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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3-4)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서(하이델베르크)

설형철

「95개 조 반박문」은 네 개의 크고 굵직한 논쟁을 일으키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루터는 하이델베르크(1518년 4월), 아우크스부르크(1518년 10월), 라이프치히(1519년), 그리고 보름스(1521년)에서 진리의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서, 거짓이 난무하는 적진 한복판을 종횡무진(縱橫無盡) 누비고 다녔습니다. 그런 치열한 싸움은 루터가 자기 신학을 이전보다 훨씬 정교하게 다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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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3-3-2)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서(비텐베르크: 95개 조 반박문)

설형철

아무리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종교개혁’ 하면 으레 ‘마르틴 루터’를 떠올리고, 또 ‘마르틴 루터’ 하면 아주 자연스럽게 「95개 조 반박문」을 떠올릴 것입니다. 이번 탐방기에서 소개해드릴 궁성 교회(Schlosskirche)는 바로 그 「95개 조 반박문」이 내걸렸던 장소입니다. 즉, 수많은 비텐베르크의 유적 중에서도 가장 대표성과 상징성을 지닌 유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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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3-3-1)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서(비텐베르크: 루터와 그의 동역자들)

설형철

이번에는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도시로 유명한 비텐베르크로 가보겠습니다. 하얀 모래 언덕이라는 뜻을 지닌 이 도시의 공식명칭은 ‘루터슈타트 비텐베르크(Lutherstadt Wittenberg: 루터의 도시 비텐베르크)’입니다. 사실 비텐베르크는 제 독일 탐방 일정 중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입니다. 이 탐방기는 여러분이 읽기 편하게 루터의 생애에 맞추어 연재되고 있지만, 실제 탐방은 지리적·경제적인 여건에 맞추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루터뿐만 아니라 그와 함께하며 독일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동역자와 관련된 유적도 많이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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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3-2)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서(에르푸르트)

설형철

이번 탐방기에서는 루터가 수도사 생활을 시작한 도시인 에르푸르트(Erfurt)로 가보겠습니다. 에르푸르트는 튀링겐 주의 주도(州都)입니다.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독일에는 주마다 그 주의 수도 역할을 하는 주도가 있습니다. 대략 서울의 절반만 한 크기인 이 큰 도시에서 제가 찾아간 곳은, 루터가 사제(신부) 서품을 받은 성 마리 성당(St. Mary’s Cathedral)과 수도사 생활을 한 어거스틴 수도원(Augustinerkloster)입니다. 지난 탐방기에서 언급했던 번개 사건 이후 루터는 수도사가 되기로 결심하고서 에르푸르트 대학을 떠나 어거스틴 수도원(어거스틴 수도회 소속)에 들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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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3-1) –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의 발자취를 따라서(슈토테른하임)

설형철

여러분은 ‘종교개혁’하면 누가 가장 먼저 생각나십니까? 분명히 마르틴 루터의 이름을 떠올리시는 분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이번 글부터는 바로 그 루터의 생애와 발자취를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 독일에는 그와 관련된 유적이 아주 많은 데다 관리도 매우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그의 흔적을 찾아서 이 도시 저 도시(총 8곳)를 돌아다니다 보니, 전체 탐방 기간 가운데 가장 긴, 약 10일 정도를 독일에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만약 방문했던 도시마다 한 편씩 글을 쓴다면, 아마도 내년 말이나 내후년 즈음이 되어야 루터의 탐방기를 마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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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종교개혁 유적지 탐방기 (2-3) – 전 (PRE) 종교개혁자 얀 후스의 발자취를 따라서(콘스탄츠)

설형철

이번에는 얀 후스가 생애 마지막 무렵에 남긴 흔적을 살펴보고, 그것으로 그에 관한 탐방기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로마 카톨릭의 어둠과 부패에 대항하여 싸웠던 후스는 결국 화형으로 그의 삶을 마감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화형당한 곳은 그의 조국 체코가 아니라 독일 남부에 있는 ‘콘스탄츠’라는 도시입니다. 이 탐방기 연재는 후스의 생애에 맞추어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탐방과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한국을 떠나기 전에 탐방 경로를 독일에서 체코로 이동하는 방향으로 잡는 바람에, 뜻하지 않게 후스의 마지막 순간부터 살펴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