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_Pilgrim's_Progress

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8) 넘어지게 하는 자

김재호

교회 안에는 신실한 주님의 백성만 있지 않다. 거듭나지 않고 여전히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도 훌륭하게 신자 행세를 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참된 신자와 신앙의 대화를 나누고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일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세상과 손잡고 이 땅에 속한 영광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일에도 똑같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이 그들의 잘못된 행실을 멋모르고 따라 하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그렇게 교회와 세상에 한쪽 발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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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7) 자기중심적 신앙

김재호

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계명보다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살기를 더 좋아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이 그들의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지적하고 책망하는 일을 무척 싫어한다. 최선을 다해 신앙 생활하고 있는데 괜한 생트집을 잡는다고 여기며 되레 화를 낸다.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는 이들의 말과 행동이 매우 꼴사납고 교만하게 다가온다. 실제로는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그들의 마음이 거만하고 건방져서 그런 것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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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6) 영적 무감각

김재호

살아있는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죽은 사람은 사지(四肢)가 떨어져 나가도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한다. 영적으로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도 그러하다. 전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예민하게 반응하며 그대로 실천하려고 많은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후자는 성경이 아무리 긴급하고 엄중하게 심판을 선포해도 별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되려 귀찮아한다. 영적인 잠에 깊이 빠져 지각이 없는 이들에게 가장 짜증이 나고 수고스러운 일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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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5) 구원의 기쁨

김재호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교회 안에서 ‘진실한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 기쁨을 누리는 이들을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오늘날에도 교회 안에는 구원의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이들은 여전히 많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구원의 기쁨’이란, 옛 성도들이 말하던 ‘그 구원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경배와 찬양’으로 대표되는 문화주의와 감정주의가 그 말의 실질적인 의미를 전혀 다른 의미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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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4)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신앙

김재호

우리 시대만큼 예수님의 재림을 올바르게 생각하고 사모하지 못하는 시대가 또 있을까? 예수님의 재림을 바라보는 현대 교인의 생각과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면, 양 극단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한 부류는 예수님의 재림을 까마득한 미래에 있을 ‘어떤’ 사건처럼 받아들이거나, 실제 일어날 사건이 아닌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다른 부류는 신앙의 본질을 망각한 채, 온갖 사건들 속에서 뭔가 놀랍고 극적인 일이 임박했다는 징후를 발굴해내는 데 골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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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로역정의 크리스천과 함께 천성을 향해 나아가자 (13) 용서받을 수 없는 죄

김재호

“은혜와 긍휼이 무한하신 하나님께서 용서하지 못하실 만큼 극악무도한 죄가 있을까?” 이 질문은 의도와 초점이 무엇이냐에 따라 답이 달라진다. 만약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죄를 다 덮기에는 부족함과 모자람이 있느냐는 취지였다면, 답은 “아니다.” 이다. 그러나 그런 은혜와 긍휼을 악용하며 모독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벌하실 것이냐는 뜻이었다면, 답은 “그렇다.” 이다. 하지만 많은 이가 ‘성령훼방죄(성령모독죄 혹은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불리는 이 죄를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다.