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8) 넘어지게 하는 자
김재호
▲ 시온 성으로 가기 위해 험난한 산길을 오르다가 겁에 질려 되돌아간 겁쟁이(Timorous)
「그가 산꼭대기에 이르렀을 때 저쪽에서 그를 향해 허겁지겁 마주 달려오는 두 사람을 보았다. 그들 중 하나의 이름은 겁쟁이(Timorous)였고, 다른 하나의 이름은 불신(Mistrust)이었다. 크리스천은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크리스천: “선생님들, 반대 방향으로 거슬러 오시니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겁쟁이: “우리는 시온 성으로 가기 위해서 험난한 산길을 간신히 올라왔는데 저쪽으로 더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점점 더 위험한 것들을 만났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다시 되돌아오는 길입니다.
회의: “맞아, 그렇구말구. 바로 우리 앞에 사자 두 마리가 길 가운데 누워 있었는데 그놈들이 잠들었는지 깨어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가까이 다가가기만 하면 금방 달려들어 우리 몸을 갈가리 물어 뜯어버릴 것만 같았습니다.」1
교회 안에는 신실한 주님의 백성만 있지 않다. 거듭나지 않고 여전히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도 훌륭하게 신자 행세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참된 신자와 신앙의 대화를 나누고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일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과 손잡고 이 땅에 속한 영광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에도 똑같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행실을 멋모르고 따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렇게 교회와 세상에 한쪽 발을 걸치고 있던 그들은, 큰 어려움이 찾아오면 놀랄 만큼 빠르게 신앙을 저버리고 세상에 순응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들의 불신앙은 교회를 크게 흔들어놓아서, 교회가 믿음으로 자기 소명을 담대하게 감당하는 일에 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성경은 이런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자신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일들이 없을 수는 없으나,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 이 작은 자들 가운데 하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기 목에 연자방아 맷돌을 매달고 바다 속에 빠지는 것이 그에게 나을 것이다(눅 17:1, 2).
너희는 너희 장막 안에서 원망하여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우리를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어 전멸시키시려고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 형제들이 우리를 낙심케 하여 ‘그 백성은 우리보다 강하고 크며, 그 성읍들은 크고 성벽은 하늘에 닿았으며, 거기서 우리가 또한 아낙 자손들을 보았다.’라고 하였다(신 1:27, 28).”
그들 가운데 섞여 사는 무리들이 탐욕을 품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울면서 말하였다.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겠는가? 이집트에서 값없이 먹었던 생선과 오이와 멜론과 부추와 양파와 마늘이 생각나는데, 지금 우리의 기력이 약해졌으나 우리 앞에 이 만나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민 11:4~6).”」
신앙이란 본래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다. 그분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여주신 은혜와 사랑이 너무도 귀하고 감사해서, 그분과 함께할 그 날만 마음에 품는 것이다. 그래서 참 신앙은 이 세상의 모든 좋은 것과 어려움에 큰 의미를 두지 않게 된다. 마치, 야곱이 사랑하는 라헬과 결혼하는 날을 바라보면서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불과 며칠처럼 여겼던 것처럼 말이다(창 29:20).
참으로 주님을 믿는 사람은 상황이 좋든 좋지 않든, 내 형편이 좋든 좋지 않든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것이라면 항상 ‘아멘’으로 화답하면서 전진한다(고후 1:20). 그로 인한 불이익과 손해를 기꺼이 감수하면서 모든 일을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에 맡기고 인내하게 된다(단 3:16~18).
그러나 넘어지게 하는 자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온전히 만족하지 못한다. 이 세상 부귀영화와 명예, 육적인 즐거움과 기쁨을 향한 미련을 끝까지 거두지 못한다. 그 결과, 그들의 심령은 항상 무언가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아무리 영적으로 좋은 것들이 풍성해도 항상 무언가 빠진 듯한 기분을 느낀다. 딱 그것 하나만 더 있으면 완전할 것 같은 허전함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 하나님의 심판 날에 파멸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려버리고 만다. 성경은 이런 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에 유업으로 받을 곳으로 나아가되, 어디로 가는지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믿음으로 그는 약속의 땅에서 타국인 같이 잠시 머물렀는데, 동일한 약속의 상속자들인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주하였다. 이는 그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만드실 기초가 있는 성을 고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히 11:8~10).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일을 쉬셨던 것처럼 그들도 자기 일을 쉬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할 것이니, 이는 누구든지 동일한 불순종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히 4:10, 11).
너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있지 않다.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신의 정욕과 눈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세상으로부터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한다(요일 2:15~17).」
그러므로 성도는 자기 주변에 세상을 사랑하는 이들이 있으리라고 예상해야 한다. 주변 교인의 말과 행동을 무조건 다 받아들이지 말고, 오직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분별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천국을 항상 바라보면서 모든 어려움을 믿음으로 맞서 싸워 이겨내려고 해야 한다.
평소에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이스라엘 백성처럼 행동하게 될 것이다.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그 교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도록 하자(고전 10:11). 그렇게 하면 많은 이들이 길을 잃고 방황할 때, 흔들림 없이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면서 주위의 흔들리는 사람들을 붙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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