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12) 교회와 이스라엘

김재호

20세기 중반에 세대주의가 힘을 얻고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교회는 유대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을 겪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유대인을 따로 분리하여 그들에게 특별한 영적 지위를 부여하려고 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성경이 약속하는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이 코앞에 다가왔다면서 크게 기뻐하기도 했다. 그러나 교회는 유대인을 특별한 위치에 두려고 해서도, 유대인 전체가 회심할 것이라고 여겨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그 둘 사이의 구분을 유지하시면서도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하나 되게 하셨고,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그 상태를 유지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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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2) 오직 성경 – 상-

김재호

오직 성경의 중요성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어떻게 전달하실까? 기독교인이라면 당연히 “성경을 통해서”라고 답할 것이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이 사실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경’ 앞에 ‘오직’을 붙여, “오직 성경”이라고 하면 금세 엄청난 반발이 뒤따른다. 한 배를 타고 있었던 동료가 알고 보니 해적이었다는 소리로 시끌시끌하게 된다. ‘오직 성경.’ 대체 이 말이 무엇이기에 그토록 커다란 파문을 일으키는 것일까? 하나님께서는 ‘오직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실까? 아니면 ‘성경’과 더불어 ‘또 다른 무엇’을 통하여 말씀하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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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2) 오직 성경 – 하-

김재호

불신앙, 죄의 핵심 원리 성경 본래의 가르침이 이러하다면, 그것을 비틀고 왜곡하는 가르침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성경의 본래 가르침을 구원의 속성에 따라 순금을 분류하는 것처럼 분류했듯이, 성경의 가르침을 어지럽게 하는 거짓도 똑같이 걸러낼 수 있다. 진리가 언제나 하나님의 언약을 믿도록 사람을 이끄는 반면, 거짓은 늘 사람을 믿음에서 떠나게 한다. 거짓이 언제나 바라보고 소망하는 바는 배교다. 하나님의 구원은 은혜가 근간을 이루고, 배교는 교만과 이기심과 자기 사랑이 핵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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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5)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

김재호

안타깝게도, 현대 기독교인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 이야기는 이제 생소하다 못해 율법주의에 빠진 이들이나 믿는 잘못된 가르침과 같은 취급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현대 기독교인이 믿는 하나님은 참으로 친절하고 여유가 넘치며, 재치와 관용으로 사람을 한없이 품어주는 따뜻한 분이다. 그들의 하나님은 진노를 모르는 ‘사랑의 하나님’이다. 이에 반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진노하신다고 너무도 명백하게 선언한다. 현대 기독교인에게 도무지 양립할 수 없는 개념처럼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이 충분히 양립할 수 있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현대 기독교인이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음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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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6)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

김재호

행위 언약과 은혜 언약은 천지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어떻게 세상을 다스려가시고, 왜 그렇게 하시는가를 밝히 알려주는 진리의 견고한 두 기둥과 같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본인은 근 30여 년 동안 교회를 다녔음에도, 그렇게 중요한 진리의 내용은 고사하고 이름조차도 들어볼 수 없었다. 그러니 신앙에 열심을 내면 낼수록 밀려오는 영적인 방황과 고통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강단에서도 이러한 진리에 기초한 교훈보다는 죄의 본질이 간과된 윤리·도덕적인 수준의 교훈과 처방이 나오는 일이 잦아서,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죄를 깨닫고 참된 자유로 나아갈 기회를 좀처럼 얻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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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지 않은 단단한 음식도 씹어 삼켜보자 (7)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책임 – 상 –

김재호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주권적인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한다. 이 말은, 세상만사에 내포된 참된 ‘의미’를 파악하려면 반드시 그분의 은혜를 따라 사고(思考)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은혜’의 영광스러움을 나타내시려고 모든 만물을 지으셨고, 지금도 그 목적 안에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구속사적인 맥락 안에서 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주권과 사람의 책임이라는 이 어려운 주제도 역시 마찬가지다. 구속사적인 전제(前提)의 도움 없이 철학의 개념들을 ‘먼저’ 들여놓아서는 절대 안 된다. 이 둘의 순서를 무시할 경우, 숲의 나무만 바라보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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