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8) 그리스도밖에 모르던 위대한 어린아이, 조지 휫필드 <상>

김재호

조나단 에드워즈가 깊고 심오한 사고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끝없는 열정(affection)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었듯이, 조지 휫필드도 일반 사람이 동시에 갖추기 어려운 두 가지 이상의 탁월한 자질을 한꺼번에 갖춘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의 삶에는 상당히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의의를 지닌 일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들의 삶을 놓고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만 살펴본 뒤,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곤 한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7) 꺼져가는 불길을 살리려는 에드워즈

김재호

1. 중도주의자 에드워즈 대각성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일어난 조셉 홀리의 자살 사건은 성도들에게 큰 충격과 혼란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사람을 영생으로 인도했던 죄에 대한 각성이 도리어 절망과 자멸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두운 결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에드워즈는 사탄이 얼마나 강력하고 큰 권세를 가진 존재인가를 성도들에게 상기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그렇게 강력한 사탄의 활동을 억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으로써, 손톱만큼이라도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권면했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6) ‘대각성’의 싹이 트다 -하-

김재호

1. 국제적인 신앙의 협력과 긴장 에드워즈는 이미 1731년 보스턴 설교를 통해, 칼빈주의 교리 수호와 참된 회심을 공통 분모로 하는 복음주의 부흥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하나로 등장한 상태였다.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였던 솔로몬 스토다드 때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건전한 화합은, 부흥의 불길이 한 지역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지역에까지 활발하게 퍼져나가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불꽃이 이미 타오르던 지역에서는 불꽃이 더욱 활활 타오르게 하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또한, 이 화합은 단순히 미국 지역에서만 이루어졌던 것이 아니었다. 그 당시 본국이었던 영국에서도 같은 뜻을 품고 있었던 칼빈주의자들이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6) ‘대각성’의 싹이 트다 -상-

김재호

1. 회심, 대각성의 불길이 타오르게 한 불씨 솔로몬 스토다드가 뿌려놓은 위대한 신앙 유산과 더불어 그의 목회 기간 말년에 찾아온 노샘프턴의 방종은, 대각성의 불길이 타오르는 데 필요한 재료를 적절하게 제공해주었다. 에드워즈는 스토다드가 늘 그랬던 것처럼 방종하는 회중을 꾸짖고 책망하기에 힘썼고, 그중에서도 조금 더 혈기왕성한 젊은 사람들의 죄악을 개선하는 일에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 그렇게 약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자 노샘프턴의 젊은이들은 점점 젊음의 유흥을 즐기는 자리를 열지 않고, 그 대신 공예배에 참석하는 횟수를 늘려가기 시작했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5) 영적 전장(戰場)의 최전선에 서다

김재호

1. 노샘프턴의 방종 노샘프턴은 솔로몬 스토다드라는 위대한 목회자가 오랫동안 강력한 영향력을 끼친 지역이었음에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새롭게 정착할 만한 땅이 점점 줄어들면서 땅을 많이 소유한 대지주와 그렇지 못한 이들 사이에 일어나는 신경전과 파벌 싸움이 잦아졌다. 그로 인해 서로를 향한 원한이 점점 깊어져 갔고 그러다 결국 한 번 큰 사고가 터지고야 말았다. 서로 분쟁하는 가운데 한쪽이 다른 한쪽 대표에게 일방적인 모욕과 구타를 퍼붓는 일이 벌어지고 만 것이었다

Jonathan Edwards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4) 솔로몬 스토다드 아래서

김재호

1. 솔로몬 스토다드의 선한 유산 조나단 에드워즈의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토다드는 노샘프턴을 중심으로 60여 년간 사역하면서, 종종 매사추세츠 서부 지역의 대변인 역할을 감당했을 정도로 광범위한 영향력을 끼친 인물이었다. 스토다드는 83세였던 1726년 겨울에 외손자인 조나단 에드워즈를 상임 부목사로 청빙하였고, 그 뒤 2년 반 동안 강단 사역을 함께 감당하였다. 그리고 1729년 봄에 스토다드가 소천하자, 에드워즈는 그의 뒤를 이어 노샘프턴의 담임 목회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