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강해
(7) 하나님의 창조
Geneva Reformed Church 제네바 개혁교회
Reformed Guardian 리폼드 가디언
The Band of Puritans 밴드 오브 퓨리탄스
Geneva Institute 제네바 신학교
오인용 목사
오늘은 ‘하나님의 창조’에 관해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교과과정은 철저하게 진화론에 기초하여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창조에 바탕을 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지란 전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진화론적인 세계관은 특히 자연 과학 관련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온 천지 만물을 만드셨다는 이 사실을 아이들에게 잘 가르쳐줘야 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진화론에 기초한 수업을 듣더라도, 그 내용을 충분히 분별하고 걸러낼 수 있는 지혜와 지식을 갖추게 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이 세상은 우연히 생겨나 진화에 진화를 거듭해온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친히 만드셨고 또 다스리고 계시는 곳입니다. 이에 관해, 소요리문답 8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당신의 작정을 이루시는가?
– 하나님께서는 창조와 섭리의 사역으로 그분의 작정을 이루신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은 아무런 목적도 없이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작정 가운데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창조되었습니다. 또한, 오늘도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섭리의 손길 아래 다스림을 받고 있습니다. 소요리문답 9문은 8문에 이어서 이렇게 묻고 답합니다.
“창조의 사역은 무엇인가?
– 창조의 사역은 그분의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 육일 동안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분의 능력 있는 말씀을 통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무언가를 창조했다는 말을 사용하곤 합니다. 하지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사람은 무언가를 창조할 수 없습니다. 사람은 그저 하나님께서 이미 지어놓으신 무언가를 활용해서,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 모든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눈으로 보는 저 하늘의 해와 달과 별을 비롯하여 우리 사람까지도 말입니다. 누군가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들지 않으셨느냐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한낱 흙에 불과한 물질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이 되게 하는 능력은 어디에서 말미암았단 말입니까?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입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사실은 바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시간이나 공간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그것 역시도 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계(被造界)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시간이나 공간은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 사실을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원래는 시간이나 공간조차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이 우주와 그 안에 모든 천지 만물을 지으시기 시작하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시공간을 말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세기가 증거하는 6일 창조 기사를 기록된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시공간의 개념은 분명히 창조 이전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기 시작하시는 순간부터는 분명히 적용해야만 하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바로 그 6일 동안에 말씀으로 온 천지 만물을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6일을 가리켜 몇 천 년, 몇 백만 년, 심지어는 몇 백억 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하기는 하나, 대신 아주 오랜 기간에 걸쳐 그 일을 이루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장함으로써 진화론을 실질적으로 포용해버리는 데 이르고 맙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진화론이 곤경을 겪을 때면 홀연히 나타나서 진화론을 곤경에서 건져주고는 어느새 다시 사라져버립니다. 그들의 하나님은 성경에서 증거하는 온 천지 만물의 기초를 놓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의 영광을 나타내고 주장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들이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것은 순전히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온전히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꾸 그럴듯한 세상의 소리에 현혹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붙들어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하나님께서는 무한하신 능력으로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공간을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니 그 안에 천지 만물을 조성하는 일이야 더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런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하신 그대로 보이는 이 세상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기란 얼마나 쉽고 또 이치에 맞는 일이겠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이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에 기록된 말씀대로 온 천지 만물을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대 지질학 및 우주 이론에서 건너온 몇 백만 년이니 몇 천만 년이니 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것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런 것에는 자기모순도 많고, 또 공부해야 할 것이 끝이 없습니다. 그런 소리에 휘말려 들어가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창조에 깃든 권능과 그 영광스러움을 깎아내리는 어리석은 일에 참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절대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전에 세우신 당신의 계획과 뜻을 말씀으로 선포하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눈으로 보고 있는 해와 달과 별들을 비롯한 온 천지 만물은 다 그렇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앞서 살펴본 성경 구절이 가르쳐주는 바와 같이 ‘믿음으로’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 창조 과학이라는 학문을 알고 계십니까? 창조 과학은 일련의 과학적 증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학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창조 과학은 참 유익하고 좋은 학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유익한 연구 결과를 불신자에게 보여주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이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올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무리 설득력 있는 창조 과학의 결과물 앞에서도 자기 불신앙을 꺾지 않습니다. “아, 뭐 그럴 수는 있겠다.”