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인권 진단1」 인권 (人權, human rights)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기독교와 인권(人權, human rights)은 어떤 관계이며, 그리스도인은 인권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은 말 그대로 인간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존엄과 자유 등의 권리를 뜻한다. 즉, 인권은 인간이기에 누려야 할 권리를 보장해주고 행사하는 일과 관련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인권은 민주화 운동과 더불어 중요한 개념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권 문제는 특정한 시대정신이나 사회적 필요, 이념 등에 얽매여서는 안 되는 아주 고차원적인 문제다. 그만큼 섣불리 인권 문제를 다루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인권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기독교의 정체성과 진리를 흔들고 파괴하는 법, 제도, 사회적인 토대가 점차 세워지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다른 어떤 종교보다도 기독교가 가장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이제 인권은 마치 하나의 종교적인 영역에 속한 것인 양 신성시되고 있다. 그래서 어떤 문제에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면 누구도 항의하지 못한다.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감히 반대할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 윤리와 도덕이 있다. 그런 윤리와 도덕을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허물고 파괴하는 행동이 용인되어서는 안 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현대 사회는 흉악범을 엄정하게 처벌하지 못한다. 어떠한 이념이나 사상을 가진 사람이든지 포용하며, 도덕과 윤리를 거추장스럽게 여기며 방종하는 자에게 그에 걸맞은 책임을 묻지 못한다. 거기에 인권이라는 팻말이 걸려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 사회는 인권 개념을 감성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받아들이고 사용하고 있어 큰 문제다.
인권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상황과 그렇지 않은 상황을 냉철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모든 영역에 인권을 천편일률적으로 적용하여 사회를 무질서하게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비이성적이고 반인륜적인 형태의 인권을 외치는 목소리가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지배적이다.
그 결과, 동성애자 인권법을 제정하려고 하고, 흉악범을 정당하게 처벌하는 일도 인권으로 막아 세운다. 법과 질서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행동해도, 인권이라는 거대한 손이 다가오면 모두가 꼼짝하지 못하게 되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상황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그렇게 하면 정말 인간의 권리가 골고루 보장되고, 사람이 더욱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청소년에게 거의 무제한의 방종을 보장하는 학생 인권법은 과연 학생을 학생답게 할 수 있겠는가? 세계에서 유일하게 휴전 상태에 있는 우리나라에서 병역의 의무를 거부하는 일에 사용되는 인권 개념이 과연 양심적이며, 우리나라와 사회를 위한 것인가? 흉악한 범죄자에게 인권의 우산을 받쳐주어서 사형을 비롯한 엄한 벌로 다스리지 못하는 일이 과연 이 사회의 안녕과 질서에 어떤 영향을 가져오겠는가?
피해자가 받는 고통과 해악에 비해, 가해자의 인권을 더 보장하려는 일이 과연 안전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데 이바지할 수 있겠는가? 합의한 법과 제도를 전혀 개의치 않는 단체의 마구잡이식 시위와 선동을 보호해주는 일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과연 도움이 되겠는가?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면서 우리나라의 안보와 안전을 파괴하는 세력을 가만히 놔두는 것이 과연 인권 보장인가? 외국인이라고 무작정 사회적 약자로 여기며 보호해주어야 하는가? 그들 때문에 치안과 질서 유지에 큰 구멍이 생겨도, 그들의 인권 보호를 위해 무조건 그런 일을 감수해야만 하는가? 그렇게 하는 일이 과연 사람다운 것인가?
물론, 모든 사람에게는 사람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적인 권리가 있다. 그래서 사회는 인종, 사회, 경제, 신체적인 약자를 잘 배려하고, 그들의 기본권을 함부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종교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종교를 가질 수 있는 권리가 있으므로, 자기 종교를 전파하기 위하여 총과 칼을 들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바로 인권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정통 기독교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라는 성경 말씀에 따라, 인간의 존귀함을 파괴하는 모든 것에 강력하게 저항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항상 인권의 깃발을 높이 들고서, 인간을 고통스럽게 하고 차별하는 관습과 제도와 악법을 철폐하는 일에 가장 앞장섰다.
