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2) 신앙의 대가(代價)와 용기
김재호
「무장하고 있는 병정들의 모습을 보고 두려움에 질린 대부분의 사람들이 뒤로 물러서고 있을 때 결심을 단단히 한 듯한 사나이 하나가 성큼성큼 명단을 적는 사람에게로 걸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 제 이름을 적어 주시오.” 말을 마치자 그는 검을 빼어들고 머리 위에 투구를 쓰고는 무장한 병정들이 지키고 있는 문간을 향해 용감하게 달려갔다.」1
하나님 나라로 가는 길은 좁고 험하다(마 7:14).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믿음으로 기꺼이 감당해야 한다(막 10:30).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과연 그러한 어려움을 감당할 만한 믿음이 있는지 헤아려보라고 말씀하신다(눅 14:28~33).
이는 신앙생활이 절대로 낭만적이거나 감상적이지 않고, 지극히 실제적이며 거칠고 혹독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그러므로 참 신앙은, 특수부대원이 아주 혹독한 훈련과 작전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기꺼이 그 길을 걸어가면서 그 모든 것을 묵묵히 감내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이러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모범을 보여주는 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 또 잘 가르쳐주며 모범을 보여줘도, 배우는 쪽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소화를 못 하기도 한다. 그래서 교회 안에는 언제나 막연하게 신앙생활하면서, 조그만 어려움에도 매우 놀라 벌벌 떨고 투정부리며 불평하는 영적인 어린아이와 육신적인 안락함을 위해 금송아지를 찾는 이가 존재한다.
즉, 정말 믿음으로 대응해야 하는 실질적인 어려움이 찾아오면, 교회 안에는 아브라함처럼 실제적인 믿음으로 대처하는 이들은 별로 없고, 도리어 실족하여 생사(生死)의 경계를 넘나들거나 껍데기에 불과한 거짓 신앙을 가진 것으로 밝혀지는 이들이 가득하게 된다. 성경은 이러한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누구든지 내게 오는 자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들이나 형제들이나 자매들이나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또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너희 가운데 누군가가 망대를 세우고자 하면, 먼저 앉아서 자기가 그것을 완성할 만한 비용을 가지고 있는지 계산해보지 않겠느냐? 그가 기초만 놓고 그것을 완공하지 못하면,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그를 비웃으며 말하기를 ‘이 사람은 건축을 시작하였으나 완공하지 못하였다.’라고 할 것이다(눅 14:26~30).
“시몬아, 시몬아, 보아라, 사탄이 밀처럼 체질하려고 너희를 요구하였으나, 나는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너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네가 돌아서게 될 때 네 형제들을 굳게 하여라.”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기를 “주님, 저는 감옥에나, 죽는 데라도 주님과 함께 갈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하니,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베드로야, 내가 너에게 말하니, 오늘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안다는 것을 세 번 부인할 것이다(눅 22:31~34).”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지 않으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하였다. 이런 일들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그들이 악을 즐겨한 것처럼 우리가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너희는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처럼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마라. 기록되기를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서서 뛰놀았다.” 하였다(고전 10:5~7).」
그러나 참 신앙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는 주님의 말씀을 평소에 잘 귀담아들어 둔 이들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이 이 세상 그 무엇, 곧 자기 생명보다도 월등히 귀하고 값지다는 판단을 큰 환란과 어려움이 다가오기 전에 이미 내려놓고 있다.
이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지 않으시는 영생이란 아무런 의미도 없을뿐더러, 궁극적으로는 영원한 사망과 다를 게 하나도 없다. 쉽게 말해, 이들의 마음에는 잃을 만한 어떤 소중한 것이 남아 있지 않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계시는 저 영원한 나라만 남아 있다.
더불어, 이들은 자신에게 영원한 천국을 약속해주신 분이 어떤 분인지 잘 안다. 그분께서는 손이 짧아서 죄와 사망에서 사람을 건져낼 능력이 없는 무능한 존재가 아니시다. 말씀으로 천지를 지으신 분, 이미 창세 전부터 영원한 사랑 가운데 우리를 당신의 나라에 들이기로 작정하신 분이다(엡 1:3~6). 그들은 그 사실이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확증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고 이해하며 붙든다.
그래서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참으로 담대하고 용감하게 행하게 된다. 세상과 타협하여 잠시 동안 육신적인 안락함을 얻어봐야 아무 의미도 없을뿐더러, 주님께서 이미 세상을 이기셨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세상과 협상을 벌일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요 16:33).
그래서 이들은 세상이라는 거대한 골리앗에게 무모하게 보일 정도로 담대하게 나아간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가 심한 고통을 겪고, 심지어 생명을 잃어버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은 사실 잃은 게 하나도 없다. 오히려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얻었을 따름이다. 그러나 엄청난 힘과 권세를 자랑하던 세상은 만군의 여호와 이름 앞에서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주저앉게 되고 만다. 성경은 이러한 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님의 궁전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으며,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내 하나님의 문지기가 좋습니다(시 84:10).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가 그들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수 15:12).
내가 나의 위엄을 너보다 앞서 보내어 네가 가는 곳의 모든 백성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너의 모든 원수들이 네게 등을 돌려 도망가게 할 것이며, 내가 왕 벌을 네 앞에 보내어 히위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을 네 앞에서 쫓아낼 것이다. 그러나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일 년 안에는 쫓아내지 않을 것이니, 그 땅이 황폐하여지지 않고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를 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출 23:27~29).」
신앙생활은 편안하게 영화나 연속극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다. 신자의 삶에는 이 세상의 반대와 조롱과 멸시를 묵묵히 감내하면서 약속하신 영원한 나라를 향해 분투하는 일이 매일 반복된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대로 정말 그러한 일을 감당할 만한 믿음과 마음가짐과 의지가 자신에게 실질적으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를 아주 진지하고 엄격하게 확인해봐야 한다.
그런 다음, 주님께 믿음을 더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간구에는 끝이 있을 수 없다. 신자는 그런 분투를 통해 장성한 신앙의 용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용사가 되는 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게 지낼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온전히 깨닫고 이해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모든 성도가 만군의 여호와를 의뢰하여 적(敵)과 싸워 이기는 용사가 되기를 바라신다. 그 사실을 잊지 말도록 하자.
각주
1 존 번연,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 유성덕 옮김,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6-포켓판, p.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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