라고 하면서 가볍게 수긍하는 일은 있어도, 완전히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일은 전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성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돌아설 수 있고, 또 충분히 돌아설 것처럼 보이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은 수많은 합리적이고 명백한 증거물을 눈앞에 두고서도 여전히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 그런 결과물을 접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들은 정말로 이 세상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보다 더 성경 말씀을 굳게 신뢰하고, 그 가르침을 지식적인 측면에서도 충분히 풀어내고 적용할 수 있는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니 주변의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정말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영적인 눈이 감긴 사람에게 창조 과학의 결과물로 논증을 펼치는 일은 실로 무익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을 믿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창조론은 믿음이 있는 이들의 지성 안에서만 뿌리내리고 열매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선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9문의 답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창조의 사역은 그분의 능력의 말씀을 통하여, 육일 동안 하나님께서 무(無)에서 만물을 선하게 창조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일은 우리 사람에게도 아주 좋은 것입니다. 즉, 그 일은 지극히 선한 것이지 나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다만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지음으로 인해, 그 본래의 선함이 망가진 것일 뿐입니다. 그때부터 만물과 사람은 저주를 받아 서로 나쁜 영향을 주고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창조 자체는 아주 선한 것입니다. 그 일에는 나쁜 것이 전혀 없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지으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겠습니까?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 세상을 지으셨을까? 뭣 하러 이 세상을 지으셔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게 하실까? 우리를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실까?”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원래 뜻이 아주 선하고 좋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창조를 통해서 당신께서 얼마나 영화로우신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원래 우리는 그 영광스러움 안에서 모든 일에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이 그런 하나님께 감히 죄를 짓고 대항한 결과, 우리가 다스리던 자연환경에까지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저주로 인해 오늘도 수많은 이가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죄인이고 그 저주의 영향 아래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이 세상 자체를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염세주의에 물들면 안 됩니다. 염세주의는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쁜 것뿐이라고 주장합니다. 독일의 유명한 염세주의자인 쇼펜하우어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지 않는 편이 행복하다. 태어났다면 빨리 죽는 편이 행복하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자살을 하는 편이 행복하다.”
한 마디로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만 그렇게 말해놓고, 그는 거의 여든에 가까울 때까지 오래오래 살았습니다. 그의 허탄한 말에 넘어간 수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강물에 몸을 던지고 기둥에 목을 매달 때, 그는 손자 손녀와 더불어 천수를 ‘누리다가’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이 얼마나 무책임한 사상이란 말입니까? 하여간 염세주의자만큼 쓸모 없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제 강점기 초반에 염세주의가 아주 극성을 부렸습니다.
“하, 세상은 어둡고 절망적이다. 살아봐야 별 소용이 없다. 태어났으면 빨리 죽는 게 가장 좋다.”
그러나 이런 말 하는 사람치고 빨리 죽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꼭 벽에 똥칠할 때까지 꾸역꾸역 살아갑니다. 그렇게 쓸모없는 사람은 오래오래 사는 데 비해, 진짜 좀 오래 살아야 하는 분들은 대체로 빨리 생을 마감하는 것 같아 참 안타깝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절대로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면 안 됩니다. 기독교인은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최대한 멀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그런 세계관을 지지하는 헛된 철학이나 문화가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소설과 같은 문학이 그런 역할을 아주 효과적으로 감당합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번성하면, 이러한 염세주의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의 창조는 본래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것임을 사람들이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온 세상을 회복시키실 그 날을 바라보면서 참된 소망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영광스러움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사에 세상을 어둡게 보는 염세주의를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죄로 인한 세상의 비참함을 직시하는 것과 염세주의는 완전히 다른 것입니다. 특히 예민한 시기를 보내는 청소년은 이 염세주의를 받아들이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많은 청소년이 그 시기에 염세주의적 세계관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염세주의를 받아들이면, 인격이 온전하게 자라나지 못합니다. 그로 인해 몹시 나쁜 이념이나 사상을 계속해서 찾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들은 이 나쁜 세상을 막 두들겨 부수고 없애버리는 행동을 참으로 멋있고 의롭다고 여기게 됩니다. 최근 서구의 많은 젊은이와 청소년이 이슬람 극단주의 단체인 IS로 향한다고 하지요?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청소년 한 명이 그곳에 갔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런 일이 왜 벌어지는 줄 아십니까? 바로 그들의 심령 밑바탕에 세상을 어둡고 절망적으로 바라보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 어둠의 일에 강력한 친밀함과 동질감을 느끼게 되어, 모든 것을 뒤로 하고서라도 그리로 가려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마치 그것이 빛처럼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아이와 청소년에게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본래 아주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지으셨다”는 사실을 힘써 가르쳐야 합니다. 모든 사고와 가치 판단이 그 진리에서 출발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 저 파괴적인 어둠이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해리 포터”와 같은 영화가 나쁜 것입니다. 그 영화에 깔린 그 음울하고 어두운 배경과 인물 설정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그런 것이 우리 아이가 염세주의적인 세계관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그런 어둠이 우리 아이의 마음에 조금도 자리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아야 합니다.