사실, 기독교 외에 인권의 개념이 있는 종교가 대체 어디 있는가? 오늘날의 인권 개념과 운동은 기독교로 말미암아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세상은 인권을 무기로 삼아, 되려 기독교를 이 사회에서 가장 뿌리 뽑아야 할 극단적인 종교이자 인권을 무시하는 무도한 세력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그런 일의 한가운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감상적이고 이데올로기적으로 인권 문제에 접근하는 극렬 좌파세력이 있다. 그들은 자신만이 유일하게 제대로 된 인권 개념을 이해하고 실천해가는 참된 정의의 집단이라고 착각한다. 그래서 정의와 인권 향상을 부르짖으면서, 그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인권 향상을 추구하는 이들을 가차 없이 폄훼하고 비열한 음해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이 벌이는 자극적인 선동과 파괴적인 시위와 정책으로 한국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거나 말거나, 인권이라는 이름 아래 그저 자기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처벌되는 일을 막고 좋은 자리에 줄을 대주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러한 저들의 망동과 망언에 대해 항의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특히, 사법기관과 교육기관에서 이러한 잘못된 좌파 인권주의자를 그냥 용인해주는 것이 큰 문제다. 그 결과, 참된 인권이 보호되고 존중되기는커녕, 오히려 저들에게 온 나라가 꼭두각시처럼 휘둘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말았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특별히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날의 거짓된 인권을 아름답게 포장하는 일에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들의 인권 운동을 반대하는 이는 금세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로 낙인 찍혀 버린다. 그러나 거짓된 인권 운동을 반대하는 일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것이겠는가? 오히려 참된 인권을 수호하고 향상하기 위해, 거짓된 인권을 미워하고 반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있다는 참된 증거가 아니겠는가?
눈을 크게 뜨고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자. 지금 왜곡된 인권 개념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고 순종하려는 정직한 이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고 하고 있지 않은가? 저들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진리만 선포되어야 할 교회 강단조차도 자기 이념과 노선에 맞게 뜯어고치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왜곡된 인권 개념은 사탄이 개발해낸 말로 다할 수 없이 교묘하고 치명적인 전략 무기이다.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교회는 결국 인권이라는 재갈에 묶여, 성경의 명백한 진리(동성애는 죄 등)도 마음껏 가르칠 수 없게 될 것이다. 성경의 진리보다도 인권이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한 세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분명하게 명심해야 한다. 인권은 결코 진리 위에 있지 않고, 진리 아래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인권은 그럴 때야 사람에게 유익이 된다. 성경의 진리를 제멋대로 짓밟으려는 이 시대의 인본주의적인 인권은 사람을 파괴하는 거짓된 인권이며, 참된 인권을 추구하는 일에 걸림돌이다.
그런 인권을 부르짖는 인본주의적 인권주의자는 ‘하나님께서 존재하시기 때문에 인권이 있을 수 있지, 인권이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까맣게 모른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성경을 거부하며 기독교를 경멸하는 이들이 들먹이는 인권은 되려 세상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참된 인권을 파괴할 뿐이다.
지금 세상에서 유령처럼 떠돌고 있는 인권 개념은 진정으로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기 위한 것이 전혀 아니다. 그런 인권은 오히려 사람의 영혼과 마음, 건전한 정신을 해쳐 세상을 더욱 고통으로 몰아가려는 어둠의 세력이 쳐놓은 올무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진정 인권의 참된 가치와 유익을 누리고자 한다면 겸손하게 하나님을 인정하고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하기 전까지 이 세상에는 진정한 인권이란 있을 수 없다.
「인권 진단」 기획 기사 시리즈
「인권 진단1」 인권 (人權, human r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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