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의 깊이를 조금 더합니다.

explanatory

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3) 오직 믿음

김재호

기독교에서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모든 종교가 믿음을 강조하기는 하지만 기독교만큼 강조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믿음이 무엇이냐는 질문의 대답이 천차만별이라는데 있다. 그 답을 가만히 듣고 있자면, 각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행하던 사사 시대가 지금이 아닌가 싶다(삿 17:6). 기독교 신앙에서 믿음이 중요한 만큼,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데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듯, 참된 믿음과 거짓된 믿음이 무엇인지를 사려 깊게 헤아려봐야 한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3) 청년 에드워즈

김재호

1. 모교의 위기 조나단 에드워즈가 다닌 예일 대학의 전신은 코네티컷 대학이다. 1701년에 세워진 이 영세한 대학은 1718년에 엘리후 예일의 기부금으로 뉴헤이븐에 새로운 건물을 짓고, 예일 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이때의 대학은 현대의 대학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목적―경건한 목회자 양성―으로 설립되고 운영되었다. 그중에서도 예일 대학은, 보스턴의 하버드 대학이 정통 청교도 교리를 포기하고 인크리스 매더를 학장직에서 쫓아낸 일에 맞서 세운, 특별한 의미를 지닌 대학이었다. 그러나 1722년 가을, 이러한 예일 대학의 학장이 ‘국교도 전향(영국 성공회로 귀의하겠다는 뜻)’을 선언하여 모두를 경악하게 했다.

The_Pilgrim's_Progress

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3) 방황

김재호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참된 빛을 받은 이들이라도, 곧바로 “이제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고 깨닫지는 못한다. 오히려 대부분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가 코앞까지 닥쳐왔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벗어나야만 한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한다. 이대로 있으면 모든 것이 실로 무의미하고 허망하다.” 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러나 ‘어떻게’ 벗어나는가?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성경은 그 답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나무 같은 것의 걸어감과 같다(막 8:24). 성경이 분명히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는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누구를 가리키는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discernment

「거짓 걸러내기」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하)

이종현

4-4. 성경에 관하여 – 필요성은 인정, 유일성은 부정 메이첸의 말대로, 우리는 다른 종교에서도 기독교적인 관념을 발견할 수는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의 내용 말이다. 하지만 타 종교에서 기독교를 발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기독교는 관념의 종합을 통해 형성된 종교가 아니라, 어떤 사건에 관한 이야기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성경은 유일하게 그 사건을 증거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경의 유일성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구절을 통해 성경이 영감되었음을 선포한다.

discernment

「거짓 걸러내기」 ‘자유주의’는 기독교가 아니다 (상)

이종현

1. 서론 90년 전 미국 교계는 자유주의 신학의 커다란 위협 아래 놓여있었다. 교회와 교단을 자유주의 신학을 추종하는 인사들이 하나씩 주도하기 시작했다.3 이러한 상황에서, 메이첸은 거대한 시대의 물결을 거슬러 경고하며 정통 신학을 고수하는데 헌신했다. 메이첸은 그의 저서 『기독교와 자유주의』를 통해, 자유주의 신학이 말하는 기독교는 정통 기독교와 완전히 다른 종교라는 사실을 설파한다. 이 글은 메이첸의 『기독교와 자유주의』를 중심으로, 자유주의 신학에서 말하는 일련의 주장과 그 허구성을 살펴보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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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2) 오직 성경 – 하-

김재호

불신앙, 죄의 핵심 원리 성경 본래의 가르침이 이러하다면, 그것을 비틀고 왜곡하는 가르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성경의 본래 가르침을 구원의 속성에 따라 순금을 분류하는 것처럼 분류했듯이, 성경의 가르침을 어지럽게 하는 거짓도 똑같이 걸러낼 수 있다. 진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을 믿도록 사람을 이끄는 반면, 거짓은 늘 사람을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 거짓이 언제나 바라보고 소망하는 바는 배교다.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가 근간을 이루고, 배교는 교만과 이기심과 자기 사랑이 핵심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