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의 깊이를 조금 더합니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13) 에드워즈의 사임, 대각성에 대한 하나님의 결산(決算)

김재호

후천년주의는 복음과 진리에 헌신하는 이들을 역사 무대 위로 많이 이끌어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본인도 온 세상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으로 충만하게 하려고 했던 후천년주의자들의 순수한 열심과 헌신에 빚진 사람이다. 그러므로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뒤로한 그들의 마음과 발걸음에 우선 깊이 감사한 다음에 후천년주의에 관해 말하는 것이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그러나 후천년주의는 심각한 오류를 안고 있는 사상이다. 하나님께서 대각성, 특히 에드워즈가 사임에 이르는 과정 전체를 어떻게 다루시는지 잘 살펴보면,

The_Pilgrim's_Progress

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3) 용서받을 수 없는 죄

김재호

“은혜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하실 만큼 극악무도한 죄가 있을까?” 이 질문은 의도와 초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죄를 다 덮기에는 부족함과 모자람이 있느냐는 취지였다면, 답은 “아니다.” 이다. 그러나 그런 은혜와 긍휼을 악용하며 모독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벌하실 것이냐는 뜻이었다면, 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많은 이가 ‘성령훼방죄(성령모독죄 혹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불리는 이 죄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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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11) 약한 믿음

김재호

성경은 신자의 믿음이 모두 똑같다거나 평생 그대로라고 말하지 않는다. 개인차와 성숙도가 존재한다고 가르친다. 그런데 성경을 유심히 잘 살펴보면, 믿음이 약한 사람의 모습을 꽤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믿음이 강한 사람이 아직 연약했을 때의 모습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약하고 작은 믿음을 강한 믿음으로 자라도록 섭리하신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한 믿음을 가진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잘 알아두어야 한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12) 대각성의 변질, 에드워즈 사임(辭任)의 근본 요인

김재호

최고의 신학자이자 대각성 주역 중 한 사람인 에드워즈는 1750년에 23년 동안 모든 것을 다해 섬긴 노샘프턴 교회를 사임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면, 모든 시민이 자기 영혼을 깊이 생각하며 구원을 받으려고 교회로 몰려들었던 그곳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곤 한다. 그러나 에드워즈가 사임에 이르는 전체 과정을 유심히 잘 살펴보면, 그런 일이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마귀가 얼마나 작은 틈을 집요하게 파고들어, 사람의 심령에 진리가 뿌리내리지 못하게 방해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The_Pilgrim's_Progress

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2) 신앙의 대가(代價)와 용기

김재호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택하신 자기 백성을 끝까지 붙드신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이 중간에 믿음을 잃어버리고 멸망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원받은 성도가 깊은 시험에 빠져 사경(死境)을 헤매면서 오늘, 내일 하는 일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마귀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과 보호 하심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고 지워내려고 기를 쓴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전능 하심을 온 세상에 분명하게 나타내시려고, 어느 정도는 마귀가 원하는 대로 하게 그냥 내버려 두신다.

예수님께 경배하는 동방박사

「거짓 걸러내기」 잘못된 헌금 분별하기 – 올바른 헌금이란 무엇인가

박지훈

지난 1월, ‘정의(井義) 헌금’이라는 다소 생소한 헌금이 사람들의 이목을 끈 일이 있었다. 서울 도봉구의 모 교회에서 시행한 이 헌금에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솟아나는 우물’이라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그 교회에서는 매월 셋째 주일에 헌금을 내지 않는 대신, 교인들이 구제나 선교 등의 일에 자율적으로 사용하게 한다. 그리고 교계(敎界)의 진보 진영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헌금을 참신한 헌금 개혁 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한국 교회에 헌금과 관련한 오류가 넓고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