 됩니다.
우리보다 성경을 더 잘 아는 존재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사탄입니다. 사탄이 얼마나 성경을 잘 아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이리저리 비틀고 비비 꼽니다. 창세기에서부터 그런 사실이 잘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까? 뱀이 하나님께서 원래 아담에게 주셨던 말을 얼마나 교묘하게 비틀어서 말했습니까? 또,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얼마나 하나님 말씀의 본뜻을 비틀었습니까? 그만큼 사탄은 말씀의 대가입니다. 그러나 사탄은 그 말씀을 영혼을 파괴하는 데 쓰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데 사용합니다. 많은 목회자와 사역자가 대단히 열심히 신학을 공부합니다. 그런 일은 분명히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탐내다가 그만, 사탄의 종으로 전락해버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세 번째로, 하나님의 말씀은 충분합니다. 더 보탤 게 없습니다. 제발 부탁합니다. 강단에서 “하나님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절대로 쓰지 마십시오. 그렇게 말하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사람들을 엉뚱한 곳으로 이끌고 있습니까? 그들은 실로 거짓말쟁이요 사기꾼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철저하게 성경에 두어야 합니다. 성경이 옳다고 해야 옳은 것입니다. 우리는 기록된 이 계시의 말씀이 충족하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알아야 합니다. 더 필요한 것은 없습니다. 만약 무언가 더 필요했다면 하나님께서 주셨을 것입니다. 모자랐다면 보태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말씀의 경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마십시오. 그러면 죽습니다. 그 길은 사망에 이르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우리에게 특별 계시를 주셨습니다. 이 특별 계시의 핵심은, 아까 말했던 대로 구속의 계시입니다. 또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입니다. 인간이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어떻게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고, 어떻게 천국 백성이 되고,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가를 알려주기 위한 계시가 바로 성경 66권입니다. 천주교는 여기에다 외경을 덧붙입니다. 그러나 천주교에서 덧붙인 그 외경은 영감되지 않은 오류투성이의 책입니다. 그런 책에서 교리를 도출하는 천주교가 그래서 이단인 것입니다.
천주교는 하나님 말씀에다 무언가 더 붙이기를 좋아합니다. 전통, 인간의 말, 인간의 해석 등등을 덧붙이기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 따르기를 더 좋아하는 천주교에는 절대로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반면, 현대 개신교는 어떻습니까? 안타깝게도 빼기를 좋아합니다. 처음부터 성경에 있는 그대로 가르쳐야 하는데 다 안 가르칩니다. 부담되는 부분은 잘 안 전합니다. 아주 부드럽고 모호하게 넘어갑니다. 이런 일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고 빼는 죄입니다. 그런 면에서 현대 개신교는 너무나도 죄를 많이 짓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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