“어떤 만화나 영화나 문학이든, 조금이라도 이 세상을 허무하고 어둡게 보게 하는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면 절대로 가까이하지 마라.”라고 분명히 가르쳐줘야 합니다. 특히 음악을 더 주의하도록 해야 합니다. 록 음악을 하는 가수의 삶에는 유난히 마약 중독과 자살이 많이 일어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록 음악의 기본 정서가 바로 저항 정신인데, 그 저항 정신의 뿌리가 바로 염세주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으면 그런 짙은 어둠은 물러갑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거룩하신 성령께서 그 사람의 심령에 거하시면 사람은 밝아집니다. 그의 정신세계를 가득 채우고 있던 어둠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등지고 살면 계속 어두워질 뿐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믿지 않는 경우든지 아예 믿지 않는 경우든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그 심령이 어둠에 묻혀 있습니다.
성탄 찬송 중에 “어둠에 묻힌 밤”을 노래하는 곡이 있지요? 하지만 그 가사는 아주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왜 그 밤이 어둠에 묻힌 밤입니까? 복음의 참된 빛을 알지 못하는 천주교 사제가 쓴 가사라서 그런 음산하고 적막한 정서가 묻어나는 것일까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오신 순간 이 세상은 지극히 밝아졌습니다. 빛 되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오셨는데 어떻게 이 세상이 어둠에 묻힐 수 있습니까? 그 가사는 세상이 밝아졌다고 써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너무 문학적인 기교를 부리려고 하다 보니, 훨씬 더 중요한 의미를 놓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만물은 본래 선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청소년은 자기가 태어난 사실을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청소년 시기에는 정말 아주 사소한 일로도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걸까? 안 태어나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태어난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릴 줄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아주 기쁜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에도 자기가 태어난 것을 저주하지 마십시오.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저주하는 행동은 영적으로 참으로 나쁘고 해로운 일이며, 또한 불효이기도 합니다.
소요리문답은 원래 나이가 어린 사람을 가르칠 목적으로 작성된 것입니다. 그러니 청소년 여러분은 소요리문답이 가르치는 교리를 마음껏 배우고 익히십시오. 그리하여 앞서 말한 모든 어둠의 문화로부터 자기를 깨끗하게 지키고 보호하십시오. 교리에 마음을 두면 온갖 세상 재미에 빠져 마음이 강퍅해지거나 어둠 속에서 죄에 빠져 헤매지 않게 됩니다.
교리의 밝은 빛을 따라 심령을 밝고 아름답게 가꾸어 가십시오. 교리에서 눈과 귀를 떼지 마십시오. 만약 교리를 멀리한다면 심령은 어둠에 사로잡힐 것입니다. 잘못된 세계관이 우리에게 하나둘씩 영향을 끼치기 시작할 것이며, 마귀는 그 안에서 교묘한 술책으로 여러분을 죄의 노예로 삼아버릴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부모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의 창조 사역과 그 영광스러움을 아이에게 설명해주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저는 창조 교리의 전반적인 내용을 개괄하여 설명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좀 더 세부적으로 들어가서, 우리 사람의 창조에 관한 교리를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배운 소요리문답 8, 9문을 아이에게 잘 가르쳐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냥 가르치는 것으로 끝내지 마시고, 아이들 스스로 증거 본문을 꼭 찾아 읽어보게 지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 소요리문답 강해 설교 시리즈에는 녹음이 되지 않아 누락된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강론은 교리학교용 소요리문답 강의로 대신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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