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7) 꺼져가는 불길을 살리려는 에드워즈

김재호

1. 중도주의자 에드워즈 대각성이 절정에 다다랐을 무렵 일어난 조셉 홀리의 자살 사건은 성도들에게 큰 충격과 혼란을 안겨주었다. 수많은 사람을 영생으로 인도했던 죄에 대한 각성이 도리어 절망과 자멸이라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어두운 결실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에드워즈는 사탄이 얼마나 강력하고 큰 권세를 가진 존재인가를 성도들에게 상기하도록 했다. 그러면서 평소에 그렇게 강력한 사탄의 활동을 억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함으로써, 손톱만큼이라도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라고 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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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8) 그리스도밖에 모르던 위대한 어린아이, 조지 휫필드 <상>

김재호

조나단 에드워즈가 깊고 심오한 사고력과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끝없는 열정(affection)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었듯이, 조지 휫필드도 일반 사람이 동시에 갖추기 어려운 두 가지 이상의 탁월한 자질을 한꺼번에 갖춘 사람이었다. 이런 인물의 삶에는 상당히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의의를 지닌 일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많은 이가 이들의 삶을 놓고 지극히 단편적인 부분만 살펴본 뒤, 그것만으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실수를 종종 저지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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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8) 그리스도밖에 모르던 위대한 어린아이, 조지 휫필드 <하>

김재호

휫필드는 회심한 뒤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새 생명을 추구하는 동안 건강이 너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일기와 『일지(Journals)』에서 이 시기에 해당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과연 건강을 회복하려고 고향에 내려간 사람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쁘게 움직였다. 휫필드의 귀향(歸鄕) 생활은 홀리 클럽 친구들과 함께 경건하게 생활하던 그때의 모습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시간 계획을 촘촘히 짠 뒤 그대로 실행했고, 저녁마다 일기를 쓰면서 자기를 돌아보고 허물이 발견되면 자기를 꾸짖으면서 그 허물에서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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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의 삶과 그의 시대 (9) 부흥의 불길 지킴이 에드워즈

김재호

1740년에 휫필드와 테넌트가 일으킨 거대한 각성의 불길은 활활 타올라 삽시간에 뉴잉글랜드 전역을 집어삼켰다. 그동안 죄로 죽었거나 잠들어 있던 영혼들이 깨어나 앞을 다투어 천국으로 몰려들었고, 신실한 목회자들은 그 허기진 영혼을 진리로 먹이고 입히느라 눈코 뜰새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6년 전 힘차게 타올랐던 부흥의 불길이 인간적인 허약함과 그 틈을 파고든 마귀의 궤계로 인해 힘없이 주저앉는 일을 지켜본 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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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3) 방황

김재호

기록된 말씀을 통해 성령 안에서 참된 빛을 받은 이들이라도, 곧바로 “이제 이렇게 하면 되겠다.”라고 깨닫지는 못한다. 오히려 대부분 어찌할 바를 ‘모른다’. 그들이 아는 것이라고는, 고작 하나님의 엄청난 진노가 코앞까지 닥쳐왔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벗어나야만 한다. 어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한다. 이대로 있으면 모든 것이 실로 무의미하고 허망하다.” 이 사실은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그러나 ‘어떻게’ 벗어나는가? 그렇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그들은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한다.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물론, 성경은 그 답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그러나 그들의 눈에는 그 모든 것이 나무 같은 것의 걸어감과 같다(막 8:24). 성경이 분명히 무언가를 말해주고 있는데,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 누구를 가리키는지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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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5) 도움의 손길

김재호

죄 문제를 해결하려고 좁은 길로 나아가며 애쓰는 사람이라고 해서 고난이 피해가지는 않는다. 돌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은 이를 완전히 낙심하게 한 어려움이 똑같이 찾아온다. 그래서 그들도 어려움 앞에서 절망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절망은 세상으로 돌아간 이들을 넘어뜨렸던 절망과는 전혀 다르다. 전자는 이제 죄가 자신을 틀림없이 멸망하게 할 것이라는 인식에서 말미암는 영적인 절망이다. 반면, 후자는 자신이 꿈꾸었던 안락함의 환상이 무너지면서 나타나는 육신적인 절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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